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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고양이를 부탁해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칭송 받는 이유

by 썬도그 202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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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MSG를 좀 쳐서 말하자면 어떤 평론가는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부터 한국영화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올드한 영화 문법을 따르는 영화가 많았다면 이 심심한 다큐 같은 청춘 드라마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 한국 영화가 다양한 소재와 양적 질적 향상이 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점은 저도 공감이 갑니다. 

돌아보면 한국영화의 제2의 전성기는 2002~2005년 사이가 아닐까 합니다. 
이 시기에 나온 한국 영화들은 지금도 큰 화제가 된 영화들이 많고 완성도나 소재나 연출이나 연기나 모두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영화들이 매달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했는데 전 이 사람을 꼽고 싶습니다. 

마이더스의 손 차승재.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 <봄날은 간다>, <고양이를 부탁해>, <마리이야기>, <지구를 지켜라> , <살인의 추억>, <말죽거리 잔혹사>,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등등 2천 년 대 초 놀라운 한국 영화들을 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영화 시작하고 난 후 차승재라는 이름이 뜨면 믿고 봐도 될 정도였습니다. 이 중에서 <고양이를 부탁해>는 당시 엄청난 흥행기록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개봉한 지 20년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꽤 좋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전 보지 못했습니다. 입소문은 잘 알았죠. 그런데 개봉 당시에는 저예산 영화를 볼 정도의 영화광은 아니었고 보고 싶을 때는 볼 방법이 마득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공교롭게도 차승재 제작자가 제작한 2천 년 대 초 영화들이 넷플릭스에 한 번에 쏟아져 나와서 하나씩 보고 있습니다. 

20살 청춘의 불확실한 미래를 잘 담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 포스터가 너무 좋죠. 지금봐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포스터 중 하나라고 할 정도로 색감이나 공간 구성이나 주연 배우들의 포즈나 표정이나 딱 좋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고 봤습니다. 모르고 보면 좋은 영화가 있고 알고 봐도 좋은 영화가 있는데 이 <고양이를 부탁해>는 모르고 봐도 알고 봐도 좋은 영화입니다. 

참고로 고양이가 엄청난 메타포가 될 것 같았지만 딱히 중요한 피사체는 아닌 듯합니다. 흥미로운 건 정재은 감독은 이 영화 이후에 장편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서인지 최근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더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2022년에 개봉한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호평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상업고등학교를 나온 5명의 친구 유태희, 신혜주, 서지영, 비류, 온조는 졸업 후에 제대로 취직을 한 친구는 증권사에 취직한 혜주(이요원 분) 밖에 없습니다. 태희(배두나 분)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맥반석 찜질방 카운터를 보고 있고 화교인 비류(이은주 분)와 온조(이은실 분)는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영(옥지영 분)은 상고에서 성적은 가장 좋았지만 조부모와 함께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큰 사건 사고는 없습니다. 고양이가 엄청난 의미를 차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사건 사고가 거의 없다 보니 심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에서 20살을 지나온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박제했습니다. 얼마나 잘 담았는지 제 20살의 모습으로 타임워프를 하게 할 정도네요. 그래고 제20살 때 감정들이 왈칵 쏟아져 나오네요. 이게 <고양이를 부탁해>의 힘입니다. 

함께 했지만 모두가 함께 하고 싶지 않았던 20살 그 친구들

고양이를 부탁해

그런 생각들 하시잖아요. 왜 동네 친구나 고등학교 친구들은 평생을 가져가는데 직장에서 만난 회사 동료는 평생을 가져가지 못하는지를요.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제 생각에는 동네 친구나 고등학교 친구는 어떤 조건을 맞춰서 만나는 친구들이 아닌 그냥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죠. 더 중요한 것은 가진 것이 없던 시절이라서 배경을 보고 재산을 보고 만나는 것도 아니에요. 반면 사회생활에서 만난 친구들은 각종 조건을 봅니다. 이유가 있기에 만나고 이유가 있기에 헤어집니다, 반대로 동네 친구와 초중고 학교 친구는 이유 없이 만났기에 이유 없이 헤어지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생 친구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동네 친구, 학교 친구들이 평생을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애 낳고 애 키우다 보면 연락이 뜸해지기도 하지만 나이들수록 가진 배경이 달라지다 보면 자격지심 때문에 성격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또 헤어지고 연락을 끊게 됩니다. 

