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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사진/사진전시회

늙음이 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에이징 월드 전시회

by 썬도그 2019.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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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만 한국은 유난스럽게도 젊음을 찬양합니다. 동안이라는 말이 극찬이 된 나라! 늙음이 추하고 더럽고 자기 관리 실패라고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공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몸을 숭배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이어트를 하거나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몸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은 몸을 우러러 보는 것을 뭐라고 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기 좋지 않은 몸을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젊은 것을 아름다운 것, 늙은 것을 추한 것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어제보다 더 젊어 질 수 없지만 젊어 보이기 위해서 많은 돈을 투입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무 자르듯 뭔가 똑 부러지게 잘라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만약 똑 부러지게 잘라진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을 너무 자기 편한대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증입니다. 

젊어서 어리숙하고 추할 수도 있고 늙어서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몸만 바라본다면 젊었을 때가 가장 생기가 넘치죠. 그러나 젊음과 늙음을 몸으로만 정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젊은 몸에 어리숙한 영혼을 가지고 있고 늙은 몸에 성숙한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1장 1단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 늙은 분들을 보면 젊은 사람들보다 성숙한 영혼을 가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경험이 많아서 대체적으로 삶에 대한 대처 방법을 잘 압니다. 


늙음에 대해서 말하는 서울시립미술관 에이징 월드 전시회 전시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는 8월 27일부터 10월 20일까지 <에이징 월드>라는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늙어감에 대해서라는 주제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영문 제목이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내일도 날 사랑해 줄래요?)"가 흥미롭네요. 

전 세계적으로 평균 수명은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입니다. 10명 중 2명은 노인입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죠. 이 <에이징 월드>는 노화를 둘러싼 부정적인 인식을 살펴보는 전시회입니다. 


<로렌 그렌필드>

색션 1은 불안한 욕망입니다. 인간은 20대 초반에 성장을 멈추고 이후 서서히 늙어갑니다. 노화를 받아들이고 사는 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늙은 몸에 20대 때 입던 옷을 입고 삽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분들을 젊게 산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헛된 욕망 또는 주책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시절 행동을 그대로 하는 분들은 노화에 저항을 하지만 그게 지속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노화에 저항하면서 사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가 색션 1 불안안 욕망에 담겨 있습니다. 


<커먼 어카운츠 / 이고르 브로가도, 마일스 거틀러>

커먼 어카운츠라는 이 작품은 뷰티 블로거의 침실을 형상화 한 작품입니다. 노화에 대한 가장 흔한 저항은 몸을 젊게 고치는 성형입니다. 보톡스를 넣어서 주름을 폅니다. 가장 흔한 방법이고 성공적인 방법일 수 있지만 몇몇 연예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런 인위적인 노화의 거부는 한 번에 젊음 위장 대가에 대한 청구서를 내밉니다. 딱 보면 보톡스로 주름을 펴서 인위적인 얼굴로 인한 거부감이 무척 심해집니다. 반대로 노화를 일시 정지 시키는데 성공한 연예인들은 동안에 대한 추종자를 만듭니다.


<바니타스 흉상 / 이병호>

석고 흉상 같습니다. 조각은 움직이지 않기에 죽은 생물 같습니다. 이병호 작가는 이 석고 흉상 대신 말캉한 실리콘으로 흉상을 만들고 그 안에 공기를 주입해서 살아 숨쉬는 조각을 만듭니다. 


이병호 작가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늙어갈수록 사람들의 이목도는 떨어지게 되고 점점 풍경이 되거나 무생물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나이들수록 이목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목에 신경 안 쓰는 것이 좋은 점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걸 악용한 중노년들이 있죠. 바로 공중도덕을 안 지킵니다. 

길바닥에서 오줌을 싸고 휴지를 막 버립니다. 이런 말을 하면 젊은 것들도 공중도덕 안 지키긴 마찬가지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대체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이 공중도덕을 더 안 지킵니다. 이는 이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에 부끄러움도 점점 줄어드는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그러니까요. 분명 젊었을 때는 부끄러워 했을 행동을 뻔뻔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공중도덕을 안 지킨다는 것은 아니고 다른 쪽에서 좀 뻔뻔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죠. 젊었을 때는 존댓말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데 나이 드니 나에게 존댓말을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지니 으스대는 것도 있겠죠. 

한 중년 여성 분들이 한 작가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 내일도 여전히 날 사랑해 줄래요?/ 2004년 작/ 안네 올로프손 작품>

이 전시회의 제목이기도 한 '내일도 여전히 날 사랑해 줄래요?'입니다.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진 속 모델들은 40대 전문직 여성들로 화가, 작가, 수십가들입니다. 


