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은 온통 콘크리트 덩어리입니다. 이 시멘트 덩어리가 주는 불쾌함도 크지만 그 콘크리트 안에 들어가면 느끼는 편안함도 크죠. 그러나 이 콘크리트는 녹이 슨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시간이 지나면 내구성이 떨어져서 건물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한국 건축 기술은 세계적인데 왜 아파트는 가전제품 수명보다 못한 30년 정도밖에 안 될까요? 마치 아파트가 한 사람이 나고 죽을 때까지 견디지를 못하는 걸 보면 유기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 아파트 수명은 30~50년이고 미국은 70년 유럽은 100년 가까이 된다고 하죠. 한국이 여름엔 너무 덥고 습하고 겨울에는 너무 춥고 건조해서 년교차가 심해서일까요? 네 이것도 한몫한다고 하지만 아파트를 싸게 지으려고 하다 보니 싼 자재와 공법으로 후루룩 짓다 보니 내구성이 약하다고 하죠.
한국 최초의 고층빌딩이라고 하는 1970년에 완공된 종로구 삼일빌딩이 몇 년 전에 리모델링을 마치고 다시 새로운 건물로 재탄생한 걸 보면 한국 고층 빌딩과 달리 고층 아파트 건축 공법이 문제가 많은 듯 합니다.
슬럼화 된 세운상가 주변의 재개발 열풍
최근에 개봉한 영화 <유체이탈자>의 액션 장면을 세운상가 건물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운상가는 한국 영화 촬영 명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름한 건물이 많고 골목이 많아서 액션 및 추격 장면 촬영하기 딱 좋죠.
위 사진은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세운 4구역 풍경입니다. 종묘를 등에 지고 세운상가를 바라보면 왼쪽 지역으로 조명 및 전자부품 및 시계수리를 할 수 있는 시계 골목으로 유명한 예장동이 있습니다. 보면 슬레이트 지붕도 보이고 통일성이 전혀 없이 형편에 맞게 막 짓고 보수한 듯한 모습이죠. 정말 오래된 건물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이 풍경이 부끄럽다는 분들도 있지만 전 삶의 활력이 느껴지고 생기가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그러나 지금 세운상가 일대는 이렇게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는 세운 3구역인데 많은 을지로 상가들을 불도저로 밀고 아파트를 올리고 있더라고요.
지금은 이렇게 거대한 주상복합 건물이 올라서고 있습니다. 상가를 밀고 아파트를 올리는 것 자체는 서울시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풍경입니다. 다만 이 을지로 세운상가 일대가 중요한 점은 여러 도소매 판매 업체 및 제조업체들이 클러스트화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제품 하나 만들거나 어떤 소규모 제작을 하려면 많은 재료와 부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새운 상가는 전자부품, 조명, 철공소, 공구, 출판, 디자인 등등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해결할 수 있는 제조업 메카입니다.
그 유명한 여기서 잠수함과 인공위성까지 만들 수 있다고 하던 그 세운상가 클러스트입니다. 이 클러스트를 갖춘 곳이 전국을 아무리 뒤져도 없습니다. 없어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한다고 많은 업체들을 문정동 가든파이브로 이주시켰지만 클러스트가 형성이 안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 주상복합 건물도 주거 건축권 이전하면서 주민 찬,반의도 묻지 않고 진행을 해 중구청은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습니다. 공무원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하지만 한국 공무원들이 그렇게 꼼꼼하고 세심하지 않습니다. 실수도 참 많이 하고요. 중구청 공무원의 문제로 인해 시행사가 개발이익을 독점하게 되었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보더라도 부동산 개발로 인한 막대한 이익을 감시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느낌입니다.
서울시 SH 공사가 재개발을 진행하는 세운 4구역
세운상가 지역은 세운상가부터 시작해서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신성상가, 진양상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세로로 된 상가 건물을 말합니다. 이 세운상가 건물을 싹 다 밀고 도보를 만들어서 종묘에서 남산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그린웨이'를 만드려고 했던 분이 오세훈 현 시장입니다. 이 계획이 아마도 오세훈 현 시장이 전 시장이었던 2008년 경으로 기억되네요. 이 계획에 따라서 세운상가부터 진양상가까지 싹 다 밀기 위해서 협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건물주를 일일이 설득해야 하고 설득한다고 하고 한국의 아주 나쁜 고질병 같은 정책인 공시지가만 주고 내쫓는 무자비하고 무식한 개발 방식을 따른다고 해도 수조 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건물 1채당 가격이 최소 1억이라고 잡아도 수조는 너끈하게 나옵니다.
