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꼰대라고 하지만 꼰대의 전성기는 1970~80년대였습니다. 유교와 군대가 콜라보해서 강력한 병영 국가를 만든 전직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 연달아서 정권을 잡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직도 넌더리가 납니다. 뭘 그리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많았는지 모르겠어요. 할 수 있는 건 독서실 가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것 정도밖에 없었죠.
당구장, 만화방으로 대표되는 유흥장소 정도만 허용되고 롤러장도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시대였죠. 일명 날날이들 가는 곳은 가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갈만한 곳은 없고 가지 말라는 곳만 가득했던 1980년 대는 극심한 냉전 시대이자 베이비 붐 1세대들이 기성세대가 되어서 베이비 붐 2세대들을 굉장히 억압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에 군부 정권은 대학생들을 때려잡던 살벌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춤과 노래를 금지했던 미국 버먼트로 이사온 '렌 맥코맥'
90년대에 다작으로 유명한 '케빈 베이컨'이 주연을 한 1984년 작품인 <자유의 댄스>는 저에게는 풋 루즈(footloose)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음악 라디오를 끼고 살아서 영화는 방금 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케니 로긴스'의 풋 루즈만 엄청 들었습니다. 뒤늦게 이 영화가 나온 지 40년이 지난 지금 보게 되었네요. 명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 전체에 좋은 노래가 엄청나게 나와서 80,90년대 영화들의 특징이자 음악의 시대였던 80년대 답게 영화 수입과 함께 영화 앨범 수익이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케니 로긴스'의 풋루즈가 흐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발이 보입니다. 80년대 한국 CF에서 참 많이 오마주한 장면이기도 하죠. 다양한 사람들의 발과 신발만 보이지만 그 발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지금 들어도 경쾌한 주제가인 풋 루즈.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유의 댄스>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으로 공식 소개되었네요.
주인공은 17세의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엄마와 함께 친척 집이 있는 버먼트로 이사혼 '렌 맥코맥(케빈 베이컨 분)'입니다. 이 렌이 이사온 버먼트는 춤과 음악이 금지된 동네입니다. 이유는 4년 전에 한 무리의 청년들이 음주가무를 하고 차를 몰다가 다리에서 추락 사고로 여러 명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음주 운전이 문제이지 음악과 춤이 문제가 아님을 상식적으로 알지만 이 버먼트의 법을 관장하는 7명의 위원 중 한 명인 쇼 무어 목사는 음악과 춤을 모두 금지시킵니다. 그러나 렌은 이런 이유를 잘 모르고 따를 생각도 없습니다. 이방인이 마을에 오자 여기저기서 수군 거립니다. 렌이 책을 좋아하는 모습에 친척이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으니 '제5 도살장'을 읽는다고 합니다. 이 책은 꽤 유명한 반전 영화고 전쟁 참상을 담은 소설입니다. 다만 이런 책을 고등학생이 읽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렌은 읽습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친척은 무슨 그런 책을 읽느냐며 '톰 소여의 모험'을 권합니다. 그만큼 이 버먼트는 아주 보수적인 동네입니다. 렌은 그러거나 말거나 평상시처럼 락 음악을 차에서 들었는데 바로 경찰이 오더니 카세트테이프를 빼앗고 40달러 벌금까지 물립니다.
생각보다 꽤 얌전한 영화 <자유의 댄스>
전 렌이 마을에 춤과 음악을 전파해서 마을을 전복하는 혁명적인 모습을 기대했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얌전합니다.
렌은 어른들에게 대들거나 하는 반항아 같아 보이지만 어른들의 말을 꽤 잘 듣습니다. 텃새를 부리는 학교 일진들이 있고 목사의 딸인 춤과 노는 걸 무척 좋아하는 아리엘(로리 싱어 분)의 남자 친구와 트랙터 치킨 게임을 하는 모습은 흥미롭고 신기합니다. 워낙 820만 달러(109억 원)로 만든 저예산 영화라서 영화에서 화려한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과격한 장면은 거의 없네요.
