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는 참 다양한 사진 갤러리가 있지만 예전의 위세는 많이 수그러들었습니다. 갤러리 룩스, 갤러리 나우로 대표되는 사진 전문 갤러리 중에서 갤러리 나우는 강남구 언주로로 이전을 했습니다. 강남까지 가서 전시를 보러 갈 일도 없고 미술전시회를 주로 하는 곳으로 변신해서 갈 일은 없을 겁니다.
갤러리 룩스는 갤러리 인덱스로 이름을 바꾸고 여전히 다양한 사진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가끔 미술전을 하는 등 사진 전시회만 전문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요즘 사진전시회가 확 줄었고 활동하는 사진작가 분들도 크게 줄었습니다.
갤러리 인덱스에서 본 장항선 비둘기 사진전
인사동을 지나다 습관처럼 갤러리 인덱스를 봤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지나갈 뿐 들어가 볼 생각을 잘 안 하게 되네요.
그러나 입구에서 사진전 이름을 보고 바로 냉큼 올라갔습니다. 김선재 사진전 <장항선 비둘기>
장항선은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모릅니다. 비둘기??? 사진전에 기차 타는 모습을 보아서 비둘기호를 담은 듯하네요.
미리 말하자면 사진전은 7월 24일에서 29일까지 진행되었고 끝났습니다. 제가 찾아간 것도 전시회 마지막 전날이라서 소개해봐야 소용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 소개합니다. 또한 사진집도 있으니 사진집으로 만날 수도 있습니다.
90년대 초중반 많은 열차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인선이라고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보통의 철로보다 좁은 협궤열차가 사라졌고 지역민들의 발이 되었던 그러나 수익이 나지 않았던 느리고 느린 비둘기호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항선 비둘기호도 1998년 폐선됩니다. 장항선은 천안에서 시작해서 서해안을 따라서 지나다가 전북 익산에서 멈추는 서해쪽 철로입니다. 이 장항선에 통일호, 무궁화호 그리고 서민들이 많이 타고 느리고 저렴한 비둘기호도 지나다녔습니다. 이 중에서 비둘기호가 1998년 폐선이 된다는 소식에 사진가를 꿈꾸던 대학생 김선재는 흑백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장항선을 탑니다.
그리고 그 1998년 11월 1달 동안 장항선을 타고 장항선을 기록합니다. 제가 못 찍어서 가장 후회했던 것이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를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디카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지만 제가 첫 디카를 샀던 2000년대 초반에 재개발로 동네 전체가 삭제되었습니다. 뭐 사진 1장 남기지 못한 추억에서만 존재하는 동네가 되었네요.
사진은 예술의 도구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록의 도구입니다. 이 뛰어난 기록 도구를 들고 무작정 장항선을 촬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귀한 사진으로 돌아왔습니다. 작가님과 좀 이야기를 해봤는데 대학 시절 취직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사진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 관심이 이 기록을 남기게 했습니다.
사진들은 지금은 다시 보기 어려운 풍경들로 가득합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손주나 아들에게 하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걸 사진은 할 수 있습니다. 소쿠리를 들고 시장으로 나가시는 아주머니 할머니들 정말 생활력 하나는 지상 최고십니다. 비둘기호는 앞으로 보는 좌석이 있고 지하철처럼 양 옆으로 되어 있는 좌석이 있는데 지하철 방식에는 할머니들의 지정석이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식사를 하는 모습 속에서 뭉클함이 묻어나네요.
장항선 비둘기호는 무척 느려서 익산에서 천안까지 2시간 이상 걸렸다고 합니다. 역마다 다 서고 느리고 복선이 아닌 단선이라서 기차가 한 대 지나가면 다른 한 대가 지나갔습니다.
좋은 사진을 담으려면 과감해야 한다
쭈볏거리고 숙맥이면 사진 하기 어렵습니다. 풍경 사진은 할 수 있지만 사람이 담기는 사진을 담기 어렵습니다. 과감해야죠. 비둘기호 기관사님의 운전하는 모습과 함께 비둘기호에 탄 할머니와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 학생들 이름과 할머니 이름까지 적혀 있네요.
촬영 담을 들어보니 서울에서 천안역까지 간 후 거기서 장항선 비둘기호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역에서 밤을 새우고 다시 올라왔다고 합니다. 참 고된 일정이었을 텐데 1달간 꾸준히 하셨네요.
뭐든 남기면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우리의 과거의 한켠을 보여줄 겁니다. 제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복원왕인데 제가 태어난 후 기억이 없는 시기나 태어나기 전의 서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이런 사진도 장항선을 탔던 분들에게는 다 추억일 거예요.
3년 전에 장항선 전시회를 서천군 장항도시탐험역에 <장항선 비둘기> 전시회를 했는데 홍보 부족 때문인지 이 장항선 탔던 분들이 오시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역이름이 독특하네요. 장항도시탐험역. 다리 건너면 군산이네요.
장항선 비둘기 풍경을 보니 등교하는 학생들 모습도 보입니다. 지금은 40대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어 있겠네요.
뭐든지 빠른 이 시대에 비둘기호는 퇴출되었지만 느려서 복잡하지 않았던 그때가 가끔 그립습니다.
장항선 비둘기는 눈빛 출판사에서 사진집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눈빛 출판사가 없었으면 수많은 사진집들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장항에서 천안까지 2,100원이던 시절인 1998년 11월 12일 이때가 IMF가 한창이던 살벌하던 시기여서 그런지 1998년이라는 소리에 만감이 교차하네요. 작가님도 이 당시 취직이 안 되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장항선을 찾아갔다고 해요. 이후 카드 빚이라는 부양책으로 겨우 탈출했지만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네요.
서민의 발이었던 비둘기호. 이 할머니는 작가님과 자주 만나서 이름까지 담겨 있습니다. 비둘기호라는 서민들의 공간이 사라지듯 점점 경제 논리로 인해 서민들의 발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 같이 못살면 비교라도 안 하고 살지 요즘은 더 비싸고 빠른 모든 것을 지향하는 부나방들이 되어버렸네요. 비둘기호가 사라진 후 통일호가 사라졌고 무궁화호도 줄여가고 있네요. 느려도 싸게 갈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비둘기, 통일호, 무궁화, 새마을호 이 4단계로 형편과 여건에 맞는 걸 탈 수 있었던 그 다양성의 시대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