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을 연출한 감성의 신인 '신카이 마코토'감독과 저는 비슷한 나이입니다. 이 감독이 최근 한 인터뷰가 너무 인상 깊었어요. 20~30대에는 흔들리는 벚꽃과 편의점에 드리친 햇빛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고는 했는데 나이 드니 그런 감성이 사라지고 이야기에 끌리게 된다고 해요. 저도 그래요. 갬성 갬성 그러는데 갬성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감성을 매년 경험하고 많이 경험하니 굳은살이 생겨서 이제는 이미지에 감동하고 슬퍼하고 좋아하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야기에는 쉽게 마음에서 요동을 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일본 감성 영화의 원조인 '이와이 슌지' 감독은 최근 영화들에서 초기 감성들이 많이 안 보이네요.
그럼에도8 <하나와 앨리스>까지는 참 좋았습니다. 슌지 감독만 그렇겠습니까? 한국의 감성 영화의 대부인 허진호 감독도 '천문 : 하늘에 묻는다' 같은 영화를 보면 왜 이런 영화를 만들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멜로 감성 영화가 안 팔리는 시대라서 그런 듯 하지만 예전 감성을 재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허진호 감독의 2017년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빛 : 릴루미노>를 보면 감성이 사라진게 아니라 안 팔려서 못 표현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저나 마코토 감독이나 여러 멜로 장인 감독들이 나이 들면 멜로 영화를 못 만들고 안 만들고 하는 것이 나이가 감성을 많이 죽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그 이유를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새삥이던 그 20,30대 시절의 일천한 경험이 주는 생동감과 환희가 40대 이상이 되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벚꽃 영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4월 이야기
벚꽃이 피면 벚꽃 관련 영화들이 인기가 높습니다. 벚꽃이 아름답게 담긴 한국 영화로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 깊고 가장 좋습니다.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영화는 이 <4월 이야기>입니다. <하나와 앨리스>에도 멋진 벚꽃 풍경이 나오고 벚꽃을 소재로 한 일본 애니들도 많지만 이 이와이 슌지 감독이 <러브 레터>가 1999년 개봉한 후에 큰 인기를 끌자 바로 2000년에 개봉한 영화가 <4월 이야기>입니다.
영화적인 완성도나 재미는 <러브레터>가 3배 이상 높지만 감성 영화 특히 4월의 감성이자 대학교 신입생의 설레임을 가장 잘 담은 영화가 바로 이 <4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금 대학 신입생들이나 그 당시를 돌아보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한국 영화였다면 4월 이야기가 아닌 4월의 썸 타기나 4월의 청춘 로맨스로 다루었겠지만 일본 영화라서 멜로 드라마적인 요소는 있지만 짝사랑만 담다 끝납니다. 이게 더 많죠. 4월에 무슨 사랑을 이루겠어요. 설레다가 끝나죠.
<4월 이야기>가 벚꽃 영화인 이유는 영화 초반 엄청난 양의 벚꽃이 떨어집니다.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엄청난 벚꽃이 비처럼 떨어지고 실제로 한 신부를 여러명의 사람이 우산을 씌워서 택시에 태웁니다. 주인공인 우즈키(마츠 다카코 분)이 대학에 합격한 후 얻은 자취방에도 벚꽃 잎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쓸어낼 정도입니다. 이 첫 장면 때문에 벚꽃 영화로 기억됩니다. 그렇다고 영화 내내 벚꽃이 피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벚꽃향이 묻어날 정도로 많이 묘사됩니다.
영화 <4월 이야기>는 중편 영화로 러닝 타임은 67분입니다.
4월 이야기의 스토리
스토리는 별거 없습니다. 음력 2월을 말하는 묘월의 일본어 발음인 우즈키(마츠 다카코 분)은 실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홋카이도를 떠나서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을 합니다. 참고로 우즈키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무사시노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대학교는 아닌 가상의 대학이고 공간 등등은 실제와 다른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도쿄의 실제 주소를 읇어주면서 자취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그 거리엔 벚나무 대신 은행나무만 가득합니다. 따라서 여러 장소를 조합해서 담았습니다. 우즈키가 이 대학에 입학한 이유는 꿈과 야망을 쫒은 것은 아니고 자신이 짝사랑하던 선배가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우즈키는 대학에 입한 한 후 교실에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한국 같으면 학교 앞 주점에서 일어나서 소개하거나 O.T에 가서 소개하죠. 홋카이도에서 왔다고 하니 많이 춥냐고 묻고 스키 잘 타냐는 등의 실없는 질문들을 합니다. 이는 한 사람을 하나의 이미지로만 보려는 시선으로 지금도 어디 출신이라고 하면 그 지역의 특산물이나 특징을 묻죠. 그런데 요즘 세상이 그런가요? 물류과 교통이 발달해서 지역색이 거의 다 사라져 가는데요. 그럼에도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우리들의 대학 1학년 3월 또는 4월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뼈 때리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왜 도쿄에 있는 대학교로 왔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합니다. 짝사랑하는 선배 쫒아왔다고 말하긴 어렵죠. 그렇게 혼자 학식을 하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서점에 들르면서 도쿄 생활에 적응해 갑니다.
학기 초이기도 하고 먼 곳에서 와서 아는 친구도 없는 한국의 3월 교정과 비슷하죠. 돌아보면 이때가 가장 불안하고 설레이고 자유로운 시기였어요.
자전거를 사서 학교 등학교 할 때 이용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타운하우스 같은 낮은 저택 주택 거리를 원피스를 입고 탑니다. 이 모습이 아주 생동감이 넘칩니다. 봄 햇살과 자전거 생기가 가득합니다. 바구니가 있는 시티 자전거에서 내린 우즈키는 한 서점에 들러서 책을 고릅니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감독이 직접 연출한 단편 사무라이 흑백 영화를 영화관에서 관람하죠.
