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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10년 만에 다시 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발견한 것들

by 썬도그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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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영화만 보지 마세요. 흘러간 영화 중에 좋은 영화들 엄청 많습니다. 최신 영화가  최고가 아닙니다. 그래서 전 명작 영화들을 보라고 꾸준히 추천합니다. 시의성은 떨어질 수 있어도 우리 인간의 삶이 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죽는 모든 과정이 인류가 이 땅에 생긴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삶을 다룬 영화들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팁을 드리자면 좋은 영화는 10년 단위로 다시 보세요. 20대에 본 <박하사탕>은 그냥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30대에 본 <박하사탕>은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그 10년 동안 한국의 역사를 좀 더 깊게 알게 되고 나이가 들다 보니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해서 봤더니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그럼 로맨스 영화는 어떨까요? 어제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 2001년 개봉작 <봄날은 간다>를 봤습니다. 이 영화 한 2번은 봤을 겁니다. 2001년에 보고 블로그 운영하면서 1번 봤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리뷰를 안 적어 놓았네요. 그때 감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 2009년 경에 본 그 기억이 있습니다. 

멜로드라마 전성기 시절에 나온 <봄날은 간다>

돌아보면 한국 멜로드라마 전성기는 90년대 후반부터 2천 년 대 초중반까지로 허진호 감독의 대표작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만큼 허진호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멜로 영화 최강자였습니다. 1998년 개봉해서 공전의 히트를 치고 한국 멜로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쓴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일본 영화가 아닌가?라고 할 정도로 기존의 한국 멜로의 맵고 짠 영화의 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심심하면서도 여운이 너무 길어서 한동안 영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일본에 수출되어서 대박을 쳤고 리메이크 일본 영화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의 1차 한류에 큰 디딤돌을 한 영화가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지금도 허진호 감독의 대표작은 <8월의 크리스마스>입니다만 나이가 들수록 상우와 은수의 사랑의 밀당과 사랑의 성장기를 다룬 <봄날은 간다>가 좋아지네요. 이유는 <8월의 크리스마스>가 판타지적인 느낌이 있다면 <봄날은 간다>는 너무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나이가 봄날을 지난 나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영화 속 상우 할머니처럼 자꾸 연봉홍색 한복을 입고 마실 나가던 그 시절이 그립고 애잔하게 느껴지네요. 

그런데 요즘 멜로 영화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가끔 나오긴 하지만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멜로 영화는 사라졌네요. 그만큼 사랑 영화가 안 팔리는 시대가 되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잖아요. 하기야 결혼 및 출산율이 계속 하락하는 걸 보면 사랑 없이도 사는 사람이 계속 증가하는 느낌도 듭니다. 사랑의 감정을 깊고 진하게 느낀 사람일수록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볼만한 멜로 영화가 없어서 다시 본 것도 있습니다. 

<봄날은 간다>에서 본 사랑 쑥맥인 상우와 사랑 경험자인 은수의 사랑에 대한 시선 차이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로 유명한 <봄날은 간다>는 영화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은수(이영애 분) 이 같이 있자고 제안을 한 대사는 "라면 먹을래요?"입니다. 이것도 다시 보고 발견한 것 중의 하나네요. 이 <봄날은 간다>는 대사는 알지만 영화를 안 본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서울 수색역 그러니까 상암 DMC 맞은 편 동네인 북가좌동 어디쯤에 싸는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 분)는 KBS 강릉 라디오 방송의 PD이자 DJ인 은수(이영애 분)와 만나서 여러 소리를 채집하러 다닙니다. 풍경소리,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 개울 물소리, 학교 밴드부의 연주 등등 각종 소리를 채집한 후 방송에 틀어줍니다. 고귀하고 고품격 음악 방송을 하는 라디오 DJ와 사운드 엔지니어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젊은 남녀가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고 서로 호감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상우는 숙맥입니다. 사랑을 1번도 안 해봤거나 해봤어도 최소 사랑에 익숙하고 능숙한 청년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은 절대 변해서는 안되며 최소한 내가 먼저 변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죠. 보면서 제20대 모습이 다시 떠오르네요. 그때는 정말 사랑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요? 미쳤어요? 사랑 때문에 죽긴 왜 죽어요. 사랑 말고도 할 게 많고 경험할 게 많고 볼게 많은 세상인데요. 그러나 20대 경험이 일천한 나이에는 사랑이 세상의 전부일 수 있죠. 그래서 상우의 마음에 영화 개봉 당시에도 홀딱 빠져서 봤습니다. 

