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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종교와 사이비에 대한 깊은 질문을 하는 넷플 드라마 지옥

by 썬도그 2021.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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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로 기억되는데 학교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기에 받아서 펴봤습니다. 끔찍했습니다. 지옥에서 사람들이 혀를 뽑히고 뜨거운 용광로에서 죽어가면서 고통을 호소합니다. 잔혹한 그 그림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뒤로 돌려보니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십자가를 밟고 건너서 천국으로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리고 OO 교회가 적혀 있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옥 가기 싫어서 어린 시절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기억은 분노가 되었고 제가 종교 특히 개신교는 절대 믿지 않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이 이야기를 왜 꺼내냐면 오늘 오픈한 넷플 드라마 '지옥'은 종교와 사이비에 대한 진지하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 월드와 결이 다른 영화 부산행이 방해물이 되다

 본격적인 드라마 '지옥'이야기를 하기 전에 연상호 감독 이야기부터 좀 해야겠습니다. 연상호 감독 영화를 참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특히 연상호 감독의 초기 애니들을 아주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연상호 감독의 초기 애니들인 '돼지의 왕'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애니들은 블링블링 소재와 작화만 보다가 투박한 작화에 더 살벌하고 충격적이지만 우리 삶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모습에 단번에 팬이 되었습니다.

한국 애니계의 슈퍼스타가 된 연상호 감독이 '서울역'이라는 좀비 애니를 만든다는 소리에 무척 큰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실사 영화 '부산행'을 찍는다고 해서 의아해했죠. 애니 감독이 실사 영화를? 그런데 부산행이 1150만 명이라는 초대박을 냅니다. 단숨에 한국을 대표하는 흥행 감독 자리에 우뚝 섰습니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 가장 이질적인 영화가 '부산행'이자 가장 연상호 감독 색채가 옅은 영화가 '부산행'입니다. 흥미로운 건 애니 '서울역' 투자를 받기 위해서 1+1으로 연출한 영화가 '부산행'인데 이 '부산행'이 대박이 납니다. 

연상호 감독은 사회비판적인 고발 영화들이 대부분이고 이 시선이 비린내가 날 정도로 날이 서 있고 날카롭습니다. 이 날카로움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깊게 파고 들고 비판할 수 있는 감독들이 많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감독이 봉준호 감독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상호 감독도 잘합니다. 다만 세련미는 좀 많이 떨어지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상호 감독을 '부산행'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의 스타일과 가장 다른 영화가 '부산행'입니다. 그래서 부산행2인 '반도'가 나올 때도 앞으로 이런 영화 안 만들면 안 될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저에게 있어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과 다들 욕하기 바쁜 '염력' 같은 영화들이 연상호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넷플 6부작 드라마 '지옥'은 다시 초기 연상호 감독의 감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고발한 드라마 '지옥'

드라마 지옥의 원작은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 '지옥'입니다. 이 '지옥'은 연상호 감독이 스토리를 쓰고 작화는 사실적 묘사를 잘 하는 최규석 만화가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씨앗은 연상호 감독의 2002년에 만든 11분짜리 단편영화가 씨앗이 아닐까 하네요. 

드라마 '지옥'의 예고편에 보면 3명의 괴물이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만 보고 이 드라마 '지옥'을 또 하나의 '부산행'이라고 보신다면 무척 큰 오해입니다. 이 드라마 '지옥'은 액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액션 영화가 아닌 종교와 사이비에 대한 깊은 질문을 하는 사회비판적인 드라마입니다. 따라서 괴수물이나 액션 영화로 오해를 하고 본다면 이 드라마는 분노 유발을 하는 드라마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애니 '사이비'를 재미있게 보고 '돼지의 왕'을 보고 연상호 월드에 빠진 분들에게는 추천합니다. 

