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호평이 많아서 많은 기대를 하고 봤지만 기대 이상을 보여줍니다. 너무 잘 만들어서 이게 감독의 첫 작품이 맞나? 누가 대신 연출해준 것이 아닐까?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감독의 첫 작품이지만 워낙 영화와 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이정재라는 배우라는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해도 모든 배우가 연출을 하지도 않고 연출을 한다고 해도 그 영화가 잘 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런데 이 영화 <헌트>는 한국의 스릴러 거장이 만든 작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영화가 너무 잘 나왔습니다. 이번 여름 빅4라고 하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가 약했던 영화인데 가장 잘 만든 영화로 인정받을 듯합니다. 다만 이 영화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고 영화가 시종일관 윽박지르기만 있어서 달달함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전 이 하드보일드 한 건조한 스토리와 진행이 말캉거리지 않아서 싫어하실 분도 있지만 전 기름기 쫙 뺀 놀라운 스토리와 액션과 연기에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고 봤네요.
영화 <헌트>를 보기 전에 알고 보면 좋은 1983년 정치/ 사회 분위기
영화 <헌트>는 실화 영화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 허구도 아닙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 첩보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 전체적인 얼개는 실화에서 가져왔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다 허구입니다. 영화 <헌트>는 1983년 버마 아웅상 폭탄 테러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 영화로 이 역사적 사실을 알고 보면 좋습니다.
영화 <헌트>의 배경이 되는 해는 1983년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정국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유신 독재시대가 끝나고 민주주의가 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혼란을 정리한 사람은 신군부입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끄는 신군부는 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강제 찬탈합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무려 3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전두환 신군부 수장은 직선제인 직접 뽑는 대통령이 아닌 체육관에 모여서 대의원들이 선거를 하는 간선제를 통해서 대통령이 됩니다. 이런 식의 대통령 선거를 미국도 국민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선배인 박정희에게 보고 배운 것이 많아서 또 한 번의 쿠데타를 성공시킵니다.
국민들도 미국도 전두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안 좋은 여론을 잘 알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은 1982년 1월 5일 전국에 통행금지를 해제합니다. 지금 10~30대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한국은 박정희 정권 당시 병영 국가였습니다. 온 국민이 오후 5시가 되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춰야 했습니다. 밤에는 통행금지가 있어서 오전 12시가 되면 이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었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이런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무시무시한 국가가 군대인 시대의 엄혹한 분위기를 깨주기 위해서 전두환 대통령은 82년 통행금지를 풀어줍니다. 80년 컬러TV 방송 시작과 함께 국민들은 흑백의 시대에서 컬러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컬러 시대가 됩니다. 82년 중고등학생 두발 자율화를 넘어서 83년에는 교복 자율화까지 진행됩니다. 호크 교복의 시대에서 드디어 자율복장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83년은 저유가, 저환율, 저금리로 경제고도성장기의 경제적 여유와 자율화라는 자유로움이 막 태동했던 시기였습니다. 지지기반이 취약한 대통령의 쌀을 풀어서 인심을 얻으려는 행동이었죠.
하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군인 출신 대통령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많은 시위와 야당 대표의 단식 등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국내외의 전두환 대통령 반대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서 참 많은 나라를 순방합니다. 지금도 애용하는 시선 돌리기 해외순방이 있었습니다.
83년은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으로 이름만 바뀐 또하나의 독재, 폭력 정권으로 많은 야당 인사와 대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감옥에서 간첩을 뚝딱 만들어내기도 했던 고문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미국 정부의 귀여움을 받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추진하던 핵미사일 개발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킵니다. 미국은 한국이 핵은 물론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가지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반공이 국가 기조였던 이 1983년 2월에는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한국으로 귀순을 합니다. 정부는 북한 대위의 귀순을 통해서 반공의 깃발을 휘둘렀고 미국 앵커리지에서 출발해서 항로 오인으로 소련 전투기에 추락한 KAL 격추사건까지 일어나서 그 어떤 해보다 반공이 전국에 울려 퍼졌습니다. 공무원들을 동원한 관제 반공 행사가 전두환 정권 충성맹세처럼 들릴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그럼에도 독재 정권, 군사 정권의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고 전국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가득했습니다. 반공 시위와 민주주의 시위가 공존하던 시절이 1983년입니다. 전두환 정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뿌리기 위해서 반공을 이용했고 수시로 정규방송을 끊고 간첩 체포 방송을 수시로 틀어줬습니다. 어린 동생과 만화 영화 보려는데 간첩 체포 방송이 너무 많이 나와서 짜증났던 기억이 나네요.
