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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모자가 굶어 죽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굶어서 죽는 사람이 어디 있어? 누가 또 정부를 비난하기 위한 가짜 뉴스를 만들었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잖아요. 먹을 것이 넘쳐서 곳곳에 살 빼려고 피트니스 센터가 있는 나라인데 어떻게 굶어 죽을 수가 있어요. 

지금도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죽음의 원인이 다른 것에 있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이 뉴스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공무원의 복지에 대한 태도를 비판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목수인 다니엘 블레이크씨는 혼자 사는 노인입니다. 일을 해야 자신의 집세며 각종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는데 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둡니다. 이렇게 갑자기 백수가 되면 이 사람이 먹고 살 수 있게 국가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영국은 선진국이기에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죠. 

그러나 다니엘 블레이크씨는 깐깐한 심사 과정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실업 수당이라고 받으려고 했지만 모든 서류를 인터넷으로 접수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있습니다. 노인인 다니엘에게 인터넷은 거대한 장벽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서류 접수 과정에서 공무원들과 티격태격하게 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캐티는 집값이 더 싼 다니엘이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옵니다. 지리를 잘 몰라서 몇 분 늦게 관공서에 도착했는데 몇 분 늦었다고 무자비하게 생활비인 생계보조금을 받지 못합니다. 캐티는 아이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읍소를 하지만 단지 정말 단지 몇 분 늦었다는 원칙만 강조하는 공무원에게 복지라는 난로가에서 쫓겨납니다. 

너무나 배고프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던 캐티는 다니엘과 함께 식품 배급소에 갔다가 잠시 이성을 잃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깡통을 따서 마구 퍼마시다가 자신의 행동을 뒤 늦게 깨닫고 펑펑 웁니다. 다니엘은 그런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캐티를 다독입니다. 

다니엘은 관공서 담벼락에 자신의 이름을 쓰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게 되면, 다 잃게 된 거예요"

다니엘은 가난을 증명해야 너에게 먹을 것을 주는 현재의 복지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이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특히 복지를 담당해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받는 상처는 더 심합니다. 

이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공무원들의 복지 공무에 대한 시스템의 문제와 태도의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한 영화로 많은 한국 지자체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그런 이건 시스템의 문제라서 쉽게 해결되지는 못할 겁니다.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많은 서류와 복잡한 과정이 

복지의 온기를 식게 한다.


복지에는 보편적 복지가 있고 선택적 복지가 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이면 가난하던 수천억의 재산이 있는 부자든 상관없이 지하철을 무임 승차할 수 있는 것이 보편적 복지입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을 가려내서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생활비 지급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는 내 신분증만 제시하거나 그럴 과정도 필요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무료 음식 배급소에 스포츠카를 몰고 와서 수천만 원 짜리 시계를 차고 양복을 입고 줄을 서서 음식을 달라고 해도 줍니다. 보편적 복지는 나의 재산과 이력과 배경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복지를 제공합니다. 

반면 선택적 복지는 복지가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는 복지입니다. 이 선택적 복지는 복지의 온기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야 하기에 내가 가난하고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증명에 필요한 도구가 각종 서류와 증명서입니다. 

[뉴스AS] 주민센터도 갔었는데..봉천동 모자 비극 못 막은 '복지의 벽'  기사보기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가 기초생활수급자 8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발간한 올해 3월 발간한 연구보고서 ‘공공부조의 신청 및 이용과정에서 나타나는 빈곤의 형벌화 조치연구’에 따르면 수급 신청을 위해선 신분확인 서류, 부양의무자를 포함한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를 필수적으로 읍면동 주민센터에 제출해야 하며, 서류 접수 뒤 시군구 통합조사관리팀이 소득·재산조사 및 방문조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러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서류와 증빙을 요구 받거나 죄인 취급·냉대를 받는 불쾌한 경험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위 기사를 보면 기초생활수급자 8명을 인터뷰해보니 신분확인 서류, 부양의무자를 포함한 금융정보 등의 많은 서류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죄인 취급, 냉대를 받는다면서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는 많은 국민들이 겪어 봤을 겁니다. 어떤 복지 혜택을 받으려고 하면 공무원들이 무슨 자신의 주머니에서 주는 돈처럼 하대하거나 국가의 돈을 받는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는 태도로 대하는 공무원들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공무원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친절한 공무원, 발로 뛰는 공무원도 많습니다만 여전히 공무원이 상전인 줄 아는 못된 공무원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북한이탈주민 역시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한 새터민은 “따뜻한 공무원들도 있지만 세금 축내는 사람으로 취급당한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학력이 높지 않고 나이가 많은 경우엔 필요한 서류 준비에 어려움을 겪다 수급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위 기사중 일부 발췌>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인터넷 사용법을 모르는데 서류 접수를 인터넷으로만 접수하는 시스템에 불같이 화가 났습니다. 정말 따뜻한 행정이자 복지라면 노인들을 위해서 대신 입력하거나 최소한 수기로 작성한 서류를 받아서 대신 입력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겠죠. 

