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학교 교과서에 실리는지 모르겠지만 학교 다니면서 교과서에 실린 가장 아름다운 소설은 황순원의 소나기였고 수필은 피천득의 인연이었습니다. 인연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일본인 소녀 아사코와의 인연을 담았는데 마지막 만남은 아니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만날 수 있어도 안 만나는 것이 좋은 만남도 있습니다. 그냥 추억 속으로 간직하고 끝나는 것이 더 좋은 인연도 있죠. 물론 만나서 더 반갑고 더 좋은 인연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이나 첫사랑을 중년이 되어서 다시 만나는 것이 그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본 감독 중에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영화에서는 '이와이 슌지', '고로에다 히로카츠'가 있고 애니에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입니다. 이외에도 좋아하는 일본 감독이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는 마코토 감독처럼 감수성이 뛰어난 스토리와 음악 그리고 영상미가 아주 뛰어난 영화를 잘 만듭니다.
한국에서 큰 히트를 치고 재개봉만 2번 이상하고 유일하게 재개봉할 때 또 다시 본 일본 하면 떠오르는 영화 <러브레터>를 연출한 감독입니다. <러브레터>는 '후지이 이츠키'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중학교 남녀 동창생 중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연인인 '와타나베 히로코'가 산악 사고로 죽은 연인인 '후지이 이츠키' 장례식에 갔다가 중학교 앨범을 보고 동명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다가 자신을 사랑했던 '후지이 이츠키'를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는 흥미롭게 '나카야마 미호'라는 배우가 1인 2역을 한 점이 독특했고 편지로 이야기를 전하고 받는 내용도 좋았고 무엇보다 영상과 음악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 영화하면 떠오르는 영화이자 가장 사랑 받는 일본 영화가 <러브레터>가 아닐까 합니다.
러브레터를 자기 복제한 느낌이 강한 영화 <라스트 레터>
일본의 대표 배우인 '히로세 스즈'가 떠 있길래 봤습니다. 넷플릭스에서 계속 추천하기에 뭔 영화인가 하고 봤는데 보다가 이거 <러브레터> 향기가 너무 나는데라고 생각하고 검색해보니 맞네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네요. 영화는 여러모로 <러브레터>를 자기 복제한 흔적이 많습니다.
먼저 이야기가 편지를 통해서 이어집니다. 1999년 개봉한 <러브레터>도 편지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외에도 죽은 미사키와 그녀의 딸인 아유미가 똑같이 생겼습니다. 굳이 이럴필요가 있나 할 정도로 모녀가 동일인이 연기합니다. 이는 <러브레터>의 히로코와 후지이가 도플갱어처럼 똑같이 생긴 설정과 비슷하죠. 물론 똑같은 설정은 아닙니다만 동일 한 배우를 타인으로 모녀로 배치하고 편지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 속은 완전히 다른 영화네요. 미리 말하지만 '이와이 슌지'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수 있지라고 할 정도로 이야기에 대한 개연성 특히 죽은 미사키의 행동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 등등 전체적으로 공감보다는 분노가 치미는 행동들을 합니다. 영화의 뼈대인 스토리가 이해가 안 가니 모든 것이 어설퍼지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노래도 없고 지긋지긋한 저녁 매미 소리인 뾰뵤보보복하는 일본 애니나 영화에서 지겹게 나오는 그 저녁매미 소리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나중에는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다 잡아 버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자기 영화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설정을 따올 수 있죠. 또한 억지 설정은 아닙니다. 문제는 스토리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죽은 언니의 사망 소식을 숨겨버린 동생 유리
미사키가 죽자 동생인 유리와 유리의 딸이 장례식에 참석합니다. 유리와 미사키의 딸인 아유미는 계곡에서 놀다가 장례에 참석합니다. 러브레터 첫 장면과 비슷하죠. 다른 점은 겨울이 아닌 여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장례식을 치르고 홀로 남은 아유미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갈 예정입니다. 그러나 걱정애 되었던 유리의 딸 소요카는 여름 방학 동안 같이 있겠다고 합니다.
