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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과 파리의 달콤한 만남 매그넘 인 파리 사진전 본문

사진정보/사진전시회

매그넘과 파리의 달콤한 만남 매그넘 인 파리 사진전

썬도그 2019.10.01 13:52

요즘 예술의 전당에서 많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피 사진전도 열리고 있죠. 그 바로 옆인 한가람미술관에서 <매그넘 인 파리>가 9월부터 2020년 2월 말까지 한가람미술관 제 1전시실, 2전시실, 3전시실에서 전시를 합니다. 

꽤 공간이 큽니다. 이전에 봤던 유료 사진전 <에릭 요한슨> 사진전이 너무 작은 공간에 전시를 해서 큰 불만이었는데 이 <매그넘 인 파리>는 넉넉한 공간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는 프랑스 국기가 나부끼는 개선문 사진이 크게 달려 있네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아닌 출구를 나온 후에 만나는 선물가게인 아트샵도 있습니다. 

이번 <매그넘 인 파리>의 전시회에 나온 사진들을 묶은 도록으로 사진과 텍스트가 함께 있습니다. 가격은 27,000원입니다. 


작은 4x5 사이즈의 사진들도 판매하고 있는데 장당 2천원입니다.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하는데 아마 유료일 듯합니다.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도슨트는 오후 2시, 4시 2회에 있고 토,일, 공휴일은 진행하지 않습니다. 

입구에는 매그넘 사진가들의 사진들이 붙여져 있네요. 


사진집단 매그넘이란?

보통 사진기자는 특정 언론사에 소속이 되어서 활동을 합니다. 따라서 직장인답게 상사의 지시에 따라서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언론사에 전송합니다. 이러다 보니 언론사 입김이 많이 들어가죠. 언론사 논조나 사조에 의해 자신들에게 입맛이 맞는 사진을 신문이나 잡지에 싣습니다. 이런 데스크의 게이트키핑 시스템은 현실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 보도사진가도 마찬가지죠. 로버트 카파는 라이프나 뷰 같은 사진잡지에 사진을 팔아서 돈을 벌던 보도사진가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서 자신만의 시선, 현장의 느낌이 사진잡지사에게 휘둘리게 되자 언론사나 잡지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사진 집단인 매그넘을 만듭니다. 그렇게 1947년 4월 뉴욕에서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시무어', '카르티에 브레송', '조지 로저'가 뭉쳐서 만든 사진 집단 매그넘이 만들어집니다. 

이 매그넘은 다양한 사진가들을 추가로 영입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주인 언론사, 잡지사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선을 담는 매그넘은 포토 저널리즘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포토 저널리즘 보다는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의 모임으로 살짝 변한 느낌입니다. 현재 매그넘 소속 사진가는 42명으로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매그넘은 많은 사진가들이 있지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가 대표적인 사진가입니다. 두 사람은 별도의 개인 전시회도 꽤 많이 하죠. 요즘은 뜸하지만 2010년 사진 붐이 불던 시기에 브레송 사진전과 로버트 카파 사진전 참 많이 했어요. 


이 매그넘 사진집단이 촬영한 다양한 파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매그넘 인 파리>입니다. 이 조합은 상당히 이채롭습니다. 사실 이 매그넘이라는 곳이 유명해진 것이 2차세계대전의 전쟁사진으로 유명해진 로버트 카파가 만든 곳이라서 보도사진 성향이 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그넘이 창립된 것이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입니다.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등 전 세계에서 분쟁이 일어났지만 매그넘 사진집단은 그런 곳의 사진을 많이 담지는 않고 오히려 일상 사진, 여행 사진에 가까운 사진 등을 많이 담았습니다. 실제로 카파만 빼고 브레송도 그렇고 대부분의 매그넘 소속 사진가들의 사진들은 전쟁 사진이 없습니다. 항상 파티가 열리는 파리 같은 사진들이 많죠. 

그냥 일상을 주로 기록하는 사진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매그넘 사진가들의 개인적인 시선이 들어가긴 하지만 대채적으로 과격하지 않고 일상에서 빛나는 보석을 잡는 거리 사진가 또는 일상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매그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네요. 