사진은 멀리서 보면 그냥 꽃중년의 모습이지만 가까이 가면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습니다. 노화의 상징인 주름을 형상화 했네요. 40대가 되면 신체적인 변화가 심합니다. 여기에 갱년기까지 겹치면 우울과 화를 몸에 달고 삽니다. 특히 여자 분들이 신체적인 노화에 큰 우울을 느낍니다. 물론 남자인 저도 노화가 반갑지 않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조금만 활동해도 쉽게 피곤합니다. 이게 몸도 그렇지만 생각을 깊게 하면 쉽게 피곤합니다. 그래서 간단하고 간편하고 복잡하지 않은 것만 찾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노화는 사고력의 깊이도 얕아지고 이러다 보니 보이스 피싱에 잘 걸립니다. 저도 왜 노인들은 오래 살았는데 왜 사기를 잘 당할까 했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노인이 되면 사고력이 무척 얕아집니다. 


<늙은 기계 연작 시리즈 / 박은태 >

이 작품도 꽤 인상 깊었습니다. 노인과 용도 폐기된 버려진 기계를 접목했습니다. 


노인은 사회에서 은퇴한 사람들입니다. 젊음이 빠져 나가서 근력이 떨어지고 판단력도 떨어집니다. 기계로 말하면 오래된 기계라서 효율도 떨어지죠. 그래서 우리는 노인들을 은퇴시킵니다. 은퇴한 노인들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노인정과 탑골 공원 같은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노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죠. 

전 가슴 아픈 것이 노인들은 왜 노인들끼리 이야기를 하냐 이겁니다. 이는 노인 분들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는 100년도 안 되는 시간에 근대화와 현대화를 모두 진행했습니다. 너무 급속하게 발전하다 물리적 발전 속도에 맞는 정신적 발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딥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살던 시절의 세상 이치와 지금 젊은이들이 사는 세상 이치가 많이 다릅니다. 삶의 근본은 동일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다르죠. 문제는 이 다름으로 인한 괴리감이 크고 이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하기에 같은 또래끼리만 대화를 하는 단절이 심합니다. 한국은 단절 사회입니다. 20대는 20대끼리만 이야기를 하고 40대를 꼰대라고 분류해서 배척합니다. 이런 식의 배척이 사회 깊숙하게 있다 보니 세대간 단절은 갈수록 더 심해질 듯 합니다. 


오형근 사진작가의 아줌마 시리즈도 있네요. 이 아줌마 시리즈는 워낙 자주 많이 봤어요. 1997년 사진이니 한 세대 전 사진이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아줌마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아줌마는 들풀 같은 존재입니다. 이름 대신 아줌마라는 익명에 가까운 이름으로 불리는 아줌마, 아저씨들. 누군가에게는 엄마아빠이지만 길에서 만다는 중년들은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분리됩니다. 아줌마 아저씨는 무성의 존재이기도 하고 무관심의 존재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무례함의 대명사가 아줌마 아저씨가 되기도 합니다. 저도 아저씨지만 같은 아저씨들을 보면서 눈살을 지푸릴 때가 많습니다. 좀 무례해야야죠. 그렇다고 이 아줌마 시리즈가 개저씨 개줌마를 담은 사진은 아니고 무성과 익명에 가까운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은 아줌마라는 존재를 정면으로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인 그들을 증명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3층 공간에는 '프로젝트 21g 언박싱' 전시가 있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죽을 때 21g의 몸무게가 준다고 하죠. 이에 이 21g이 주는 이유가 영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물론 증명 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예술가들은 이 연구에 상상을 더해서 영화로도 만듭니다. 


 '프로젝트 21g 언박싱'은 '준비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로 친필로 작성한 문장과 가장 의미 있는 물건을 21g 박스에 보관을 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터로 신청을 하면 추첨을 통해서 전시됩니다. 


 이분은 베개를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 하셨네요. 저는 저승 갈 때 딱 1가지 물건만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카메라나 라디오를 가지고 가고 싶네요. 특히 카메라는 저에게 제 2의 삶을 살게 해준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꽤 좋은 전시회입니다. 늙어가는 것이 추하고 더러운 부정적인 인식을 살펴보고 연령차별주의를 살펴 볼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노화는 20대 중반 이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자연 현상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꾸 노화를 불결하고 추하고 더럽게 여기는 지 모르겠네요. 

그런 건 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매년 같은 일의 반복이라서 변화가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인 촌로들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지혜로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젊은 사람들이 지식은 더 많이 가지고 있고 더 빨리 찾습니다. 다만 그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데는 경험이 많지 않으니 미숙합니다. 반면 노인들은 지식 쌓기를 멈춘 세대로 더 이상 지식을 넣으려고 하지도 넣어지지도 않습니다. 경험만 늘어서 자신의 경험이 마치 세상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죠. 그렇게 생각이 고착화 되면 꼰대가 됩니다. 

이런 젊음과 노인이 가지는 문제를 깊게 파고드는 전시회는 아닌 점은 좀 아쉽네요. 곱게 늙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머금고 전시회를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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