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습니다. 인사동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코로나 시절에도 꽤 있었지만 주로 내국인이었으나 지금은 마스크 벗은 외국인이 가득합니다. 코로나 전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국어는 거의 들리지 않고 유럽, 미국, 남미, 동남아 관광객들이 엄청 많아졌네요. 다만 여전히 일본인 관광객은 거의 없습니다. 엔저 현상도 있지만 일본 분들 이제 관광 거의 안 간다고 해요.
정말 많은 관광객에 깜짝 놀랐지만 더 놀란 건 인사동이 다시 문화의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갤러리들이 새로 생기기도 하고 기존 갤러리들도 재단장하고 문을 활짝 열고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활기 넘치는 인사동을 쭉 둘러보다가 오랜만에 사진전문 갤러리를 찾았습니다.
인사동의 핵심 건물인 쌈지길 맞은편에는 갤러리 인덱스가 있습니다. 6월 26일 오늘까지 <나를 울린 한국전쟁 한 장면>이라는 사진전을 하고 있네요.
건물 3층에 있어요. 여기 예전에 다른 이름이었는데 몇 년 저에 갤러리 인덱스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아쉽게도 근처에 있던 갤러리 나우라는 다른 사진 전문 갤러리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이제는 인사동에서 유일한 사진 전문 갤러리가 되었네요. 여기는 사진 전시회만 개최합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나옵니다.
어제가 6.25 70주년이었습니다. 벌써 70년이 되었네요. 두 세대가 지났습니다. 저 어렸을 때는 교련 선생님이 6.25 참전 용사셨는데 지루한 교련 시간 중간 중간 6.25 전쟁 체험담을 들려주셨어요. 바주카포 쏴서 뒤에서 다가오던 북괴군을 기절시켰다는 것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어요. 또한, 6.25 전쟁을 통해서 헤어지고 돌아가신 분들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휴전 상태라서 반공 교육을 엄청나게 심하게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공교육 그렇게 열심히 받았던 당시 10대들은 현재 40,50대가 되어서 가장 반공보다는 평화를 외치는 진보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말 쓰면 또 발끈 하는 분들이 많고 실제로 지금의 20~30대 들은 북한과 중국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라고 하잖아요. 심지어 일본보다도요.
다시 신냉전이 시작되었고 이걸 보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사진전 <나를 울린 한국전쟁 한 장면>은 소설가 박도가 발굴한 6.25 전쟁 사진과 그의 소설 '전쟁과 사랑'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갤러리 인덱스를 들려서 사진들을 봤네요.
사진들은 미군이 촬영한 사진 등이 대부분인데 그 사진 속에서 바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6.25 전쟁, 동족간의 총부리를 겨눈 전쟁으로만 기억하지만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남북한 인구의 6분의 1이 죽거나 부상을 다했습니다. 보통 전쟁이 나도 군인들만 많이 죽지 민간인들은 죄가 없기에 잘 죽지 않아요. 그런데 6.25 전쟁은 민간인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미군이 오발 사고로 양민을 쏜 것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남북한의 우익 단체들이 죽창으로 양민을 엄청나게 학살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전쟁은 이념 전쟁의 대리전 성격이 있어서 빨갱이라고 죽이고 빨갱이 도왔다고 죽이고 그냥 너는 어느편이야라고 강요를 받았고 말 한마디에 골로 끌려가서 학살을 당했습니다. 실제로 이 사진전에는 집단 공개 처형 사진이 있었지만 소개는 못하겠네요.
그 일화를 소개한 글이 있는데 1950년 10월 4일부터 군, 검, 경 합동수사본부는 서울에 남아서 북한군을 도운 부역자들을 색출합니다. 약 55만 명의 서울시민이 서울에 남았는데 이중 5만여 명의 부역자를 검거합니다. 대단한 열정입니다. 전쟁 중에도 5만 명을 검거해요. 그중 160명을 사형합니다.
문제는 부역 혐의자를 검거하고 재판하는 과정이 살벌합니다. 심증과 목격자 구두 진술로만 판단해서 사형을 시켰습니다. 사람의 혀놀림에 의해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평소에 원한과 앙심이 있으면 이때 거짓말 한 마디면 죽이던 시절이었어요.
해외 유명 여성 종군 사진기자의 사진 중에는 너무 잔혹해서 소개 못하는 사진이 많을 정도입니다. 참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소설가 박도는 2000년대 초 미국 메릴랜드주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줄여서 NARA에서 한국전쟁을 기록한 사진들을 발굴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기록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보관합니다. 당시 미국 종군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과 한국인이지만 미군에 소속되어서 사진으로 기록했던 사진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중에서 소설가 박도를 울리고 저도 울린 사진들 일부를 소개하는 사진전입니다.
소설가 박도와 저를 울린 사진 대부분은 아이들 지금으로는 70~80대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들입니다.