렌은 시골뜨기 같은 윌라드와 친구가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윌러다의 여자 친구로 <섹스 앤드 시티>의 주인공인 '사라 제시카 파커'가 나옵니다. 렌은 그날도 가족들이 너 때문에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소리에 열정을 참지 못하고 차를 몰고 나갑니다.
그리고 한 공장 창고 같은 곳에서 열정의 춤을 춥니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한 장면으로 영화 <플래시 댄스>의 댄스 장면과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체조 선수도 아닌데 기계 체조를 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죠. 이 장면은 대역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케빈 베이컨'이 6주 동안 춤 연습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꽉 쪼이는 청바지를 입혀서 춤에 힘을 줬습니다.
이 광란의 춤을 추는 걸 몰래 지켜보던 아리엘은 렌과 연인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렌은 7인의 버먼트 위원 앞에서 춤과 노래를 허용해 달라는 주장을 합니다. 가장 큰 위기는 아리엘 아빠인 쇼 무어 목사라는 기성 세대와 렌과 아리엘이라는 청춘 사이의 대립인데 큰 다툼 없이 상당히 매끄럽게 해결되는 모습에 이런 얌전한 영화였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영화가 꽤 모범생으로 보입니다. 좀 더 강렬한 뭔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평이하네요.
갈등을 푸는 과정은 솔직히 크게 마음에 들지 않고 서사야 워낙 이런 비슷한 영화가 많아서 서사에서 주는 재미는 많지 않네요.
그러나 꽤 익숙한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 풋 루즈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렌이 춤맹인 월라드에게 춤을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거대한 카세트데크를 들고 춤을 조금씩 가르치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그렇게 좋습니다.
Deniece Williams - Let's Hear It for the Boy라는 노래는 이 영화에서 풋 루즈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댄스 음악이 많이 나오는데 지금 들어보니 비트가 느리긴 느리네요. 90년대 폭발적인 비트 광풍으로 빠른 노래들이 나왔지만 80년대까지는 좀 느렸죠.
이외에도 보니 타일러의 'Holding Out For A Hero', 케니 로긴스의 'I'm Free', 러브 테마인 'Almost Paradise'까지
기억나네요. 집에 LP판을 돌릴 수 있는 턴테이블도 없을 때 친구네 집에 갔더니 이 풋루즈 앨범 보고 엄청 부러워했던 것이요. 영화 <자유의 댄스>를 처음 봤지만 영화적인 재미의 5할 이상이 음악에서 나오네요. 다시 말하지만 80년대는 음악의 시대였어요.
톰 크루즈와 마돈나가 주연을 했을 뻔한 <자유의 댄스 1984>
영화 마지막 장면도 유명하죠. 고등학교 파티 장면은 금가루가 날리면서 다양한 춤들이 나옵니다. 팝핀에 디스코에 브레이크 댄스까지 다양한 청춘들이 나와서 열정의 춤을 춥니다. 기럭지가 아주 긴 '로리 싱어'의 매력도 잘 보이고요. 사실 이 두 주연 배우의 인기는 당시에 엄청나게 있던 배우들은 아닙니다.
원래 감독도 '허버트 로스'가 아닌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맡았는데 '천국의 문' 흥행 실패로 당시 유명한 영화 제작사였던 UA사가 파산을 하자 감독을 교체합니다.
그리고 제작자는 '톰 크루즈'를 원했지만 다른 영화 촬영 일정 때문에 케빈이 맡게 됩니다. 여자 주인공도 당시 막 뜨기 시작한 마돈나에게 제안을 했고 그게 성사되었다면 마돈나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이 될 뻔했습니다. 톰과 마돈나! 상상만 해도 재미있네요.
영화 볼만합니다. 중년 분들 중에 안 보신 분들이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노래가 정말 좋네요. 참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고 오클라호마 주의 엘모어 시에서 공개 댄스를 금지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1979년 1월 그 지역 고등학생들이 오순절 교회 목사에 맞서서 무도회를 개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졌습니다. 미국이 생각보다 참 보수적인 나라이기도해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