아유미는 엄마 앞으로 온 동창회 초청장을 유리(마츠 다카코 분)에게 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유리는 그 초청장을 들고 언니 동창회에 참석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가서 부고를 알리면 되니까요. 그런데 놀랍고도 이상하게도 유리를 보고 미사키라고 알아보는 동창생 속에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언니 미사키는 학생회장까지 해서 동창생이 다 압니다만 외모가 딴판인 동생 유리를 보고 미사키로 오해합니다. 더 놀라운 건 유리는 그걸 또 숨깁니다. 분위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건 고인에 대한 모독 수준입니다. 그럴 거면 가지 말던가 해야죠. 이후 더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짝사랑했지만 언니를 짝사랑한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 분)이 말을 걸어왔는데도 언니인 척합니다. 언니가 죽었는데 슬퍼하지도 않고 자신의 짝사랑을 만나서 언니인척하는 모습에 화가 나네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이건 뭔가요? 더 웃기는 장면은 계속 나옵니다.
유리의 남편으로 나오는 배우는 에반게리온을 만든 '안노 히데아키'입니다. 이 남편이라는 사람이 쿄시로에게 온 문자를 보고 화를 내더니 욕조에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고장 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 스마트폰는 방수 기능이 기본입니다. 워낙 습기가 많은 나라라서 방수 기능이 필수 기능으로 한국폰들이 방수 기능을 탑재하기 5년 전부터 방수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수 기능이 없는지 고장 났다고 합니다. 고장 날 수 있죠.
그래야 쿄시로와 편지로 안부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21세기에 이메일 스마트폰 문자, 라인 같은 메시징 앱 이용하면 되는데 편지로 주고받습니다. 이걸 추억의 도구로 활용하려고 하는 의도가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촌스러웠습니다. 이해는 합니다. 소설가인 쿄시로라서 문자 메시지보다는 편지가 더 나을 수 있고 쿄시로와 죽은 언니 미사키도 편지로 안부를 묻고 지냈으니까요.
그렇게 유리는 미사키인척 하고 쿄시로와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이 영화 <라스트 레터>에는 싹수없는 캐릭터들이 꽤 많습니다. 유리의 남편인 안노 히데아키가 연기하는 남편이라는 작자는 차기작을 해야 한다면서 거대한 아프간 하운드를 두 마리나 집에 들여놓더니 아내 유리에게 키우라고 합니다. 뭔 이런 싸가지들이 있나요. 최소한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되었으니 도와달라고 하거나 부탁을 해야죠. 가만 보고 있으면 일본 여자들은 맞고 살고 가정 폭력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고 순응이 기본인가 할 정도로 화딱지 나는 장면들에 보다 말다 하게 되네요. 실제로 이 영화 여기까지 보다가 뭔 개소리야~~라고 꺼버렸네요. 그래도 또 찾게 한 이유는 배우들 때문입니다. 유명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와이 슌지 히트 영화에 나온 배우들의 총출동
'이와이 슌지'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모두 히트한 것은 아닙니다. 화이트 슌지의 순백의 영화들은 히트를 쳤지만 블랙 슌지의 어두운 소재의 영화들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화이트 슌지 영화인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가 잠시 출연하고 <4월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츠 다카코'가 유리로 나옵니다. 여기에 <러브레터>의 선배로 나오던 '토요카와 에츠시'가 미사키의 폭력 휘두르는 남편으로 나옵니다.
여기에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카미키 류노스케' 등등도 나옵니다. 배우들이 쟁쟁합니다. 저는 이중에서 '히로세 스즈' 때문에 흔들리는 맨탈을 겨우 잡고 봤습니다. 스즈가 아니었으면 보다 말았을 겁니다.
너무 화가나는 스토리의 <라스트 레터>
불쌍한 미사키. 인복이 이리도 없다니. 영화에서는 사진으로만 나오는 미사키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너무 불쌍해서 영화 속에 들어가서 술 한 잔 따라드리고 명복을 빌어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주소도 없이 쿄시로에게 유리는 언니인척 편지를 보내자 쿄시로는 고등학교 졸업 앨범 속 주소를 찾아서 답장을 보냅니다. 이것도 <러브레터>와 유사한 방식이죠. 그런데 고등학교 앨범 속 주소는 현재 미사키의 부모님이 살고 있고 현재는 미사키의 딸과 유리의 딸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쿄시로의 편지를 이번엔 딸들이 읽습니다. 제가 쿄시로였다면 기분 나빴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다 알고도 쿄시로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언니의 죽음에 슬퍼하는 내색도 없이 자신이 짝사랑하던 그러나 언니의 연인이기도 했던 쿄시로 선배에게 언니인척해요. 그걸 들킵니다. 주인공이 이리 매력 없으니 영화가 못나 보이네요. 그리고 과거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과거 이야기가 펼쳐지면 더 화가 납니다.
아래 내용은 스포이니 보실 분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세요.
