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 공개되어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7부작 넷플 오리지널 드라마 '퀸스 갬빗'을 드디어 다 봤습니다. 드디어라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이 드라마가 꽤 호평이 많았고 나름 재미있는 드라마였지만 한 번에 몰아볼 정도로 흡입력이 강한 드라마는 아녔습니다. 스토리가 생각보다 긴장감 넘치지 않고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듯한 이야기가 매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주인공 때문입니다.
안야 테일러 조이. '퀸스 갬빗'의 여주인공의 눈빛이 드라마를 하드캐리합니다. 저 눈빛으로 멱살 잡고 드라마 후반까지 끌고 갑니다. 이런 매혹적인 얼굴을 가진 배우는 참 오랜만에 보네요.
체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 '퀸스 갬빗'
소설이 원작인 '퀸스 갬빗'은 체스를 소재로한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보다가 체스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고 배워볼까 할 정도로 체스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어머니가 어린 나이인 '베스 하먼'과 함께 자동차 사고로 죽을 뻔 하지만 '베스 하먼'은 기적적으로 살아납니다. 홀로 남겨진 하먼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학생들과 함께 학교 다니면서 입양되기만 기다립니다.
하먼은 수학 천재입니다. 이는 수학자인 친아버지이지만 첩의 딸이라서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피를 이어 받았습니다. 고아가 된 하먼은 남들보다 수학 문제를 먼저 풀고 칠판지우개를 털기 위해서 지하실로 내려갔다가 학교 관리인이 혼자 두는 체스를 보고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가르쳐 주지 않지만 하먼이 스스로 체스 기물들의 이름과 행마를 말하자 앞에 앉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9살인 '베스 하먼'은 1주일에 한두 번 몰래 지하실로 내려가서 체스를 둡니다. 관리인은 하먼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근처 고등학교 체스 동아리 선수들과 겨루게 합니다. 그것도 다기전으로 하먼 혼자 여러 명의 고등학생과 동시에 체스를 둡니다. 물론, 체스 천재 하먼은 모두 이깁니다.
'베스 하먼'은 입양이 되고 새엄마와 함께 살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이 탐탁치 않게 봅니다. 결국 새아빠라는 사람은 집에 가끔 오다가 결국은 오지 않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로 인해 친엄마, 새엄마 모두 고통을 받고 그 고통은 어린 하먼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새엄마는 하먼이 체스 대회 우승해서 우승 상금을 가져오자 하먼의 뛰어난 체스 실력을 이용해서 돈 벌 생각을 합니다. 학교에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다른 나라까지 원정을 가서 체스 대회 우승을 하고 상금을 받아오면서 실력도 몸도 성장을 하게 됩니다. 드라마 '퀸스 갬빗'은 어린 하먼서 성장하면서 전미 대표를 넘어서 전 세계 체스 대회를 도전하는 체스 천재 성장기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체스와 인생은 혼자 두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퀸스 갬빗'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체스를 가르쳤던 관리인은 동전에도 양면이 있다면서 천재는 그에 따르는 대가가 함께 한다고 말합니다. '베스 하먼'에게도 빛과 어두움이 있습니다. 뛰어난 실력의 체스 실력을 가졌지만 안 풀릴 때는 안정제를 먹어서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킵니다. 쉽게 말아서 약 빤 실력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약을 먹으면 엄청난 두뇌 회전으로 이기고 부작용이 있는 식의 마블 영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체스에서 잘 안 풀리면 안정제를 사용해서 돌파구를 엽니다. 처음에는 이 안정제 이야기가 깊게 나와서 약을 끊으면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흔한 스토리인줄 알았는데 흔하게 흘러가지는 않네요. 그렇다고 안정제가 큰 역할을 못해서 이걸 왜 초반에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 '퀸스 갬빗'을 보다 보면 승승장구하는 하먼이 언제 처음 패배의 쓴맛을 볼까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쓴맛을 봅니다. 자만감이 쩔던 하먼은 첫 패배의 맛을 보게 됩니다. 그 패배의 순간에 인생 자체가 패배 같은 새엄마가 곁에 있습니다.
좋은 사람은 패배에서 배운다고 하죠. 하먼은 패배를 통해서 새엄마 사이가 더 돈독해집니다. 그리고 체스계의 끝판왕인 러시아 선수이자 현 전세계 체스 랭킹 1위를 만납니다. 그리고 크게 패합니다. 세상은 혼자이고 홀로 사는 법만 알았던 하먼에게는 이 패배가 큰 충격이 됩니다. 새엄마도 병에 걸려서 죽고 홀로 남겨진 하먼 곁에 자신이 꺾었던 체스 마스터들이 하먼을 도와줍니다.
'베스 하먼'은 불행이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친 엄마는 세상에 버림받았다고 같이 죽으려고 했고 새엄마도 다정다감보다는 하먼을 장난감 사듯 보육원에서 사 옵니다. 하먼의 능력을 보고 돈 벌 생각을 하죠. 그렇다고 사악한 새엄마는 아닙지만 하먼의 첫 월경을 교육하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홀로 자란 하먼은 첫사랑도 혼자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단체 게임이 아닌 혼자 두는 체스에 더 깊게 빠졌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하먼이 세상을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체스를 통해서 담은 드라마가 '퀸스 갬빗'입니다.
드라마의 배경은 1960년대로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무엇이든 소련(현 러시아)을 이겨야했습니다. 소련이 체스 강국이 된 이유는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 경기를 분석하는 협동의 힘이었습니다. 이는 소련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의 힘이기도 하죠. 반면 미국은 개인주의의 나라이고 주인공인 하먼은 혼자 자랐다고 할 정도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합니다. 이런 하먼이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면서 힘을 가지게 되는 이 과정이 꽤 매끄럽고 흥미롭습니다.
체스를 알면 좋고 몰라도 보기 좋은 '퀸스 갬빗'
대단한 스토리가 담긴 드라마는 아닙니다. 드라마 자체만 보면 그냥 평이한 스토리입니다. 한 체스 천재 소녀가 성장하는 과정을 잔잔바리로 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애도 잠시 등장하지만 깊게 담기지는 않습니다. 체스만 아는 소녀가 체스 실력이 성장하면서 몸과 마음도 성장한다는 잔잔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체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라서 체스를 잘 알고 보면 더 재미있지만 모르고 봐도 됩니다. 고리타분하게 체스 룰이나 체스 방식이나 체스의 다양한 행마술을 자세히 보여주지도 다루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퀸스 갬빗'이라는 체스 오프닝 행마가 나오지만 이걸 빗대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지도 자세히 다루지도 않습니다.
이 '퀸스 갬빗'은 스토리 보다는 '안야 테일러 조이'가 하드캐리하는 드라마입니다. 이런 배우가 어디 있다 이제야 나왔을까요? 큰 눈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는 느낌마저 듭니다. 또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배우 덕분에 지루한 구간도 견디면서 볼 수 있었네요. 전체적으로 볼만하고 재미있는 드라마 '퀸스 갬빗'입니다. 다만 예상과 달리 큰 사건 사고가 있지는 않고 그냥 잔잔한 체스 드라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