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여름 흥행 대작 영화 빅 4 중에서 가장 독특한 소재의 영화입니다. 또한 연출이 무척 담백하고 신파로 흐르지도 않습니다. 신파만 안 넣어도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요즘 한국 영화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신파는 없고 연기와 독특한 소재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여름 흥행 영화의 청량감이나 화끈함 같은 건 없고 다 보고 나면 우리 세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유성으로 파괴된 세상 속에 홀로 남은 듯한 황궁 아파트 사람들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 끝에서 파도치듯이 건물들이 물결을 치면서 다가옵니다. 지진이 난 것 같은데 지진은 아닙니다. 지진이 건물을 물결치듯 올리지 않죠. 이건 파동입니다.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유성 충돌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게 좀 답답합니다. 영화 중간에 회상 씬에서 유성이 지나간다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시는 초토화되고 황궁 아파트만 우뚝 서 있습니다. 보통 이런 상태면 패닉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차분합니다. 아마도 하루가 지나서 그런가 봅니다. 전날의 참상을 안고 꺠어난 공무원인 민성(박서준 분)과 간호사인 명화(박보영 분)는 외부인 가족이 살려달라면서 아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합니다. 밖은 겨울이라서 얼어 죽을 수 있습니다. 이에 명화는 가족을 집으로 들입니다.
그렇게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대재난으로 발생한 난민을 품습니다. 그러나 외지인들이 빈집에 살다가 주인을 칼로 찌르고 불까지 저지르자 902호에 사는 영탁(이병헌 분)이 부리나케 내려와서 소화전으로 불을 끕니다.
이번 사건 이후 부녀회장(김선영 분)은 주민들을 긴급소집한 후 902호 영탁을 주민 대표로 뽑습니다. 첫 안건은 외지인들을 내보내자는 안건입니다.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잘 보여주는 투표죠. 물론 주민 중에는 외지인들을 받아들이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수입니다. 그렇게 엄동설한에 외부 사람들을 내보냅니다.
주민들은 영탁을 믿고 따르면서 보급품을 구하러 결사대를 조직해서 수시로 밖으로 나가서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해옵니다. 황궁 아파트에만 생존자가 있는 줄 알았지만 나가보니 몇몇 사람들이 살아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살아 있으면 말이라도 걸어보고 함께 이 고통을 견디자고 해야 하지만 영화 초반에 황궁 아파트 사람들의 냉혈동물 모습을 봤기에 이 황궁 아파트 사람들에게는 다 제거하거나 경쟁자들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재난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 군상의 모습과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꽤 묵직한 영화입니다. 재미요? 이게 참 묘합니다.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는 있긴 합니다만 이 재미가 통쾌하고 속 시원한 게 아닌 다 보고 나면 한국 사회의 현재를 돌려 까는 영화라서 묵직한 훅을 한 대 맞은 느낌입니다. 전 이 비판적인 시선이 좋았습니다. 다만 이런 사회성 짙은 영화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대신 볼거리가 꽤 많은 영화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미친 연기를 보여주는 이병헌과 서울이 철거된 놀라운 풍경
재난 영화에서 중요한 건 CG와 미술 세트입니다. 먼저 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첫 장면에서 물결처럼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홀로 남은 황궁 아파트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CG 티가 나서 장난까나?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첫 장면만 조악했지 서울 전체가 철거된 상황을 아주 잘 담았습니다. 이는 CG가 아닌 미술팀이 아주 잘 구현했네요. 건물이 붕괴되는 장면을 담은 장면이 좀 나오는데 이 장면도 꽤 잘 만들었습니다. 아쉽게도 제작비 때문인지 서울 해체쇼는 살짝만 나오는 수준이네요.
제작비가 220억원이니 살짝 검소한 영화네요. <더문>과 <비공식작전>이 350억 정도의 제작비에 비하면 120억이 덜 투입되었습니다. CG를 사용한 장면은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다만 해체된 서울시를 탐색조가 지나가는 장면에서 사용하는 CG와 미술은 꽤 만족스럽고 정교합니다. 물이 나오지 않는 아파트에서 분뇨 처리에 대한 내용을 넣어서 재난을 좀 더 현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이런 디테일은 좋네요. 이런 해체된 서울을 지나가는 장면들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재미를 꾸준히 넣어줍니다. 다만 황궁아파트는 너무 세트 느낌이 나서 집중을 좀 방해합니다. 여기에 겨울을 배경으로 했지만 여름에 촬영했기에 배우들 입에서 나는 입김이 티는 거의 나지 않지만 차라리 겨울에 촬영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야외 촬영은 배우나 제작이 쉽지 않기에 주로 실내에서 촬영한 듯하고 이게 꽤 티가 납니다. 그러나 이런 아쉬운 점을 무시하게 하는 치트키 같은 배우가 있는데 바로 이병헌입니다.
배우 이병헌의 연기는 국내 탑 클래스이죠. 데뷔 때부터 보고 있는 이병헌. 잘생긴 배우 이미지에서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네요. 하지만 사생활이 터지는 사건 이후 인간 이병헌은 지금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배우 이병헌은 거부할 수 없네요. 인간 이병헌과 배우 이병헌을 분리해서 보려고 하지만 이게 쉽지 않죠. 그래서 배우 이병헌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배우 이병헌은 이 영화에서 순간 이병헌이 맞나? 할 정도로 광끼 어린 연기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아파트 격투 장면에서 순간 다른 배우인가 했을 정도로 연기가 어마무시하고 영화 전체를 하드캐리할 정도로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네요.
