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살인 사건이 있었지만 지금 살아 있는 분들은 대부분 이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연쇄 살인 사건으로 꼽을 겁니다. 이 유영철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2004년 당시가 떠오릅니다. 친구가 불러서 친구 동네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다가 뉴스에서 유영철이 잡혔다는 뉴스에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고 한참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수 많은 방송에서 유영철 사건을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영화 <추격자>가 이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살인 피해자의 수도 엄청나게 많고 그 범행 행위도 너무나도 잔혹해서 아직도 유영철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경찰이었던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못 들어 봤습니다. 이 사건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를 당시 경찰이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넷플릭스 다큐가 <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입니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는 한 발 더 깊게 들어갑니다. 당시 촬영된 영상과 자료화면과 사건 현장의 사진까지 보여주는 등 사건의 실체를 보다 깊숙이 보여줍니다. 전 이 다큐를 한국 감독이 만든 줄 알았습니다.
영상이 꽤 드라마틱합니다. 서울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브리지 장면이나 전체적인 연출이 무척 세련되어서 한국에도 이런 다큐 감독이 있나 했는데 아쉽게도 영국 출신 다큐 감독인 '롭 식스미스'가 연출했네요. 영국 감독이 한국의 사건을 다큐로 만드는 것이 좀 신기합니다만 제작자가 '존 최'라는 분이네요.
<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는 잔혹한 사건 현장을 촬영한 사진들이 자주 나오니 감안하셔야 합니다.
돌아보면 야만의 시대의 끝이었뎐 2000년대 초
K팝, K드라마, K영화, 세계경제대국 10위라는 거의 선진국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2021년의 한국입니다. 항상 자학이 특기였던 나라가 이제는 국뽕이 너무 넘쳐서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드높습니다. 이는 한국인들만 추켜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에 더 열광합니다. 이미 우리는 선진국이고 많은 분야가 선진국에 근접하거나 이미 선진국입니다. 특히 한국의 민도는 이미 선진국입니다.
그러나 2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짐승의 시대에 살았습니다. 이성과 상식이 지배하던 시대가 아닌 뒷돈과 편법과 비이성적인 행동이 만연한 사회였습니다. 대표적인 시스템 중 하나가 경찰입니다. <살인의 추억>이 주먹구구식 무식하고 무능한 한국 경찰 시스템을 고발한 영화지만 그 무능함이 80년대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집니다. 지금의 한국 경찰을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지만 최소한 어떤 사건이 터지면 거의 다 해결합니다. 놀랍죠. 이게 CCTV의 힘이라고도 하고 그게 큰 도움을 주긴 했지만 한국의 CSI나 프로파일러 들의 능력은 경찰을 혐오하는 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을 혐오하는 것도 경찰 자체의 혐오보다는 정치 경찰에 대한 혐오가 크죠.
2002년 한일월드컵의 광희를 넘어선 한국에게 2003년 2004년은 무서움으로 떨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천만 인구의 서울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터집니다. 그것도 1개가 아닌 2개가 동시에 터지는 무시무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2명은 바로 유영철과 정남규입니다.
어떻게 두 연쇄살인마가 동시에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이 보기드문 현상에 일조를 한 것은 경찰이기도 하죠. 못 잡으니까 두 살인마들이 서울을 활개 치고 다녔고 많은 여론의 비판 속에서도 잡지 못합니다. 특히 정남규 같은 경우는 경찰이 잡은 것이 아닌 피해자 가족이 잡았습니다. 유영철 사건은 경찰이 잡았지만 경찰의 정보원인 경찰 출신 집창촌 포주의 신고로 잡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는 경찰의 자기 반성문 같은 다큐입니다. 정말 자신들이 무능함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고 거북스러운 내용이라서 인터뷰를 안 할 줄 알았지만 당당하게 인터뷰를 했고 자신들의 당시 문제와 무능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당시 유영철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나 경찰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반성하는 용기도 쉬운 용기가 아니니까요.
사건의 시작은 2003년 9월 신사동 노부부 사건이 터집니다. 이후 종로구 구기동 사건이 터집니다. 둘 다 집안에 들어와서 둔기로 머리를 쳐서 죽인 사건입니다. 당시 경찰은 경찰서 간의 업무 협조도 되지 않았고 사건이 나도 쉬쉬하다가 용의자를 잡을 때 사건을 세상에 알립니다. 그리고 승진을 합니다. 전형적인 실적주의 행동입니다. 이렇게 경찰끼리의 업무 협조가 안 되어서 두 사건을 따로 수사하다가 3번째 사건인 삼성동 사건이 터지자 연쇄 살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족적 말고 아무런 단서도 없어서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넘어갑니다.
경찰이 하는 일이라곤 수상한 사람을 보면 검문검사하고 자동차 세워서 트렁크 열어보기 등등을 했지만 결국 잡지 못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당시 경찰들도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이라는 소리로 당시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인정합니다. 물론 체계적인 수사가 필요 없던 시기이기도 했죠. 대부분의 강력 범죄는 면식범의 소행이었으니까요. 그러다 감을 잡을 수 없는 행동과 잔혹한 행동과 경찰을 가지고 노는 듯한 살인마가 등장하니 갈팡질팡합니다.
