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둘레길 단풍을 감상하고 대한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영하 날씨가 뜬금 없었지만 늦더위 때문인지 단풍이 이제 막 익어가고 있네요. 뜬금 없는 일은 또 있었습니다. 남산둘레길 밑에 있는 대한극장에 들렸다가 영화나 1편 볼까 하고 본 영화가 기대 이상의 재미를 뜬금없이 던져줬습니다.
이번 주에 개봉한 영화 중에 좀비 영화인 <좀비랜드 더블 탭>을 볼까 하다가 자막 읽기 귀찮아서 <블랙머니>를 봤습니다. 정지영감독은 1946년 생으로 올해로 72살입니다. 할아버지 감독이죠. 보통 나이든 원로 감독 영화는 고리타분하고 훈계하는 영화들이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 연출 기회도 주지 않죠.
그러나 정지영 감독은 다릅니다. 이 감독은 한결 같으세요. 1990년 <남부군>을 필두로 1992년 <하얀전쟁> 등의 당시 영화 소재로 꺼려하는 사회 비판적이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주제의 영화를 잘 만들었습니다. 한 동안 휴지기를 가지고 2011년 석궁 테러로 유명한 한국 판사들의 추악한 이면을 들춘 <부러진 화살>으로 재기에 성공합니다. <부러진 화살>은 블랙코미디 영화로 법복을 입고 근엄하게 판사봉을 두들기는 판사들의 저질스러움을 제대로 까발린 영화입니다. 대한민국 엘리트의 현주소를 제대로 담았죠.
이 영화와 괘를 같이 하는 영화가 <블랙머니>입니다.
론스타 먹튀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블랙머니>
어! 이게 왜 이리 재미있지? 정지영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든다고 해도 노익장이라서 그런지 감각적인 스토리 진행이나 편집을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올드한 스타일이죠. 마음은 청춘이라서 여전히 세상 부조리를 영화로 고발하는 깡이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나오고 경제 이야기를 다룬 <블랙머니>는 끌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요즘 나오는 영화마다 죽을 쓰는 조진웅이 주연입니다. 조진웅은 흥행작도 많이 찍었지만 믿고 보는 배우는 아닙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금감원 은행검사국 차장 최민규와 불륜 관계에 있던 대한은행 직원 박수경이 검찰의 호출을 받고 출두하다가 정체 모를 큰 트럭이 이 둘이 탄 차를 뒤에서 박아서 벼랑으로 떨어트립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박수경(이나라 분)은 불안에 떨다가 검찰에 자신을 구속 시켜 달라고 애원을 하다가 며칠 후 자살합니다.
이 두 사람은 70조 가치가 있는 대한은행을 1조 6천억 원에 매각하는데 큰 역할이자 근거가 된 BSI 자기자본비율을 조작한 서류를 팩스로 넣고 그 팩스를 금감원 고위층에 보고한 역할을 했습니다. 검찰은 이 두 사람의 수상한 관계를 눈치채고 잡아 들이려고 하는데 핵심 참고인이자 용의자인 두 사람이 사망하면서 수사가 꼬이게 됩니다.
박수경은 죽으면서 자신을 성추행 했다면서 무대뽀로 수사를 한다고 해서 '막프로'라는 별명이 있는 양민혁 검사(조진웅 분)가 자신을 성추행 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습니다. 양 검사는 억울하지만 검사 조직을 위해서 1개월 감봉이라는 징계를 받습니다. 양민혁 검사는 펄펄 뜁니다. 하지도 않은 일을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했다고 해야 하는 자체가 짜증이 납니다.
양민혁 검사는 이 박수경과 최민규가 불륜 사이였고 스타펀드가 70조 짜리 대한은행을 1조 6천억원에 꿀꺽 먹은 사태에 큰 역할을 한 것을 알게 되고 이 박수경이 자살이 아닌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확신을 합니다. 양민혁 검사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이 사건을 파헤칩니다.
영화 <블랙머니>는 많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본 매판 자본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으로 인수하고 수조 원의 큰 차익을 남기고 다른 회사에 판매하려다가 한국 정부에 의해서 매각을 한 번 거부 당합니다. 그리고 2차 매각 시도를 2011년 시도합니다. 이 2011년을 배경으로 양민혁 검사라는 가상의 인물 등을 배치해서 이 사건을 환기 시키는 영화입니다.
