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단순한 것이 좋습니다. 각종 현란한 치장과 눈요기로 무장해서 날 좀 봐달라는 것이 천지삐까리인 현재는 오히려 담백하고 단순한 것이 더 매력 있습니다. 오히려 단순하게 만들고 담백하고 만드는 것이 어려운 시대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각종 유혹에 쉽게 빠지니까요.
그러나 일본 영화들은 담백한 드라마를 참 잘 만듭니다. 그게 일본 영화의 힘이고 매력입니다. 다만 요즘 한국 영화들도 담백하고 깔끔하면서도 힘 좋은 영화들을 잘 만듭니다. 하지만 대부분 독립 영화들입니다. 대기업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관객이 졸지 않게 강한 것들을 많이 투입하죠.
유명 배우, CG와 현란한 편집술과 자극적인 스토리 등등 다양한 것들을 넣어서 관객 앞에 내놓지만 자극적인 건 금방 휘발됩니다. 그래서 긴 여운이 좋은 일본 드라마 영화를 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일본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자극적인 소재가 있음에도 그걸 차분하고 담담하게 담는데 이게 더 눈물샘을 자극하네요. 특히 걸그룹 '시크릿' 출신의 한선화의 연기가 빛을 내네요.
4명의 여자가 주인공인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교토에서 온 편지>
혜영(한선화 분)은 서울 사립대 문예창작과를 나와서 방송 작가 일을 하다가 일이 안 풀려서 고향이자 엄마와 언니 동생이 사는 부산으로 돌아옵니다. 혜영의 집은 어부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 화자(차미경 분)가 첫째이자 회사원인 혜진(한채아 분)과 고등학생인 혜주(송지현 분)와 함께 살다가 혜영은 서울의 대학교에서 졸업하고 방송 작가로 활동하다가 일이 안 풀려서 내려옵니다. 꿈은 소설가인데 먹고사니즘으로 인해 방송 작가 일을 했습니다.
어머니 친구분은 혜영이 방송국 PD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혜영을 더 움츠러들게 하죠.
어머니는 이 세명의 딸을 잘 키웠습니다. 첫째 혜진은 어머니와 함께 집안을 이끄는 어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역할까지 해야 해서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부산을 떠나보라고 하지만 떠날 수가 없습니다.
막내 혜주는 집안 몰래 춤을 배우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알기에 댄스 학원을 다니면서 경연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제사 때 4명의 여자는 모여서 제사를 지냅니다. 삼촌이 있는데 매번 술주정이나 하고 겨우 5만원만 보탠다고 성화입니다.
화자는 부산 영도에서 독거 노인들 도시락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화목해 보이는 이 4명의 여자들 사이에 갈등이 피어납니다. 어머니 화자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자 집에 있던 혜영이 병원에 모시고 갑니다. 이런 중대한 사건을 언니인 혜진에게 하지만 혜진은 알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대비하고 요양원까지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이지만 이걸 혜영은 못마땅해합니다. 어떻게 보면 혜진은 리얼리스트이고 혜영은 다소 환상을 많이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치매는 점점 심해지고 혜영은 어머니의 과거를 묻습니다.
"엄마 일본 사람이야?"
"일본에서 태어났지 일본 사람은 아니야" 라고 말하는 화자.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일본과 연관이 좀 있고 어머니인 화자의 과거 이야기가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서사입니다. 어린 시절 한국 부산 영도에 도착한 화자가 이방인이 겪은 서러움은 엄청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그걸 자세하 담지 않습니다. 그냥 슬며시 슬픔의 한 자락을 펼치는 정도입니다. 이게 더 슬픕니다. 다 보여주는 것보다 관객이 상상하게 하는 슬픔은 내 상상력이 더 크게 가미되기에 슬픔이 더 진하고 진폭도 큽니다.
아주 영리한 연출이고 일본 영화들이 이런 연출을 잘합니다.
혜영은 집을 정리하다가 어머니 앞으로 온 일본어로 된 편지를 발견합니다. 외할머니가 보내온 편지인데 어머니는 집어넣으라고 하죠. 그러나 혜영은 그 편지 내용이 궁금해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해석을 합니다.
편지는 일본 교토의 한 정신병원에서 온 편지입니다. 외할머니가 정신 병원에?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는 이 궁금증이 영화 중반과 후반을 끌고 갑니다. 더 이상은 스포라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이 참 좋았던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교토에서 온 편지>는 어떻게 보면 일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4명의 여성이 주인공인 것이 비슷하지만 자매 간의 서사가 아닌 부모와 자식 같은 서사가 핵심 서사입니다. 화자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자 애정과 증오가 난무하는 세 자매는 어머니를 모시고 교토로 향합니다. 국민학교 때 부산 영도에 도착한 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교토
갑자기 생이별을 한 어머니가 있던 곳. 그렇게 혜영의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보낸 교토에서 보낸 편지를 따라서 4명의 가족은 함께 교토로 갑니다. 이 이야기가 참 눈물 겹습니다. 어머니도 누군가의 딸이고 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들입니다. 전 이런 이야기가 참 좋더라고요. 한 사람을 한 시선으로 담는 것이 아닌 다양한 각도로 보는 드라마가 참 좋아요.
뭐 우리 주변의 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 흔한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걸 누가 연기하느냐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데 감독 김민주의 연출력이 아주 좋네요. 촬영 감독 출신이라서 그런지 영상이 깔끔하네요. 연출력도 꽤 좋고요. 튀거나 모나거나 자극적인 장면이 하나도 없어서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4명의 배우를 칭찬 안 할 수 없습니다. 한채아, 한선화, 차미경 배우는 부산 출신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영화가 부산 영도에서 내려다 본 부산 앞바다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은 부산에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기 좋았습니다. 특히 앞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화물선과 상선들은 부산만이 가진 풍경이죠.
4명의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참 좋습니다. 특히 한선화 배우는 <창밖은 겨울>에서도 느꼈지만 아이돌 가수 출신 배우라고 하기엔 연기를 너무 잘하네요. 특히 마지막 어머니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눈물이 또르르 흐르게 하네요. 눈빛으로도 연기하는 한선화. 앞으로 배우 한선화는 많은 감독님들이 손짓을 할 듯하네요. 연기를 정말 잘해요.
눈으로 안타까움과 애잔함과 사랑을 모두 담고 있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네요. 부산 영상진흥위원회가 지원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제작한 저예산 독립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모녀 사이에 흐르는 아름다운 애증의 강을 참 잘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가족은 항상 싸우고 사랑하는 관계임을 아주 잘 담고 있는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 ★☆
40자 평 : 고향으로 돌아온 딸과 함께 떠나는 엄마가 딸이 되어가는 고향으로 향하는 온기 가득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