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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밀양을 통해 본 한국 종교의 문제점! 기복신앙

by 썬도그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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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망동이 전 국민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교인도 아니지만 분명 하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했는데 이웃의 건강을 해치고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전염병을 전국에 퍼트렸습니다. 전광훈 목사에게 있어서 이웃은 사랑제일교회 교인만 이웃인가요? 더 이상한 건 사랑제일교회 교인 및 전국에서 올라온 교인과 극우 중노년 층 분들에게 전염병을 전파했고 이 분들이 각 지역에 내려가서 전염병을 확산시켰습니다. 

전 이 모습을 보면서 한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한국 사회를 우회적으로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이창동 감독의 2007년 제가한 <밀양>입니다. 이 영화는 배우 전도연을 칸의 여왕으로 만든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의 영화라서 전도연의 광끼 어린 연기를 볼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도 참 강렬합니다. 

영화 <밀양>은 한국 개신교를 믿는 우리들의 우화라고 할 정도로 한국 개신교 크게 봐서는 한국 종교들의 문제점을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개신교 자체의 부정부패와 비리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영화는 아니고 한국 개신교 및 여러 종교들을 믿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진중한 물음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납치 살해 당한 엄마 신애의 눈물을 포근하게 감싼 교회의 온기

영화 <밀양>을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면 남편과 사별한 신애는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에서 피아노 학원을 차려서 아들을 키웁니다. 신애는 가진 돈이 별로 없지만 밀양의 텃새를 사전 제압하기 위함인지 땅을 보러 다니는 등 자신을 위장합니다. 그래야 남편 없는 여자를 함부로 안 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의도를 모르는 하늘은 이 신애에게 혹독한 시련을 줍니다. 

땅을 보러 다니는 신애를 눈여겨보던 아들이 다니는 웅변학원 원장이 아들을 납치 살해합니다. 이후 신애는 큰 충격을 잘 견디는 듯했지만 아들의 사망 신고를 하러 갔다가 눈물이 폭발합니다. 악다구니 같은 슬픔이 터져 나오는 신애 앞에 '상처 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라는 현수막을 보고 교회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눈물을 쏟아냅니다. 

신애의 이른 슬픔은 교회라는 온기가 품어줍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던 밀양에서 갑자기 자신을 알아주고 챙겨주는 교인이라는 이웃이 생겼습니다. 자매님이라고 하는 교회 특유의 강력하고 끈끈하고 끊기 어려운 교회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되고 그 온기에 신애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하나둘씩 치유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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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복과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기복 신앙

신애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신애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의 길 건너편에 있는 약국을 운영하는 교회 집사는 신애에게 교회에 오라고 전도를 합니다. 이에 신애는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는다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러나 약사는 하나님은 모든 곳에 있다는 말로 신애를 전도하지만 신애는 귓등으로 듣고 맙니다. 

그러나 아들을 잃고 가슴에 비수를 꽂고 살아가는 신애는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온기를 통해서 서서히 치유를 합니다. 그렇게 신애는 교인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신애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서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목적에 내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참 많죠. 이렇게 내 복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종교를 믿는 걸 기복 신앙이라고 합니다. 

복을 기원하고 복을 구하는 목적으로 종교를 믿는 것이 건강한 태도일까요? 종교는 그 자체로 믿어야 하고 목적이 없어야 하지만 우리는 복을 구하고 기원하기 위해서 교회와 사찰을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나 사찰에 가면 복을 기원하는 이름을 적어서 십일조를 내거나 연등을 달거나 기와에 이름을 써서 시주를 합니다. 복을 기원하는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은총과 복을 준다면서 헌금과 시주를 받는 교회와 사찰은 결코 좋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게 뭐가 문제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복을 기원하기 위해서 믿는 종교라면 점집에 가서 점괘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부자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식으로 내 안녕과 평온을 위해서 믿는 종교는 대형 점집에 다니는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더 문제는 그런 기복주의 신자를 이용하는 종교 시설들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신애는 교인이 되지만 신은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교인들이 햇볕 같은 온기를 전해주었고 그 덕분에 정신을 추수릴 수 있었을 뿐이죠. 마음이 평온해지자 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유일하다는 신이 자신이 용서해주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아들을 납치 살해한 살인범을 용서해줬다고 합니다. 

