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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권력이다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드는 궁금증 4가지와 뒷 이야기 본문

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드는 궁금증 4가지와 뒷 이야기

썬도그 2020. 1. 23. 12:42

10.26 대통령 시해 사건을 모든 국민이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10,20대 들은 모르는 분들이 많겠죠. 뭐 30대들 중에서도 크게 관심이 없으면 이 사건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맞고 죽었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제 영화 <남산의 부장들> 리뷰 글 유입 키워드를 보니 박통은 누구?라는 글이 보이네요. 생각보다 이 사건을 잘 모르는 분들도 많고 저도 잘 모르는 부분들이 꽤 있었네요. 

10.26 사건은 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 부장인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이자 5.16 쿠테타 당시 상관이었던 박정희를 권총으로 쏜 시해 사건을 담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나면 드는 궁금증과 의문이 꽤 많습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영화를 다 본 분들만 보실 걸 권합니다.

1. 왜 실명을 쓰지 않고 가명을 사용했나?

처음에는 당혹했습니다. 김재규가 김재규가 아닌 김규평으로 나오고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 부장도 박용각으로 차지철 경호실장은 곽상천으로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은 전두혁으로 나왔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프레지던트 박으로 나오지 박정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명을 쓴 이유가 뭘까요?

우민호 감독은 "제 창작의 자유를 보장 받고 싶었다"라는 인터뷰로 이 궁금증에 대답을 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실화를 재현하기에 실제 사건 속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역사 관련 드라마는 실명이 중요하죠. 그러나 영화 속 인물이 현재 생존하고 계신 분들이나 관련 유족들이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피하기 위함도 있을 겁니다. 또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각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실제 한 말도 있지만 하지 않은 내용도 많은데 이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기에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가명으로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실명으로 등장합니다. 비록 가명으로 처리했지만 각 인물들은 실제 인물과 외모를 비슷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등 연기가 좋아서 가명이지만 실명 이상의 느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2. 10.26 사건은 우발적이었나? 계획적이었나?

10.26 사건은 우발적 범행이었을까요? 계획적인 행동이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현재까지도 많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전두환의 10.26 사건이 발생한 이유를 담은 영상으로 마무리하면서 이 10.26은 차지절(곽상천  경호실장)에게 권력 서열에서 밀리던 김재규(김규평 중정부장)의 우발적 범행이라고 말하고 끝이 납니다. 

즉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고 이는 이 영화의 원작과 동일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되네요. 

위 영상을 보면 김재규는 3선 개헌(대통령 연속 3번 할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침) 후부터 박통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3군 사령부를 맡고 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대를 방문하면 담판을 지으려고 했나 봅니다. 그러나 방문 계획이 취소 된 후에 건설부 장관으로 있다가 8000만 달러 밖에 안되던 해외 건설 계약고를 30억 달러로 올리는 등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초법적 기관인 중앙 정보부장이 됩니다. 이후에 미국의 압력과 5.16 쿠데타 당시 한강을 건널 때 새로운 나라, 온 국민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꿈꾸던 청년이 노욕만 늘어가는 박통을 보면서 시해 결심을 세웁니다. 이렇게 보면 이게 단순히 차지철과의 권력다툼에서 나온 우발적 사건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겠지만 정리를 해보면 김재규는 수년 전부터 자연스러운 퇴진, 또는 하야 또는 민주적인 절차로의 다음 정권으로 이양을 원했지만 과격분자이자 강경론자인 차지철과 박통이 공조를 하자 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합니다. 문제는 이 결심 이후에 계획이 좀 허술했습니다. 결국 남산으로 향했어야 할 차를 육군본부로 돌려서 바로 체포당하는 우를 범합니다. 김재규는 1980년 5월 23일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전두환이라는 신군부가 세상을 지배하고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제대로 계획을 세웠다면 전두환에게 정권을 넘기지 않았을 수 있었을텐데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차지철과의 권력 싸움에 초점을 맞추지만 동시에 김재규가 고뇌하던 모습도 어느 정도 녹여서 이게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우국충정의 모습도 있었다는 것을 살면서 끼어 넣지만 크게 부각되는 시선이 아니라서 전두환의 발표 내용을 따르고 있네요. 다만 이 영화가 각 캐릭터들의 내면의 갈등을 중점으로 두었기에 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 시해 사건이 계획과 우발이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안 쓴 것 같기도 합니다. 

3. 회고록은 어떻게 일본에서 출간되었나?

박정희 정권의 치부를 잘 알고 있었던 김형욱(영화에서 박용각)은 중앙정보부 부장에 있을 때 국회의원 조인트를 까면서 3선 개헌을 하는데 큰 공헌을 합니다. 그러나 박통은 2인자를 키우지 않다는 철칙이 있어서 3선 개헌의 일등 공신인 김형욱을 비리로 엮어서 내칩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형욱은 1977년 코리아 게이트가 터지자 미 연방 하원의 프레이저 청문회에 나가서 박통의 치부를 폭로합니다. 

