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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서울여행

삼일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by 썬도그 2024.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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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터널 뒤쪽 동네에 가면 서양식 건물이 나옵니다. 수 많은 개화기 시절 지어진 건물이 사라졌지만 이 건물은 1924년에 지은 집으로 올해로 100년이 된 집입니다. 한국에 오래된 건물이 많지 않은 이유는 조선시대 건물 대부분이 목조 건물이었다는 점과 벽돌로 지은 집도 한국의 혹독한 기후 환경 때문에 100년을 견디기에는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더운 나라죠. 

 

3.1운동을 앨버트 W. 테일러 가옥 딜쿠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먹고살만해지니 이제서야 역사에 대한 복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박원순 시장은 서울미래유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서울의 오래된 노포와 이런 오래된 건축물을 오래오래 복원하는 행동을 했었죠. 그런데 이 서울미래유산 자체는 지지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게 모순된 점이 있습니다. 오래되었다는 건 건물이 낡았다는 소리이고 다 쓰러져 간다는 소리이기도 하죠. 따라서 보수나 아니면 재건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래되었다고 서울미래유산 명패를 달아주면 오히려 재개발이 일어날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실제로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많은 곳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극장도 리모델링을 통해서 공연장으로 탈바꿈하는 것 같더라고요. 위 사진은 2018년에 촬영한 사직터널 위에 있는 딜쿠샤입니다. 이 딜쿠샤는 1924년에 지어진 집으로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집은 미국인 '앨버트 W. 테일러와 아내 '메리 L. 테얼러'가 지은 집입니다. 이 테일러 아버지는 1897년 한국에 도착해서 한국의 광산업과 상업에 종사합니다. 아들 앨버트는 1919년 AP 통신사 기자가 되어서 한국에서 활동합니다. 외신 기자인 앨버트는 한국의 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리는 아주 훌륭한 일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대규모 비폭력 평화 시위인 3.1운동을 했지만 외국에 알리려면 외신을 타야 합니다. 당연히 일제는 검열을 했지만 다행히 이 앨버트가 외국에 이 사실을 알립니다. 

 

이 앨버트가 살던 딜쿠샤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알게 되었는데 직접 가보니 오래된 붉은 벽돌집 그대로 보존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처음 갔을 때가 2014년 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여기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입자가 한 분이 아닌 여러 세대가 살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그런데 이렇게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서 지붕에 방수포를 달 정도였습니다. 정말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죠. 이에 서울시가 이 건물을 매입합니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그리고 2016년부터 시작된 긴 공사 끝에 2021년 시민에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합니다. 2021년 코로나 당시에는 인원 제한 및 예약 시스템으로 돌렸지만 지금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변신했습니다. 

재건축 수준으로 변신한 딜쿠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사직터널입니다. 서대문구와 종로를 잇는 터널이죠. 사람도 지나다닐 수 있더라고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여기에 서울미래유산이라고 적혀 있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억~~~~ 예전엔 이길이 없었어요. 막혀 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이 밑에 길까지 연결해 놓았네요. 아주 좋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서울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는 화~일요일 개관이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이 계단은 또 시간이 다른데 이길로 주민들이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있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이 계단입니다. 계단 아주 멋진데요. 여기서 계단 배경으로 사진 찍기도 좋을 듯 해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복원한 딜쿠샤를 보면서 이게 1924년 당시의 딜쿠샤이긴 하지만 너무 새삥이라서 이질감이 들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일본은 문화재 복원할 때 세월의 흔적까지 재현해서 만들던데 이건 뭐 누가 봐도 최근에 지어진 신축 건물이네요. 그렇다고 이 건물을 신축을 한 것은 아니고 뼈대는 그대로 살리고 보강 작업을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무려 4년간 공사를 했으니 아파트 공사보다 더 느리게 공사를 했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푸른 잔디 마당도 있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저 앞에 있는 나무가 권율 장군 나무라고 하죠. 권율 장군 생가 터에 있는 420년 된 은행나무입니다. 엄청나죠. 나무도 보면 오래사는 나무가 많지 않더라고요. 벚나무도 40년 정도인가 하고 그 이후에는 죽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서울 곳곳에 가로수 바꾸는 작업도 많이 해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새삥 딜쿠샤 이거 참! 감흥이 없네요. 나름 복원한다고 했는데 영 오래된 느낌이 없다 보니 그냥 새로 지은 서양식 건물 모양의 박물관같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실내화 신고 들어가야 하고 가방은 왼쪽 하단에 넣어야 해요. 저에게 가방 맡기라고 하기에 다른 사람은 그냥 들어가는 걸 지적했더니 큰 가방만 막는다고 해요. 아무래도 백팩으로 물건 툭툭 치고 다니니까 그런가 보네요. 그런데 가방 보관대가 너무 노출되어 있기에 이거 들고가면 책임 질거냐고 물으니 CCTV가 있다는 말을 하네요. 