경찰만 이런게 아녔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 막무가내가 기본 정신인 사람들과 조직들이 많았습니다. 하면 된다 식으로 정신력만 강조했고 축구도 투혼이라는 단어로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뭐든 해결한다는 식이었죠. 지금은 이런 소리하면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게 되죠. 그러다 투혼만 가지고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당황하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
유영철은 고급 주택가에서 9명을 죽입니다. 그리고 한 동안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잠적합니다. 이후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 당시 2003년 이 연쇄 살인 사건은 많은 언론과 여론의 비판이 있었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04년 신촌 일대에서 성 관련 업종에서 근무하는 여자들이 사라진다는 첩보가 들어옵니다. 이 여성 분들은 실종이 되어도 사라져도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업주 분들도 도망갔다고 생각하거나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을 알아도 불법 업소라서 신고를 못합니다.
<레인코트 킬러 : 유영철을 추격하다>가 다른 다큐가 다른 점은 이 지점입니다. 다른 다큐에서는 이 성관련 업종에서 근무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다루지 않고 안타까운 사건의 희생자라고만 생각하죠. 그러나 이 다큐는 한 발 더 들어갑니다. 경찰과 포주 사이의 끈끈한 관계의 이유를 설명하고 그 관계를 끊으려는 노력으로 유명했던 김강자 경찰서장이 나옵니다. 제가 경찰서장 아는 이름이라곤 지금까지 이 분 밖에 없습니다.
종암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김강자 여성 경찰서장은 윤락업소를 수시로 방문하고 경찰과 포주의 관계 및 여기서 근무하는 여성 분들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던 분입니다. 당시 경찰과 윤락 업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피해자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고 피해자 구제 단체들이 도와주는 요즘 모습까지 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참 무식했던 시절, 야만의 시절이었습니다. 주먹구구가 지배했던 시절이었을까요?
그러다 보도방 사장이 실종된 여성의 전화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보도방 사장은 경찰의 정보원 역할도 많이 했는데 아는 경찰에 전화를 합니다. 그렇게 유영철을 새벽 길거리에서 난투 끝에 잡습니다.
반성하는 경찰, 발전하는 경찰 수사
어떻게 보면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는 경찰에 관한 다큐입니다. 한국 경찰 역사에서 가장 큰 흑역사 사건 중 하나입니다. 1위는 누가 뭐래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이죠. 최근에 진범이 잡혔는데 그 과정에서 애먼 사람이 옥살이를 했습니다. 정말 무식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식은 2004년까지 이어집니다.
많은 경찰이 나옵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도 나오고 유영철의 변호사도 나오고 CSI 과학수사관도 나오고 프로파일러도 나옵니다. 모든 경찰이 반성을 합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당시의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그러나 그 태도가 좀 다른 분이 있긴 합니다. 이분은 유영철을 잡았다는 업적에 만족해하며 이문동 엄마라고 외치는 피해가 가족을 경찰이 발길질하는 모습이 전국에 방송 타는 바람에 승진 앞에서 승진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살짝 내비칩니다.
유영철을 잡은 건 경찰이 맞지만 따지고 보면 경찰이 과학 수사로 잡아낸 것이 아닌 보도방 사장이 의심을 해서 잡은 것으로 어부지리로 잡았다고 봐야 합니다. 게다가 경찰은 이 유영철은 잡았다고 놓칩니다. 다음 날 천운인지 영등포역에서 걸어오던 유영철을 잡았지만 이때 못 잡았으면 수백 명 이상의 경찰은 옷을 벗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이 원래 그렇게 돌아가던 시절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는 모습 속에서 왜 한국 경찰이 발전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 경찰 수사 실력 아주 좋아요. 예전처럼 주먹구구식 수사 안 합니다. 프로파일러와 CSI 과학수사대와 경찰 네트워크를 모두 활용합니다.
경찰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뀐 계기가 유영철, 정남규 사건 이후라고 하죠.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은 CSI 담당을 했던 경찰분이셨어요. 이분은 참혹한 현장을 기록하고 단서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찾습니다. 유영철이 묻은 여자들의 부패한 시체를 펼치고 지문이 거의 남지 않는 손가락에서 지문을 따기 위해서 수백 차례 시도를 하면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듯한 말을 중얼거렸던 모습 속에서 가슴 뭉클함이 끌어오르네요. 저런 경찰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고 범죄자들이 범죄를 꿈꾸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무능한 경찰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걸을 알면서도 인터뷰를 한 용기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비록 그 당시 무능의 연속으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높은 경찰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반성하고 그 반성 속에서 발전하는 경찰은 응원하고 싶게 만드네요.
그나저나 이 사건을 외국 다큐 감독이 담았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래서 그런지 기존의 유영철 관련 방송이 담지 못하는 여러 시선들이 느껴지네요. 괜찮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다만 잔혹함이 있지만 당시 무능한 경찰 시스템. 주먹구구라는 몰상식과 야만이 공존하던 시대가 낳은 유영철이라는 괴물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좋은 다큐입니다.
그리고 모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참 레인코트 킬러라는 이유는 유영철이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노란 비닐 우의를 걸칠 것을 보고 지은 제목같네요. 우리는 저게 레인코트인지 우의인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외국인 다큐 감독 시선에서는 신기했나 봅니다.
별점 : ★★★☆
40자 평 : 유영철 사건을 통해서 돌아본 2천년 대 초반의 한국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