안기부 국내팀, 국외팀의 갈등을 그린 영화 <헌트>
영화가 시작하면 안기부(현 국정원) 국외팀장인 박평호 차장(이정재 분)과 국내팀장인 김정도(정우성 분)가 미국 워싱턴에서 대통령 방미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묵고 있는 호텔 앞에는 연일 재미교포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안기부이지만 국내팀과 국외팀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다툼이 흐릅니다. 그때 저격수를 발견한 미국 경호팀을 따라서 저격수를 찾아내지만 김정도 차장이 대통령 암살범을 죽여 버립니다.
그다음 방문국은 일본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오사카에서 남한 정부에 망명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 고위급 인사는 남한 안기부 안에 동림이라는 스파이 조직이 있고 이 동림을 통해서 안기부의 모든 정보가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다면서 그 증거로 오늘 북한에 침투한 남한 특수부대 침투 사실을 북한이 알고 있다고 말하죠. 그 말은 실제가 되어서 남한 특수부대는 북한군에 몰살을 당합니다. 이후 영화는 안기부 안에 있는 동림 스파이 세력을 색출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국외 팀장인 박평호 차장은 국가보다 조직을 우선시하고 첩보에 대한 투철한 사명심이 있으면서도 딸바보 같은 따뜻함을 가진 베테랑입니다.
반면 국내팀장인 김정도 차장은 군 출신으로 모든 것을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스마트해 보이면서도 조직을 챙길 줄 아는 박평호 차장과 후배인 군 출신의 김정도 차장은 서로를 동림으로 의심합니다. 이에 신임 안기부장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상태 팀 팀원들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서로 벗겨보면 누가 동림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누가 동림일까? 라는 궁금증으로 내달리게 됩니다. 박평호일까? 김정도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인물이 동림을 이끄는 것일까?
1983년 실제 사건을 주요 스토리의 뼈대로 삼은 놀라운 스토리에 감탄이 연발로 나오다
우리가 영화 <헌트>를 보기 전에 예상하는 그림은 영화 <히트> 일 겁니다. 범죄자와 형사의 대결이지만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액션 영화를 예상하죠. 어느 정도 <히트>와 유사한 느낌이 있지만 <헌트>가 다른 점은 1983년 버마 아웅산 폭발 테러 사건을 영화에 엄청나게 잘 녹였다는 점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저 사건을 저렇게 이용하지?라는 감탄을 수시로 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이웅평 미그 19기 귀순 사건과 당시 간첩 사건 그리고 버마 테러라는 실제 역사의 소재를 이용해서 두 사람의 첨예한 갈등을 엄청난 밀도로 훌륭하게 담았습니다.
먼저 이웅평 귀순 사건을 담습니다.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 <헌트>는 영화 초반에 카메오가 너무 많이 나옵니다. 다른 영화의 주연 배우들이 카메오로 툭툭 튀어 나옵니다.이웅평도 너무나도 유명한 배우가 연기를 합니다. 이웅평 대위가 남한으로 미그기를 타고 귀순을 하는 사건을 동림을 푸는 열쇠로 사용합니다. 이웅평 대위가 가지고 온 북한의 난수표 해독 문서를 통해서 동림의 실체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됩니다.
