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이탈리아는 한국과 정서가 참 비슷합니다. 반도 국가라서 그런지 보고 있으면 유럽의 한국인들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 많고 말 많고 에너지 넘치는 것이 영락없이 닮았습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탈리아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은 연말 마음 따뜻하게 해주는 가족 영화입니다. 좀 올드하고 간단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전쟁과 가난 그리고 위대한 모성애를 잘 담은 영화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나폴리 아이가 북부로 이동하다
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준비하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순간 뭔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던 바이올리니스트는 연주를 하면서 마음은 고향의 어린 시절로 떠납니다. 시대 배경은 1946년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입니다. 2차 대전이 막 끝나던 시기라서 먹을 것이 없어서 동물은 쥐 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은 아메리고입니다. 아메리고 어머니는 미국으로 돈 벌러 떠난 남편에게서 소식도 들리지 않고 여러 아이를 키웠지만 다 죽고 아메리고 1명만 남았습니다.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렇게 가난을 절절하게 담은 영화도 드뭅이다. 이유는 아메리고 아역을 연기한 '크리스천 세르본'이라는 아역 배우가 뼈만 앙상한 모습 자체가 가난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신발도 없습니다. 학교도 못 갑니다. 음식도 없고 가끔 찾아오는 엄마의 애인이자 유부남인 남자가 주는 돈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합니다. 아이가 형벌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아메리고. 그런 나폴리에 공산당원들이 잠시동안 북부에서 지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은 북부로 가는 기차를 타면 러시아 사람들이 화로에 넣어서 구워 먹는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마을 사람들은 공산당을 미덥지 못하게 생각합니다.
왜? 나폴리 아이들이 북부 지역으로 이동했나?
이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은 원작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현실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서 궁금한 점이 많았습니다. 먼저 나폴리 아이들이 왜 북부 지역으로 잠시동안이라도 이동해서 지냈냐는 겁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남부와 북부가 다른 나라라고 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극심합니다. 한국도 지방과 수도권의 빈부 격차가 심하지만 이탈리아는 북부 지역의 GDP와 남부 지역의 GDP가 2배 이상 납니다.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유명 도시는 다 북부로 공업과 상업, 패션 등등 북부 지역은 부자 도시가 많습니다. 반면 이탈리아 중남부는 어업과 농업 밖에 없어서 가난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수세기에 걸쳐서 생긴 가난인데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이게 더 심해졌습니다. 지금도 이탈리아는 북부에서 번 돈을 남부 지방에 투입한다면서 북부 지역 사람들이 나라를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뭐 외모도 다르다는 소리도 많죠. 이유는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의 후손인 롬바르드 민족이 밀라노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서 북로마 사람들은 북유럽 민족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저주가 아닌 환대를 경험한 아메리노
남부 나폴리에서 살 때는 아이는 신의 축복이자 저주라고 믿고 살았던 아메리노와 친구들은 북부 이탈리아 공산당 농장에서 지내면서 서서히 마음을 풉니다. 아이들은 독을 탔다고 생각해서 음식을 먹지 않다가 인솔자가 맛있게 음식을 먹자 너도나도 달려들어서 먹습니다. 너무나도 순박한 아이들 모습과 동시에 헛소문을 믿는 나폴리 어른들의 나약한 정신 상태도 참 인상 깊습니다. 사람이 위기에 몰리면 생각 근육도 떨어져서 쉽게 이 말 저 말에 휘둘리게 됩니다.
모든 아이들이 공산당원들의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는데 아메리노만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당원들은 데르나에게 부탁을 합니다. 데르나는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였던 남자 친구가 죽자 항상 검은 옷만 입고 다닙니다.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아 합니다. 이에 아메리노에게 정 떨어지게 행동하지만 아메리노는 그런 데르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죠.
이에 데르나는 노동 관련 책을 읽어줍니다.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은 상처 많은 데르나와 아메리노를 통해서 유사 모녀 관계를 보여줍니다. 아메리노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만 이 북부 마을 사람들은 눈감아줍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할 뿐이죠.
좋은 아이와 좋은 어른이 만드는 아름다운 하모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상처 많은 데르나, 가난 그 자체인 아메리노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가 됩니다. 아이의 맑은 모습에 빙그시 웃는 일이 많아지는 데르나 그리고 저주라고 불리던 아이는 축복이 되어서 어른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습니다. 심지어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르나의 오빠는 아메리노에게 연주를 잘 한다면서 바이올린을 선물하죠. 물론 북부에도 편견어린 시선을 가진 어른이 있습니다. 아메리노가 바이올린을 들고 있자 너도 바이올린 만들거냐고 하죠.
이에 아메리노는 연주자가 되겠다는 소리를 탐탁지 않게 봅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모습을 보면 이 인연이 아메리노의 미래를 결정한 듯합니다. 같은 이탈리아지만 너무나도 다른 환경이 마치 현재의 남한과 북한의 모습으로도 느껴집니다. 같은 민족이지만 태어난 위치가 다르다고 인생 전체가 미래가 달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모성애를 잘 담은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
영화 음악, 영화 영상, 연기, 연출 참 담백하고 깔끔하고 묵직합니다. 이탈리아가 요즘은 좀 뜸하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 강국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시네마 천국>이죠. 보면서 <시네마 천국>이 참 많이 떠올랐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멋진 이탈리아 풍광, 뛰어난 배우와 연출가들이 여전히 많은 나라죠.
안개를 보고 폭탄이 터졌냐고 묻고 눈을 보고 설탕 같다고 하는 아이들은 점점 온화한 마음씨에 동화되어 갑니다. 물론 북부에서도 텃세 부리는 아이도 있지만 아이는 백지 같아서 금방 변합니다. 이 모습도 참 좋았습니다. 어른들처럼 절대 안 변하는 것이 아닌 변하는 모습이 참 좋네요.
그럼에도 가장 큰 반전이자 감동은 아메리노가 나폴리로 돌아간 후 나옵니다. 아메리노가 바이올린을 들고 돌아오자 엄마는 바이올린이나 켤 때냐면서 구두 공방에서 일을 하라고 다그치죠. 그러나 아메리노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가난한 엄마와 부자 마을에 사는 또 다른 엄마 데리나. 영화는 어떤 엄마가 더 좋냐고 묻지 않고 모든 것은 전쟁이 일으킨 비극이지 엄마들의 탓도 아이들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지막 장면도 <시네마 천국>과 참 비슷합니다. 뒤늦게 깨닫는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위대한 모성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담고 있네요. 다만 이 영화는 자극적인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지루할 수 있지만 아메리노를 연기한 아역 배우의 뛰어난 연기에 몰입하면서 봤네요.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저자극 고품격 영화 한 편을 봤네요. 연말을 따뜻하게 해 줄 좋은 가족 영화가 <칠드런스 트레인>입니다.
별점 : ★ ★ ★☆
40자 평 : 두 어머니를 통해 본 위대한 모성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