공간은 꽤 넓었습니다. 이 건물 지하에서 전시한 <에릭 요한슨>사진전은 너무 좁아서 불편할 정도였는데 여기는 크고 넓직하고 의자도 있어서 좋네요. 


파리, 전쟁과 가난으로 물들다 (1932~1944년)

주제별로 시대별로 사진을 전시했는데 먼저 시대별 전시가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1932년부터 1944년이라는 기간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1932년은 로버트 카파가 활동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라이카에서 소형 필름 카메라를 발명한 시기이기도 하죠. 라이카의 소형 카메라 덕분에  야외에서 편하고 쉽게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일상 사진들 거리 사진들이 많이 담기기 시작합니다. 

1932년~1944년 사진들은 1차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프랑스 파리 사람들의 궁핍함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이념의 시대 답게 다양한 이념 대립이 심했습니다. 위 사진은 로버트 카파가 1936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평화주의자들이 스페인의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파시스트 정권과 소련의 친선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포스터에는 스탈린, 고리키, 프랑스 소설가 앙리 바르뷔스 초상이 있고  '인민전선과 함께하는 사회주의 연대가 세계 평화를 지킨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스페인 내전의 인민전선은 반파시스트이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모임입니다. 그런데 파시스트인 프랑코와 사회주의의 두목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탈린이 손을 잡으라고요?

뭐 이념이 혼재하고 혼탁하던 시절이라서 그냥 다 같이 손잡고 살자 같기는 하네요. 그러나 아시겠지만 이념이 불쏘시개가 되어서 2차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파시스트인 히틀러를 무찌르기 위해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나라가 손을 잡고 외계인인 히틀러를 때려 잡고 바로 둘이 싸움을 합니다. 


1936년~38년까지 프랑스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반파시스트 정당들의 연합인 인민전선이 정권을 잡습니다. 그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분들입니다. 


1945년 ~ 1959년 재건의 시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는 재건을 시작합니다. 미국의 마샬정책에 의해서 미국 달러의 원조를 받아서 고속 성장을 합니다. 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국제 사회 패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확 넘어갔고 유럽은 많은 나라가 미국의 원조를 받았습니다.

프랑스는 미국 달러를 받아서 농업 국가인 프랑스를 공업 국가로 탈바꿈합니다. '마크 리브'의 그 유명한 에펠탑의 도장공이네요. 에펠탑 철골이 녹슬지 않게 페인트 칠을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댄서 같습니다. 


개가 개를 타는 서커스네요. 참 평화로운 일상입니다. 

이 사진도 마크 리브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봐도 이 사진은 몰래 촬영한 사진인데 초상권 허락을 받았을까? 당시는 초상권 개념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리 사진 전성시대 캔디드 사진의 전성시대였습니다. 덕분에 카메라 의식하지 않은 (이 사진은 다르지만) 자연스러운 거리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몰래 촬영했다간 큰일나죠. 


전시 공간도 넓고 사진 주제들도 여유로워서 감상하기 좋네요. 아이를 안고 사진 관람을 하는 분이 눈에 확들어왔습니다. 아이 키우는 주부들이 이런 문화 관람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죠. 그럼에도 이렇게 아이와 함께 사진 관람을 하네요. 

이 사진은 '로버트 카파'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카파도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런 일상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뭐 사실 사진가라는 직업이 전쟁이 나면 전쟁 사진가가 됐다가 평화 시대에는 일상 사진가가 되죠. 


이 사진도 재미있습니다. 파리하면 카페죠. 노천 카페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다를 떱니다. 한 노천카페가 영업이 끝나서 의자를 다 치웠는데도 저 남녀는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종업원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제 끝나나 하고 있네요. 

위 사진은 모두 '로버트 카파'가 촬영한 컬러 사진입니다. 이중에서 1장은 메인 사진으로 활용되고 있네요. 


