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마니아는 아니지만 고궁이 주는 정취와 편안함과 포근함과 정갈함 때문에 자주 들립니다. 사진 찍기도 좋고 사람 구경하기도 좋고 걷기 좋고 둘러보기 좋은 곳이 고궁이죠. 특히나 현대화의 최첨단을 달리는 서울에서 역사를 느낄 수 있는 큰 공간 중 유일한 곳이 종로구 일대에 있는 고궁입니다.
이 고궁은 보통 4대 고궁이라고 하지만 좀 더 크게 보면 5대 고궁입니다. 이 5대 고궁 이름을 다 아는 분들이라면 궁에 대한 관심이 많은 분입니다. 5대 고궁은 규모로 나열하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그리고 경희궁입니다. 이 중에서 경희궁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름은 참 많이 들어 봤죠.
바로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경희궁 근처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더 유명합니다. 이름을 보면 근처에 경희궁이 있어야 하는데 둘러보면 궁 같은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있습니다.
경희궁은 돈화문 박물관 마을과 서울역사박물관 사이에 있습니다. 최근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가보니 풍성해졌더라고요
학교 앞 분식집이 생겨서 떡볶이와 분식을 팔더라고요. 점점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네요. 참고로 이 경희궁 양쪽에 있는 돈화문 박물관 마을과 서울역사박물관은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은 곳입니다.
경희궁을 우리가 잘 모르는 이유
사적 271호인 경희궁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궁입니다. 광해군 시절인 1617년에 시작해서 1623년에 완공된 궁입니다.
경희궁의 정문은 흥화문입니다. 이 문은 원래 여기 있던 문이 아닌 덕수궁 돌담길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구세군 빌딩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걸 보더라도 경희궁이 어머어마하게 규모가 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덕수궁도 경운궁 시절에는 더 컸죠. 창덕궁, 창경궁이 붙어 있는 것처럼 경운궁(현 덕수궁)과 경희궁도 붙어 있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어머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다 사라졌습니다. 다 사라졌어요. 누가 그랬냐? 일본 제국이 경희궁 전각을 다 뜯어다가 서울 곳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흥화문도 동국대 옆에 있는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으로 여기로 옮겨 놓았습니다. 일제가 고궁을 지들 마음대로 파괴하고 옮겨 놓았네요. 창경궁도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으로 만들었잖아요. 그나마 창경궁은 형태라도 있지 경희궁은 전각의 90%가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이 정문은 이렇게 옮겨라도 놓았네요.
전각들도 많지 않고 있는 전각들도 복원한 전각들이고 게다가 외진 곳에 있어서 찾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름 고궁 좋아하는 저도 여기를 한 10년 만에 다시 왔네요. 볼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죠. 고궁들이 팬데믹이지만 여전히 관람객들이 많은데 여기는 정말 한적해서 좋습니다.
흥화문을 지나면 왼쪽에 거대한 공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가끔 행사도 하기도 했는데 평상시에는 그냥 공터입니다. 여기는 서울고등학교가 있던 곳이었다가 박정희 정부가 영등포의 동쪽인 강남을 개발했지만 사람들이 이주를 꺼려하자 강북의 유명한 사립 명문 학교들을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1980년 떠나게 됩니다. 이 당시 이전한 고등학교가 많죠. 대표적으로 경기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입니다.
그럼 이 공간을 뭔가로 좀 채우면 참 좋은데 그냥 이대로 두고 있네요. 여기가 대단한 역사적 중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전체적으로 보면 경희궁에는 놀리고 있는 땅들이 꽤 많습니다. 저 작은 동산 같은 공간도 뭐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참고로 저 동산 뒤에는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있습니다.
고궁이라고 하면 웅장한 돌담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다 뚫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 문을 지나면 고궁 같은 풍경이 나옵니다. 멀리서 봐도 새로 지은 건물 느낌이 가득 나네요. 다시 말하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는 전각은 거의 없습니다.
고궁이라고 하기엔 근린 공원 느낌이 많이 나네요.
귀여운 고양이들도 많고요.
이 경희궁은 언덕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계단이 꽤 높습니다.
