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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난해하지만 훌륭한 마무리를 보여준 에반게리온 다카포

by 썬도그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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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이 노래 가사만 들어도 흥분되었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90년대 후반 한국은 재페니메이션의 강습에 전국이 떠들썩했습니다. 90년대 초 '드래곤 볼', '북두의 권', '슬램덩크'라는 일본 망가의 공습으로 한국 만화계는 쑥대밭이 됩니다. 차원이 다른 스토리와 작화에 저를 포함한 당시 10대들은 일본 망가에 열광을 합니다. 

이 일본 망가의 정점을 찍은 애니메이션이 96년 경에 한국에 소개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입니다. 
쇼킹 그 자체였습니다. 어떻게 유기체 로봇이 나올 수가 될 수 있지?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 로봇은 강철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단박에 깨버리고 괴이한 외모와 성경을 바탕으로 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나 알면 알수록 푹 빠지게 하는 애니가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입니다. 이때만 해도 한국은 만화에서는 일본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느껴졌고 지금도 일본 만화들이 인기는 여전합니다. 다만 한국 만화들이 웹툰이라는 새로운 포맷을 통해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점이 좀 달라졌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TV 시리즈와 OVA와 함께 극장판 등등 다양한 형태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작화가 뛰어난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단연코 극장판입니다. 

에반게리온 세계관을 이해못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오타쿠 시리즈 

에반게리온은 다른 애니나 영화와 다른 점은 워낙 세계관이 깊고 넓고 난해해서 이 이야기를 오롯하게 다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부하면서 봐야 하는 애니로도 유명하죠. 이런 높은 진입 문턱 때문에 이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열광을 하지만 안 보는 사람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나마 2005년 제작된 TV 시리즈는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유머러스한 장면도 꽤 많았지만 극장판은 웃음을 싹 지운 성인용 버전 느낌입니다. 

TV 시리즈나 OVA 시리즈를 다 봐야 하지만 다 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그냥 극장판만 봐도 됩니다. 단, 영화 보고 유튜브에서 해설 영상이나 리뷰를 봐야 전체적인 그림이나 이해 못하는 부분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뭔 영화가 해석을 하고 공부를 해야 하냐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 '에반게리온' 시리즈가 그렇습니다. 마치 매운맛에 화가 나지만 동시에 또 생각이 나잖아요. 

2007년 개봉한 <에반게리온 : 서>와 2009년 개봉한 <에반게리온 : 파>를 개봉 당시 못 보고 영상자료원에서 봤습니다. 그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꽉 찬 영화관에 놀랐고 액션 장면에서 관객들이 소리 지르면서 보는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저도 이 서와 파를 보고 다시 입덕을 하게 되었고 

2013년 개봉한 <에반게리온 Q>를 신촌 메가박스에서 봤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에반게리온 시리즈는 문턱이 있다보니 소수 마니아들만 보는 영화로 당시에도 개봉관이 많지 않았습니다. <에반게리온 Q>는 상당히 난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 예습 안 한 대가를 크기 치렀습니다. 지금도 <에반게리온 Q>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고 낙하산 타고 내려온 의문의 여자 캐릭터와 카오루만 생각나네요. 

좀 더 쉽게 만들면 좋은데 좀 더 친절하면 좋은데 너무 폭주한 느낌이 들어서 솔직히 그림만 보다 나온 느낌이 들정도였습니다. 이후 복습을 좀 했지만 개봉한 지 8년이 넘어가서 잘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고 아마존 프라임에서 개봉한 <에반게리온 다카포>

2020년 개봉 예정이었던 새로운 에반게리온 극장판이자 시리즈의 마지막인 <에반게리온 다카포>가 코로나로 인해 개봉을 연기합니다. 그리고 2021년 3월 일본에서 개봉을 합니다. 드디어 25년 동안 사랑받았던 에반게리온이 마무리되네요. 당연히 한국도 곧 개봉하거나 넷플릭스로 직행할 줄 알았습니다. 이미 넷플릭스에는 TV 시리즈와 영화 시리즈가 올라왔고 넷플릭스와의 끈끈함을 믿었습니다만 놀랍게도 8월에 아마존 프라임에서 전 세계 개봉을 합니다. 