1960~1969년 낭만과 혁명 사이에서

사회도 사람과 같아서 사춘기나 갱년기 같은 시기를 지나갑니다.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준 프랑스 68혁명은 청춘들의 혁명으로 많은 나라에 영향을 줍니다. 이 프랑스 68혁명은 교육 제도의 부조리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주도했습니다. 명색은 교육제도이지만 사실 이들은 기성 세대가 만든 틀에 대한 거부 운동이었습니다. 기성세대들에 대한 반기를 든 프랑스 68운동으로 프랑스 교육은 큰 변화를 겪습니다. 

한국의 1987년 6.10 민주항쟁도 기성세대들에 대한 반기를 든 모습이라고 볼 수 있고 홍콩우산혁명도 미래가 불안한 청년들이 가장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미래가 어두우면 분노하게 되고 암울한 미래를 매일 같이 바라보고 사느니 지금 바꿔보자고 홍콩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혁명은 피를 부르죠. 민주주의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탑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든 민주주의의 혜택을 가장 보수적인 인간들이 악용하고 있죠. 

포토존도 있습니다. 사진기자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1970~1989년 파리는 날마다 축제

우리가 파리를 낭만의 도시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70년대 전후가 아닐까 합니다. 2차세계대전 이전에서 유럽의 중심국가이자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2차대전 이후 뉴욕으로 문화의 중심지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70년대 전후로 패션을 선두로 다시 프랑스가 패션 문화의 도시로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유와 낭만의 도시 파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시위를 하는 군중 속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님이 있네요. 이 사진을 보니 며칠 전 지켜봤던 서초동 촛불시위가 생각나네요. 한국도 시위 문화가 아주 잘 정착되었습니다. 대규모 시위지만 아이들 손잡고 나온 부모님들이 참 많았습니다. 산교육이 달리 산교육인가요? 유튜브로 모니터로 보는 세상과 실제 세상은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느낀 서초동 촛불시위는 하나의 축제였습니다. 한국이 애초부터 이런 나라였냐? 아닙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노무현 정권 당시 농민 시위가 엄청났습니다. 서울시청 앞을 가득 매운 성난 농민들이 죽창을 여러 갈래로 잘라서 전경 눈을 찌르고 전경들은 방패로 이 시위대를 막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시위 진압 과정에서 농민 2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본 마지막 과격 시위는 광우병 촛불 시위였습니다. 이 시위는 초창기에는 평화 시위였다가 나중에는 전경차를 끌어내는 등의 과격한 행동이 보이면서 변질이 됩니다. 그러나 광화문 탄핵 시위 때는 달랐습니다. 과격 행동 전혀 없고 쓰레기 줍는 20대 청년들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가 문화의 도시로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루브르 박물관입니다. 유리로된 피라미드를 만들고 오르세역을 오르세 미굴관으로 만들고 퐁피드 센터가 만들어집니다. 이 유리 피라미드는 당시에 엄청난 논쟁거리였습니다. 흉측하다 아니다 설전이 일어났는데 지금은 에펠탑처럼 파리의 명물이 되었죠. 

파리 에펠탑도 흉층한 조형물이라고 비난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파리 아니 프랑스의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컬러 사진의 대가인 '마틴 파'의 사진입ㄴ미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피사체들이네요. 마카롱, 에펠탑, 달걀. 프랑스는 수탉의 나라라고 하잖아요. 농경사회인 프랑스를 상징하고 수탉이 자존심 쎄고 고집도 쎄고 용맹하고 자기 목소리 잘 내는 동물이라서 프랑스의 상징동물이 되었습니다. 

매그넘의 최근 사진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국기 앞 양 옆에는 빔프로젝트로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플라뇌르, 파리의 산책자라는 주제로 다양한 프랑스 파리의 풍경을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파리라는 곳이 사진으로만 보면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여유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파리에 가면 개똥 천지에 시궁창 냄새에 인상을 쓸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환상과 달리 현실이 시궁창이라는 '파리 이펙트'라는 용어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면에서 사진은 냄새를 담지 못하는 도구입니다. 또한 프레이밍의 도구라서 보이고 싶은 모습만 담을 수 있습니다. 어떤 관광객이 파리까지 가서 개똥을 찍겠습니까. 개똥을 피해서 멋진 에펠탑 배경으로 찍죠. 