반면 은수는 사랑의 밀땅과 사랑에 대해서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합니다. 은수가 사랑에 익숙하고 능숙한 이유는 은수는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한 사랑에 큰 경험을 한 여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쑥맥인 상우와 은수는 사랑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먼저 은수가 말하죠

"라면 먹을래요?"

상우는 사랑에 빠집니다. 두 사람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이 평등 관계가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한 쪽이 더 많이 좋아하면 관계의 기울기가 깨져서 오래가기 어렵더라고요. 아니면 한쪽이 그 모든 걸 감당하면 가능하지만 쉽지 않죠. 주고받아야죠. 이 연인의 기울기는 은수에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서울에서 술 취해서 친구 택시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것이나 전체적으로 상우가 은수를 더 좋아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라면으로 표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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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에게 상우는 라면 같은 존재

이혼의 상처를 안고 혼자 사는 은수에게 상우는 라면 같은 존재입니다. 배고프면 5분 만에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 그 자체입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 수 있는 그냥 오래 지속하고 싶지 않고 라면처럼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는 존재죠. 당연히 결혼 생각은 없고 동거 정도만 생각합니다. 

그렇게 라면을 끓여 먹던 두 사람 중 상우는 집에서 만나는 여자가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손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아버지 말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 결혼할래라는 대사 대신 "김치 담글 줄 알어?"라는 말로 결혼 생각을 하고 있음을 넌지시 말합니다. 이에 은수가 깜짝 놀랍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라면이 아닌 밥이 되고 싶은 사람이구나 느끼게 되고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 김치 못 담가"

그리고 은수는 이 상우를 정리할 생각을 합니다. 상우는 상우대로 은수가 라면으로만 여기는 것이 짜증이 납니다.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여"라는 말에 상우는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 함부로 하지 마"라고 차를 몰고 나갑니다. 여기서부터 은수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과 함께 국민 x 년으로 등극하죠. 어떻게 보면 원조 x 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수의 이후의 행동들은 킹 받게 하는 행동들이 참 많습니다. 그렇게 헤어져놓고 다시 상우 앞에 나타나서 갑자기 키스를 갈기고 또다시 1달 동안 헤어져 있자고 하면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아후 다시 봐도 화나는 행동을 참 야무지게 합니다. 반면 상우는 너무 숙맥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찌질 3종 세트를 시전 합니다. 

밤새 여자 집 앞에서 뻗치기,  술 먹고 찾아가서 울기를 넘어서 정말 찌질의 만랩까지 찍어 버립니다. 은수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마티즈를 직접 운전하는데 녹색 마티즈를 차 열쇠로 옆구리를 긁어 버립니다. 그걸 또 은수에게 걸립니다. 그런데 상우의 심정이 이해 갑니다. 자기 무릎에 앉혀 놓고 운전까지 가르쳤는데 그런 은수가 독립해서 다른 남자와 만나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없죠. 

<봄날은 간다>는 상우라는 청년의 사랑 성장기

많은 대사들이 즉흥적으로 수정되었다는 <봄날은 간다> 허진호 감독이 너무 작위적이고 연기 같은 연기를 하면 최대한 다큐처럼 연기하라고 실제처럼 연기하라고 다그쳤고 그래도 안 되면 그 자리에서 대사를 바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떤 영화보다 영화를 위한 사랑이 아닌 현실 사랑으로 보이고 이게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봄날은 간다>는 사랑의 상처가 없거나 사랑을 안 해 본 사람들은 오글거리게 보이지만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긴 한숨을 쉬게 만듭니다. 특히 상우 같은 남자들 에게는요. 

<봄날은 간다>는 상우라는 사랑 초보의 성장기입니다. 사랑에 익숙한 은수를 통해서 상우는 깊은 상처를 받고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묻어주고 사랑도 그렇게 묻습니다. 그래서 상우는 다시 만난 은수가 팔짱을 끼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사랑 초보가 아닌 사랑에 대한 갑옷을 입고 있는 전사가 되었죠.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상우는 감독이 제발 돌아보지 말라고 했음에도 유지태는 기어코 돌아봅니다. 당시 필름 카메라는 롱테이트를 찍으면 재활영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 마지막 장면은 5분짜리 롱테이크로 자꾸 상우가 돌아보자 감독의 신신당부를 했지만 유지태의 고집으로 상우라면 돌아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돌아봅니다. 

