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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제2의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서울단편영화제와 단편 기념촬영

by 썬도그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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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맥을 못쓰고 있습니다. 최근 한 개그맨 출신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 설왕설래도 많죠. 한 평론가가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라는 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평론가가 뭐 대단하다고 저런 말을 하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요즘 한국 영화들의 만듦새를 보면 정말 막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제되지 못한 영화들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이는 유명, 무명 떠나서 영화들이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고 만듦새도 떨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1만 원도 아닌 무려 1만 5천 원 영화 관람료의 시대라면 영화의 품질도 1만 5천 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게 해 줘야 관객이 들지 이런 식이면 관객수는 계속 줄어들 겁니다. 매년 2억 명이 영화관을 찾았던 2019년 이전으로 관객수가 절대 회복 못할 듯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한국 영화들이 예전만큼의 재미를 주는 영화가 확 줄었습니다. 투자하는 영화마다 적자를 기록하면 할수록 영화 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려워지고 한국 영화 상영수는 계속 줄어들 것입니다.  

보통 영화 제작에 1년 정도 걸리는데 수 없는 한국 영화가 흥행 실패하면서 투자가 되지 않아서 올 가을부터 개봉하는 한국 영화가 크게 줄 것이라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잘 만들어야지 보지 돈 아까운 영화만 만들면 어쩝니까. 

그럼에도 돌아보면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80년대와 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은 방화라고 해서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고 실제로도 방화 품질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싼 맛에 보라고 외화 2,500원 하던 시절 방화인 한국 영화는 2,000원에 보기도 했습니다. 맨날 저품질 한국 영화만 만드니 한국 영화는 일단 걸렀습니다. 그런데 2023년 또 그 모습이 떠오르네요. 

요즘 한국이라는 나라는 여러모로 이상해졌습니다. 무역 수지는 1년 이상 적자 상태고 최근엔 경상 수지까지 적자가 되었다고 하죠. 여기에 조악한 한국 영화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게 일시적인 문제이면 좋겠으나 무역도 한국 영화도 이게 고착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제2의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초석을 다진 서울단편영화제

빨간 마후라 포스터

한국 영화는 2번의 르네상스가 있었습니다. 첫번 째는 1960년대입니다. <빨간 마후라>를 80년대에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뛰어난 촬영과 스토리에 넋 놓고 봤네요. 그리고 이게 한국 영화라는 사실에 더 놀랐습니다. 엄청난 스케일과 촬영을 보면서 뿌듯했습니다. 실제로 이 60년대 한국 영화들은 동남아에 수출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홍콩의 성룡 같은 배우들이 한국의 무술 영화를 배우기 위해서 넘어오기도 했죠. 지금도 성룡 영화에 출연한 유명한 무술 감독 중에 한국 무술 감독이 많습니다. 한류라고 명명이 되지 않았지만 이미 한국은 60년대에 영화 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독재를 하면서 영화에 가위질을 하고 사전검열을 하면서 혹독한 후퇴를 합니다. 80년대 한국 영화 대부분이 에로 영화였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이런 흐름은 90년대 초까지 이어집니다. 

한국 천만 영화 리스트

그러나 한국 영화에 제2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는데 그 신호탄이 된 영화는 바로 1999년에 개봉한 <쉬리>입니다. 그 이전인 1998년의 <8월의 크리스마스> 등등이 새로운 한국영화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쉬리>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시선이 달라졌고 2천 년 <공동경비구역 JSA>를 필두로 결국은 <실미도>가 첫 천만관객을 돌파하는 엄청난 결과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2020년 3월에 지금도 믿기지 않은 아카데이 작품상을 한국 영화 <기생충>이 받았습니다. 전 그 상을 받으면서 걱정도 들더라고요. 언제적 봉준호 감독인가 하는 생각이요. 봉준호 감독을 세상이 알아본 것은 단편 영화인 <지리멸렬>부터입니다. 한국 영화 제2의 중흥기의 시작점은 단편 영화였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당시 동네마다 있었던 <으뜸과 버금>에서 빌려온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들의 묶음인 단편 영화 비디오를 빌려와서 친구랑 깔깔거리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도 놀라워요 단편영화 묶음집을 비디오로 출시되었고 그중 봉준호의 <지리멸렬> 등이 있었습니다. 여러 단편 영화들을 보면서 한국 영화들이 달라지겠구나 했고 결국 달라졌습니다. 가끔 단편 영화를 장편 영화의 습작이나 하위 레벨 영화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단편 영화로 성공한 감독이 장편 영화를 만드니까요. 그러나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처럼 형태의 차이이지 단편 영화만의 장점과 재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단편 영화 잘 만드는 감독이 장편을 잘 만들고 영화학과 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단편과 중편을 만드는 것이 현실이라서 단편으로 영화 근육을 단련하는 용도도 맞습니다. 한국 단편 영화들이 놀라운 영화들이 늘어나고 이 단편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장편을 만들어서 대박을 냈습니다. 그리고 이 단편 영화의 흐름을 만들어준 것이 서울단편영화제입니다. 

