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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인종문제를 유쾌하게 담은 꽤 좋은 영화 <그린북>

by 썬도그 2019.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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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9일에 개봉한 <그린북>을 보고 나온 분들은 한결 같이 좋은 영화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이렇게 호평 일색인 영화는 오랜만에 보네요. 개봉한 지 1달 반이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린북>은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오래 개봉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개최된 2019년 제 6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광의 작품상을 탔습니다.

<그린북>이 좋은 영화인 것은 알겠지만 작품상을 줄 정도인가에 대한 비판도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극찬은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라고 해서 어제 봤습니다. 어제 2월 27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라서 5천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볼 영화가 없어서 본 것도 있습니다. 


흑인 여행자들을 이용한 미국 남부 여행 가이드북 <그린북>

영화 <그린북>은 제 6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남우주연상도 받을만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비고 모텐슨'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영화 포스터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년의 백인이 운전을 하고 흑인이 뒤에서 팔을 펼치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딱 봐도 흑인이 고용한 운전사가 운전을 하는 모습 같네요. 이럴 수 있습니다. 성공한 흑인이 백인 운전기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풍경이 1960년대 미국 남부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의 고질병인 인종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기였지만 미국 남부는 여전히 인종 갈등이 심했습니다. 뭐 지금도 미국 남부는 흑백 인종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사회 속의 위상 때문에 속내를 내비치지 못할 뿐이죠. 


영화 <그린북>은 흑인 인권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결이 오바마 영화라고 하는 영화들과는 그 결이 조금은 다릅니다. 흑인 인권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백인과 흑인과의 우정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흑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기지만 크게 보면 로드 무비이자 버디 무비로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그린북>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보수적인 이탈리아 이민자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은 흑인이 쓴 물컵을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로 인종차별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자 유명 흑인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의 운전기사가 됩니다. 8주 동안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 지역을 도는 투어 공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해서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토니를 돈이 고용합니다. 

미국 남부는 흑인만 야간 통행 금지가 있을 정도로 인종 차별적인 법과 행동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린북은 흑인이 여행하기에는 위험한 미국 남부의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입니다. 이 책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발간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로 흑인들이 머무르기 안전한 식당, 모텔, 주유소 등을 표기했습니다. 


편견을 깨는 이야기 구도가 주는 흥미로움이 가득한 영화 <그린북>

돈은 흑인 왕자라고 할 정도로 고귀한 품성과 귀족처럼 자라온 사람입니다. 클래식 음악만 듣고 품위가 세상을 다스리고 제어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귀족과 같은 인물로 잦은 투어로 인해 이혼을 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가족이라곤 동생 밖에 없지만 동생과도 관계가 소원한 상태입니다. 반면 중년 백인인 토니는 이탈리아 사람 답게 근거리에 있는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할 정도로 화목하고 왁자지껄합니다. '떠벌이 토니'라고 불릴 정도로 입에 요실금이 있을 정도로 말이 쉴새 없이 나옵니다.


저속한 속어와 욕을 달고 사는 전형적인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미국 백인 이민자입니다. 이런 구도의 영화는 있었습니다. <언터처블 : 1%의 우정>과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다른 점은 흑인 인권을 다룬 영화라는 점이 다릅니다. 

보통 오바마 영화라고 불리우는 흑인 인권 영화 속의 흑인들은 가난하고 억압 받는 흑인으로 나옵니다. 백인은 가해자, 흑인은 피해자라는 시선으로 다루는 것이 보통의 오바마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린북>은 다릅니다. 극히 일부지만 성공한 흑인과 그를 모시는 백인 운전기사의 구도입니다. 기존의 편견을 깨는 구도가 주는 흥미가 꽤 좋습니다. 

영화 <그린북>은 2개의 주제가 흐릅니다. 하나는 백인 중산층 40대 배불뚜기 남성인 토니와 혼자 사는 상류층 흑인 돈의 문화적 차이가 주는 재미입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켄터키에 갔다가 프라이드 치킨을 맛있게 혼자 먹는 토니가 뒷자리에 있는 돈에게 치킨을 줍니다. 돈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고 기름이 옷에 묻을 수 있다고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치킨을 뜯으면서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삶을 서서히 받아 들입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클래식 음악한 하던 돈이 흑인 음악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재즈 연주를 하는 모습 속에서 세속의 삶의 재미를 느끼는 장면 등이 인상 깊네요. 마치 하얀 옷을 입고 더러움 근처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던 백조 같았던 돈이 떠벌이 토니를 만나면서 보통으로 사는 미국인들의 삶의 재미를 알게 됩니다. 이는 토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고 초딩들의 일기 같은 편지를 쓰던 토니가 수필 같은 편지 쓰는 법을 돈으로부터 배우게 됩니다. 이런 점만 보면 전형적인 버디 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가는 모습 속에서 흐뭇함이 뚝뚝 떨어집니다. 