돌아보는 게 옳습니다. 저도 돌아봤을 거예요. 몸은 가지 않지만 내 첫사랑이라면 돌아봐야죠. 그게 마지막 기억이 될 것을 알고 있으면 돌아봐야죠. 정면으로 끝나면 사랑이 또 시작될 수 있고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뒷모습은 좀 다르죠. 그래서 돌아봤고 그게 상우가 마지막에 웃으면서 끝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10년 만에 다시 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발견한 것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말을 하는 상우. 여기는 동해시 묵호의 삼본 아파트인데 이 아파트가 주요 배경이 되죠. 오션뷰 아파트라서 지금도 인상적으로 느껴지네요. 촬영은 강릉시에 사는 은수 주변으로 나오지만 동해시, 삼척시 등등 다양한 곳에서 촬영을 합니다. 참고로 이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대사는 허진호 감독이 너무 작위적이다라고 생각해서 빼려고 했는데 프로듀서와 유지태가 이게 이 영화의 핵심 대사라서 절대 빼면 안 된다고 말렸다고 합니다. 좀 작위적이긴 한데 이 영화에서 살아 많은 대사이자 대표적인 대사이기도 합니다. 안 뺀것이 천만다행이네요. 

여기는 맹방 해수욕장인데 이 영화 보고 맹방 해수욕장에 놀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이 장면에서 은수는 웃음을 잃었습니다. 이미 마음이 떠났나 봅니다. 김치 담글 줄 알아?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나 보네요. 그리고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와서 울죠. 그때 헤어질 것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왜 은수가 상우가 일하는 서울 녹음실까지 찾아왔을까요? 그건 마지막 장면과 동일합니다.

1. 은수의 마음이 보이다

원조 국민 x년인 은수는 많은 사람들이 욕을 하는 캐릭터입니다. 저도 어제 보기 전까지는 은수 개짜증나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보면서 은수의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어? 왜 보이지? 왜 그렇지? 라고 했는데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들을 주변에서 좀 보고 저도 다양한 이야기를 얻어 듣고 하다 보니 은수가 어떤 심정인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은수는 사랑에 큰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2001년 경에는 여자가 이혼을 하면 이혼의 원인을 여자에게 찾는 사회적 편향이 심했어요. 쉽게 말해서 억쏀 여자라서 이혼을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은수가 사랑에 대해서 유순하지 않고 날카롭긴 하지만 분명 상처를 크게 받은 듯합니다. 그래서 또다시 깊은 사랑을 하고 싶지 않나 봅니다. 또 사랑했다가 헤어지면 상처를 받기에 그래서 상처 안 받는 만남인 쉽게 만나서 쉽게 해어지는 라면 같은 사랑을 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상우는 밥이 되길 원하네요. 이혼한 여자가 인사드리러 가서 받는 각종 눈총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깊게 사랑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문뜩 생각나서 상우에게 연락하고 다시 만났을 때 보면 알 수 있죠. 결혼해서 정착해서 살 여자는 아니라는 것을요. 그냥 그렇게 평생 살려나 봅니다. 라면 같은 남자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요. 이런 사랑에 대한 태도가 과연 나쁜 것일까? 상우의 시선으로 보면 나쁜 여자이지만 서로 사랑의 조건이 달랐을 뿐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마지막 장면에서 은수가 상우에게 팔짱을 끼는 장면도 그 맥락에서 나옵니다. 다시 나의 라면 같은 관계가 될 수 있니 상우야? 라면처럼 결혼이 아닌 동거 수준의 관계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상우씨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남자 상우, 사랑이 변하는 걸 이혼으로 경험한 은수, 두 사람의 사랑의 시작점은 동일했지만 사랑을 보는 태도는 달랐고 이 간극은 해결되지 못하고 끝나네요. 