영화에서는 회고록을 가지고 김재규(영화에서는 김규평)가 미국으로 찾아가 회고록 원고를 회수하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차장인 윤일균이 김형욱을 만나서 회고록을 회수합니다. 그러나 김형욱은 원고 일부를 일본으로 빼돌려서 축약 평론판이 출판됩니다. 영화에서는 박통이 김규평 머리에 잡지를 던지는 모습으로 보여지죠.

영화에서는 이 원고와 도청 테이프가 물물교환으로 은밀하게 거래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게 누가 거래를 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감독 인터뷰를 들어보면 원래 더 많이 촬영했는데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경호실장 곽상천, 보안사령관 전두혁 이 3명 중 1사람이라는 물음을 던져 놓는 방식으로 담았습니다. 즉 관객이 보이는 대로 원하는 대로 판단할 수 있게 자유도를 넣었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없습니다. 오히려 실제 역사는 김형욱 본인이 빼돌렸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김형욱을 제외합니다. 

4. 김규평은 왜 박용각을 왜 죽였는가?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긴장감 높았던 장면은 미국 청문회장에서 박통의 비리를 다 까발리겠다고 한 박용각 전 중앙정보부 부장(곽도원 분)을 설득하고 회고록을 회수하지만 일본에서 축약본이 출판됩니다. 이에 박통은 심기가 무척 불편했고 김규평 중앙정보부 부장(이병헌 분)은 권력 서열에서 더 밀려납니다. 각하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하는 충정심 경쟁을 하던 김규평은 곽상천 경호실장(이희준 분)이 박용각을 암살하려는 낌새를 알아챕니다. 이에 중정 사람을 보내서 박용각을 차로 납치합니다. 

김규평이 친구로 나오는(실제로는 선후배) 박용각을 죽인 이유는 곽상천 경호실장과의 충성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신임을 다시 얻으려면 이 회고록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박용각을 죽여야 합니다. 그렇게 김규평은 친구를 잔혹하게 죽이면서 다시 박통의 신임을 얻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친구까지 죽인는 잔인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죽였다고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박통은 어떻게 알았는지 김규평이 죽였다고 단정 지어서 말합니다. 아마도 곽상천 경호실장이 고자질을 한 듯합니다. 물론 살해 사건도 실제로 누구의 지시였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모든 것이 사실 그대로 역사 그대로 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실제 상황을 재현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시해 장면에서 불이 잠시 꺼지는 장면이나 곽상천 경호실장이 손으로 총을 맞으려다가 팔에 총을 맞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김규평을 만나서 문갑을 들고 싸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피 묻은 사탕을 참모총장에게 줬는데 참모총장이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사탕을 안 먹은 것도 실제로 있었던 증언입니다. 동시에 감독이 상상으로 넣은 장면도 좀 있네요.


영화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들

박정희의 핵개발

이 10.26 시해 사건은 여전히 의견들이 분분합니다. 검색하면 김형욱을 파리에서 데리고 와서 박통이 보는 앞에서 차지철이 권총 3발을 쏴서 죽였다는 소리도 있고요.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고 이 일은 80년대 정치 잡지에 단골 소재였습니다. 김형욱 이렇게 죽었다! 식의  특종 보도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판단은 관객들이 할 부분도 꽤 많이 보입니다.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박통의 독재 정권이 길어지자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엄포를 놓습니다. 실제로 카터는 1977년 9월과 11월에 1500명의 주한미군을 철수합니다. 이에 박통은 그래! 철수하려면 해라. 대신 우리는 핵 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맞짱을 뜹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골머리를 썩고 있었고 여러 수단으로 박정희 정권을 압박했습니다. 그래서 10.26이 CIA 작전의 결과라는 소리도 있습니다. 

실제로 박정희는 핵 미사일 개발을 시도하였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미국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함과 동시에 미사일 사정거리 180km, 탄두 중량 500kg 이상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데 동의합니다. 이 미사일 사정거리는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300km로, 2012년에는 사거리 800km로 높아졌고 2017년에는 탄두 중량 제한이 사라집니다.

최태민과 김재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가장 큰 이유는 최순실이라는 믿기지 않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순실은 잘 아시겠지만 최태민의 딸입니다. 최태민은 박통의 딸 박근혜에 접근해서 최순실처럼 많은 곳에서 돈을 뜯어냅니다. 최태민의 존재는 중앙정보부 부장인 김재규도 알게 되고 김재규는 최태민을 조사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10.26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에 보고서가 나옵니다. 최태민이 박근혜라는 이름을 팔아서 호가호위하는 모습을 박통에게 보고합니다. 이 보고서는 최태민의 문란한 사생활과 박근혜와의 관계까지 적혀 있었지만 박통은 이 보고서를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태민은 구국 여성봉사단의 명예총재가 되고 박근혜는 총재가 됩니다. 만약 이때 최태민 일가를 박근혜로부터 분리시켰다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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