이 선택은 너무나도 잘못된 선택으로 보입니다. 얼마나 판권을 판매했는지는 모르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마존 프라임은 한국 팬들에게는 아쉬운 결정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관객이 적어도 1,2 상영관에서 상영을 해줬어야 합니다. 제가 에반게리온에 입덕 한 건 TV 시리즈가 아닌 극장판 서와 파였습니다. 그 서와 파를 보면서 뛰어난 액션 장면과 사운드에 매료되었습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보고 싶은 사람이 우물을 파야죠. 

그나마 다행인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무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 미 가입자는 7일간 무료 체험할 수 있으니 <에반게리온 다카포>만 보고 멤버십 해지를 하면 됩니다. 

한국에서는 <에반게리온 다카포>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목 뒤에 음표 중 하나인 되돌임표가 붙어 있어서 다카포라고 하는데 영문 제목은 EVANGELION: 3.0+1.01 THRICE UPON A TIME이네요. 

여전히 머리 아픈 스토리지만 이전보다 친절해진 <에반게리온 다카포>

여전히 예습을 안 하고 봤습니다. 어차피 첫 번은 그림만 봐도 되고 복습하고 다시 봐도 되니까요. 신지, 레이, 아스카가 붉은색으로 변한 거리를 지나서 제3의 마을에 도착합니다. 여기는 다른 곳과 다르게 L결계가 제거되어 있었습니다. L결계라는 말 자체부터 머리가 아프죠. 그냥 지구 전체가 붉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고 안티 L결계가 펼쳐진 몇 안 되는 마을에서 마지막 남은 인류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한 지적 때문인지 영화가 시작되면 지난 이야기를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깊고 넓고 복잡한 이야기를 단 몇 분 만에 압축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전과 다르게 친절함을 보여주는데 이는 영화 전체에서 보여줍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어떤 과정인지 설명하는 모습에 에반게리온이 이렇게 친절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워낙 복잡한 이야기 구조라서 다 보고 나서도 다 이해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 다 떠나서 선 굵은 서사가 있고 이 서사만 따라가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점은 좋네요. 

신지는 데미안 같았던 카오루가 눈 앞에서 끔찍하게 죽고 세상을 멸망시키는데 자신이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식물 상태가 됩니다.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매일 울기만 하는 밥도 안 먹습니다. 이런 신지를 여장부인 아스카는 윽박지르지만 신지는 활력이 사라져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죽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상태에 소년을 깨우는 장치로 활용되는 레이의 복제인간이 세상을 배우면서 다시 신지를 깨웁니다. 

신지에게 있어 레이는 엄마이자 연인이자 친구이자 세상을 이어주는 번역가 또는 접점 같은 존재입니다. 
친구들은 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지는 중학생 상태 그대로입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년 상태인 신지가 레이 복제 인간을 보고 다시 살아볼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망친 세상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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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어른이 되다

전체적인 세계는 저도 다 알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신지 아빠가 고통스러운 세상을 리셋하고 차이와 반목과 차별과 고통과 다툼과 질투와 시기가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인류보완계획'입니다. 반인반신이 되어서 세상을 토벌하겠다는 생각은 누가 많이 떠오릅니다. 바로 핑거스냅의 달인 타노스입니다. 여러모로 에반게리온과 어벤저스 이야기가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시 활기를 찾은 신지는 이전의 신지와 확 달라집니다. 세상을 피해서 도망치려고만 했던 히키꼬모리 같은 신지가 레이 복제 인간의 따뜻한 마음과 신지 그 자체가 고맙다는 말에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을 에반게리온에 태운 미사토 소령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악연이라면 악연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입니다. 

에반게리온 초호기가 없었다면 사도로부터 지구를 막지 못했을 것이고 반대로 신지가 에반게리온을 타서 지구가 멸망 직전까지 가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실제로 다시 신지가 에반게리온을 타려고 하자 전함의 승무원들 몇 명은 신지를 총으로 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전 같으면 울고불고 피하려고 하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신지가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냐 아니냐의 차이죠. 25년 동안 책임감이 약했던 신지가 드디어 어른이 됩니다. 그리고 반신반인이 된 아빠와의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출항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한 신지, 공감이라는 창을 얻다

