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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실연의 고통을 가진 분들을 모시는 카페 독산 본문

여행기/서울여행

실연의 고통을 가진 분들을 모시는 카페 독산

썬도그 2021. 9. 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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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카페들은 인테리어가 중요합니다. 당연히 커피 맛도 중요한데 커피맛을 제대로 알고 느끼고 찾는 분들은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인테리어입니다. 그래서 카페 중에 인테리어 맛집들이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동네에 원두커피 파는 카페가 거의 없었는데 서울 변두리인 금천구 독산동에도 카페가 엄청 많아졌습니다.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많은 카페 중에 가끔 가는 곳이 '카페 독산'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산동에 있는 카페입니다. 찾기는 편합니다. 1호선 독산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왼쪽 1번 마을버스 종점 바로 뒤에 있는 건물입니다. 여기가 독특한 점은 2층과 4층에 예술의 시간이라는 갤러리가 있습니다. 

예술의 시간은 영일 프레시젼 기숙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입니다. 영일 프레시전은 강소기업으로 반도체 고방열 금속재료와 고방열 재료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왜 CPU 같은 칩이 온도가 올라가면 그 뒤에 방열판을 달아서 공냉 시키는데 그 방열판과 방열재료를 만드는 회사네요. 요즘 반도체 산업이 활황인데 이 어려운 시기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 같네요. 

아니 서울에 공장이 있어? 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네 있습니다.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에는 여전히 많은 작은 공장들이 있어요. 물론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많이 떠나고 있고 떠나는 땅마다 오피스텔이 엄청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 예술의 시간이라는 갤러리는 영일프레시전 사장의 사모님과 따님이 운영하는 갤러리와 카페라고 하네요. 그래서 영일 프레시전 건물 하나를 개조했군요. 여길 안 지가 1년 되는데 처음에는 뚱딴지같았습니다. 아니 공장 지대에 무슨 갤러리?라고 했는데 안에 들어가고 나서 성수동 스멜이 가득 났습니다. 성수동에 가면 갤러리 겸 카페도 많고 인테리어 맛집들이 많잖아요. 독산동도 그렇게 변할지 모르겠네요. 

9월 4일까지 <낙관주의자들>이라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코시국에 가장 고통스러운 분들이 자영업자와 함께 예술인입니다. 공연을 제대로 할 수도 없고 예술활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안 좋습니다. 그럼에도 코시국을 낙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감상했습니다. 전시 리뷰는 따로 하겠습니다. 

4층은 채광으 이용해서 밝은 전시공간을 제공합니다. 갤러리 가면 항상 우중충한 조명 아래서 작품들을 보다 보면 생기가 없습니다. 이렇게 열린 공간, 햇빛 채광 아래서 사진과 조형물을 보니 기분이 덩덜아 좋아지네요. 

처음 왔을 때는 너무 조용하고 사람도 없어서 장사가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난 주말에 가니 테이블마다 사람이 많았습니다. 워낙 공간이 넓고 테이블이 많지 않아서 자동으로 거리두기가 되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테이블이 꽉 찼어요. 그새 입소문이 확 났네요. 식물들이 많아서 좋아요. 바퀴 달린 화분들이 너무 보기 좋네요. 

독산동에 이런 카페가 있다니 좀 신기해요. 뭐 카페 주인이 건물주라서 운영이 가능하지 임대료 내고 운영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봐요. 카페가 있지만 꼭 이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2층 4층 전시회만 봐도 됩니다. 하지만 워낙 커피 가격도 싸고 잠시 쉬었다 가기 좋아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시켰습니다. 

아메리카노 가격이 3,000원으로 무척 착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 타타닥타타닥 소리가 들립니다. 공사를 하나? 다시 음악을 듣는데 또 들립니다. 뭐지 이 소리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나는 곳으로 가봤습니다. 

벽에 노란 종이 하얀 종이가 있네요. 

