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촬영하고 2020년에 개봉을 하려고 했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를 담은 영화 <영웅>은 2022년 12월에 뒤늦게 개봉했습니다. 이 연말에 영화관 좌석 거리 두기도 사라진 이 12월 연말 대목에 개봉한 대작 한국 영화가 <영웅> 1개라는 점이 놀라울 따릅니다. 그런데 이 <영웅>도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할 듯하네요.
영화 보면서 좀처럼 졸지 않은 내가 졸면서 본 영화 <영웅>
전 영화 보다가 나간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재미없어도 재미없는 이유를 메모를 해서 리뷰를 쓰지 보다가 중간에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 보다 졸지 않습니다. 밤을 샌 후에 영화를 봐도 영화 볼 때는 좀처럼 졸지 않습니다. 그런데 졸았습니다.
영화 <영웅>은 보다가 한 5번 정도 졸다가 깊은 한 숨을 쉬면서 깼습니다. 실망감이 너무 커서 돈 아깝다는 생각이 저를 깨웠습니다. 이후 졸지는 않았습니다만 영화를 이렇게 밖에 못 만드나 할 정도로 너무나도 실망스럽기만 하네요. 윤제균 감독 아닙니까?
1,132만 관객의 <해운대>, 1,426만 명의 <국제시장>의 감독 아닙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2개나 있는 흥행 귀재입니다. <공조> 시리즈도 제작하고 각색을 한 각색, 각본도 잘 쓰는 감독 아닙니까? 그런데 <영웅>은 윤제균 감독 영화임을 초반에는 좀 보여주는 것 같더니 후반에는 불발탄을 쏘네요. 비추천합니다. 영화 상당히 졸립고 지루합니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볼 영화가 없어서 봤는데 후회스럽네요.
정성화 배우, 김고은 배우의 뛰어난 노래 실력과 연기는 흠잡을 데 없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하얀 눈이 내린 거대한 들판 위로 안중근(정성화 분)이 비장미 가득한 단지 동맹을 부르면서 하늘에 울부짖듯 노래를 하고 손가락을 동료들과 함께 자릅니다. 그리고 혈서로 대한독립을 씁니다.
영화 <영웅>의 주인공은 안중근 의사죠. 그런데 이 안중근 역할에 정성화를 기용합니다. 정성화는 이미 뮤지컬 <영웅>의 주연 배우이죠. 10년 넘게 뮤지컬 <영웅> 배우로 살고 있습니다.
정성화라는 배우는 90년대 후반 SBS에서 방영한 <카이스트>에서 까불이 캐릭터로 아주 유명했습니다. 지금도 정성화보다는 정만수라는 이름이 더 먼저 떠올릴 정도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정만수는 수시로 오페라 발성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죠. 그렇게 잊혀지나 했는데 안중근 의사와 너무 닮은 외모를 하고 뮤지컬 배우로 변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배우 정성화는 영화에 조연으로 가끔 출연했지만 뮤지컬 배우로 더 많이 알려진 배우입니다. 따라서 티켓파워가 없습니다. 뮤지컬 좋아하는 분들이나 잘 알지 대부분은 잘 모릅니다. 그런 이유로 정성화를 캐스팅하는 것을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죠. 하지만 윤제균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안중근 연기를 가장 잘하는 배우는 정성화라면서 반대를 물리치고 주연으로 캐스팅합니다. 캐스팅 아주 잘했습니다. 외모도 노래도 정성화 배우가 너무 잘 합니다. 정성화 배우는 정말 잘한 캐스팅입니다.
배우 김고은이 이리 노래를 잘 하는 지 몰랐습니다. 스파이 설희 역을 맡은 김고은은 여러 솔로곡을 아주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가수로 데뷔해도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노래 정말 잘하네요. 이렇게 두 주연 배우의 연기와 가창력이라는 뛰어난 재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국뽕이라는 기름기를 잘만 걸러내면 많은 관객들이 볼 영화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구멍이 있었습니다. 바로 윤제균 감독입니다.
윤제균 감독이라는 구멍
영화 <영웅>은 유명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뮤지컬 영화입니다. 한국에서는 뮤지컬 영화 불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뮤지컬 영화를 몇번 시도했지만 다 망했습니다. 그나마 올 가을에 나온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기존 노래를 이용한 주크박스 뮤지컬로 117만 명이라는 어느 정도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만듦새는 좋지 못했습니다. 영화 <영웅>은 창작곡을 이용한 뮤지컬로 해외 영화 <레미제라블>과 비견될 만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너무 비교가 되네요. 먼저 윤제균 감독이 잘 하는 액션 장면은 아주 좋습니다. 영화 초반 일본군을 습격하고 대응하는 전투 장면은 꽤 볼만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규모가 크지 않고 짧은 것이 아쉬웠죠. 그럼에도 소련 지역으로 후퇴한 독립군 세력이 일본군을 피해서 도망가는 액션 장면도 좋았습니다. 여기에 윤제균 감독이 잘하는 잽 같은 코미디도 툭툭 나오는 등등 관객들의 피식 웃음을 이끌어내는 모습까지도 좋았습니다. 이대로 가면 좋은 한국 뮤지컬 영화가 나오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노래 부문입니다.
전투에서 진 안중근과 독립군들이 만두가게에서 함께 만두를 먹으면서 '배고픈 청춘이여'라는 노래를 부를 때 알았습니다. 이 감독은 뮤지컬 연출을 잘할 줄 모른다는 것을요. 먼저 우리 중에 뮤지컬 <영웅>에서 익숙한 노래가 있나요? 있다면 장부가 정도고 대부분 모릅니다.
