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육체와 기억이라면 육체를 전구처럼 갈아 끼우는 시대가 된다면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기억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조차 조작이 가능하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공각기동대>는 그 물음을 진중하게 하는 애니입니다.
일본 애니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각기동대>는 인류가 유기체인 뇌를 전자두뇌인 전뇌화와 몸을 기계로 만드는 사이보그 및 기계의 몸에 인간의 기억을 심을 수 있는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애니입니다. 이 애니는 전 세계에 마니아층을 확보할 정도로 그 스토리와 세계관이 상당히 정교하고 화려합니다. 특히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한 애니입니다. 사이보그가 가능하고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역이고 전뇌끼리 통신이 가능한 시대에 쿠사나기 소령이 이끄는 일본 공안 9과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올 3D로 돌아온 공각기동대 에이에이씨 2045
공각기동대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몇 차례 만들어졌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게 본 건 TV 시리즈입니다. Stand Alone Complex를 시작으로 Stand Alone Complex를 줄인 S.A.C 2nd GIG, S.A.C Solid State Society 등을 지나서 2020년 4월 넷플릭스에 <공각기동대 에이에이씨 2045>이 2020년 4월 23일 공개되었습니다.
이 <공각기동대 에이에이씨 2045>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땐 쓴소리가 잔뜩 나왔습니다. 기존의 공각기동대는 배경이나 자동차나 AI 전투 로봇인 의식 전차 타치코마는 3D로 만들고 인물들의 캐릭터는 2D로 만들었습니다. 일본 애니가 여전히 캐릭터를 2D로 묘사하는 이유는 세밀한 감정 표현을 3D 캐릭터가 할 수 없고 너무 매끈하다 보니 캐릭터들이 토이스토리 장난감처럼 느껴지거나 G.T.A 게임 같이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은 아주 잘한 결정이고 그 결정이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D로 캐릭터를 그리려면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려야 하기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과감하게 2D 캐릭터를 버리고 인물도 3D로 무장했습니다.
몇 달 전에 나온 예고편을 보면서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애니보다는 게임 영상 같은 이질감에 쓴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러나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보다 보니 오히려 장점이 더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2D 캐릭터에서는 느껴질 수 없는 뛰어난 격투 무술과 화려한 3D 캐릭터들의 액션을 자유로운 카메라 워크로 더욱더 화려하게 그렸습니다. 액션 장면 특히 격투 액션과 근접 액션을 보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여기에 미체 광학 표현이 2D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실사와 닮았습니다.
물론 토구사가 가장 어색하고 게임 캐릭터 같이 느껴지지만 다행스럽게도 쿠사나기 소령은 그 미모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물론 3D 캐릭터들의 단점인 다양한 표정 변화를 담을 수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래서 쿠사나기 소좌는 다양한 표정 변화가 없고 항상 저 얼굴로 나옵니다. 마치 여자 '스티븐 시걸'이 된 느낌입니다. 표정을 내주고 액션을 취했네요. 따라서 올 3D로의 변화는 대체적으로 성공적입니다.
슈퍼컴보다 뛰어난 전뇌를 가진 포스트 휴먼의 등장
<공각기동대 에이에이씨 2045> 내용은 이전 시리즈보다 좀 더 대중적입니다. 이전 시리즈가 전뇌화 된 네트워크로 묶인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우리가 앞으로 또는 현재 겪은 사회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지만 너무 소재가 음습하고 복잡해서 적응을 못하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다른 시리즈와 달리 공각기동대 시리즈는 문턱이 조금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에이에이씨 2045>는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고 전 세계 동시 개봉이 가능한 넷플릭스 매체를 감안해서인지 소재 자체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배경을 미국으로 하는 등의 좀 더 글로벌화된 느낌이 듭니다. 이야기는 이전 시리즈와 이어집니다.
시대 배경은 2045년입니다. 2042년 세계는 미국, 중국, EU, 러시아 4강이 세상을 지배하는 암울한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4대 강국은 경제 성장 동력으로 전쟁을 택합니다. 50~80년대 냉전 시대에 경제가 활황기였다는 것을 착안해서 서로 집어삼키지 않는 조건으로 '지속 가능한 전쟁'을 통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킵니다. 전면전 대신 국지전을 펼치면서 경제를 떠 받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2044년 전 세계 동시 디폴트가 되면서 은행에 저축한 돈을 빼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경제는 폭망 하고 여기저기서 테러급 전투가 펼쳐집니다.
쿠사나기 소령팀은 일본 공안9과와 결별하고 신분을 싹 지우고 이 하수상한 시대에 민간 용병 전투팀인 PMC로 활약합니다. 그날도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하다가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 '블러드 로보틱스' CEO가 사는 집을 미사일로 날려 버립니다. 이걸 지켜보던 미국 고위급 인사가 군인 로봇과 함께 쿠사나기 소령이 이끄는 고스트팀을 체포하고 이들에게 '블러드 로보틱스 CEO'를 생포하라는 미션을 줍니다.
이 과정에서 '포스트 휴먼'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포스트 휴먼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슈퍼컴보다 처리속도가 빠른 엄청난 AI와 인체가 결합한 신인류가 나옵니다. 얼마나 처리 속도가 빠른지 총알도 피해 갑니다. 이들을 막기 위한 이야기가 시리즈 초반에 담깁니다.
가상화폐, 무인 접속, 드론을 투입해서 시대상을 반영한 <공각기동대 에이에이씨 2045>
공각기동대가 미래 세상을 정교하게 그려서 몰입도가 꽤 높습니다. 뇌의 기억을 네트워크에 업로드하고 동기화한다는 내용도 흥미롭죠. 여기에 현재의 기술도 애니에 바로바로 접목합니다. 이번 시리즈에는 드론과 무선 전뇌 접속과 벌 모양의 정찰 로봇, 미체 광학 탐지 로봇견 등의 새로운 볼거리가 투입됩니다. 여기에 가상화폐 사기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 노인들을 통해서 고령화된 사회의 안쓰러운 모습도 담습니다.
총 12부로 되어 있는데 1편에 22분 정도여서 보기 딱 좋은 분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오프닝, 엔딩 크레딧 지우면 15~20분 사이라서 가볍게 1편씩 볼 수 있습니다. 지금 7편까지 봤는데 아껴보고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내용과 뛰어나고 화려하고 미끈한 액션이 이어지네요. 시즌 1이니 넷플릭스를 통해서 계속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의 사냥>으로 더러워진 뇌를 <공각기동대 에이 에이씨 2045>가 정화시켜주는 느낌이네요. 공각기동대 팬이라면 강력추천이고 공각기동대를 모르는 분들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