티격태격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이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지만 서서로 물들어갈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린북>은 흑인 인권 영화이기도 합니다. 다른 오바마 영화에 비해서 다루는 비중은 크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허투로 담거나 곁가지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돈이 위험스럽고 돈도 적게 버는 백인 우월주의가 자박자박하게 깔린 미국 남부 공연을 강행하는 이유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냥 흔한 억압받는 흑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인종 갈등의 부당함을 잘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양복점에 갔다가 돈의 양복을 사려고 하지만 주인이 흑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장면과 함께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잠시 수리를 하려고 길가에 차를 세웠을 때 남부 목화 농장에서 일을 하는 흑인들의 누추하고 가난한 삶을 돈이 목도하는 장면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 하네요. 특히 목화 농장 흑인들이 백인 운전수가 모는 차 뒷자리에 있는 돈을 바라보는 눈빛과 그 눈들을 보는 돈의 모습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흑인이 미국에서 사는 삶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됩니다. 

영화 <그린북>은 흑인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피해자라는 전형적인 시선이 아닌 귀족 같은 흑인을 통해서 가난을 지워도 흑인이라서 받는 원초적인 박해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백인들이 성공한 흑인에 대해서 박수를 치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흑인을 괄시하고 멸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아주 잘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순응주의자 돈의 변화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 중 하나는 변화가 가장 큰 인물과 부분을 잘 살펴보면 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린북>에서는 토니도 돈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를 하지만 돈이 토니를 통해서 더 크게 변합니다. 돈은 순응주의자입니다. 흑인이 미국에서 받는 각종 탄압과 차별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걸 적극적으로 깨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방관만 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 투어를 통해서 흑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그 변화를 품위 있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반면 토니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람입니다. 또한, 불편부당한 사람으로 흑인이 받는 차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둘의 문제 해결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그럼에도 돈은 자신이 받는 대우를 바로 그 현장에서 말하는 용기를 토니로 통해서 얻습니다. 소심한 돈은 떠벌이 토니를 통해서 좀 더 세상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데 돈의 이 변화가 주는 흥미와 재미가 영화 후반부에 펑펑 내립니다. 


꽤 웃긴 영화 <그린북>, 왜 그런가 살펴보니

이 영화 꽤 웃깁니다. 편집 호흡법이 딱 코미디입니다. 반복과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연속으로 보여주면서 웃음의 쨉이 강하게 꽂힙니다. 시종일관 미소가 나는 장면이 꽤 많네요. 제 옆에 앉아 있던 분은 시종일관 웃더군요. 전 박장대소를 그리고 웃음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톤이 유머러스한 장면이 많습니다. 

떠벌이 백인 입담꾼의 보통의 미국인과 귀족 같은 상류층 흑인이 사는 상류층 문화의 다름에서 오는 문화 충격의 웃음이 수시로 터져 나옵니다. 이 영화 왜이리 웃기나 하고 봤더니 감독인 피터 패럴리의 전작들이 코미디 영화들이 많네요. 

그 유명한 <덤 앤 더머> 시리즈를 연출했고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와 <붙어야 산다> 등 화장실 유머의 명가가 만든 작품이네요. 아니 코미디 그것도 화장실 유머가 주된 코미디였던 감독이 이런 점잖을 뺀 영화를 만들다니 놀랍기만 하네요. 그럼에도 연출력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준수한 연출 뛰어난 코미디 호흡법이 인상 깊네요. 

연말에 봤으면 딱 좋았을 가족 영화이기도 합니다. 아카데미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2개의 주제인 인종 갈등과 신분 갈등을 절묘하게 잘 비벼서 감칠맛 나게 만들어서 작품상을 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대중 앞에서는 인종 갈등에 반대하지만 집 안에서는 인종 차별을 당연시하는 미국인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한 점이 크게 눈에 들어옵니다.

좋은 영화이자 재미있는 영화, 보고 나면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입니다. 영화 무척 쉽습니다. 현학적이지도 많은 알레고리를 내포한 영화도 아닙니다. 그냥 감독이 주는 메시지를 아주 쉬운 언어로 맛깔나게 잘 담은 영화입니다.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별점 : ★★★★

40자 평 : 미국 인종 차별 문제를 색다른 시선으로 담은 유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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