이건 큰 약점입니다. 저 같이 뮤지컬을 안 보고 뮤지컬에도 관심 없는 관객은 노래를 다 모릅니다. 익숙한 노래가 나와야 쉽게 동화되는데 모든 노래가 처음 접합니다. 게다가 노래들이 비슷한 노래들이 많습니다. 그냥 고음을 내는 노래로 들립니다. 이렇게 노래들이 많지만 구분이 잘 안 되고 비슷비슷하고 잘 모르는 노래들이라면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춤이죠.
군무가 없습니다. 군무 없을 수 있습니다. 나라 잃은 사람들이 무슨 군무를 추겠습니까? 그래서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거리에 나와서 함께 노래 부르면서 걷는 장면으로 군무를 대신합니다. 따라서 춤이 없어도 어느 정도 대체 장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배우들이 솔로곡을 부를 때 지루하지 않게 뭔 장치를 해놓았야 하는데 이게 없습니다.
배우들의 거룩한 노래들이 나오는데 춤도 안 추고 노래만 부르니 무슨 나는 가수다! 보는 줄 알았습니다. 카메라 앵글 변화도 많지 않고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임도 없이 노래만 부르고 노래들도 다 비슷비슷하다 보니 서서히 졸음이 밀려옵니다. 움직임이 없고 이야기도 다 아는 이야기고 잠시 졸다가 깨도 노래 부르고 있어서 또 졸다가 깨도 또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설희라는 캐릭터는 왜 들어간거지?
일제에 침투한 설희라는 캐릭터는 가상의 캐릭터죠. 설희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는 민비의 살해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궁녀입니다. 민비가 나서면서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네요. 다행스럽게도 '내가 조선의 왕비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설희는 조선의 왕비를 죽인 일제에 큰 복수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일제에 침투합니다. 그것도 국무총리 격인 '이토 히로부미'의 시녀가 됩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죠? 설득력을 넣어줘야죠. 조선의 궁녀 출신이 어떻게 국무총리 시녀가 됩니까? 신분조회도 안 해요? 이렇게 허술하다고요? 게다가 설희는 이동하는 열차에서 무선 통신으로 독립군에서 히로부미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에 가깝게 알려줍니다.
문제는 이 설희라는 캐릭터와 독립군이 대면식도 없습니다. 그냥 따로 존재합니다. 어이가 없네요. 아니 둘 다 주인공급이면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고마워하고 교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습니다. 뭐죠? 설희는 왜 만든 건가요?
다른 독립군 캐릭터들도 웃음 유발만 할 뿐 어떤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주 역할을 하는 박진주 배우만이 그나마 활력이 있고 나머지 배우들은 안중근과 합창하기 위해서 나온 캐릭터 같습니다. 원작 뮤지컬을 안 봐서 뭐라고 하긴 그렇지만 캐릭터들이 서로 유기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다 따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하얼빈 역 저격 사건을 이렇게 간단하게 다룬다고?
윤제균 감독이 잘하는 신파가 적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면서 기대치도 올라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이죠. 이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물리치는 스릴을 넣으면 됩니다.
그렇게 이토가 탄 열차가 도착하고 안중근이 품에서 총을 꺼내서 쏩니다. 그 과정이 너무 짧습니다. 하얼빈역을 재현한 CG는 아주 뛰어납니다. 이 위대한 저격을 드라마틱하고 멋진 앵글과 오글거리지만 슬로모션으로 담아도 많은 사람들이 통쾌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쏘고 끝납니다. 응? 뭐야 끝난 거야? 이거 보려고 1만 4천 원 내고 봤는데 이게 다라고?
순간 뭐지? 이게 진짜 끝이라고? 영화 <영웅>의 클라이맥스는 하얼빈 역 사건이 아닙니다. 그 뒤에 실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안중근 어머니인 조마리아(나문희 분)입니다.
가장 노래를 못 부르는 나문희의 노래에 울음소리가 가득
전 영화 <영웅> 참 재미없게 봤습니다. 너무 정적입니다. 노래도 비슷하고 움직임도 없고 소리만 가득하고 비장미만 보이다 클라이맥스인 저격 사건은 너무 짧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 조마리아 여사의 위대한 편지가 나옵니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는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여기에 나문희 여사가 노래를 부릅니다. 나문희 여사는 출연 배우 중에서 아니 일반인들보다 노래 못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실어서 부른 노래가 관객들의 눈물 버튼을 눌러 버립니다.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걸 보면 알겠지만 영화는 감정 전달이지 기계적으로 노래를 잘한다고 관객 감정이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아이러니하죠. 가장 노래를 못하는 배우의 노래가 관객을 울립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재미가 없네요. 마치 성가대 노래 듣다 나온 느낌까지 드네요. 성가대들 노래만 부르잖아요. 율동도 거의 없고요. 뮤지컬 영화는 군무나 활달한 뭔가가 있거나 편집이나 앵글이나 가슴이 벅차오르게 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네요.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네요.
초반에는 꽤 좋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졸리고 지루하고 캐릭터들도 이해가 안 가고 재미가 없네요. 전반전에 2대 0으로 앞서다가 후반에 5골 먹고 진 축구 본 느낌이네요.
별점 : ★★
40자 평 : 비 종교인이 성가대 노래만 듣다가 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