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집에 맛있는 걸 숨겨 놓고 학교에 등교하면 하교한 후에 집에서 먹을 수 있다는 기다림에 지루한 수업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어른이 되면 먹고 싶은 건 바로 사 먹을 수 있기에 이런 기쁨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가끔은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아이가 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느슨하고 책임 질일이 많지 않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어른이 되었네요. 이런 어른에게 마법 같은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넷플릭스 해지를 고민하다 수렁에서 건져 올린 안나라수마나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만족도는 갈수록 떨어지게 됩니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같은 빅히트 드라마를 연이어서 터트리고 있지만 갈수록 만족도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대박 드라마가 나와줘야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볼만한 오리지널 드라마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최신 영화 판권을 사서 뿌리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영화관에 대작 영화, 신작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넷플릭스 볼 돈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나 볼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딱 하나 기대한 드라마가 있었는데 바로 <안나라수마나라>입니다. 이 드라마도 네이버 웹툰이 원작이더라고요. 그러나 전 웹툰을 안 좋아해서 안 봅니다.
정말 아껴서 봤습니다. 하루에 1화씩, 너무 못 견디면 2화씩 복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마지막 화까지 다 봤습니다. 6화 초반까지만 해도 너무 급격한 진행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후반 결말 부문부터 시작해서 엔딩 공연 장면은 환호성으로 변했습니다. 감동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저에게는 깜짝 선물 같았습니다. 참! 넷플릭스는 주기적으로 이런 드라마를 내놓네요. 문제는 해외 드라마 보다 국내 드라마만 대박을 치네요.
어제 뉴스를 보니 넷플릭스 드라마 약빨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 예를 든 것이 <안나라수마나라>가 1등을 못하고 4위를 하고 있다면서 이게 그 증거라고 내놓았습니다. 참 신기해요. <스위트 홈>이 10위 안에 들었다고 대박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1등 못했다고 구박합니다.
그런데 그 기자분이 놓친게 있습니다. 이 영어 제목이 '사운드 오브 매직'인 <안나라수마나라>는 유럽과 미국에서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와 중남미, 중동 지역에서 오픈을 했습니다. 이렇게 유럽 미국에 오픈하지 않고도 4위 한 것은 놀라운 성적이죠. 물론 한국에서도 최고 순위가 1위가 아닌 3위라는 것이 아쉽긴 합니다만 전 이 드라마가 1~2위 드라마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인도에서는 1위 일본 2위 등등 아시아에서는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나라들이 더 많네요. 왜 이 드라마에 아시아가 푹 빠졌을까요? 단지 한국드라마라서? 그것도 있겠죠. 그런데 그보다 전 이 드라마가 좋은 이유는 기존의 한국 드라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너무 폭력적이고 과격한 느낌이 거의 없는 마법을 소재로 한 블링블링하지만 매콤한 맛도 있는 단짠이 잘 섞인 드라마라서 인기가 높은 것이 아닐까 하네요.
어른이 되고 싶은 윤아이, 아이가 되고 싶은 마법사 리을
총 6화이고 원작이 웹툰입니다. 원작이 인기 높아서 많은 분들이 내용은 대충 아실 겁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 빠진 건 스토리 때문도 살짝 있지만 그보다 배우 때문입니다. 지창욱은 영화 <조작된 도시>와 <발신제한>으로 만났지만 그냥 잘 생긴 배우, 아이돌 같은 배우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의 매력에 빠지게 되네요. 뮤지컬 <그날들>이나 <잭 더 리퍼> 같은 뮤지컬 배우로 활약했을 만큼 노래 참 잘 부릅니다.
처음에는 노래를 더빙을 했나 의심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필모를 뒤적이니 뮤지컬 배우라면 어~~ 인정 바로 했네요. 이보다 더 눈길을 끈 배우가 있는데 바로 최성은입니다. 신데렐라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어디서 이런 배우가 나왔데요. 청아한 외모에 청아한 목소리. 그래서 또 검색해봤죠. 놀랍게도 직접 노래를 부릅니다.
최성은에 푹 빠져서 <십개월의 미래>라는 독립영화도 바로 봤네요. 그런데 헤어스타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성은은 윤아이가 최고의 캐릭터, 인생 캐릭터를 만난 듯하네요. 눈부신 외모에 홀딱 반하게 하네요.
드라마는 뮤직 드라마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뮤지컬은 꽤 많은 노래가 나오지만 이 드라마는 뮤지컬 보다 드라마를 더 강조한 드라마로 음악은 아주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뮤지컬은 틈나면 노래하는데 이 드라마는 노래가 많지만 전반부 환상 부분에 몰려 있고 중반부에서는 조금씩 나오다가 후반에 꽃가루처럼 많이 뿌려지네요.
집단 군무도 있지만 솔로곡, 듀엣곡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스토리에 대한 빌드업이 완성되고 6화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사채업체에 쫒겨서 초등학생 동생과 같이 사는 겨우 하루하루를 견디는 고등학생 윤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까요. 이런 윤아이가 고통 속에 살 때 언덕 위에 있는 폐 유원지에서 사는 마법사 리을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흔한 로맨스 드라마로 보이지만 이 드라마는 성장 드라마이지 로맨스 드라마는 아닙니다.
이 윤아이를 수줍게 좋아하는 전교 1등인 나일등(황인엽 분)은 검사장 아빠를 둔 전형적인 금수저입니다.
윤아이와 나일등은 결핍이 있습니다. 아이는 돈 때문에 세상이 싫고 나일등은 전교 1등을 유지해야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이 두 아이에게 마법사 리을은 마법을 선보이면서 이들을 좋은 길로 안내합니다.