저도 나이들어보니 뭘  그리 참고 살고 맞춰가면서 친구를 만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모든 것을 이해하고 마음도 맞는 친구만 만나면 됐지, 성격도 배경도 다른 친구와 억지로 만나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로 족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고 결국 가장 먼저 연락이 끊긴 친구가 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혜주 같은 친구요. 혜주는 깍쟁이입니다. 혼자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으면서 은근히 그런 걸 자랑질합니다. 아니 혜주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변변한 직장 생활도 못하는 자격지심일 수 있습니다. 제 경험을 말해보자면 고등학교 친구 중에 유독 잘 나가는 집안의 친구가 있었는데 한 번은 술자리에서 자신이 매번 술을 산다고 술김에 말하더라고요. 그 술자리에서 싸움이 났고 잘 마무리는 되었지만 평생 그 친구에 대한 벽이 생겼습니다. 술김에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때 먹은 회가 아직도 기억나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같은 교복, 같은 교과서, 같은 선생님 밑에서 지내는 일상이 많아서 같은 일상을 사는 친구들이 좋았지만 졸업하고 나면 각자의 삶이 크게 분화가 됩니다. 더 이상 함께 동행하기 쉽지 않죠. 누군가가 자꾸 희생해야 하다 보니 짜증이 쌓이다 보면 폭발하게 됩니다. 

직장인 혜주와 판자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다 최근에 밀린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업자가 된 지영은 고등학교 때는 단짝이었지만 졸업 후에 삶이 달라지자 서로 티격태격합니다. 혜주는 악의 없는 행동이고 크게 모났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지영은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 정도로 삶이 버겁습니다. 친구들에게 돈도 빌리고 갚지 못할 정도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처음에는 지영이 너무 자존심만 강하고 못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지영이 처음부터 이렇게 날이 서 있는 건 아니였습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집은 곧 무너져 내릴 정도로 겨우 견디고 사는데 그런 속도 모르고 혜주는 동대문에 가서 옷을 신나게 삽니다. 

당연히 헤어져야 할 사이이고 오래 가져가지 말아야 할 사이입니다. 다만 젊기에 오해는 풀면 되고 서로 배려하면 됩니다만 서로 문제로 인식하지 않기에 그냥 친구라는 굴레에 묶여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위태위태합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학교나 취직을 하면서 사는 집도 위치도 돈벌이가 달라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임이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태희 때문입니다. 배두나가 연기하는 태희는 우리 주변에 꼭 한 명씩 있는 친구입니다. 배두나는 이때도 연기 참 잘했어요. 완성형 배우였다고 할까요? 푼수 같은 태희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함께 놀자는 제안에 친구들에게 물어보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매사가 친절하고 다정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또한 속도 참 깊습니다. 모두가 지영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도 찾아가지도 않지만 태희는 찾아갑니다. 이런 친구가 평생 가는 친구죠. 이런 태희같은 친구 1명이라도 만나면 그 삶은 정말 큰 복을 받은 삶입니다. 태희는 지영이 돈 빌려달라는 말에 말없이 줍니다. 지영을 찾아가서 말없이 위로해 주는 친구. 사고로 인해 지영이 키우던 키키라는 길냥이를 말없이 받아 든 태희. 태희를 통해서 20살 그 처량하고 험난한 시간을 견디게 해 준 온기를 기억하게 하네요. 