배우 엄태구의 형인 잉투기를 연출했던 엄태화 감독의 괜찮은 연출
연출이 꽤 좋습니다. 신파 걷어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객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뭔 사태인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중간에 짧게 유성이 지나간다는 말로 짐작해서 유성 충돌이 일어난 듯합니다. 얼마나 심했는지 유성 충돌 2개월이 지난 후에도 헬기 하나 안 지나다닙니다. 그냥 국가 전체 시스템이 사라졌나 봅니다. 그럼에도 해외 원조나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구호 활동도 없습니다. 이런 디스토피아라면 전 삶을 포기했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 살기 위해서 생필품 가져오라고 짜증을 내는 부녀회장의 시선만 있습니다. 마치 황궁 유토피아라고 할 정도입니다. 황궁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은 축제도 하는 등 비이성적인 행태도 보입니다.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큰 관심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도 안 하나 봅니다. 이런 아파트 주민들의 비상식적인 생각들을 깨는 인물이 외출했다가 며칠 후에 복귀한 영탁의 옆집에 사는 혜원(박지후 분)입니다. 밖은 지옥인데 여기는 너무 철없는 생각만 합니다.
연출력이 도드라지는 장면은 많지는 않지만 영탁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이나 영탁이 아파트에서 축제 중에 아파트라는 노래를 부르는 중에 서서히 이병헌 얼굴을 줌인하는 모습에서 이병헌의 광끼를 끄집어내는 연출이나 영탁의 비밀이 드러나는 장면 그리고 쓰러진 건물을 90도 돌려서 보여주는 장면 등등은 꽤 창조적이네요. 특히 아파트를 스크린 삼아서 인간 군상들의 춤사위는 미쳐버린 세상을 잘 보여주네요. 연출력이 꽤 좋네요. 흥미로운 점은 동생 엄태구가 카메오로 잠시 나옵니다. 형의 작품을 응원하는 듯하네요.
혐오사회, 배척 사회가 되고 있는 한국을 정면 비판한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은 외부보다 아파트 주민들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혐오 사회, 배척 사회를 담았습니다. 영화 초반 아파트 주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외부인을 엄동설한에 내쫓습니다. 그들이 죽을 것이 뻔한 것을 알면서도 내보냅니다.
한마디로 외부인 출입금지
대형 아파트 단지에 자주 붙어 있는 푯말이죠.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는 지름길이 있는데 등하교시 소음이 심하고 쓰레기 버린다고 단지에 출입문을 세우는 행태의 마음씨는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편 아니면 다 바퀴벌레라고 생각하는 영탁과 비슷한 모습은 수 없이 많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은 이미 많이 사라졌습니다. 내편 아니면 다 적이라는 마음씨가 남북으로 갈라치고 남녀로 갈라지고 전라도 경상도로 갈라치고 좌익 우익으로 갈라치고 있습니다.
2023년 현재 한국은 혐오와 배척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상대를 인정하기 않고 타협보다는 악쓰기와 떼쓰기와 억지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인간들이 정치인입니다. 우리가 정지인들을 욕하지만 솔직히 그런 정치인을 누가 만들어줬습니까? 우리들은 다를까요? 갑질 갑질 하지만 을이 갑이 되면 또 갑질을 합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이병헌이 연기하는 영탁입니다. 을이었던 영탁이 갑이 되자 갑질을 하죠. 자신의 고통을 공감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자신이 갑이 되어서 똑같이 합니다.
아파트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주거 형태중 하나이고 이 아파트는 욕망의 덩어리가 되어서 자기들 이권에는 똘똘 뭉쳐서 대응을 하는 집단 이기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대표에 따라서 휘둘리는 우매한 민중 같은 느낌도 많이 듭니다. 영탁이라는 구심점에 대한 비판과 견제 대신 싫으면 꺼지시든가 식으로 대합니다. 이해와 설득이 아닌 군소리 할 거면 나가세요~~라고 하죠. 이런 해결 방식을 파국을 불러 일으킵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좀 뭔가 꽉 막혀 있는 느낌이었어요. 어둡고 칙칙하고 광란의 모습만 보다가 영화 후반 10분이 희망이 됩니다. 아파트를 나온 주인공이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을 알고 살아도 되나요?라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살아도 되나요는 2가지 의미로 담기는데 이 대사가 우리 사회가 혐오와 반목과 갈등과 배척으로 살아가는 게 맞을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렇지 않았어요. 50대인 제가 돌아보면 군부 독재 시절에도 문민 정부 때도 참여 정부 때도 이렇지 않았거든요. 요즘 같이 혐오과 배척이 만연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 솔직히 하루하루가 짜증의 연속입니다. 그나마 전 다 같이 잘 사는 힘들어도 서로 격려하면서 사는 세상을 살아봐서 그런지 요즘 한국 사회의 극심한 갈등을 보고 있으면 황궁 아파트가 따로 없다고 느껴지네요. 그래서 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혐오 사회로 변질된 한국 사회를 아파트 주민으로 이입한 영화라고 느껴지네요. 괜찮은 영화입니다. 재난과 메시지가 좋은 그리고 이병헌의 연기가 눈부시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대한민국을 황궁 아파트로 축소 시켜서 혐오의 힘으로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