도둑이 CCTV 무서워서 안 훔치는 것도 아니고 고가의 카메라도 있어서 불안했지만 평일이라서 사람도 없고해서 그냥 뒀습니다. 차라리 사람이 보는 곳에 배치하면 좋은데요. 아무튼 백팩 메는 분들은 이점 숙지하세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안에 들어가니 1920년대로 복워을 해놓았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그냥 하나의 추억 박물관 느낌도 아니고 그냥 그시절을 재현한 말 그대로 박물관입니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여기저기 고가구들이 있고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린리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만났네요. 그리고 호박 목걸이를 선물했고 1917년 인도 봄베이에서 결혼을 했고 한국에서 살다가 1940년대에 일제의 의해 추방 당합니다. 일제가 이리 악독합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여당 정치인들이나 대통령이 너무 친일을 외쳐요. 친일이 국가 기조가 되었어요. 그런데 저 호박 목걸이 귀걸이가 실제품인지 재현품인지 안 젹혀 있네요. 검색을 해서 보니 테일러 손녀분이 기증한 진품이네요. 

 

미국인인 앨버트는 인도, 일본 등등 국제적으로 활동했네요. 그리고 일제 시대에도 약소국 조선의 독립운동과 일제의 만행을 영문으로 해외에 알렸습니다. 아주 용감한 분이고 위대한 분입니다. 사실 이 딜쿠샤도 2006년 앨버트의 아들분이 오셔서 여기가 딜쿠샤라고 해서 아게 되었고 이후 많은 언론에 알려지면서 복원 및 소개가 되었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1926년 7월에 화재가 발생해서 많은 물건아 탑니다. 화재 원인이 놀랍네요. 벼락입니다. 벼락이 쳐서 불이 났다고 하네요. 이 위치가 좀 그렇죠. 꽤 높은 곳에 있어요. 옆에 은행나무도 큰게 있고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당시 사진들입니다. 이 사진 보고 복원을 한 듯 합니다. 부잣집이라서 사진기록물도 참 많이 남았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사람이 들락거리다가 난간에 걸터 앉거나 벽에 기대고 집고 하는지 안내판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2층은 대형 거실이 있고 벽난로도 있습니다. 여기서 온가족이 화목하게 지냈을 듯 합니다. 당연히 못 들아가고 구경만 해야 합니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여기도 벽난로가 있네요. 서양식 난방 기구인 벽난로 한옥은 1층 구조라서 온돌로 쌉 가능하지만 2층 이상은 온돌로 못하잖아요. 그래서 서양은 벽난로로 난방을 했나 봐요. 유럽은 이층 작은 방에도 벽난로가 있네요.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딜쿠샤의 다양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공동벽 쌓기라는 건축에 관한 내용도 잠시 볼 수 있네요. 신기하네요 벽이 2중 벽이고 중간에 공간이 있는 한 마디로 벽돌로 만든 블럭 같네요. 중간에 공간이 있으면 공기가 들어가서 보온 효과가 있을 듯 하네요. 

 

3.1운동을 세상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2021년 3월 1일 문재인 정부가 끝날 무렵 이 딜쿠샤 완공과 함께 102주년 3.1절 기념식에는 '앨버트 테일러'의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가 탑골공원에서 3.1운동 기념식에서 낭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AP통신을 통해서 타전한 신문 기사 내용을 낭독했습니다. 할아버지인 '앨버트 테일러'는 1919년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했다가 침대 바닥에 버려진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이걸 세계에 알렸습니다. 

 

1919년 3월 19일에 뉴욕타임즈에 최초로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뜹니다. 물론 당시 미국도 열강이라서 식민지에서 일어난 평화 만세 운동을 크게 다루지 않았지만 열강들끼리 신사인척 하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죠. 어차피 내가 먹냐 니가 먹냐 차이인데요. 다만 억압이냐 아니냐 차이인데 그런면에서 일제는 억압이 너무 심했어요. 

 

이 사건 이후로 눈엣가시였던 미국인 앨버트는 1942년 일제가 강제 추방을 시킵니다. 1942년? 왜 이전에 추방하지 않고 1942년인가 했더니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한 시기네요. 미국과 친목하다고 일제가 뒤통수를 치고 두 나라는 전쟁을 합니다. 지금은 다시 그 어떤 나라보다 미국 바라기가 된 일본이네요. 역사는 참 아이러니해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절친이 되고요. 지금은 100%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복원이 되었습니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2층에는 빔프로젝터로 영상물도 감상할 수 있고 벽채 한쪽을 뜯어서 원래 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 들러볼만은 하네요. 

권율장군 집터 은행나무

바로 앞에 이 권율 도원수 집터가 있고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테일러의 저택 딜쿠샤

집 뒤도 가봤는데 여기도 그냥 새로 탄생했네요. 굴뚝까지 복원을 했고요. 근처에 서울교육청 옆 기상박물관 그리고 돈의관 박물관 마을, 정동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아이들 손잡고 들려보기 딱 좋습니다. 아이의 나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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