위 사진은 아주 유명하죠. 미군과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서울로 진격하다가 불이 타서 울고 있는 꼬마 아이가 우는 사진입니다. 몇 번을 봐도 마음이 아프고 이 글을 쓰면서도 오래 못 보겠네요. 1950년 9월 16일 촬영한 사진이자 동영상으로 남아서 현재도 한국전쟁의 비극을 담은 영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도 유명합니다. 누나가 동생을 안고 탱크 앞에 서 있습니다. 사진 자체는 격한 감동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전쟁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보는 세대가 어린 아이들임을 잘 보여줍니다.
사진마다 소설가 박도님이 쓴 것으로 보이는 캡션이 있었는데 이 글 내용을 읽으면서 보니 좀 더 오래 길게 보게 되네요.
한국전쟁에서 소년병이 많았다는 것도 유명하지만 소녀병도 있었다고 해요. 미군이 잡은 포로들 중에는 10대 소녀들도 꽤 있었다고 해요. 이렇게 전쟁에 대해서만 말하면 북한 빨갱이들을 손가락질 안 한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북한 싫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모두 악마 같은 인간들이죠. 동족을 침략하고 자국민 굶어죽니는 게 지도자가 할 짓은 아니죠. 최근 BBC 뉴스를 보니 지금 평양 사람들은 전쟁만 나길 바라고 있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굶어서 죽고 있고 감시도 심해져서 거대한 감옥에서 굶어 죽느니 전쟁이 나서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그냥 나라가 망했으면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지도자를 가진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이 싫은 거지 북한 주민들까지 싫은 건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피난 중에도 학교는 운영되었습니다. 한 여자 아이가 동생을 안고 나와서 학교 수업을 들었습니다. 학구열은 지금도 세계 최고인 한국이네요.
갤러리 인덱스는 공간이 크지 않지만 꽤 좋은 사진전을 자주 개최합니다. 인사동 가시면 들려보세요.
한국 전쟁은 3년이나 진행되 긴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만 서로 밀렸다 올라갔다 다시 밀렸지 나머지 1년 넘게는 고지전이라고 해서 휴전선 인근에서 수많은 청춘들을 갈아 넣었다고 할 정도로 무의미한 고지전이 진행되었습니다. 영화 <고지전>이 그걸 잘 보여주죠.
생각해 보니 작년에 공개되어서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변형 같기도 합니다. 참호전에서 고지전으로 변형되었어요. 그런데 역사가 그렇습니다. 무의미한 참호전을 위해서 수많은 청년들이 죽어간 1차 세계대전이지만 1950년 한국 전쟁의 고지전에도 재현됩니다.
최전방에서 매일 같이 병사들이 죽어가는데 휴전은 핵존심 때문에 안 합니다. 그렇게 지리하게 고지전만 할 때 후방에서는 어린 여학생들이 휴전 반대 관제데모를 했습니다. 한국 전쟁 터지자마자 예고도 없이 한강 다리 폭파하고 대구까지 튀었던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인간은 김일성만큼 참 싫어하는 대통령으로 역대 대통령 중 최악 중에 최악입니다.
남북한 모두 지도자 복은 정말 없어요. 오빠들이 최전방에서 고지전을 하면서 죽어가는데 휴전하지 말라고 외치는 여고생들. 이게 당시의 풍경이었네요.
포로 문제도 심각했죠. 북한 여군 포로들이 돌아가면서도 인공기와 현수막을 걸고 있네요. 당시 포로 상황을 담은 영화가 <스윙키즈>입니다. 북한 포로는 포로가 되었을 당시에도 쇠약한 상태에서 포로수용소에서 기아로 사망하고 많은 북한 포로들이 남한에 남겠다는 파와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파가 나뉘어서 엄청나게 싸웠어요.
그래서 남한에 남겠다는 쪽은 자유의 여신상 만들어 놓고 스윙댄스를 추면서 미군의 환심을 삼습니다. 사진전에는 중립국을 택한 포로들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진 보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눈물 감추려고 다른데를 오래 봤네요. 수원에서 촬영된 사진인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도 먼 소녀를 미군이 음식을 먹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고 먼저 죽고 가장 고통스러워요. 재난, 재앙, 전쟁 이런 폭력과 파괴에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사람들입니다.
미군의 도움이 얼마나 갔을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게 전쟁의 참상이자 인류애가 아닐까 합니다.
미군들도 이억만리 나라에 와서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총을 들 수도 없을 것 같은 전쟁 포로들이네요. 이런 소년병들은 총을 쏘기도 했지만 주로 잡일이나 무기 배송 등등을 주로 했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머리 한쪽이 다 빠졌네요.
전쟁과 사랑이라는 책을 한번 살펴봐야겠습니다. 사진이 좋은 점은 빠른 시간 안에 감정을 끌어낸다는 겁니다. 이게 이미지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전쟁을 말과 글보다 사진 한 장으로 보여주면 그 고통을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것처럼요. 특히 기록 사진은 사실이 주는 힘이 아주 강합니다.
사진전은 오늘까지지만 이 사진전의 감흥은 오래 남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