그런데 여자 혼자 영화관에 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닙니다. 뭐 지금은 워낙 한국에서도 혼자 영화 보러 오는 분들이 많아서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한국도 20년 전에는 혼자 밥먹고 혼자 영화 보는 사람 이상하게 봤어요. 특히나 여자분들이 그러면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우즈키는 영화관에 혼자 갔다가 치근덕 거리는 남자를 피해서 도망칩니다. 그리고 다시 서점으로 향하죠. 서점을 가는 이유는 짝사랑하는 선배가 이 서점에서 알바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본 이상한 남자를 또 마주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 우즈키가 놓고 나간 물건을 전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낯선 도시, 낯선 환경에서 모든 것이 불안스럽기만 하죠. 이 하나 하나가 우리들의 대학 1학년 3월~4월 풍경 그대로입니다. 이런 걸 '이와이 슌지'감독이 잘 잡아내요.
그리고 드디어 짝사랑하던 고등학교 선배를 서점에서 만납니다. 그래도 짝사랑이라서 혼자하는 시간을 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있어서 처음에는 좋았지만 점점 외로워지죠. 그래서 옆집 여자와 밥 같이 먹자고 하기도 하고 낚시 동아리도 들어보지만 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낚시 동아리로 이끈 친구에게 자신의 짝사랑을 살짝 내비칩니다.
그리고 드디어 고등학교 시절이 나옵니다. 왜 이 묘월이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이 무사시노 대학교에 왔는지가 펼쳐집니다.
내용은 좀 슴슴합니다만 이 영화 <4월 이야기>는 스토리로만 보면 안 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갬성 넘치는 영상미입니다.
영화는 영상 언어라고 말하는 <4월 이야기>
얼마전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오직 그대만>을 연출한 송일곤 감독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요즘 영화는 너무 대사가 많다고요. 영화는 영상 언어라서 영상으로 표현이 가능한 건 영상으로 담고 대사가 받쳐줘야 하는데 너무 대사가 많데요. 맞아요. 대사 많은 영화 짜증 나죠.
대사의 장점은 상활 설명을 빠르게 할 수 있지만 대신 대사라는 말이 던져지면 그 장면에 대한 감상이나 감흥을 대사로 국한해 버립니다. 사람은 콘텐츠를 소비할 때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서 섞어서 섭취합니다. 영상은 시각 정보로 가장 많은 정보를 투입하지만 동시에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기에 같은 장면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사는 뭘 확 정의해 버립니다.
영화 <4월 이야기>가 대사가 적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 영화는 스토리가 빈약할 수 있지만 대신 4월의 풋풋함과 설렘이 가득한 대학 신입생의 불안과 설렘과 떨림과 어색함과 자유와 고통과 사랑을 모두 잘 담고 있습니다. 그냥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병아리 느낌이 가득합니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이고 그래서 4월의 따뜻한 햇살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4월 이야기>입니다.
무사시노 대학에 간 선배를 생각하면서 무사시노 시를 읽고 무사시로에 갔다는 설정. 이런 사람들 꽤 많을걸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과 같다고 무조건 좋아했던 그 시절이요. 야마자키 선배가 무사시노도 서점에서 알바를 한다는 말을 친구에게 듣고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한 4월이. 이 자체가 4월과 닮았습니다.
이 4월의 온기를 영상으로 아주 잘 담았습니다. 좀 오버하는 장면도 있긴 하죠. 아주 유명한 이 풀잎 속에서 무사시노 시집을 읽는 장면에서 반사판도 아닌 거울로 빛을 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군가가 거울로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비현실적이죠. 그런데 지금 보니 이게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사랑에 빠지면 사람이 저렇게 보이거든요. 사람 얼굴에 빛이 일렁거리게 보일 때가 있어요. 실제로는 안 그런데 그렇게 보여요. 감정이 실리기 때문이죠. 그렇게 보였어요. 같은 영화도 10년 전에는 오버한다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또 달리 보이네요. 사랑의 감정을 가득 머금은 여고생의 얼굴로 보이네요. 그래서 짝사랑하는 선배와 이루어졌냐? 그건 직접 보셔야 합니다. 이 <4월 이야기>가 추구하는 방향을 안다면 예측 가능하지만요.
지난 코로나 2년 4월의 교정에서 아이들 웃음도 대학생들의 활기도 사라졌습니다. 같은 4월도 대학교 1, 2학년 때 4월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영화 <4월 이야기>는 그 시절 4월의 햇살을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때의 감정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오늘 음력을 보니 2월 8일이네요. 음력 2월을 묘월이라고 하죠. 묘월이라는 이름의 우즈키의 미소를 다시 보니 다시 그때가 떠오르네요. 나에게도 우즈키 같은 사람이 있었나?라는 생각도 떠오르네요. 내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반대로 내가 우즈키였던 적은 없나 돌아보게 되네요.
그 시절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되니 모든 관계와 이야기가 다 아지랑이처럼 변했네요. 그냥 관찰자가 되어 버렸어요. 한 때다 좋을 때다의 그때는 아마도 대학교 1, 2학년 때가 아닐까 합니다. 모를수록 설레었던 그 시절이요. <4월 이야기>의 핵심 재미 중 하나는 여주인공 '마츠 다카코'입니다. 배우 집안에서 태어나서 가족 중에 배우가 많았던 마츠 다카코의 데뷔작이도 했죠.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활동 중에 있습니다.
77년 생인데 지금도 미모가 대단하네요. 연기 활동도 꾸준히 하고요. 벚꽃 영화로 추천하는 <4월 이야기>. 명작은 아니지만 4월의 향기가 가득 풍기는 중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