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 대한 처음 인연은 199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물건을 갖다주라는 지시를 받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성수역이 아닌 잠실 근처에 있는 성내역에 내렸습니다. 성내역은 현재 잠실나루역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사라진 역이름이죠. 성내역에서 서성이다가 아무리 돌아봐도 사무실이나 공장이 많은 거리가 안 보여서 자세히 알아보니 성내역이더군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성수역에 내린 후 중소기업 사장님에게 물건을 건내주었습니다.
사장님은 왜 이리 늦게 왔냐고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차마 성내역에서 내려서 헤맸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성수역을 가봤습니다. 성수역 주변은 공업지대였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지만 예전보다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대였던 이 성수동에 카페거리가 피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대림창고라는 카페입니다. 대림창고의 이름이나 외형만 보면 70년대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공장 건물입니다.
안에 들어가도 공장의 창고 건물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림창고 카페가 다른 카페와 다른 점은 그 규모입니다. 규모가 어마무시하게 큽니다. 게다가 이 큰 공간에 기둥이 없습니다. 높이 지어진 빌딩 1층이라면 곳곳에 하중을 받는 기둥이 있어야 하는데 1층 건물이라서 기둥이 없습니다. 또한 기존의 창고 외벽과 천장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옛스러움을 그대로 이용한 인테리어입니다.
또 하나의 성수동 카페 거리의 유명 카페가 어니언입니다. 어니언도 가정집 또는 슈퍼 또는 철공소 건물이었던 곳입니다. 여기도 낡은 모습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낡은 이미지가 차별성을 가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림창고와 어니언이라는 카페의 공통점은 낡음입니다. 낡은 공간을 싹 밀고 새로운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닌 낡은 풍경을 그대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대림창고와 어니언만 보고 집으로 향하기에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검색을 해도 성수동 카페거리를 표시하는 길에는 아기자기한 예쁜 가게나 카페가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으로 향하려다가 혹시나 이면도로 쪽에 몰려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대로가 있는 주변에는 상가 임대료가 높아서 다이나믹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독특한 카페들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높은 임대료를 견디려면 회전율이 좋고 방문하기 편하고 수익성이 좋은 프랜차이즈 카페나 상점이나 음식점이 아니면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반면 이면도로는 교통도 불편하고 낡은 상가들이 많아서 임대료가 대로변 상가 임대료보다 저렴합니다. 임대료가 저렴해야 카페 주인은 인테리어에 더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이면도로에 있습니다.
혹시나 하고 대림창고를 끼고 이면도로에 들어섰습니다. 서울의 여느 이면도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길 양쪽에 주차된 차량이 있고 걷기 불편할 정도로 도로는 넓지 않습니다. 차량이 수시로 지나가기에 길가로 조용히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찾던 다양한 개성의 카페와 음식점을 하나 둘 발견했습니다. 역시나 이면도로에 다 몰려 있네요. 보시면 80년대 지어진 건물로 보입니다. 2,3층은 주택으로 보이고 1층은 상가입니다. 뉴욕이 이런식으로 된 곳이 많죠. 1층은 길거리와 붙어 있어서 소음도 심합니다. 그래서 살기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가에게는 유동인구가 많기에 최적의 조건입니다.
이 성수동은 철공소도 많고 공장도 많지만 수제화로도 유명합니다. 왼쪽은 수제화 거리의 모습이 남아 있고 오른쪽은 같은 신발을 파는 곳 같은데 세련된 인테리어로 되어 있네요. 신구의 조화네요
이 건물은 전형적인 공장 건물입니다. 90년대 초의 구로공단 공장 건물 같습니다. 그런데 이 공장 건물 1층을 음식점으로 만들었네요.
독특한 인테리어의 바베양장이라는 곳도 있네요. 이런 힙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낮은 임대료겠죠. 여기에 다양한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시너지 효과도 내고 있습니다.
결코 한 곳이 만들 수 있는 카페 거리가 아닙니다.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상점들이 많이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여전히 이런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있고 공장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도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공장들은 외곽으로 빠질 것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죠. 낡은 공간에 맛집, 멋집이 들어서면 임대료가 올라서 기존 개성 넘치는 상가들이 빠지고 프랜차이즈 같은 수익성이 좋은 매장들이 들어서겠죠.
실제로 성수동 일대의 임대료가 서울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기사가 보이네요.
하지만 여기는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최근 가로수길이 높은 임대료로 인해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황폐화 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가로수길도 3~4년 전만 해도 꽤 활성화되었습니다. 대신 압구정 로데오거리가 황폐화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인기 거리는 점점 이동을 합니다. 대략 3~4년의 활황기가 지난 후에 다른 거리가 뜨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이동하면서 황폐화 됩니다.
성수동 이면거리는 여전히 주택이 많습니다만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되면서 상업 거리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 같네요.
이면도로의 낮은 임대료가 성수동 카페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주가 물들어 올 때 노 젖기 시작하면 여기도 다시 황폐화되고 삼청동길, 가로수길,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정부에서 임대료 상승을 5%로 묶는 법안을 만들고 있는데 건물주가 바뀌면 그 법안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임차인, 임대인 모두 상생하는 방법은 이 인기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카페들이 떠나지 않게 임대료를 급속히 올리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