야외 공간이지만 QR코드 찍으라고 하네요. 실내도 아니고 마스크 쓰고 다니면 되는데도 엄격하네요. 뭐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QR코드를 찍었습니다. 메인 정각인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입니다. 고궁에 가면 메인 전각이 한가운데 있고 신하들이 조회를 하는 품계석들이 있습니다. 궁궐의 전각 배치도 다 룰이 있습니다. 그리나 이름들은 조금씩 다릅니다.
이 숭정전은 원래 있던 전각은 아니고 새로 지은 전각입니다. 그렇다고 오리지널 숭정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동국대에 숭정전이 있습니다. 정문인 흥화문을 옮기면서 숭정전도 옮기려고 했으나 건물이 너무 낡아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동국대에 그대로 둡니다. 그리고 여기는 새로 지은 전각이 세워졌습니다.
동국대에 가면 정각원이라고 있는데 그게 바로 숭정전입니다. 이 공간에서 경종, 정조, 헌종의 세 임금이 즉위식을 했습니다.
5대 고궁 정전 중에 규모가 가장 작네요. 왼쪽 오른쪽 회랑의 거리가 짧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극 세트장 느낌도 듭니다. 실제로 여기서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꽤 한다고 하죠. 넷플릭스 킹덤도 여기서 촬영했습니다. 잠시 후에 소개할 서암에 세자가 숨어 있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킹덤은 정통 사극이 아니죠. 문화재청은 정통 사극이 아닌 퓨전 사극은 5대 고궁에서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데 요즘은 좀 느슨해 졌나 봅니다. 아무래도 사극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건 너무 티가 나요.
회랑을 통해서 걷다가
뒤를 보니 경희궁의 재미가 느껴지네요. 전각들이 다 사라지고 일부만 다시 돌아왔지만 규모도 작고 새로 지은 전각들이라서 역사적 의미가 없지만 여기서 보니 과거와 현재가 다 느껴지네요.
경희궁은 5대 고궁 중에 일제의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라서 마음이 아프네요. 인기도 없고요. 하지만 한옥이 주는 운치 특히 고궁 한옥의 운치를 조용히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숭정전입니다. 안에 임그이 올라가서 앉는 용상이 있네요. 이런 형식은 다른 고궁도 다 똑같아요.
경희궁의 흔적은 이게 전부라고 할 정도로 터가 있던 공간에서 발굴된 돌들만 있습니다. 이 숭정전도 원래는 동국대에 정각원으로 간 이유를 살펴보면 일본인 사찰에 숭정전을 팔았습니다. 누가 팔았냐! 일본 제국이 일본인 사찰에 팔았습니다.
요즘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데 우리가 무시하고 미개하다고 느끼고 멀리하는 몽골이 생각보다 뛰어난 융합 정책이 있는 나라였던 나라였더라고요. 다만 자신들과 싸우려고 하면 몰살을 할 정도로 살벌함이 있지만 일단 자신들과 손을 잡으면 형제라고 느낌을 넘어서 같은 국민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몽골이 세운 나라들에는 서양인과 동양인부터 기독교인, 이슬람인, 불교인들이 함께 잘 지냈습니다. 오로지 몽골의 나라를 위해서 뭉칠 정도였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졌지만 로마처럼 뛰어난 융화 정책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쿠빌라이 칸의 막내딸을 고려의 왕과 결혼시켰죠.
반면 일제는 억압과 무례함이 가득했죠. 그러니 한국인들이 계속 독립을 외쳤습니다. 보세요. 전각을 지들 마음대로 팔아버리고 옮겨 버리고 궁을 박살내 버렸네요. 저 돌들이 여기에 궁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네요. 선사시대 유물 발굴도 아니고요. 이러니 누가 일제를 좋아하겠어요. 대만이 일본 제국을 좋아한다는 것도 일본 제국보다 더 심한 인간들인 중공군에 밀려서 대만으로 들어온 장제스 세력이 일제보다 더 심한 식민 정책을 펼쳐서 상대적으로 일제가 더 나았고 그래서 지금도 일제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만 원주민들이 많다고 하죠.