아들 살해범을 찾아가 용서를 한다는 말을 전하러 교도소에 간 신애에게 살해범은 자신도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면서 하나님이 용서를 해줘서 마음이 평온해졌다는 말에 까무러칩니다. 아니 피해자인 신애가 용서를 해주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묻지도 않고 용서를 해줬답니다. 이에 신애는 자신이 교회를 다니는 목적인 안녕과 평온을 신이 깨뜨리자 신에 대한 반감을 가집니다.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난 절대로 안 져'라는 말을 내뱉습니다. 

기복 신앙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복을 기원해서 교회나 사찰을 다녔는데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내 앞에 떨어지면 신의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신의 의도냐며 원망을 신에게 합니다. 종교를 믿는 좋은 태도는 행운이 오건, 불행이 오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일비일희하지 않고 다음 세상인 내세를 위해서 나를 갈고닦고 정진해서 어제보다 더 좋은 나를 만드는 것이 바른 종교인의 태도이고 그런 금욕적이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일수록 종교인을 믿는 새로운 종교인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기복 신앙과 함께 현세적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더 장려하고 떼돈을 벌어서 성공하는 것을 적극 장려합니다. 자본주의와 개신교가 물질 친화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대로 버는 것을 추구합니다. 교인들이 번 돈은 거대한 성전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한국에 초대형 교회인 메가 처치가 많은 이유가 바로 자본 친화적인 한국 교회의 습속 때문 아닐까요? 다른 사업들은 다 망해도 교회는 안 망한다는 소리가 여기서 나옵니다. 

영화 <밀양>에서는 현세적인 개신교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지 않고 기복 신앙의 문제점만 담고 있지만 기복 신앙과 현세적인 개신교의 문제점은 같은 뿌리로 느껴집니다. 

신애가 개신교를 믿는 목적은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녔더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교회를 복용하니 효과가 바로 나오는 것이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목적은 그 목적이 깨졌을 때 바로 역정이 됩니다. 이게 현세적인 종교의 문제점입니다. 반면 신애가 싫다는데도 따라 다니는 종찬은 신애가 교회를 다니자 종찬도 교회를 다닙니다. 당연히 종찬은 믿음 자체가 없습니다. 

신애가 자해를 하고 남동생이 밀양으로 오자 남동생이 차 안에서 종찬에게 교회 다닐만 하냐고 묻습니다. 
"안 나가면 섭섭하고 나가믄 마음이 쪼매 편안하고 그렇데예" 전형적인 나일롱 신자입니다. 이런 신자들이 교인들 중 얼마나 될까요? 

종찬의 이런 개신교를 믿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믿는다고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바람직한 것은 종찬이 신애에 대한 태도입니다. 종찬은 신애가 싫다고 해도 면박을 줘도 그냥 웃고 넘깁니다. 마치 운명이 나에게 채찍질을 하고 악담을 해도 종찬은 헤헤하고 웃고 넘깁니다. 이런 종교 자체에 대한 믿음, 즉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건강한 목적을 보여줍니다. 신애가 역정을 내고 화를 내도 신애 자체가 좋기에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복을 기원하고 행운을 바라면서 종교를 믿는다면 그게 바람직한 태도일까요? 영화 <밀양>을 보면서 신애라는 인물이 참 못났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은 신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을 평온하게 해 준 치유라는 결과물을 대한 감사함을 주는 교회 커뮤니티에 감사해하다가 신이 배신을 하자 신을 욕합니다. 신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도 배신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혼자 복을 기원하면서 기도를 했더니 복이 떨어졌다고 믿고 그 복을 기원하면서 교회를 다니다가 그 복이 나에게만 떨어지는 것이 아닌 내 원수에게도 복이 떨어지니 신에 대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전형적인 기복주의 신앙의 문제점이죠. 

매주 로또방에 가서 로또를 긁는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런 기복 신앙은 교인들만 가지는 건 아닙니다. 목회자라고 하는 목사가 기복 신앙으로 교회를 운영한다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기복 신앙을 가진 목사는 교회의 크기 늘리기와 헌금 늘리기를 위해서 신을 수단시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사 분들이 많다면 그 종교는 건강한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런 종교를 믿는 신자들도 건강한 비판을 하지 않고 목사의 잘못된 방향을 따라간다면 그 신자도 좋은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광훈 목사 사태를 보면서 한국 교회의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태도로 교회를 운영하고 그런 태도로 교회를 다니는 기복주의자들이 외부의 비판에 눈감과 귀 감으면서 여기까지 끌고 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이 참 부끄러운 요즘입니다. 제목을 종교라고 한 이유는 한국 개신교만의 문제점이 아닌 다른 종교도 비슷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 정도나 양은 다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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