당시 PD 수첩에서 이 외환은행을 인수 할 때 들어간 1조 6천억원의 출처를 찾아내는 과정을 담은 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명박, 박근혜라는 무능하고 부패한 두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바람에 관심 밖으로 멀어진 금융 범죄 사건입니다.
이 잊혀진 론스타 먹튀 사건을 영화로 만들 줄은 몰랐네요. 그러나 보고나면 잘 만들었다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것이 <블랙머니>입니다.
어! 이거 왜이리 재미있어? 기대 이상으로 꿀잼인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도 정치보다 더 딱딱하고 어려운 금융을 소재로 해서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많은 고민을 했나 봅니다. 영화는 수시로 이 사건의 핵심인 1조 6천억원을 투자해서 70조짜리 은행을 먹어 삼치고 수조원의 경영 프리미엄을 붙여서 판매하러는 야수자본주의인 스타펀드를 각인 시킵니다.
금융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영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 BIS 비율 정도는 알고 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올해 수능 국어 문제에도 나왔던 BIS 비율이란
BIS 비율 : 국제결제은행(BIS)에서 은행에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로 은행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은행의 위험 자산에 대한 일정 비율 이상의 자기 자본을 보유하도록 하는 비율로 은행의 신용도를 표시하는 비율입니다.
쉽게 말해서 은행에서 1조를 대출해 줬는데 이 1조가 부도가 나면 은행도 부도가 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은행이 1조라는 돈을 가지고 있고 그 돈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쉽게 말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 이상으로 대출을 해주지 말라는 비율입니다. 실제로는 은행은 돈 남는 사람들이 맡긴 예금, 적금을 담보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출을 해주고 이자라는 수익을 먹고 삽니다. 따라서 돈이 있는 만큼 빌려주는 건 아닙니다. 다만 대출 했던 돈을 못 받게 될 때 그걸 은행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돈으로 매꿀 수 있는 능력이 좋아야 합니다. BIS 비율이 높으면 우량 은행, 낮으면 부실 은행으로 언제 부도가 나도 할 말이 없습니다.
영화 초반에 죽은 금감원 직원과 대한은행 직원은 이 대한은행의 높은 BIS 비율을 속이고 9%라는 낮은 BIS 비율을 적은 서류를 대한은행에서 금감원으로 팩스로 넣고 이 팩스로 받은 5장 짜리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한은행을 부실은행으로 판정하고 70조 짜리 대한은행을 1조 6천억원에 매각을 결정합니다.
이 어처구니 없는 비리에는 금감원 고위층과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전현직 경제 관료들이 엮여 있습니다. 이들을 흔히 경제 마피아, 모피아라고 합니다.
이 모피아의 실체를 찾기 위해서 열혈검사 양진혁 검사가 혼자 암중모색합니다. 그러나 혼자 하려니 여러모로 힘에 붙입니다. 검찰도 추적을 하고 있고 신임 검찰총장이 이 대한은행 헐값 매각 사태를 철저하게 조사하려고 하지만 모피아들의 견제를 심하게 받습니다. 게다가 양진혁 검사는 이 스타펀드의 대한은행 헐값 인수 사건을 담당하는 중수부 소속도 아닙니다.
양 검사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인권 변호사이자 스타펀드 실체를 잘 알고 있는 선배 변호사 서권영(최덕문 분)의 힘을 빌립니다. 여기에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 분)와도 손을 잡습니다. 영화 초반 김나리 변호사와 양진혁 검사는 창과 방패로 손을 잡으면 안 되는 관계입니다만 손을 잡는 모습에 의아했고 이게 목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거슬렸습니다.
영화는 김나리 변호사가 비록 매판자본인 스타펀드와 대한은행을 변호하는 변호인이지만 워낙 정의심이 넘쳐서 내편이라고 해도 위법 행위에는 쓴소리를 하는 열혈 변호사라는 설정을 겁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익에 불리한 일을 서슴치 않게 하는 모습은 과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김나리 변호사가 모피아의 두목인 전 총리인 이광주(이경영 분)을 계속 몰아 부치는 모습에서 마음이 풀어집니다. 또한 검사가 되길 포기한 이유도 검찰 조직 내의 부정부패가 만연한 모습에 염증을 느껴서라는 자기 변호의 말과 김나리 변호사의 협조를 넘어서 양 검사와의 사건 공조로 사건의 실체를 파고드는 모습이 아주 짜릿합니다.