누가 봐도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었죠. 그러나 밀어붙이기 위해서 수년 동안 가장 앞 건물인 세운상가 앞 현대아파트를 허뭅니다. 허무는데 들어간 돈은 968억 원입니다. 이거 허물었다고 주민들 설득한 고위 공무원이 표창장 받고 하던 게 기억이 나네요.
오세훈 전, 현 시장은 겪어보면 알겠지만 인상은 참 부드러운 분인데 일 하는 스타일은 불도저 시장으로 유명한 김현옥 전 서울시장과 비슷합니다. 아! 이명박 전 시장과 비슷하다고 하면 바로 이해되겠네요. 이런 막무가내 스타일의 증거가 이 세운상가 개발과 함께 여의도에 무슨 유람선 정박 가능한 항을 만들겠다고 양화대교를 S로 만들었던 분이죠. 만년 적자인 세빛 둥둥섬은 어떻고요.
세운 4구역은 2008년 서울시 산하 SH 공사가 설계, 감리비, 이주상가 지출비, 영업보상비로 이미 1,213억원을 투입했고 2016년 착공해서 2019년 완공하기로 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차일피일 개발이 미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 왜 수익성이 악화되었냐?
바로 종묘 때문입니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조건에는 종묘에서 고층 빌딩이 보이는 등의 미관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다고 하죠. 그걸 떠나서 4대 고궁 주변에 고층 빌딩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심의를 통과해야 합니다.
최근 김포의 한 왕릉 주변에 아파트를 건립하다가 왕릉 뷰에 걸린다고 건물을 나무로 가리거나 부스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종묘 주변에 고층빌딩 올리려면 먼저 문화재청과 상의를 해봐야죠. 그러나 SH공사는 무능한건지 무식한 건지 최고 높이 122m까지 올리는 건물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안 되죠. 문화재청은 122m가 아닌 높이를 반으로 줄이라고 했고 이러다 보니 용적률이 떨어져서 개발이 중단됩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나 했는데 아닙니다. 세운 4구역 드디어 재개발이 됩니다. 워낙 많은 상가들이 밀집해 있어서 보상 및 이주문제로 지난한 시간 동안 협의를 하고 개발을 드디어 시작합니다. 2021년 연말에 개발을 시작하나 봅니다. 위 조감도가 개발 후의 모습으로 저층은 상가로 활용할 듯하네요.
서울시 계획은 개발 중에는 기존 조명, 전기, 시계, 공구 상가들을 주변 저렴한 상가로 이전시켜주고 개발이 끝나고 완공이 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 있게 하겠다는데 하네요. 그런데 새 건물 임대료가 기존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재정착할지는 모르겠네요. 맛집은 가능하지만 기존 영세 상가들은 돌아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장사 안 되는 상황인데 임대료까지 올리면 수익 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미 많은 상인들이 개발 이전에 떠나버렸습니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기존의 60% 상인들은 주변 상가로 이주했고 완공되면 이중 다시 돌아올 상인들이 있습니다만 40%는 폐업을 하거나 문래동, 금천구 시흥공구상가 같은 서울의 마지막 남은 공구 상가나 관련 준공업 지역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서울이는 4차 산업 혁명 클러스터 어저꾸 저쩌고 블라블라 떠들지만 서울시 계획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50% 이상일 겁니다. 왜냐하면 서울시가 그렇게 외치던 제조산업 어쩌고 하던 세운상가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관에서 이래라저래라 해서 성공한 게 거의 없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잘하는 행동입니다.
이 세운 4구역 이야기를 왜 하냐?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가 사라집니다. 예정된 것인지 여기 가보고 알았습니다. 몇 주 전에 가봤는데 다 떠났더라고요.
이전에도 문이 닫힌 곳이 많았지만 본격적인 이주를 하려는지 많은 쓰레기가 가득합니다.
좀 안타까웠습니다. 비록 낡긴 했지만 이 공간만의 아우라가 있고 정취가 있는데요. 물론 불편하죠. 그러나 새로 지어진 건물 상가들이 정나미가 없는 건 잘 아시잖아요. 게다가 이런 도소매 상가들은 낮은 임대료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새 건물은 낮은 임대료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SH 공사가 진행을 하기에 임대료가 저렴하다고 해도 저렴하다는 가산디지털단지 지식산업센터 1층 28평 상가 분양가가 12억 원인 것이 현실이라면 임대료는 수백 만원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근처에서 영업을 계속하는 상가들은 이렇게 이전 위치를 표시해 놓았습니다. 보면 청계천 건너 또 다른 을지로 상가로 이전을 하네요.
