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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기생충과 조커로 투영해 본 월거지,전거지,이백충의 혐오사회

by 썬도그 2019.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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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의 강력한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우리는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된 대한민국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한국은 자본주의 중에서도 고삐가 풀린 야수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걷고 있습니다. 자본이 가지고 있는 추악한 모습이란 모습을 미국과 함께 일상에서 가장 많이 보여줍니다. 


기생충의 나라 한국 야수 자본주의에 물들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고 돈으로 판단하는 시선이 만연한 나라입니다. 이런 천한 자본주의의 시대에 살다 보니 가난한 기택네 가족은 항상 주눅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기택 가족이 잘 나가는 IT 기업을 운영하는 박 사장의 집에 기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기택네 가족은 아내, 아들, 딸 모두 박 사장 집에 취직을 하고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나자 박 사장 집에서 모두 모여서 파티를 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폭우로 박 사장 가족이 급하게 돌아오자 기택네 가족은 테이블 밑에 숨고 면전에서 하지 못한 박 사장의 기택에 대한 뒷담화를 듣게 됩니다. 박 사장은 기택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서 경멸어린 말을 합니다. 이 경멸어린 혐오의 말을 가난한 기택 가족은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나마 사회적 체면이 있어서 인지 어른이라서 그런지 면전에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다 박 사장 아들의 생일 파티 때 난리가 나자 박 사장은 기택에게 자동차 키를 던지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 자동차 키는 공교롭게 기생충처럼 살던 사람 밑에 깔리고 박 사장은 그 자동차 키를 꺼내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지 코를 막습니다. 기택은 그 장면이 자신에게서 냄새를 난다면서 혐오하는 박 사장의 얼굴이 보이자 박 사장을 칼로 찌릅니다. 

기택 가족은 부자가 착하다면서 박 사장 가족을 칭찬합니다. 기택의 아내 충숙은 부자니까 착한 것이라고 받아치죠. 부자는 여유가 넘칩니다. 여유 있는 사람은 남에게 친절할 수 있는 여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절이 위선적인 친절일 수 있다는 것을 박 사장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착한 척, 젠틀한 척 하지만 실제 박 사장의 모습은 폭우가 내리던 날 기택 가족들이 선을 넘으려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냄새가 난다는 경멸어린 혐오의 말을 통해서 수면 위로 드러납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경멸할 때의 시선의 기반은 노력입니다. 노력을 하지 않고 게을러서 부자가 되지 못했다고 비난과 경멸을 하죠.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은 노력으로만 부자가 되는 경제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아닙니다. 가끔, 간혹 자수성가한 스타트업 젊은 CEO가 소개되지만 가끔 나오기에 뉴스에 나오는 것이지 그게 일상이 된 나라가 아닙니다.  

그보다 부모 잘 만나서 부자를 이어 받은 세습 부자가 더 많습니다. 반대로 노력은 하지만 부모가 가난해서  가난을 세습한 가난한 사람도 많습니다. 출발 선이 다른 세상을 사회가 동일한 출발 선을 만들어서 공명정대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는 공명정대한 사회가 절대로 아닙니다. 

중요한 건 노력입니다. 점점 노력을 하지 않아도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력의 가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돈이 돈을 버는 부의 세습이 고착화 되고 있습니다. 


월거지, 전거지, 이백충을 노래하는 일부 대한민국 아이들

월거지, 전거지,빌거지, 이백충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이 단어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단어들입니다. 
월거지는 월세 사는 거지, 전거지는 전세 사는 거지, 빌거지는 빌라사는 거지를 말하고 이백충은 부모가 월 이백을 버는 부모를 이백충, 삼백충으로 부릅니다. 

혹자는 이 단어가 일부 초등학생들만 사용하고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주변에서 이 단어를 들어 본 분들도 있고 일부라고 해도 형태만 다르지 이와 비슷한 행동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임대 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보내기 싫어서 임대 아파트 사는 친구와 놀지 말거나 차별을 하고 배척하고 멀리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일부 초등학생들의 혐오, 비하 발언의 근원은 초등학생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부모에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초등학생들이 쓰는 이 혐오 단어들은 혐오 덩어리 그 자체인 일베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한국은 혐오가 일상인 사회입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 사회와 비슷합니다. 불경기의 원인은 찾지 않고 그 원인을 만든 사람들을 지목하고 집단 구타를 합니다. 히틀러는 그 불경기의 원인을 유태인으로 정했고 독일인들은 유태인을 혐오하고 집단 구타와 대량 학살까지 자행합니다. 