이야기는 더 엉망으로 진행됩니다. 미사키는 쿄시로와 대학 시절 연인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때문에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랑배 같은 아토(토요카와 에츠시 분)와 결혼을 합니다. 여자들은 상남자 스타일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걸 보면서 대한민국 학교 족구하라고 했던 <말죽거리 잔혹사> 속 한가인과 권상우 느낌도 나네요.
그렇게 아토와 미사키는 곃혼을 하고 아유미라는 딸을 낳습니다. 그런데 이 아토와 불화가 심해졌고 아토가 가끔 폭력을 휘두르자 미사키는 딸을 데리고 나갔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자살을 합니다. 아마도 아토에 대한 폭력의 영향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족들은 자살이 아니 병으로 죽었다고 숨깁니다. 체면 문화 때문인가 봐요. 그래도 그렇지 자살은 자살이라고 해야 그 죽음을 제대로 알고 그것도 엄연히 미사키의 의사 표현인데 이걸 숨깁니다. 여기서 더 화나게 됩니다.
더 놀라운 건 미사키가 죽은 후 아토를 쿄시로가 찾아갑니다. 그런데 아토가 또 다른 여자인 시카에(나카야마 미호 분)와 살고 있습니다. 아토는 찾아온 쿄시로에게 자신이 미사키와 결혼했기에 미사키라는 소설이 나올 수 있었다고 자신에게 감사하라고 하며 이것도 소설에 쓰라고 비아냥거리죠. 놀라운 건 쿄시로는 팩트 폭행을 당했는지 아무말도 못 하고 주점에서 나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아토 아내인 시카에라는 여자는 술 한 잔 더 하자고 합니다. 보면서 정신줄을 수시로 놓을 뻔합니다. 뭔 스토리가 이 따위인지 이걸 어떻게 이해하라고 이런 스토리를 적었나 했네요.
가장 화가나는 건 미사키가 왜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힘들고 쿄시로의 편지를 고이 간직하고 딸도 그 사실을 알려주면서 아이유미가 울면서 이 편지를 쓴 사람이라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전 순간 일본에는 이혼 제도가 없나? 이혼하면 될 것을 뭔 그리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결국 이혼은 안 하고 부모님 집으로 피신했고 자신을 모델로 한 소설 미사키 작가인 쿄시로와 살면 되잖아요. 쿄시로도 첫사랑 잊지 못하고 결혼도 안 하고 사는데요.
참 보면서 이게 일본이니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이 워낙 순응주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고 여자들의 인권이 낮은 나라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가라는 생각만 드네요. 그리고 그렇게 첫사랑을 못 잊고 살면서 죽은지도 모르고 별거 중인 것도 모르는 것도 그렇네요. 뭐 이해 못 할 장면들이 한 둘 이 아니지만 가장 짜증 나는 인물은 주인공 유리입니다.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분노 유발 영화 <라스트 레터>
피천득의 인연처럼 이 영화는 안 나왔어야 합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고 하기엔 영상도 스토리도 음악도 기대 이하네요. 좋은 배우들을 한 영화에서 볼 수 있어서 좋지만 이 스토리를 어떤 관객이 공감을 할까요?
유리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쿄시로 선배가 언니 미사키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편지를 써보라고 자신이 부축이고 그 러브레터를 전달도 안 하고 자기가 다 읽고 숨겨 보관하다가 걸려서 분노하게 되죠. 그렇게 억지 고백을 하고 언니가 죽은 후에 선배와 악수를 하면서 감격해 합니다. 에효. 진짜 미사키만 불쌍하죠. 쿄시로도 그래요. 그런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 그냥 받아들이고 끝납니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지만 미사키만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다 끝나네요.
감독은 미사키에 대한 대학교 시절 이야기나 유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설명해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싹 다 잘라서 안 보여줍니다. 왜 미사키가 쿄시로를 떠났는지 왜 폭력 쓰는 남자와 살면서 이혼도 안 했는지 설명도 없습니다.
그냥 이 영화는 슌지 감독이 다 필요 없고 내 전성기인 <러브레터> 시절로 나 돌아갈래 혼자 외치는 영화입니다. 나이들면 자꾸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죠.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더 나이드니 그런 추억에 젖어서 살기엔 현재가 너무 소중하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 오히려 현재에 더 충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추억에 젖어서 사는 노인의 느낌이 드네요. 한숨만 나오네요. 이 좋은 배우들을 데리고 이런 저질 스토리로 담다니 안타깝고 아쉽네요.
별점 : ★☆
40자 평 : 자기가 쓴 러브테러를 자기가 베끼다 들켰는데 성질을 낸 이와이 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