영화를 30분 정도 보다가 어~ 이거 왜 이리 재미있지? 금융 비리 영화가 이리 재미있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재미가 있습니다. 이 재미는 탄탄한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조진웅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재미도 꽤 있습니다.
조진웅이 연기하는 양민혁 검사가 다혈질에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불법도 서슴치 않게 하는 융통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간간히 잽으로 날리는 유머가 잘 꽂힙니다. 딱딱할 것만 같은 영화가 주인공이 유머를 살짝 곁들여지니 캐릭터가 더 맛깔스럽게 다가옵니다. 다만 과장된 행동과 전략 없이 너무 무대뽀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좀 과장되어 보이는 면이 있는 것은 아쉽지만 저런 스타일이 아니면 모피아라는 거대한 권력단체를 혼자 대항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영화 <블랙머니>는 열혈검사 양민혁과 그를 돕는 김나리 변호사의 활약을 통해서 모피아라는 실체에 접근해 가는 스릴을 제공합니다. 여기에 대한은행 매각 결정일을 카운팅 하면서 쪼는 맛을 살짝 가미합니다.
론스타 먹튀 사건을 모르고 봐야 더 재미있는 <블랙머니>
공동생산 후에 공동의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공산주의가 멸망한 후 공산주의의 원조인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 전 세계의 공산국가들의 인간의 소유욕을 반전의 원동력으로 삼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정답이고 항상 옳을까요? 부작용은 없을까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야수자본주의가 점령한 한국의 빈부격차를 담아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야수자본주의가 점령한 국가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한국의 야수자본주의의 최정점을 찍은 집단이 모피아입니다. 재정경제부 출신의 전현직 고위 관료들과 경제계 수장들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마피아처럼 자기들끼리 한국 경제를 다 해먹는 집단체로 마피아와 비슷해서 모피아라고 합니다.
론스타의 먹튀 사건에는 모피아와 모피아의 사주를 받는 금감원 관료들이 엮여 있는 대형 비리입니다. 영화 <블랙머니>는 이들의 실체와 부패 파티를 벌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모피아를 분쇄하려는 열혈 검사와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놀라운 이야기를 후반에 펼쳐냅니다. 론스타 먹튀 사건을 사전에 검색하고 보면 재미가 반감하기에 론스타 먹튀 사건을 모르고 보서야 그 충격이 커집니다.
현재진행형인 론스타 사건을 환기시켜준 좋은 영화, 추천 영화 <블랙머니>
<국가부도의 날>과 괘를 같이하는 경제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다만 <국가부도의 날>은 3가지의 이야기를 멱살 잡고 끌고 가다 보니 집중도가 떨어졌지만 한국의 유일한 철학인 돈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은 영화였습니다. 영화 <블랙머니>는 집중도가 좋습니다. 곁가지 이야기는 다 쳐 버리고 론스타 먹튀 사건을 집중하면서 2011년 당시 언론과 검찰 그리고 모피아들의 추악한 파워 게임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이하늬가 연기한 김나리 변호사입니다. 이하늬는 올 봄 방영해서 빅히트를 친 SBS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부패한 검사로 출연했는데 흥미롭게도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중구에 있는 약현성당에서 김나리 변호사와 양민혁 검사가 손을 잡습니다. 부패 경찰서장으로 나온 정인기 배우가 신부님으로 나오는 것도 잔재미입니다.
김나리 변호사는 초반에는 설정이 좀 어색했는데 영화 후반에 결정적 한방을 제공합니다. 김나리 변호사의 결정적 한방이 이 영화에 큰 울림을 줍니다. 정말 잘 조율된 캐릭터입니다.
이 론스타 매판자본 먹튀 사건은 한국 모피아와 연루 되어 있고 현재진행형입니다. 대한민국 고위층 특히 경제 관료 출신들의 썩어빠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영화 <블랙머니>입니다. 그런데 론스타 사건과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관객에게 조용히 귀에 대고 말 합니다. 여기에 당신이 낸 세금도 걸려 있다고 조용히 알려줍니다.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많이들 보셨으면 하네요
별점 : ★★★☆
40자 평 : 국익을 위한다는 모피아의 실체를 제대로 까발린 영화 블랙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