빌거지, 월거지, 전거지는 아이들 입에서 나왔지만 그 말을 하게 만든 사람은 부모이자 아이들의 부모 세대들입니다. 실제로 이 초등학생의 부모 세대인 30~50대들은 박 사장처럼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 또는 야수 자본주의를 직격으로 맞은 세대입니다. 특히 현재 40대 이하 세대는 '부모 팔자 반 팔자'라는 말이 처음으로 구체화 된 세대입니다. 한 외국 경제학자가 한국은 일제 시대가 지나고 한국전쟁을 통해서 계급 사회가 리셋이 되었고 계급이 사라진 사회에서 역동적인 민족성을 바탕으로 비교적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이 자유롭게 활개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쉽게 말해서 자본력이 강한 사람이 더 큰 돈을 쉽게 버는 사회가 고착화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여기서 자유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그 신체의 자유, 발언의 자유가 아닌 자본의 자유를 말합니다. 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본은 괴물이 되고 야수가 되어서 한국 사회를 먹어 삼킵니다. 부의 대물림이 처음 실현된 것이 제 2차 베이비붐 세대로 현재의 40대들입니다. 

요즘 이상한 판결과 판단을 하는 판,검사들이 많죠. 이 사람들의 나이를 유심히 보면 제 2차 베이비붐 세대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부자 아빠를 둔 사람들끼리 몰려 다녔고 그러다 보니 사회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낮습니다. 이 제2차 베이비붐 세대들은 부의 고착화를 온 몸으로 느끼고 배운 사람들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아주 잘 구분하고 오로지 돈으로만 세상을 보는 시선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40대 전후의 부모님 세대를 싸잡아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일부 초등학생들의 이런 혐오의 시선의 끝을 따라가면 부모가 동일한 시선을 가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사회의 부의 이동이 고착화 되면 혐오감은 더 심해집니다. 일베의 출현은 바로 그 야수자본주의가 싼 똥과 같은 존재입니다. xx충이라는 단어는 현재 10,20대들에게 일상 용어가 되었습니다. 

제가 더 놀라웠던 것은 xx충 하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평범한 우리들 10,20대들입니다. 그 단어가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얼마나 나쁜 단어인지 잘 알지 못해서 쓰는 것도 있지만 그 xx충을 쓰는 청년들을 아무도 쓰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 사회가 더 놀라웠습니다. xx충 쓰지 말라고 하면 꼰대라고 하는 모습에서 뿌리 깊은 혐오가 고착화 된 세상임을 느끼게 되네요. 


무례한 것들에게 방아쇠를 담긴 조커

고인물은 새로운 물의 공급이 없어서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고인물 생태계는 건강하지 못한 생태계입니다. 게임에서도 고인물이 많으면 새로운 게이머가 진입했다가도 바로 게임을 삭제합니다. 

한국 사회는 고인물이 장악한 사회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은 사라지고 부자 아빠에서 부자 자녀가 나오는 부의 세습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한국 사회는 노오오력과 열정을 요구합니다. 

아서는 노력을 했습니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해서 인기 높고 유능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병이 있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온갖 사회적 멸시와 편견을 달고 삽니다. 비록 무능력한 아서이지만 집에서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사는 효자입니다. 

노력을 했건 안 했건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병이 있건 없건 결과만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무능력한 결과물을 조롱합니다. 자신이 흠모하던 코미디언인 머레이가 자신이 첫 데뷰를 한 스탠드 코미디 영상을 입수해서 방송에 틀면서 조롱을 합니다. 

무능력하다고 멸시하고 조롱하던 그 많은 시선을 다 무시하고 꾸역꾸역 견디며 살았는데 자신이 존경하던 코미디언이 아서를 코미디 소재로 삼고 조롱을 합니다. 아서 안에 있던 조커라는 씨앗을 머레이가 싹 피웁니다. 아서는 죽어가고 조커가 태어납니다. 조커는 무례한 것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응징'을 합니다. 이게 조커만의 정의입니다. 이 방식이 옹호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법적으로 옹호 받을 수 없지만 심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조커를 응원했을 겁니다. 기생충의 박 사장이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 가난한 자를 혐오하는 것처럼 대놓고 조커의 행동을 잘 했다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조커의 거침 없는 행동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혐오가 일상인 세상의 반대 급부가 바로 조커입니다. 비록 법이 강력하게 막고 있고 일부의 일이라서 조용히 있지 이대로 가다간 한국 사회는 수 많은 조커가 탄생할 것입니다. 한 시인은 태풍이 많은 피해를 주지만 바다 속을 다 뒤집어 놓아서 좋은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부의 고착화를 분쇄하긴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진보라고 포장된 그러나 세계적 기준으로는 보수정당과 수구정당이 번갈아 가면서 정권을 세습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쉽지 않고 야수 자본주의는 더 활개 칠 것입니다. 가난과 부는 아무런 노력 없이 대물림 될 것입니다. 아무 노력 없이 부를 물려 받으면서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부라고 착각하는 인간들이 잘 하는 행동이 무례입니다. 그 무례를 먹고 자란 조커가 많아지면 남미처럼 평창동처럼 성벽과 같은 높은 담벼락으로 세상과 단절하고 박 사장처럼 선을 그어서 가난의 냄새가 자신들에게 오지 못하록 할 것입니다. 

무례하지 마십시요. 특히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무례하지 마십시오. 그 무례함이 언젠가는 조커가 되어서 당신 앞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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