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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향기/추억을 길어올리는 우물

똥파리 그리고 난곡

by 썬도그 2009.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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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평을 방금 각혈하듯 쏟아 냈습니다.   그리고 똥파리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를 읽어 봤습니다.
그 인터뷰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양익준감독이 나와 비슷한 연배이고  난곡에서 어린 시절을 자랐다고 합니다.

난곡이라 흠..

난곡은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고  영화

해적, 디스코 왕 되다 (Bet On My Disco, 2002)

의 주요무대이자 촬영지가 됩니다.  난곡은 제가 살던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어렸을 적 그리니까 80년대 초  난곡은  미지의 세계였죠. 갓 생긴 지하철 2호선 순환선인 신대방역을 지나서  난곡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도 달동네였지만 난곡은 달동네 규모가 더 컸었습니다.  어린 국민학생에게 달동네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거기서  개구리와 송사리를 잡고 비밀봉다리에 송사리를 담고 돌아오다가 오락실에서  오락 좀 하고 집에 오다가  물이 새는 비닐 봉다리를 들고 오다가  물이 다 새는 바람에 송사리가 집단 폐사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곳곳에 있던 달동네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군요. 목동의 달동네도  목동개발에 눌려서 사라지고 상계동도 사라지고 마지막 달동네라는 난곡도 몇년전에 사라졌습니다.  2천 년 초 마지막 달동네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진촬영의 성지가 되었던 난곡은 몇 년 사이에 아파트 촌으로 변했습니다.

작년에 카메라 들고 찾아간 난곡은 완벽하게 해체되었습니다. 이런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양익준 감독은 난곡에서 살면서  그 시절 이야기를 영화로 담았습니다. 영화 똥파리의 상훈이 태어날 만한 환경이었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은 환경의 동물인 것은 맞는 말인 듯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학생과   달동네에서 자란 학생은 경험한 세상이 다르기에 언어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릅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부모님들이 빚내가면서  강남으로 가려고 하나 봅니다.

영화 똥파리를 보면서 제 유년시절의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동네 양아치 형들의 묘사와 그런 삶들 제가 경험했던 모습이기도 하구요. 그렇다고 그 시절이 어둡거나 지우고 싶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그런 부분도 추억입니다. 오히려  요즘은 그런 양아치 형들이 편린화 되고 흩어져서  보기 힘듭니다.

그런 양아치문화가 영화 똥파리에 녹아든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옹호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난이라는 환경에서 태어난 사생아들이 아니였나 하는 측은지심이 생기네요.

오히려 많이 배우고  반듯한 환경에서 자라서  넥타이와 양복을 입고 사회고위층이 되어서 세상의 걸쭉한 부조리를 이끄는
사람들이 죄의 경중을 따지면 더 중한사람들이 많이 나오죠.

수십억을 사기치고도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더 악한 사람들이죠.
영화에서 그려졌듯  가난이 가난을 징벌하고 태클 거는 모습이 서글플 뿐입니다.  

이제 서울에서 공식적으로 달동네는 없습니다.  그러나 80년대보다 더 극렬하게 갈리는 계급화 사회가 된 것이 더 어둡고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영화 똥파리에서 연희네 집이  양익준 감독의  실제 살던 집이었다고 하네요.   다만 걱정인 것은 가리봉, 구로, 관악구를 배경으로 한 똥파리를 통해서   특정 지역에 대한  열패감으로 환원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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