영화 <헌트>에서 헌트는 암살을 뜻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3번의 암살시도가 영화의 제목입니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1983년 10월에 일어난 버마(현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입니다. 북한 김정일의 지시로 일어난 이 테러로 한국 여러 장관들을 포함한 총 17명의 한국 고위직 공무원들이 사망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운이 좋아서 테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버마 테러 사건 직후 한국은 부상당한 테러범을 심문해서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했지만 당시 버마 정권은 인기 없는 대통령이 지지율 올리기 위한 자작극이라고 의심을 했습니다. 당시 버마는 소련과 미국 어느 편도 안 드는 비동맹 국가였고 북한 배가 들락거리던 나라였습니다.
원래 이 아시아, 오세아니아 6개국 순방에는 인도가 첫 방문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안이 취약하고 위험한 비동맹 국가인 버마가 추가 되었을까요? 이는 80년대 당시 남북한의 극심한 외교전쟁에 기인합니다. 당시 얼마나 해외 순방을 많이 가고 해외 대통령과 총리를 많이 초대했는지 수시로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인공폭포 앞에서 태극기를 엄청 흔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버마를 첫 방문국으로 추가하고 바꾼 사람은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입니다. 버마라는 비동맹국가를 방문해서 외교전쟁에서 북한을 이기겠보겠다는 생각이 버마를 추가하게 되었고 이 버마에서 테러를 당하고 급거 귀국하게 됩니다. 전두환 정권은 이 테러 사건을 전 세계에 보여주면서 대통령 특사를 보내서 북한과의 외교 단절과 한국과의 외교를 이끕니다. 지금 북한이 저렇게 고립된 국가로 살기 시작한 것이 이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테러단체도 아니고 테러를 한 국가가 저질렀다? 비동맹 국가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북한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된 계기가 버마 테러 사건입니다.
영화 <헌트>는 이 역사적 사실을 아주 흥미롭게 변주해서 넣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너무 현실감이 있어서 실제인가 잠시 착각을 할 정도입니다. 영화 <헌트>는 대통령 암살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두 세력의 충돌을 거침 없이 담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안기부 국내팀 vs 국외팀의 주도권 싸움을 보는 재미가 아주 아주 좋습니다. 스포라서 말은 못 하지만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게 짜여 있습니다.
이게 이렇게 흘러구나를 보면서 수시로 감탄과 탐복을 연신 내뿜게 되네요. 최대한 줄거리를 소개 안 하려는 이유가 이 영화 <헌트>는 스토리를 많이 소개할수록 재미가 떨어지기에 이 정도에서 스토리 소개를 멈추겠습니다. 더 많이 하고 싶지만 읍읍... 참겠습니다. 남산이라는 시나리오 판권을 사서 이정재 감독이 수년 동안 각색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 엄청난 시나리오를 잘 잡았고 그걸 또 아주 잘 고쳤습니다.
액션과 배우들의 연기도 엄청나게 좋은 영화 <헌트>
배우들의 연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국외팀 소속의 전혜진이라는 고위 공무원 전문 배우의 연기가 또 빛을 발합니다. 이정재를 보좌하면서 강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유일한 캐릭터로 영화의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국내팀 김정도 차장을 보필하는 장철성 역의 허성태 배우도 묵직한 돌직구 연기를 잘 보여줍니다. 오징어게임에서 이정재와 함께 출연했는데 여기서는 부하로 출연해서 강력한 해머 같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청담부부라고 불리는 절친 사이인 이정재와 정우성의 연기는 불꽃이 튑니다. 연기 대결을 넘어서 눈에서 불꽃이 튑니다.
취조실 장면이 참 많이 나오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수시로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깊은 골을 제대로 담습니다. 영화에서 둘이 멱살 잡고 계단을 구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스턴트맨이 아닌 두 사람이 실제로 연기를 했다고 할 정도로 액션에도 진심을 보여줍니다.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 스타일의 담백하고 진한 총격 액션이 가득한 <헌트>
액션은 워싱턴, 오사카, 방콕과 한국에서 일어납니다. 액션이 꽤 많습니다. 드라마 구간은 필연적으로 지루해지는데 이 영화는 지루할 틈을 안 줍니다. 액션이 없는 장면들에서도 팽팽한 활을 보는 긴장감이 가득하고 액션 구간에서 뻥 터집니다.