경희궁의 전각들은 융복전, 집경당, 흥정당, 숭정전, 흥학문, 황학정이 있었는데 돌아온 건 정문인 흥화문 밖에 없네요.
융복전과 집경당은 사라졌습니다.
숭정전 뒤에는 자정전이 있습니다. 물론 이 건물도 새로 지은 것이죠. 경희궁의 편전으로 회의실로 사용했습니다.
이 경희궁은 그 흔적만 남고 소규모로 복원되었지만 27대 조선 왕 중에서 10대가 이 경희궁에서 보냈습니다. 전 생애를 보낸 왕은 헌종, 숙종이 있고 재위 기간 대부분을 경희궁에서 지낸 분은 영조가 있습니다. 즉위식을 치른 왕은 정조가 있습니다. 정조는 즉위식만 치르고 창덕궁에서 지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희궁의 규모는 지금의 대한축구협회, 성곡미술관, 구세군 회관 일대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 일부까지였습니다.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아파트도 살짝 걸릴 것 같네요. 서울시 교육청도 경희궁이었고요. 그래서 경희궁의 돌다리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있습니다.
경희궁의 보물은 서암입니다. 작은 고궁을 둘러보다 나가려고 했는데 혹시나 하고 왼쪽 맨 끝 부분에 가보니 놀라운 바위가 있네요.
여기가 서암입니다.
물이 졸졸졸 흐르는데 따라가보면
돌 사이에서 물이 졸졸졸 나옵니다. 바위샘입니다. 이 바위샘을 보고 광해군이 여기에 궁궐을 지었다고 하죠.
만지지 말라고 하네요.
그러나 고양이님은 왕의 물을 마시네요. 어 서암은 왕암으로 불렀습니다.
이 서암을 보고 여기에 궁궐을 지었다고 하지만 여기에 궁궐을 지은 이유는 이 서암 일대에 왕의 기운이 서려 있어서 이 땅에 궁을 지은 사람이 왕이 된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빤스런을 한 조선 왕실이 민심을 무시할 수 없었겠죠.
광해군은 이 서암 위치에 왕기를 누르기 위해서 궁궐을 짓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나중에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내동댕이 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이 살고 있었습니다. 즉 인조의 집이 여기 있었는데 이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궁궐을 짓습니다. 그리고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인조가 왕이 됩니다. 아이러니하죠. 궁궐 만들어서 인조에게 준 꼴이 되었네요.
조선의 개혁 군주였던 광해군. 영화 광해로 인해 백성을 사랑한 왕으로 아는 분들도 많은데 달리 군으로 불리겠습니까? 영화가 역사에 영향을 준 모습처럼 보이네요. 이런 인물이 또 있죠. 바로 내가 조선의 국모다!입니다. 이미연의 이 대사 한 마디로 조선말의 희생의 아이콘을 떠오릅니다. 그러나 민비가 좋은 인물은 아녔습니다. 흥선대원군이 폐위되자 강화도 조약을 맺고 일제를 끌어들인 것도 민비 친족들이고 임오군란도 그렇고 외척 세력들로 인해 국가를 혼란스럽게 했스습니다. 그런데 KBS 드라마로 인해 명성황후로 태어납니다.
그나마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공중파가 어그러 놓은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네요. 10년 전에 제가 명성황후가 아닌 민비라고 했다고 욕을 먹었다는 역사 해설가 분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소개했는데 제 블로그에도 많은 악플이 달리더라고요. 그러나 지금은 안 달려요. 딱 10년 만에 바뀌었네요.
일제가 파괴한 경희궁 지금은 일부 전각만 복원되어 있는 모습이 오히려 역사를 더 깊게 오래 들여다보게 하네요. 일본 제국이 왜 로마 제국이나 몽골 제국이 되지 못했는지도 여실히 느끼게 되네요.
반자이 돌격이라는 정신 승리 제국의 DNA는 현재의 자민당 정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이나 기업이나 단체나 모임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반성하고 발전하는 사람과 나라가 무서운데 지금 일본은 전혀 무섭지 않고 우습게 보입니다. 정신 승리국의 만행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