그리고 타자기를 발견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전자식 타자기네요. 이거 하나 있는 집이 참 부러웠는데요. 삼성전자 제품이네요. 삼성전자는 정말 안 만드는 제품이 없었어요. 하기야 전기 들어가면 가전회사가 만들 수 있죠. 

타자기로 찍어낸 글씨들을 봤습니다. 요즘은 타자를 못 치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서 타자들을 잘 치네요. 다만 컴퓨터 키보드와 키감이 달라서 처음에는 당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백스페이스바도 없어요.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글이 보이네요. 

같이 보러 간 영화 속의 대사 "그 평행세계에서 우리는 아마 함께겠지"를 기억하냐고 묻네요. 이 영화 기억나요. 커징텅과 션쟈이의 대사죠. 

대만 영화 중에 청춘 영화가 참 많습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과잉 감정이라서 찐득거리는 영화가 많고 이 영화도 찐득거림이 좀 있지만 그럼에도 명대사도 많고 예쁜 장면도 참 많아요. 천옌시의 예쁜 얼굴과 가진동의 멋짐도 기억나고요. 

커징텅이 대만에 지진이 일어나자 헤어진 전 연인인 션쟈이에게 묻습니다. 평행 세계에 대해서 묻습니다. 션쟈이는 날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커징턴은 그 시절 널 좋아했던 나를 좋아한다면 평행 세계에서 우리는 함께 할 것이라 말합니다. 

다음 생애는 다른 성별로 태어나서 결혼하자는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동성애를 이해 못했지만 나이들수록 사랑 못하는 것이 문제지 사랑해서 문제 되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그게 금기시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 금기는 우리의 너무 속 좁은 판단으로 느껴져요. 깊은 실연의 아픔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동시에 최근에 본 영화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영호 <윤희에게>도 생각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이네요. 

정신을 차리고 이게 뭐지? 여기는 뭐하는 공간인가 살펴봤습니다. 

박혜수 설문 에세이가 보이네요. 이 공간은 박혜수 작가가 만든 공간입니다. 카페 독산과 박혜수 작가의 콜라보네요. 박혜수 작가? 혹시나 하고 제 블로그를 검색해 봤습니다. 

2019년 가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한 올해의 작가상 후보 중에 박혜수 작가가 있었어요. 박혜수 작가는 관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설문지를 제공하고 그 설문지를 작성하면 그걸 표현하는 작가에요. 세상을 시각화한다고 할까요? 한국인들의 마음을 설문지를 통해서 텍스트로 적어내면 그걸 시각화합니다. 

이렇게도 예술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좀 충격을 받았어요. 하기야 세상을 담는 그릇이 예술이고 그 예술이 꼭 정형화 될 필요는 없잖아요.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관객과 작가가 함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참 좋았어요. 

그랬군요. 그랬어요. 맞아요. 박혜수 작가에요. 카페 독산에서 실연자들의 사연을 모집하고 이걸 모아서 실연 에세이로 만드려고 하는 프로젝트였네요.

https://www.tumblbug.com/soobox

 

<헤어질 때 하는 말 > 설치예술가 박혜수 설문 에세이

<헤어질 때 하는 말>- 박혜수 설문 에세이, 관객이 함께 만드는 우리들의 실연 이야기

www.tumblbug.com

텀블벅에서 후원도 받고 있네요. 글은 그냥 실연 스토리를 타자기로 적으면 됩니다. 이 중에서 '실연 이야기'와 '헤어질 때 하는 말'의 2개의 이야기 기둥을 제시했어요.

음.. 내가 헤어질 때 했던 말을 떠올려봤어요. 사실 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대칭이 아니에요. 만남은 대칭이죠. 서로 첫 만남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만남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확실하게 우리 헤어져!라고 헤어진 만남도 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단 연인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다르게 헤어짐이 확실해야 해요. 그래야 다음 인연을 찾던가 아파하던가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헤어질 때 그 만남이 마지막인 걸 알고 서로 만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만 인사를 평생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말 평생 잊히지 않는 영화 대사 같은 헤이지는 말을 할 것 같지만 대부분은 그냥 무덤덤하게 헤어져요. 보석 같은 말을 했다고 해도 10년 지나도 기억하는 사람은 그 말을 했던 사람도 들었던 사람도 다 잊을 거예요. 휘발성이 높은 감정을 화석화시키는 것이 텍스트예요. 