그런면에서 파리는 매일 매일이 파티지만 동시에 개똥내가 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2개의 이미지에서 낭만의 파리만 섭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니 낭만만 취하고 그렇게 낭만의 도시 파리는 계속 이어집니다. 

일상 사진의 대가 <엘리엇 어윗>

프랑스 국기를 지나면 이 <매그넘 인 파리>의 메인 사진가라고 할 수 있는 '엘리엇 어윗'전시회가 열립니다. <매그넘 인 파리>는 1930년대부터 2010년대 까지의 파리를 시대별로 조망하고 대표적인 사진가들의 사진만 따로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벽 가득 '엘리엇 어윗'의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누가 봐도 연출 사진임을 알 수 있는 이 사진은 잘 된 연출 사진입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발레 포즈를 하고 있는 사이에 연인이 포옹을 하고 있네요. 


엘리엇 어윗(Elliott Erwwitt)는 현재 91세로 아직도 생존하고 계십니다. 매그넘의 최고령 사진가로 1928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분은 주로 일상 사진을 많이 찍고 즐겨 찍습니다. 1953년 로버트 카파의 소개로 매그넘 사진가가 된 후에 지금까지 프랑스 파리를 담은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을 담은 사진을 많이 담았습니다. 


엘리엇 어윗은 강아지 사진이 참 많아요. 강아지들이 초상권이 없어서 사진 담기 편하기도 하지만 여유와 일상의 편안함을 잘 대변하는 피사체이기도 하죠. 


그렇게 어윗의 사진 40여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파란방을 지나면 프랑스 국기의 하얀색 방이 나옵니다. 여기는 매그넘 사진가들이 촬영한 파리지엥 초상 사진들이 많습니다. 물론 유명한 파리지엥만 담겼습니다. 

"파리는 언제나 좋은 생각이다" - 오드리 햅번-

수 많은 파리에 대한 예찬을 담은 문장이 있었는데 이중에서 가장 예쁜 문장은 몸과 마음 모두 예뻤던 햅번입니다. 햅번은 미모 뿐 아니라 마음도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의 자녀들이 세월호 추모의 숲을 만드는 걸 보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데요. 

빨간 방은 패션의 성지, 패션의 메카인 파리를 담은 패션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벽에 걸어 놓지 않고 2단으로 쌓아 올렸네요. 


프랑스의 대표 자동차 메이커 푸조의 역사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건축 및 파리 지도도 볼 수 있습니다. 


1,2 전시장은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동영상 촬영은 금지입니다. 3관은 사진 및 동영상 촬영 모두 금지입니다. 3관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브레송 사진은 워낙 많이 봐서 대충 보고 나왔는데 신기한 건 핀 조명이 액자 위로만 떨어지는 조명을 해 놓았습니다. 마치 백라이트가 켜진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덕분에 사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보였습니다. 먼저 이 <매그넘 인 파리>는 기록 사진이 세월의 더깨를 입고 예술의 경지로 넘어가는 사진들입니다. 뭐가 예술이다 기록이다 구분하기 어렵지만 기록물이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로 인정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기본은 기록 사진입니다. 그렇다면 촬영 연도와 캡션과 사진가 이름을 좀 더 크게 소개했으면 하는데 너무 작고 낮은 곳에 작품명, 사진작가 특히 촬영년도가 너무 작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좀 더 크게 보여주면 안될까요? 허리를 수시로 숙이고 가까이서 봐야 하는 불편함이 많네요. 또한 유명한 사진들이 생각보다 적은 것은 아쉽네요. 

<매그넘 인 파리>는 9월 25일부터 2020년 2월 9일까지 전시됩니다. 
입장료는 성인 1만 5천원입니다. 파리의 변화상을 담은 매그넘 사진가들의 사진들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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