갑자기 이렇게 셔터문이 내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로드뷰를 보면 개발 이슈가 나온 이후 부터 하나둘씩 폐업하거나 떠난 듯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영업을 계속 하는 곳도 있지만 11월 말까지인가 모두 떠나야 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여기저기 이동하는 업체들이 많은데 문제는 세운 4구역, 조명, 전기, 공구 상가들이 집단을 형성해야 손님들이 이집저집 들리면서 가격 흥정도 하고 제품 구경 및 없는 제품은 소개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흩어져 버리면 가격의 평균점을 알 수 없고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눈탱이 맞을 수 있습니다. 뭐 용산전자상가처럼 눈탱이가 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용산전자상가도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가격을 대충 알 수 있어서 발품 팔수록 저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아쉽네요. 아쉬워요. 장담하는데 새건물 지어 올리면 이런 밀집 상가가 형성되지 못할 겁니다. 뻔하죠. 강남의 흔한 골목길처럼 카페와 프랜차이즈 식당, 베이커리 등등 흔한 음식료품 상가들만 가득할 겁니다. 요즘은 오프라인 유통상가 거의 다 사라지고 있어요.
서울시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돈의 폭력을 공권력이 막아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아파트는 공공분양이라도 있지 상가는 공공분양도 없어요. 다 건물주가 있고 각자의 건물주는 자본 논리로 운영할 겁니다.
그렇다고 이 상태로 천년만년 살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하나씩 하나씩 부분 부분 저층 건물로 지어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을지로 전체 상가 중 부분 개발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 그 보다 더 정밀하게 조금씩 개발하면 어떨까 하네요. 제가 요즘 집 근처에 돌아다니면서 이 좁은 곳을 어떻게 건물을 올리지 했는데 올리더라고요. 그렇게 80년대 지어진 붉은 벽돌 다세대 주택가가 지금은 빌라촌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상가 사이에는 작은 호프집이나 커피숍이나 음식점이 많은데 노포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을지로나 종로에 노포가 많죠. 그런데 새로운 건물에 노포가 이동해면 신기하게도 인기가 떨어져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포들이 대부분 리모델링 조차도 안 하는 이유는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하게 되면 음식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죠. 그럼 가성비가 깨지게 되고 찾는 사람이 줄게 됩니다.
함흥냉면이 세운 4구역에 있는데 함흥냉면은 새로운 건물에서 다시 영업을 할 듯 합니다.
세운 4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은 예장동 시계골목입니다. 수많은 아날로그시계를 수리해주는 곳입니다. 요즘은 시계 차는 사람이 거의 없고 있어도 스마트 시계를 주로 차로 기계식 아날로그시계는 고가의 시계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계식 시계나 아날로그시계를 사용하는 분들이 많고 그분들이 시계 고장 나면 찾는 곳이 예장동입니다.
SH서울 주택도시공사가 곳곳에 경고문을 붙여 놓았습니다.
아쉽긴 한데 도로 개선도 없고 좁고 누추한 풍경이 사라지는 점은 좋긴 하네요. 다만 이전부터 서울시가 도로개선을 해주면 좋은데 항상 이랬어요.
이런데가 노포인데요. 사라지거나 당분간 못 보거나 주변으로 이전하겠네요.
서울시가 대체영업장을 마련한다고 말을 했는데 100% 해주진 않았겠죠.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요. 그리고 노점상 문제도 있어요. 노점상은 점포가 없는 리어카에서 장사하는 분들인데 이분들은 세금 안 내는 분들이라서 국가나 지자체가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노점 문제는 영원한 숙제 같네요.
11월부터 철거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영업하는 분들도 꽤 보였습니다. 무단점유자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곳으로 흩어져 버리면 찾아오던 손님도 줄어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몇 년 후에 큰 건물이 들어서고 분위기가 바뀌게 되겠지만 점점 종로가 강남화 되고 있네요. 을지로는 허름한 분위기가 다른 서울 지역에서 느낄 수 없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힙지로라고 하잖아요. 그냥처럼 복사 붙이기 같은 건물들만 만들어서 콘크리트 블록 쌓기 놀이에 열중하는 종로구, 중구, 서울시 콜라보가 과연 지역 살리기처럼 보이지는 않네요. 부분 부분 개선하면서 이곳만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그냥 삭 밀어 버리네요.
그러면서 세운상가 건물은 뭘 그리 애지중지 한다고 이렇게 공중보행로를 만들어서 보호하고요.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쪽은 새 건물 짓고 한쪽은 옛 건물 보존하자고 하면서 공중 보행로 놓고. 어느 장단인지 모르겠네요. 오세훈 현 시장은 개발 지상주의자이니 을지로 일대 개발은 더 빨라질 겁니다. 10년 후에 을지로가 아닌 또 하나의 작은 강남거리가 생기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