그리고 나이를 더 먹다 보니 우리는 누구나 상우였다가 은수가 되는 건 아닐까 하네요. 사랑이 처음인 사람과 두번 째 이상인 사람의 차이. 또한 상우 같이 더 많이 좋아하면 사랑의 기울기가 한쪽으로 쏠려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랑의 상하 관계로 전환되어서 오래 가기 어려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은수가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면 은수도 똑같은 상처를 당하겠죠. 

그리고 배우 이영애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생활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결코 좋아하고 싶은 배우가 아닙니다. 그러나 연기와 이 당시 미모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만 30세의 이영애의 미모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아름답네요. 특히 개울가에서 허밍을 하는 모습은 사랑 그 잡채입니다. 이영애 필모에서 딱 한 작품을 꼽으라면 이 <봄날은 간다>를 꼽을 수밖에 없고 이 가치는 영원히 깨지지 못할 것 같네요. 

2. 치매 걸린 상우의 할머니

10년 전에 봤을 때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건 알았지만 치매를 잘 몰랐습니다. 치매라는 병은 최근 기억부터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기억으로만 산다고 하죠. 상우 할머니는 봄날이 지난 분입니다. 할아버지와 예쁜 사랑을 했지만 할아버지가 바람을 편 이후에는 속앓이를 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래서 늙은 할아버지 사진을  보여주자 저리 화를 냅니다. 다행이라면 젊은 시절 기억만 주로 하시고 사십니다. 그래서 봄 같았던 그 시절을 찾아서 수색역에 자주 들립니다. 할아버지가 증기기관차를 몰았을 때의 그 청춘 시절을요. 

어찌 보면 우리도 그렇죠. 치매에 안 걸렸을 때도 20,30대 첫사랑이나 깊은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나머지 삶을 버티고 사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할머니가 주로 부르던 1953년 발표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는 자우림의 '봄날은 간다'로 노래는 변하지만 본질은 같다고 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누구나 봄날은 가죠. 다만 봄날일 때 봄이라고 느끼고 지내는 청춘은 많지 않습니다. 사랑도 몸도 봄이지만 불안이라는 가시가 가득한 가시 덩굴이잖아요. 

3. 그냥 다 아련한 봄날의 사랑들

제가 경험이 많이 늘었나 봐요. 10년 전이라면 이렇게 한 영화에 대해서 길게 쓰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느끼는 것도 많지 않았겠죠. 상우 화이팅! 은수 x년 식으로 묘사하는 리뷰를 썼을 텐데 글이 길어졌네요.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은수의 마음까지 들여다 보고 할머니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정말 명장면이자 한국 영화사상 기록되어야 할 명명명장면입니다. 떠나가는 은수를 아웃포커싱으로 날려 버립니다. 지나고 보니 다 안개 같이 보입니다. 또렷한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고요. 그때의 감정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장을 끊는 아픔 속에서 밤을 새우고 술을 마시고 무작정 집으로 찾아갔던 그 기억들이요. 다 부질없는 행동이었음을 잘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은수도 상우도 모두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냥 각자의 사랑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랑의 에너지가 절절하게 가득 느껴지게 되네요. 아픔도 사랑의 환희도 다 봄날 같아서 폈다 지는 걸 이제는 잘 아는 나이입니다. 그래서 은수를 날카롭게 바라보지 않게 되고 어리숙한 상우도 찌질이 아닌 그게 다 사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어깨를 두들겨 주고 있네요. 

유독 눈에 확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한 노부부가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서로 마주 보시 못할 정도로 정으로 사는 것이 바로 보이는 이 노 부부의 노랫소리가 그렇게 애잔하고 동시에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맞고 안 맞고 떠나서 그냥 살았던 우리네 부모님들 사랑도 많이 보이네요. 사랑의 조건과 시선에 따라서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요즘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 풍경이죠.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젊은 시절 상처한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두사람...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빨려든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은수를 잊지 못하는 상우는 미련과 집착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과 강릉을 오간다.
평점
8.8 (2001.09.28 개봉)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박인환, 신신애, 백성희, 백종학, 이문식, 박준서, 손영순, 엄효섭, 김태진

뭐가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사랑들은 다 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 봄이 지나면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온다는 것을 삶의 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네요. 허진호 감독의 대표작은 앞으로 '봄날은 간다'로 바꿔야겠습니다. 다시 보니 더 좋네요. 특히 봄에 보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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