마법사 리을의 터무니없는 환상과 희망을 선보이자 윤아이는 철없는 어른이라고 구박까지 하고 자꾸 밀쳐냅니다. 그러나 마법사 리을의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마법에 홀려서 자꾸 마법사 리을을 찾아가게 되고 점점 미소를 되찾아갑니다.
후반에 어떻게 풀어가려고 마법인지 마술인지 모를 일을 펼쳐 놓을까?
초반엔 흔한 스토리인줄 알았습니다. 흔한 마법 소재 스토리일 줄 알았죠. 그런데 보면서 계속 이 드라마를 보게 하는 은근한 힘 하나가 있는데 그건 바로 리을의 마법인지 마술인지 구분이 안 가는 행동들입니다. 유원지에 불이 켜지고 폭죽을 쏘고 대관람차를 돌리는 걸 보면 마법으로 보입니다. 여러 환상 장면도 있고요.
그런데 사채업자에게 두들겨 맞는 걸 보면 이건 뭐지?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마법사 리을인지 마술사 리을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드라마 끝까지 이끌게 하는 작은 원동력입니다.
이는 윤아이 혼자만 경험한 것이 아닌 나일등도 경험을 합니다. 그럼에도 이걸 후반에 풀어내려면 착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토리에 설득력을 얻을 수 있죠. 갑자기 리을이 우주선 타고 가버린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하게 해결해 버리면 정말 화가 나고 바로 넷플릭스 해지각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5화에서 이 이야기를 연착륙 시킴을 넘어서 너무 부드럽게 랜딩을 해서 감동까지 몰고 오네요.
제가 이 <안나라수마나라>에 더 깊게 빠지게 된 것을 모든 사건들을 마법이라고 말하지만은 않습니다. 몇몇 부분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환상을 곁들여서 세상은 마술과 같은 현실기반도 있지만 마법 같은
리을의 정체모름과 항상 철없는 뜬구름 같은 소리만 하는 마법사 리을과 심리적 거리두기를 하던 윤아이는 리을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단단해지려면 일방적이면 안 되죠. 서로 주고받아야 합니다. 윤아이와 리을의 관계를 너무 멋지게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초반의 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제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네요.
또 하나 좋았던 것은 같은 반 친구가 빌런으로 나오긴 하지만 그렇게 악독하지 않은 점도 좋네요. 꼭 악인이 등장해야 드라마의 감정의 진폭이 커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솔직히 넷플릭스의 너무 강력한 빌런들의 등장에 짜증이 날 때도 많습니다. 그냥 착한 사람과 더 착한 사람이 나오는 드라마도 좋은 드라마로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6화 초반에는 갑자기 수사극으로 전환되기에 이게 뭐지 했는데 그런 걱정을 말끔하게 해소해 주네요.
좋은 어른이 좋은 아이를 만든다
<안나라수마나라>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이게 아닐까 합니다. 좋은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부터 나온다. 가끔 10,20대 청년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하는 이야기가 그 시기에는 많이도 필요 없고 좋은 어른 딱 1명만 있으면 된다고요.
그 어른이 엄마 아빠일 수도 있습니다만 나일등이나 윤아이처럼 가족이 오히려 스트레스의 근원이지 불행의 근원일 수 있습니다. 이런 10,20대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럼 이 아이들은 어떤 어른을 믿고 자라야 할까요? 가까운 곳에 좋은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선생님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고 선생님도 아니라면 주변 어른들이 착한 어른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어른들도 많고 나쁜 어른들이 참 많은 세상입니다. 이는 제 경험입니다. 10,20대에 만난 어른 중에 나쁜 어른을 참 많이 경험했어요. 특히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이 만났어요. 지금은 법으로 많이 보호하기에 달랐지만 알바비 떼어먹는 건 기본, 몰상식한 일도 참 많았죠.
마법사 리을에게 감사했던 것은 좋은 어른의 표본을 잘 보여줍니다. 가시가 가득한 윤아이와 나일등의 가시에 찔리면서도 다가가서 안아주는 마법사 리을. 그래서 리을이라는 마법사에게 저도 큰 위로를 받네요. 더 나아가 지창욱이라는 배우까지 너무 좋아지네요.
명장면들이 꽤 많은 <안나라수마나라> K드라마를 확장하다
한국 드라마가 K드라마로 인기가 높죠. 그런데 그 드라마들을 뜯어보면 허구헛날 경찰이 나오고 검사가 나옵니다. 사회 권력자들이 너무 많이 나와요. 제가 사극을 잘 안 보는 이유가 조선시대에 무슨 왕만 살았는지 온통 왕만 나옵니다. 경복궁 드라마 지긋지긋해요. 그래서 제가 추노를 좋아합니다. 조선시대에 개돼지 취급받던 사람들을 다루었으니까요.
<안나라수마나라>도 크게 보면 학원 성장 드라마라는 장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만 이 드라마가 좋은 점은 뮤직 드라마와 판타지 드라마를 잘 섞었다는 겁니다. 라라랜드 같은 군무가 가미된 합창 장면이 드라마 초반에 나오면서 분위기를 돋우고 중간 나일등의 괴로움도 군무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딕 오르면서 나오는 보너스 영상 같은 장면도 환상적입니다.
환상적인 좋은 성장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 사실 드라마도 현실이 아니죠. 그래서 전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영화나 드라마는 마법까지 허용 하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듣는 동안만큼은 마법 허용 시간이 아닐까 해요. 그런 동화 같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입니다.
연출, 스토리, 연기, 모두 아름다운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입니다. 강력추천하지만 이게 또 호불호가 심한 장르라서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결코 흔한 한국형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고 청소년 성장 드라마라는 점을 아신다면 로맨스 드라마 거부감이 있는 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 최고였습니다.
별점 : ★★★★
40자 평 : 마술을 믿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