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 저녁 7,000원에 신용카드 할인해서 3,500원 주고 무슨 영화를 볼까 하다가 볼 게 없어서 예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설계자>를 봤습니다. 예고편 정도만 보고 어떤 사전 정보도 없었습니다. 유명한 배우들 많이 나오더라고요. 저 배우들이 그냥 막 출연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단 하나의 믿음만 있었죠.
감독도 이요섭으로 2016년 <범죄의 여왕>을 연출한 감독이네요. <범죄의 여왕>은 나름 재미있던 영화였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죠. 그런데 평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5점 만점에 2점대???. 영화관 가는 길이라서 2점대 평점을 보고 기대치를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아! 이걸 돈 주고 보라고 만든 건가? 단돈 3,500원을 투자한 그 돈도 시간도 너무 아까워서 화가 날 지경입니다. 절대 보지 마세요. 안 보는 게 돈 버는 영화가 <설계자>입니다.
홍콩영화 <엑시던트>가 원작인 <설계자>의 줄거리
영화가 시작되면 우연한 사고로 위장한 살인청부업 팀을 이끄는 팀장 영일(강동원 분)이 여자 형사 양경진(김신록 분)에게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과 함께 자신을 죽이려는 청소부라는 존재를 낱낱이 고백하면서 시작합니다. 응? 처음부터 좀 이상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시작한다는 건 이 영화는 이미 결말이 형사에게 자백하는 영화라는 소리인데 이만큼 맥 빠지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다 보고 나면 이게 또 하나의 장치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오히려 영화를 더 혼란스럽고 너저분하게 만드는 장치라서 화가 날 지경이네요. 영일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형사 앞에서 말합니다.
영일은 전현직 자신의 팀원을 소개합니다. 마약에 취해 사는 경험 많은 노회한 재키(이미숙 분)와 트랜스젠더인 월천(이현욱 분)과 신입인 유부남 점만(탕준상 분) 그리고 버스 전복 사고로 죽은 전 동료이자 아끼는 동생인 짝눈(이준석 분)까지 다 말합니다. 짝눈은 버스 전복 사고로 사망했지만 이 우연한 사고가 사고가 아닌 청소부라는 규모가 큰 살인청부업을 한 팀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이 버스 전복 사고로 사망한 유명한 사람이 비자금 이슈로 시끄러웠던 검찰총장 후보인 주성식 의원의 아내만 신문에 대서특필되었고 이 사고로 같이 사망한 친한 동생 짝눈은 뉴스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이유가 짝눈이 신분 자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소부가 한 번에 2명을 동시에 제거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즉 자신들도 사고로 가장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을 하지만 사이즈가 더 큰 청소부가 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설계자> 초반은 소재가 신선해서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살인 청부를 받고 각 팀원들이 유기적으로 활동해서 결국 한 사람을 건물 붕괴 사고로 사망하게 하는 데 성공하죠. 그런데 영화 초반부터 좀 많이 어설픕니다. 한 배달 오토바이가 타깃이 된 사람에게 도발을 하고 이 도발에 흥분한 타깃이 차를 몰고 오토바이를 쫓습니다. 그러다 오토바이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그냥 갈길 가나 했는데 다시 오토바이를 발견하자 흥분합니다. 오토바이를 쫓겠다는 건지 아닌 건지 확실하지가 않아요. 오토바이를 놓치면 핸들을 치면서 화를 내야 엄청 화가 났나 보다 하는데 오토바이를 잃어버려도 전화 통화만 합니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 의뢰 사건이자 핵심 사건입니다. 주성직 의원(김홍파 분)은 검찰총장 후보에 올랐지만 아내가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어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딸 주영선(정은채 분)은 이 휠체어를 타는 주성직 의원을 매일같이 비서처럼 아버지와 함께 이동합니다.