영상자료원

서울단편영화제는 삼성이 영화판에 뛰어 들었던 90년대 초에 뛰어들었던 시절과 연관이 있습니다. 삼성 그룹은 비디오 시장이 열리자 VCR 판매를 넘어서 영화 제작에도 관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울단편영화제를 후원합니다. 

서울단편영화제 PLAY-RE-PLAY

아쉽게도 오래가지는 못했고 서울단편영화제는 1994년에서 1997년까지만 운영됩니다. 그러나 이때 대상과 큰 상을 받은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고 저도 한국 단편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들이 나오겠구나 예상을 했네요. 당시 해외 유학을 갔다 온 감독들도 꽤 있었고요. 

지난 주인 2023년 3월 24일 금요일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지하 시네마테크에서는 서울단편영화제를 회상하는 단편영화 상영과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단편영화는 총 4편으로 정지우 감독의 생강, 송일곤 감독의 간과 감자,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임순례 감독의 우중산책을 봤습니다. 단편 영화라서 4편 모아도 1시간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우중산책>과 <기념촬영>은 영화 마니아인 제가 TV에서 보고 크게 놀랐던 작품입니다. <간과 감자>는 처음 봤는데 너무 놀라서 쇼킹했습니다. 이게 한국 감독이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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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단편영화제 PLAY-RE-PLAY

GV에는 임순례, 정윤철, 송일곤 감독이 참석해서 영화 제작 당시의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지면상 모든 영화를 소개할 수는 없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기념촬영>만 소개하고 다른 영화는 다음 포스틍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담은 영화 <기념촬영>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여고생들이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흔한 풍경이죠. 여고생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항상 밝고 말이 많습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세라복을 입은 학생들이 등교 길에 만나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습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전철역에서 누군가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그 학생은 세일러복을 입고 있습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전 여기까지 볼때는 뭔 이야기 인가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성수대교 교통 안내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알았죠. 무학여고 학생들이라는 것을요. 충격이었습니다. 이 단편영화 <기념촬영>은 1997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3년 후에 무너진 성수대교를 다시 연결한 후 나온 단편 영화였습니다. 

김영상 정부 당시에는 지금은 말도 안 되는 대형 사고가 많았습니다. 한 해에 7~9%씩 고속 성장하던 시기 한국은 인권, 안전 같은 건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냥 고속 성장만 외쳤죠. 사람도 갑자기 쭉쭉 크는 사춘기가 되면 몸의 성장과 마음의 성장 속도가 달라서 사춘기가 옵니다. 하물며 국가라고 다르겠습니까? 안전불감증이 아닌 안전에 대한 개념도 없던 나라였던 한국, 그 붕괴의 시작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95년 삼풍백화점으로 이어집니다. 연달아서 대형 사고가 일어나자 한국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건물과 교량의 안전점검을 의무화했습니다. 한국은 피를 봐야 변하는 나라입니다. 후진국스런 마인드입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성수대교를 소재로한 이 단편 영화는 1997년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뉴스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센세이션 했죠. 지금은 좀 덜하지만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만들 수 있어도 만들지 않았죠. 성수대교 붕괴를 담은 영화는 지금까지도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개봉한 <벌새>가 그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 세대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정윤철 감독은 이 놀라운 단편을 만들고 2005년 개봉한 <말아톤>으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2017년 <대립군> 이후 후속 작품 소식이 없네요. 정윤철 감독은 GV에서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으로 생각한다고 해요. 겸손한 말씀이라고 느껴집니다만 현재까지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독창적인 연출과 스타일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 봐도 스타일이 좋은데 이유는 핸드핼드 촬영과 함께 당시 실제 현장 영상을 잘 편집해서 혼란스러운 당시의 모습을 아주 잘 느끼게 한 영화입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왕가위 감독 영화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아이디어도 꽤 좋은 단편 영화입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등굣길 버스를 놓쳐서 살아 남은 학생이 버스를 타서 죽은 친구들을 성수대교 건너편에서 촬영한 장면은 수미상관 식의 마침표 및 가슴을 쿵하게 내려놓게 했습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스즈메의 문단속>이 대형 재난을 겪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힘을 주는 영화여서 참 좋았습니다. 대형 재난을 기억하지 못하는 10대들에게 동일본 대지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이 <기념촬영>도 점점 잊혀가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상기시켜 주는 영화였습니다. 