가진 것이라고는 불확실한 미래 밖에 없던 20살 두려운 시간을 잘 담은 <고양이를 부탁해>

고양이를 부탁해

청춘은 축복이다. 청춘은 청춘을 낭비한다, 좋은 때다 좋은 때라는 어른들의 지청구 같은 말을 듣는 20살들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도 못하지만 그렇게 함부로 말하기는 것도 무례하다고 느껴집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버지의 농담에 극혐을 하는 태희의 모습 속에서 20년 전 한국 사회의 무례함도 볼 수 있습니다. 

웃자고 하는 손님의 농담일 수 있지만 지금의 인권 감수성으로 보면 무척 불쾌하고 무례한 말이죠. 
이런 건 또 있습니다. 20년 전은 지금보다 좀 더 엄격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학력 계급 장벽이 아주 컸죠. 여상을 나온 20살이 기를 쓰고 올라갈 수 없던 시절이었죠. 혜주가 다니는 증권사 팀장은 혜주를 이뻐한다는 말로 야간 대학을 다녀보라고 하죠. 어떻게 보면 좋은 상사 같지만 다른 대졸 신입 여사원 둘이 들어오자 혜주는 바로 찬밥 신세이고 개인 심부름이나 시키는 하대를 합니다. 요즘 20,30대 분들이 꼰대라고 하는 40,50대 들이 20대 일 때는 상꼰대가 기본 값이었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서 꼰대라는 소리를 듣고 지내게 되네요. 

고양이를 부탁해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냥 20살 기억의 파편들을 흩어 놓은 정도입니다. 명작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 20살의 공포를 아주 잘 담았습니다. 교복을 입고 살던 시절에는 목표가 있고 정해진 길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따라오라는 길만 가면 됐죠. 그러나 졸업 후의 삶은 모든 것이 자유입니다. 자유는 행복일 수도 있지만 정해진 미래가 없기에 불안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 불안이 30대 초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네요. 대학을 가도 군대에 있어도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불안함의 연속입니다. 그 불안 1년차가 20살입니다. 그나마 대학에 입학하면 불안을 4년 연장한 것이지만 20살 넘어가면 내 인생은 내 책임이라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 무거운 청춘을 너무 잘 담은 영화가 <고양이를 부탁해>입니다. 

고양이라는 존재가 보면 안아주고 싶지만 키우기엔 부담스러운 가까이 하고 싶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가까이하기 쉽지 않기도 하죠. 청춘도 그렇지 않나요? 다들 20대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정작 그 시절로 가면 20대의 불안이라는 발톱에 할퀴게 될 겁니다. 그래서 전 불안 없는 20대면 가고 싶지만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거든요. 

마지막 엔딩 장면이 너무 좋았던 <고양이를 부탁해>

고양이를 부탁해

평범한 영화가 아닙니다. 보통 이렇게 지영과 혜주가 싸우면 억지 화해를 하던 함께 미안해! 친구야라고 포옹하면서 단체사진이라도 찍으면서 끝나야 하죠. 그런데 우리 삶이 영화입니까? 대부분의 끝은 헤어진지도 연락이 끊어진 지도 모르고 살죠. 살다보면 문뜩 돌아보면 그 친구와 3년 동안 전화 연락이 없었다고 느낄 뿐이죠. 그리고 앞에서는 너 없이는 못 살고 어쩐다 하는데 그냥 연락 안 해 보세요. 일부만 전화 오고 대부분은 만나면 좋고 안 만나도 좋고 식의 느슨한 관계임을 알게 될 겁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부탁해>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도 인상적이고 현실적이여서 좋았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네요. 인간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던 지영에게 태희가 내민 손길이 너무 보드랍고 사랑스럽네요. 태희를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이 맛이 또 안 났을 거예요. 배두나라는 배우의 시작점이 아닐까 할 정도로 정말 좋네요. 2021년 <고양이를 부탁해>가 재개봉을 했었습니다. 이때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정재은 감독이 모두 참석한 모습이 흐뭇하게 느껴지네요. 

별점 : ★★★★
40자 평 : 20살의 삶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길어 올린 그시절 우리들의 불안과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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