이 설정이 좀 어색합니다. 국회의원이 검찰총장이 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검찰총장 중에 국회의원 출신을 못 봤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아버지가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는데 딸이 아버지를 보필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보통 구설수에 오르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이 휠체어를 밀게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딸 주영선이 영일 팀에게 살인의뢰를 부탁합니다. 타깃은 아버지 주성직입니다. 영일은 죽일 방법을 고민하다가 비가 올 때 감전사로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이 설정은 이 영화의 원작인 2009년 제작된 홍콩 영화 <엑시던트>에서 전당포 아버지와 아들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원작보다 좀 더 규모감 있게 담았지만 원작도 그렇고 영화도 이런 설정이 꽤 무리수라고 느껴지네요. 비 오는 날 감전사? 설정 자체가 좀 어설프죠. 그런데 이 사건 이후에 팀의 막내 점만이 버스와 충돌해서 사망합니다. 그 현장에 영일이 있었습니다. 영일은 또다시 청소부가 출동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 영화를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유튜브로 봤는데 원작 영화 자체도 크게 재미있다고 할 수 없고 둘 다 무리수가 많 지만 그럼에도 원작은 메시지와 주제가 확실합니다. 그러나 한국 리메이크 영화 <설계자>는 원작에 없던 캐릭터인 형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형사 캐릭터는 패착 중에 패착입니다. 더 이상 말하는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여기서 멈추겠지만 한국 영화는 너무 무리한 설정으로 영화를 끝내네요. 이에 많은 관객들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무슨 이야기이지?라는 어리둥절해하면서 영화관을 나서는 분들이 많네요. 저는 이해는 했는데 감독이 너무 무리한 설정을 했다는 생각만 가득 드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디테일이 너무 어설픕니다. 좋은 제품이나 영화는 디테일에서 나오는데 편집을 엄청 당했는지 뚝뚝 끊기고 튀는 장면이 많네요. 영화 <설계자>는 상영시간이 요즘 영화답지 않게 짧은 99분입니다. 1시간 40분??? 요즘 이렇게 짧은 영화 만나기 쉽지 않은데. 짧네요. 그나마 이게 유일한 장점이라는 점입니다. 영화관에서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들어서 연신 시계를 보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설픈 설정과 갈팡질팡하는 스토리의 <설계자>
이미숙 등 배우들의 연기가 좋긴 하지만 강동원의 연기가 여전히 늘지 않고 그냥 의무적으로 연기하는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네요. 강동원은 전우치 같은 밝은 캐릭터 연기할 때가 좋지 이런 어두운 면이 강한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네요.
어떻게 보면 팀을 이루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캐이퍼 무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액션이 많은 액션 영화로 비추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 영화는 심리 스릴러물이라서 액션은 많지 않습니다. 버스 전복 사고 같은 큰 액션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액션은 거의 없습니다. 영화 <감시자들> 생각하고 봤는데 <감시자들>에 비견할 수 없는 작은 영화입니다.
팀플레이 활약도 없습니다. 그냥 각각의 캐릭터는 소모되기 위해 존재할 뿐 협업은 없습니다. 오히려 팀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식으로 사건이 전개됩니다. 여기서부터 답답해집니다. 주연인 영일은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더 규모가 큰 청부업자인 청소부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런 진행으로 인해 영화는 영일의 단독플레이로 전환되고 영화의 핵심은 영일에게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그래서 그게 재미있냐인데 재미 드럽게 없습니다. 영일이 내부 배신자 찾겠다면서 하는 모든 행동이 재미가 없습니다.
청소부도 찾아야 하고 내부 배신자도 찾아야 하는데 여기에 곁가지로 나오는 스토리나 집중력 훼손하는 캐릭터도 있습니다.
음모론 설파하는 유튜버 하우저(이동휘 분)를 통해서 음모론과 언론의 세태를 반영하라고 노력하지만 둘 다 실패입니다. 하우저는 영화를 보는데 오히려 방해만 되는 캐릭터로 없어도 되는 캐릭터입니다. 오히려 집중력 훼손 또는 트릭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배치한 느낌이 강하네요.
디테일도 문제입니다. 이건 큰 문제는 아니지만 강동원이 반대편 건물 옥상에서 주성직 의원 부녀를 몰래 지켜보는 데 사용하는 카메라 렌즈가 캐논 EF 24~105mm 또는 24~70mm 렌즈입니다. 이 렌즈로는 반대편 건물에서 확대해서 보기 어렵습니다. 최소 300mm 이상 백통 렌즈를 사용해야죠. 순간 풉하고 웃었네요. 제가 카메라에 대해서 관심 많아서요.
이뿐이 아닙니다. 하우저가 건물에 난입하는데 갑자기 옥외 전광판으로도 라이브 영상이 송출됩니다. 이건 또 누가 해킹한 건지 모르겠네요. 영화가 뭔 설명이 없어요. 재키라는 노인 캐릭터가 알치하이머 병에 걸렸는데 영일과 짝눈을 구분 못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갑니다. 기억 상실증으로 알고 있는데 사람 구분도 못하더라고요. 순간 영일이 예전엔 짝눈으로 불렸나 했네요. 그냥 뚝뚝 끊기고 개연성도 떨어지는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총체적 난국 같은 영화 <설계자>
주연 배우의 연기, 떨어지는 연출력 그리고 영화가 점점 재미를 잃어가는데 음악만 웅장한 모습에 음악까지도 듣기 짜증나지더라고요. 영화가 밀도 높은 심리 스릴러로 진행되었으면 음악이 가속 페달을 밟아줄 텐데 영화 자체가 재미가 뚝 떨어지고 뭔 이런 영화가 있나 하는데 음악은 굉음 같은 속 긁는 소리로 들려서 오히려 반감만 더 늘게 되네요.
강력 비추천합니다. 안 보는 게 돈 버는 것이고 3,500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집에서 프로야구나 볼 걸 그랬네요.
별점 : ★ ★
40자 평 : 원작도 그닥 재미있지 않지만 이걸 더 재미없게 설계한 설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