액션 스타일은 과감 담백 현실입니다. 현실적인 액션이 가장 눈에 들어옵니다. 저격범을 쫒아가다가 뒤로 돌아서 몇 발 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닌 추격하는 요원이 기관총에 맞아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 액션임을 알고 볼수록 한 영화가 떠오릅니다.
바로 위에서 소개한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히트>입니다. 히트는 밀덕 분들의 성배와 같은 영화로 현실 액션으로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주인공이 혼자 날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히어로 액션이 많지만 <히트>는 발사한 총알 수를 계산해서 탄창을 가는 것까지 잘 보여주죠.
깜짝 놀란 액션 장면은 오사카 액션 장면입니다. 마이클 만의 히트 만큼은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액션이 펼쳐집니다. 권총 싸움에서 M16 총을 탄창까지 야무지게 갈면서 보여주는 도심 총격 장면은 긴장감은 물론 화려함에 진솔함까지 챙겨서 담습니다.
중간에 건물 폭파 장면도 CG가 분명 사용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전혀 티가 나지 않고(모르죠 실제로 촬영했을지도요) 너무나도 실감 나게 그려서 동공이 커질 정도였습니다.
압권은 마지막 태국 액션 장면입니다. 엄청난 총알 속에서도 두 사람의 지향점과 감정선을 이끌면서 액션을 지휘하는데 마치 액션 오케스트라같은 느낌도 납니다. 태국에서 두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끌고 가는 액션 장면이 마치 <히트>의 느낌을 가득 느끼게 합니다. 다른 점은 <히트>에 없는 한국의 역사적인 사건이 아주 잘 들어갔다는 것이죠.
심리전이면 심리전 액션이면 액션 어떻게 초보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 라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연출 과외를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신인 감독 이정재? 첫 영화를 이렇게 잘 만들 수가 있나?
유명 배우가 영화 제작과 감독까지 하는 경우는 꽤 많습니다. 벤 에플렉도 숀 펜도 조지 클루니 등등 참 많죠. 그런데 첫 영화를 대박을 내는 영화가 없고 대체적으로 배우의 명성을 뛰어넘는 연출작도 많지 않습니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분도 있지만 첫 영화에 대박 영화를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이정재가 영화를 만들었다고? 90년대 오렌지족 연기를 하던 그 배우가? 반신반의를 했죠. 칸에서도 반응은 그냥 그랬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엄청난 영화가 나왔네요. 해외 반응이 약한 것은 이 영화가 1983년 한국 역사를 제대로 알고 많이 알수록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이 1980년 광주 민주항쟁을 알겠어요. 1983년 버마 아웅산 테러를 알겠어요. 그리고 복잡한 국내외 정세를 알 수가 없죠.
안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고 북한은 언제든지 침공할 생각만 하고 있고 지지율 낮은 대통령에 대한 국내외 시선은 모두 좋지 않은 소재를 이용해서 이렇게 멋진 영화를 만들었네요. 영화 초반은 안기부 국내팀 국외팀 대결에 혼이 팔리고 후반은 모든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어진 후에도 또 다시 긴장감을 들어 올린 후 진격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집니다. 두 멋진 배우의 연기와 연출과 액션 거의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깝습니다. 마지막 박평호를 외치는 대사와 눈빛 교환이 왜 이리 뭉클하고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네요.
강력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단 웃음 구간이 없고 상영 내내 긴장감만 가득해서 좀 단조롭게 다가갈 수는 있을 겁니다. 그점만 빼면 아주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며칠 전 쓴 1983년 세상 분위기를 담은 글을 읽고 보시면 더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나저나 이정재는 외모, 능력, 연출, 연기 그냥 모든 걸 다 가졌네요.
https://photohistory.tistory.com/20267
별점 : ★★★★
40자 평 : 히트 베이스에 26년을 얹은 아주 잘만든 첩보 스릴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