신지는 어려서 엄마를 잃습니다. 아빠의 실험 실수로 엄마가 에반게리온 초호기에 영혼이 갖히게 됩니다. 아빠인 겐도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함께 아들을 이상하게 배척합니다. 너무 심할 정도의 심리적 거리두기를 넘어서 겐도 자신의 소유물을 넘어서 병기로 활용하는 모습은 괴이하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신지는 이런 아빠에 대한 원망과 함께 유일한 혈육이라는 갈등 속에서 수 없이 고민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빠 겐도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는 신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지는 딱 10대 소년 느낌인데 사교성이 너무 없습니다. 그나마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은 레이입니다. 레이에 끌리는 이유는 레이가 엄마의 분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신지의 마음을 여는 유일한 열쇠는 레이입니다. 

신지는 자신만의 세상에 갖혀 삽니다. 특히 잔혹한 전투와 자신이 하는 일마다 멸망의 스위치를 누르는 것 같다는 죄책감에 더 움츠러듭니다. 결국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미아 상태에서 레이의 분신에 의해 다시 어른이 됩니다. 신지가 각성한 후 크게 달라진 점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시작하고 미안하고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겁니다. 수줍어하기만 하고 내성적인 신지가  고맙다, 잘못했다. 내 책임이다 식으로 사회성이 복원된 사람, 어른이 된 신지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신지는 아빠에게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봅니다. 그리고 아빠의 과거를 보게 됩니다. <신 에반게리온>으로도 소개되고 있는 <에반게리온 다카포>는 이 신지와 아빠 겐도 사이의 이야기가 핵심 서사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신지가 아빠의 과거를 알게 되고 아빠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신지가 작별인사를 하듯 모두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뭉클하네요. 스포일 수 있지만 간단하게 적자면 주요 캐릭터 중에 죽는 캐릭터가 좀 있습니다. 이 죽음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개봉 후 제작사에 살해 협박 전화가 많이 왔다고 할 정도라고 하네요. 

그러나 전 그런 마무리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또한 그게 신지의 성장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새로운 삶,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또래 이성 친구와 사랑을 하고 수다를 떠는 20대 신지를 위한 모습이라서 보기 좋았습니다. 

3D 티가 거의 나지 않는 화려하고 뛰어난 액션 장면

전체적으로 너무 난해하고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액션만은 화끈합니다. 역시 에반게리온은 액션이죠. 거대한 유기체 로봇이 창으로 결투하는 장면도 장면이지만 전함끼리의 전투와 아스카와 마리가 탄 에반게리온의 합동 전투 등등 에너지 넘치는 액션도 가득합니다. 초반에는 설마 농촌 생활만 나오다 끝나나 했는데 후반에는 에바와 전함의 합동 전투들이 가득 펼쳐집니다. 

특히 마이너스 우주 세계에서 겐도와 신지가 탄 에반게리온 전투는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치 전투 장면을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듯한 설정으로 보여주는 장면 등등 25년을 지나면서 배경이 되었던 장면들을 다시 보여주는 모습은 아름다운 배웅을 위한 멋진 설정으로 보여지네요. 

아스카가 신지를 주먹으로 때리는 액션 장면은 마시 실사 영화를 보는 느낌을 들 정도로 엄청난 작화 실력을 보여줍니다. 마치 액션캠을 달고 촬영한 느낌까지 나네요. 

25년 동안 달려온 에반게리온 안녕!

전적으로 안노 히데아키의 세계입니다. 안노 히데아키의 머리속에서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많은 구타를 당했다는 안노 자신의 이야기가 신지와 겐노에게 투영되어서 보여집니다. 동시에 당시 버블경제가 꺼져서 왕따와 히키꼬모리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던 일본사회를 신지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잘 보여준 애니가 '에반게리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봇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춘기 소년의 성장기 같기도 한 에반게리온은 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합니다. 신지가 이렇게 밝았나 할 정도로 신지가 불안과 공포의 세상이 아닌 공감이 가득한 세상, 손을 내밀면서 인사를 하는 세상으로 마무리됩니다. 어차피 에바 팬들은 알아서 보겠지만 에반게리온을 안 본 분들이라면 에반게리온 서, 에반게리온 파, 에반게리온 큐를 다 보고 보시거나 아니면 유튜브에서 다이제스트 영상을 보고 봐도 좋은 애니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소년이 어른이라는 신화에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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