텍스트가 좋은 건 또 있어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로는 최고입니다. 동시간대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텍스트를 적어 놓으면 1분 후부터 영원에 가까운 시간까지 다른 사람이 보고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잖아요. 박혜수 작가는 이 실연 스토리를 수집하고 있네요. 참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하나의 감정을 주제로 한 카페를 운영해도 재미있게다는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기쁨의 카페에서는 무조건 웃어야 해요. 웃음이 가득하고 하나의 감정만 가득 모아서 전시해도 재미있을 듯하네요. 슬픔의 카페도 있어도 좋을 듯하고요. 이 안대 스토리도 재미있어요. 실연 스토리를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첫사랑은 안대를 안 하면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서 안대를 선물했는데 부담스럽다고 거부했습니다. 짝사랑도 사랑이고 많은 사람들의 첫사랑이 짝사랑이기도 하네요. 전달되지 못한 선물을 기증했네요. 

내 사랑이 벽에 부딪혀서 깨지면 참 아프죠. 정말 아파요. 저도 참 오래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바로 환승 사랑을 하더라고요. 그때 충격은 지금도 몸에 각인되어 있어요. 사람마다 감정도 다르고 깊이도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르구나를 처음 알았죠. 

짝사랑은 그나마 덜하지 사랑하다 헤어지면 그 엄청난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픕니다. 특히 남자들이 첫사랑을 못 있는 것이 소유욕이 강해서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커피를 시키면서 메뉴판을 유심히 봤습니다. 이건 뭐지? 박혜수 X 카페 독산 '실연극복 코스메뉴'네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5개가 있는데 커피와 브라우니, 아이스크림 등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격들도 무척 착합니다. 이 5개의 단어는 우리가 겪는 실연의 5단계라고 하네요. 

처음에는 아닐거야라고 부정하다가 아니 왜?를 넘어서 나를 감히? 분노를 하고 헤어짐의 이유를 알게 되고 현실 자각을 하는 현타가 옵니다. 이때 협상을 하게 되고 그다음 난 못난 인간이야와 함께 상실감에 우울하게 됩니다. 그리고 떠난 사람은 떠난 거야 돌아오지 않아라고 이별을 수용합니다. 

수용은 품절이네요.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죠. 뭐 평생 수용하지 못해서 첫사랑이나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많은데요. 

이 공간은 아트디램(Art D-ram) <실연 활용법>으로 박혜수 작가가 2013년부터 수집해 온 500편의 실연 사연과 100개의 '실연 물품'을 사용해 유/무형의 2차 창작물을 연구하고 예술 언어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담은 공간이에요. 

예쁘고 좋은 생각을 가진 작가와 카페가 만나서 실연 스토리를 담고 있네요. 실연하면 그 이야기를 게워내면 고통이 덜해요. 그래서 실연당하고 친구 불러서 술 먹으면서 엉엉 울면 개운하잖아요. 그럼에도 이렇게 세상에 기록으로 남기면 그 고통이나 생각이나 이 순간의 느낌은 영원이 남을 겁니다. 그게 책이 되고 예술품이 된다면 더 오래 영원도록 기록되고 기억되겠죠. 

오랜만에 찾은 카페 독산은 문화의 향기가 더 진해졌습니다. 주변에 있는 공장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청년 주택과 오피스텔, 아파트가 많아지니 이런 공간이 점점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네요. 

예술의 시간에서 전시작품도 보고 2층에서 실연 이야기도 들어보고 따뜻한 커피 한잔하기 딱 좋은  카페 독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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