당시 한양대 학생이었던 정윤철 감독은 20대 당시에 굉장히 분노했던 사건이 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였다고 해요. 그런데 이런 대형 사고가 한국은 끊임 없이 일어나네요. 세월호 사고도 그렇고 이태원 사고도 그렇고 최근 일어난 대형 사고들의 희생자들을 보면 10,20대 희생자가 많은 사고들이 많네요.

정윤철 감독은 이런 대형 사고들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 <기념촬영>이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이 영화말고 삼풍백화점 사고로 사망한 여동생을 기억하는 오빠를 담은 영화를 만드려다가 잘 나오지 않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후일담도 들려주었습니다. 

성수대교 사고를 소재로 삼은 것은 같은 대형 재난 사건이고 한양대학교 바로 앞에 있는 다리가 성수대교라서 담은 것도 있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리얼리즘으로 촬영하려다가 스타일을 넣어서 촬영했다고 하네요. 보면 상당히 감각적입니다. 뭐 지금은 흔한 핸드헬드나 거칠게 프린팅 한 영화지만 당시는 그런 스타일의 영화가 많지 않았어요. 그리고 거칠게 표현하게 하는 장비를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해요. 이 장비는 막 할리우드에서 소개된 장비인데 충무로에도 없던 걸 사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대단한 열정입니다. 영화학도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그리고 <기념촬영>에서 성수대교 재개통을 알리는 표지판 작업 등은 당시 현장에서 직접 촬영했다고 하네요. 따라서 영화 연출 장면도 있지만 실제 장면도 섞었습니다. <기념촬영>은 16mm 단편 영화로 35mm 영화 스크린 반만 채웠습니다. 좌우에 긴 공백인 필러 박스가 있더라고요. 이게 TV의 4 : 3 비율과는 딱 맞는데 좌우로 긴 스크린 비율에서는 반만 나옵니다.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

영상자료원 지하 시네마테크에서는 좋은 영화 상영을 자주 많이 하고 영화 감독과 배우들을 모시고 GV도 합니다. 여기서 박찬욱 감독이 영화 감상을 하기 위해서 아내분과 나오는 것도  보고 다양한 배우와 감독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국 영화를 키우는 화수분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GV에서는 20,30대 젊은 관객들이 대부분이었고 저 같은 중년 노년 관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20,30대 관객들은 영화 마니아 또는 영화학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 그런지 기술적인 질문들이 꽤 있었습니니다. 신기했던 점은 코로나 이전에는 GV 할 때 손을 들고 마이크를 전해줘서 육성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방식인데 이러다 보니 관객들이 질문을 거의 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요즘 20,30대들은 카톡이나 문자로 묻고 답하는 걸 선호한다고 하죠. 직접 질문하고 답하는 걸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서 전화 통화를 싫어하더라고요. 

그래서 QR코드를 찍으면 카톡 단톡방으로 초대되고 거기서 질문하고 감상후기 남기고 그걸 모아서 감독님들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변했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많은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다만 그 질문 중에 영화에 대한 감상에 대한 질문 당시의 시대상이나 여러가지 사회적인 현상 등에 대한 질문은 없네요. 그래서 여기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진전 가잖아요. 그럼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여기 어디에요? 무슨 카메라로 찍었어요라고 물어봐요. 저도 뭐 10년 전에는 그게 참 궁금했는데 지금은 어떤 카메라가 뭔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네요.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힘도 훈련이 필요하고 나이가 필요한 가 봅니다. 제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보니 기술은 안 보이고 메시지만 느껴지네요. 그럼 면에서 20대 나이에 멋진 사회 비판적인 시선의 <기념촬영>을 만든 정윤철 감독이 멋져 보입니다. 

정윤철 감독은 사이비 종교와 어떤 초능력과 결합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임순례 감독님이 글리치에서 한 건 아니고? 라는 말에 빵 터졌네요. 맞아요 넷플 드라마 <글리치>에서 했어요. 참 <글리치> 보세요. 정말 좋은 드라마입니다. 사이비 종교와 외계인 이야기를 아주 잘 섞었어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만남이었고요. 앞으로 좋은 영화로 다시 만났으면 하네요.  참!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은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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