그러나 우리네 공무원들이 어디 그렀습니까? 자기들 행정 편하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고통 전가를 하는 시스템이죠. 며칠 전에 제가 사는 구청 페이스북 운영자에게 이건 불합리하다!라고 지적했더니 그게 룰이라는 겁니다. 룰이 법이 그런 걸 어쩌라는 것이냐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솔직히 웃겼습니다. 내가 그 법을 만들었나? 내가 그 룰을 만들었나? 자기들이 만든 룰을 자기들이 지키면서 왜 나에게 하소연을 하지? 비판을 받고 지적을 받으면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고 민원인에게 최대한 편리한 쪽, 국민들이 불편한 점을 인지하고 스스로 고쳐 나가야하는데 이 공무원 생태계는 그런 적극성이 없습니다. 그냥마냥 모나지 않고 튀지 않고 룰 안에서만 움직이려고만 합니다. 

영화 <나, 다이엘 블레이크>에서 지리를 잘 몰라서 단지 몇 분 늦은 캐티에게 기초생활수급지 지원 신청을 막은 건 룰입니다. 자신들의 룰을 지키다가 캐티를 복지의 울타리 너머로 던져 버립니다. 


탈북자 모자의 죽음은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만약 굶어 죽은 것이 맞다면 그 1차적인 책임은 복지 시스템에 있습니다. 물론 탈북자 어머니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주민센터 직원이 방문하고 쪽지를 남겼는데도 연락을 안 취한 건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희망을 놓치면 어떤 도움의 손길도 거부하게 됩니다. 그나마 바지를 잡고 살아야 하지 않냐면서 설득하고 다독이고 안아주면 사람 마음이 봄 눈 녹듯이 풀립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서울시 복지 서비스인 찾아가는 동사무소 서비스가 1번 방문을 했지만 2번은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만 가지고 비난하긴 어렵지만 형식적인 방문으로 그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네요. 

법대로 하다가 탈북자 모자가 굶어 죽었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 아프로 무겁기만 합니다. 법에는 부양 가족 중에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이나 각종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 가족이 이혼을 해도 이혼을 하지 않고 별거 상태라도 신경 안 씁니다. 현실적으로 돈을 구할 수 없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서류 상에 부양 의무가 있는 가족이 있으면 복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게 법과 현실의 괴리입니다. 

솔직히 저 탈북자 모자가 위기에 처한 것은 이혼이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러나 아빠라는 사람이 이혼 후에 부양비 한 푼이라도 줬을까요? 안 줬으니까 저런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부양 의무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외면해도 현재의 법으로는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법이 그렇다면 복지 시스템이 가동해서 이 불쌍한 모자를 구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정말 많이 좋아지고 변했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그 크기가 줄어들 뿐 사라지지 않네요. 이는 현재의 복지 시스템이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택적 복지가 기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해는 합니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요. 

하지만 선택적 복지를 위해서 선별하는 과정에서 많은 서류를 요구하고 내 스스로 내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 상처가 쌓이면 나중에는 불쌍한 개 취급을 받느니 굶어 죽더라도 사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이제껏 묵묵히 내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굽실대지도 않았고 이웃이 어려운 상태면 그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나는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합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다니엘의 유서로 끝이 납니다. 이런 복지시스템의 제도적인 문제점,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공무원 생태계가 변하지 않으면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해당 지역 공무원이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잘못된 룰이라도 고통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행정을 하는 공무원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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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과지성 2019.08.20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면 중 캐티가 깡통을 까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눈물이 나더군요..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처참한 수치심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연신 죄송하다고 합니다.. 정말 미안해지고 고통스러운 장면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