이야기는 꽤 센세이션합니다. 총 6부작인데 1부 초반부터 달립니다. 예고편에 나온 연탄가루 뒤집어쓴듯한 근육맨 3마리가 튀어나오더니 사람을 죽도록 패고 태워 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목격함을 넘어서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동영상 사이트에 올립니다.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은 이게 뭔가 당혹스러워합니다. 이 설명 불가능한 일을 설명하는 자가 있었으니 새진리교 의장 정진수(유아인 분)입니다. 정진수 의장은 괴물이 나와서 태워 죽이는 건 지옥의 심판이고 지옥의 심판을 받는 사람은 죽기 전에 유령 같은 것이 나와서 이름을 호명하며 죽는 날과 시간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아무한테나 나오는 것은 아니고 죽을 죄를 지은 사람 앞에서만 유령이 죽음의 고지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죄가 없는 아기나 아이들은 고지를 받지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럼에도 정진수 의장을 따르는 분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설명이 되어지지 않은 현상이 분명히 일어났지만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상황에서 두 아이가 있는 미혼모에게 죽음의 고지가 도착합니다. 이에 정진수 의장은 30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고지가 시연되는 걸 생중계를 요청합니다. 이에 두 아이들을 위해서 생중계를 허락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고지의 시간에 맞춰서 괴물이 다시 나오고 미혼모를 죽입니다. 이 과정은 지상파 방송국에서도 생중계가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정진수 의장의 새진리교를 믿는 신자가 크게 늘어서 인류의 반이 새진리교의 신자가 됩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새진리교는 경찰까지 굽신거리게 하는 강력한 힘이자 법이자 살아 있는 심판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 새진리교를 따르는 홍위병 같은 폭력 집단 '화살촉'도 자생적으로 만들어져서 새진리교의 호위무사가 됩니다. 물론 새진리교는 폭력단체 같은 '화살촉'과 거리를 두죠. 새진리교는 죄지으면 고지를 받게 된다면서 신의 뜻대로 살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 고지 시연 사태 이후 범죄율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다운 세상이 아닙니다. 공포 정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스스로 착하지고 싶어서 착해지는 것이 아닌 지옥이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착하게 사는 모습이죠. 마치 제가 어린 시절 교회를 간 그 모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가 없다면 세상 살 가치가 있을까요? 신이 자신의 정의대로 심판을 한다면 그건 그냥 주어진 삶을 따르는 설계된 삶과 다를 것이 없고 이런 삶은 만들어진 삶이지 만들어가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드라마 '지옥'은 이 물음을 독특한 설정으로 물어보고 있습니다. 

사이비와 사기꾼의 공통점

살아보면 다들 알지만 세상은 설명되어지지 않는 현상도 참 많고 설명할 수 없는 삶도 참 많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음주운전 차량에 갑자기 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 여전히 떵떵거리고 살고 있고 죄책감도 없고 돈이 많아서 지 세상처럼 삽니다. 

이런 허술한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면 그건 신이 없다는 강력한 방증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고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세상이 원래 그렇다. 설명되지 않고 선과 악에 따라서 바로 심판하지 않는 것이 세상이라고 말하는 종교인은 믿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신뢰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명되어지지 않은 것도 설명하고 설명되는 것도 제멋대로 해석해서 자기 유리하게 설명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누구냐? 바로 사기꾼들입니다. 사기꾼들이 왜 말을 잘하겠어요. 모든 것을 세치 혀로 설명합니다. 너무 잘 설명하면 그건 사기꾼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사기꾼이 종교인으로 위장하면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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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진리교는 고지라는 현상과 심판의 현상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설명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어서 새진리교를 믿고 따릅니다.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순서입니다. 

이 사이비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2013년 개봉한 연상호 가독의 '사이비'입니다. '지옥'과 '사이비'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소재와 주제가 비슷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현혹해서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세상을 지배하는 지를 보여주죠. 다만 '지옥'이 좀 더 판타지적인 요소와 스토리 적인 재미가 더 있습니다. 

공포을 이용하는 종교 장사치들

좋은 종교는 공포가 가득한 세상을 항해하는 항해사가 되어줍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은총을 내리죠. 그 온화함과 포근함에 종교라는 새로운 세상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종교인은 두려움보다는 인자함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나쁜 종교는 공포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겁박합니다. 자신들을 믿지 않으면 지옥을 간다고 협박을 합니다. 드라마 '지옥'은 공포로 세상을 지배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을 보여줍니다. 

이는 특히 한국사회에서 사이비 종교가 많은 이유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서 자신의 재산과 영혼을 탕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드라마 '지옥'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내 주변과 나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비록 이 드라마가 액션 영화, 괴수 영화나 SF 영화가 아니라서 실망하실 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왜 우리들이 나쁜 종교에 빠지고 왜 그런 종교들이 생겨나고 구별하지 못하는지를 매우 강한 비유로 잘 보여줍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전체적인 큰 스토리는 좋으나 세부적인 스토리에 대한 아쉬움과 연출이 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놀라운 CG는 꽤 질 좋은 드라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는 충분했습니다. 

호오가 강한 드라마라서 액션을 기대한 분들이라면 강력 비추천합니다. 액션은 있지만 액션은 액세서리입니다. 반대로 사회비판적인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합니다. 한국 종교를 넘어서 전 세계 사이비 종교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 기생하게 되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주는 좋은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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