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이 이렇게 뜰 줄 몰랐습니다. 강북의 인기 상권인 건대입구 근처라는 후광이 있긴 하지만 성수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 지구입니다. 영등포 문래동과 구로공단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공업지대였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땅값과 아파트 가격이 치솟자 공장을 운영하는 분들은 그 비싸진 땅값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경기도 지역으로 떠납니다.
그렇게 공업 지역은 IT 단지로 변신해가고 있습니다. 구로와 가산동은 2000년대 초부터 구로 디지털 단지, 가산 디지털 단지로 변신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공장 지역에 거대한 아파트형 공장(지식산업센터) 빌딩이 강남 테헤란로 보다 많이 서 있습니다. 성수동도 최근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수제화와 각종 공장과 철공소들이 많았던 성수 공업 지역에 커피의 향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성수동을 일부러 가볼 일이 있는 동네는 아닙니다. 그냥 지하철 2호선 지상철 구간 중에 아름다운 곳이 성수였던 것 정도였죠.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 카페 때문입니다. 성수역에서 내려서 하늘을 보니 이 지역의 독특한 풍경인 지상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상철 구간은 신대방역에서 신도림 구간도 있긴 합니다만 거긴 도림천 위에 지어져서 풍경이 좀 다릅니다.
사실 이날 찾아갈 곳은 대림창고로 정했습니다. 대림창고를 1년 전에 잠시 들렸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다시 찾아오겠다고 생각하고 찾아갔습니다. 대림창고는 한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대형 카페입니다. 대형 공간이지만 가운데 기둥이 없어서 더 넓게 보입니다. 자연 채광을 이용하고 있어서 실내지만 실외의 느낌 또는 마당과 같은 느낌도 납니다.
가운데 큰 나무를 통째로 잘라서 만든 대형 테이블이 있습니다.
벽은 기존 공장의 벽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고 전체적으로 공장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 디자인과 비슷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활용한 디자인으로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눌러 있기에는 성수동 카페 거리가 궁금해서 다 둘러보고 다시 와야겠다하고 사진만 찍고 나갔습니다.
성수동 카페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는 '대림창고'지만 빵과 커피를 파는 '어니언(onion)도 유명합니다. 지도앱에서 어니언을 검색해보니 대림창고에서 200m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네요. 어니언에 도착했습니다. 딱 봐도 60~70년대 지어진 공장 건물이네요.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이네요.
1970년대에 지어진 어니언 카페 건물은 그동안 슈퍼, 식당, 가정집, 정비소 그리고 공장으로 사용된 공간입니다. 상당한 이력입니다. 전 공업 지역이라서 공장 건물로만 생각했는데 가정집 이기도 했네요.
들어가기 전에 벽을 따라서 좀 이동하니 거대한 유리창이 나오고 그 뒤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습니다. 머신에 달린 수 많은 관과 컨프레셔가 보이네요. 숨겨야 할 것을 노출하는 전략이 독특하네요. 유리창에 INSERT COFFEE TO BEGIN이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젊은 감각이 붙어 있네요.
옆을 보니 전형적인 서울의 거리이면서도 낡은 공장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공간이 아주 넓습니다. 음식을 제조하는 공간이 엄청나게 넓네요. 공간은 넓지만 주차 공간은 전혀 없습니다. 차를 가지고 오실 분은 근처 유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와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 없는 분이나 대중교통을 타고 온 20,30대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직원이 3명이나 있습니다. 가운데는 빵종류가 있습니다. 어니언은 빵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빵들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딸기 타르트는 2,500원, 치즈 바게트는 4,000원입니다. 가격 괜찮네요. 전체적으로 가격이 스타벅스와 비슷합니다.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가격은 5,000원으로 살짝 비쌉니다. 스타벅스만큼 하네요. 그런데 이런 독특한 공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매일 들리는 사람에게는 가격이 좀 부담스러울 수 있겠네요.
주문을 하니 이름을 어떻게 불러 드릴까요라고 물으시네요. 흠 스타벅스처럼 주문번호로 불러 주던지 아니면 그냥 음료 이름으로 부르면 될텐데 굳이 어떻게 불러드릴지 물어보는 자체가 좀 이해가 안 갔습니다. 뭐 복잡할 때는 주문자 이름이나 닉네임이 편할지 모르겠지만 좀 불합리한 방식 같네요.
주문자도 없는데 음료는 3분 이상 기다려야 나오네요. 왜 빨리 안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스타벅스처럼 자판기보다 빠르게 나오는 것이 싫긴 하지만 또 필요 이상으로 오래 걸리는 것도 좋지 않죠.
3분이 지나고 나온 어니언 카푸치노입니다. 카푸치노도 라떼아트가 되는군요. 거품 비율이 더 높아서 못할 줄 알았는데 되네요. 그런데 맛을 보니 이건 카푸치노라기 보다는 그냥 라떼에 가깝네요. 컵은 머그컵으로 줍니다. 머그컵이 편하긴 한데 카푸치노는 볼이 넓은 커피잔에 담아주는 것이 좋은데요.
어니언 커피맛은 그런대로 먹을만 합니다. 다만 이 맛 때문에 다시 찾을 것 같지 않고 그냥 다른 카페에서도 흔하게 맛볼 수 있는 맛입니다. 어니언은 맛집이라기 보다는 멋집이죠. 인테리어가 독특해서 찾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대기 공간을 둘러보니 페인트가 덕지덕지 떨어지는 모습이네요. 한마디로 폐허 분위기입니다만 이 폐허의 느낌을 편리함을 녹여서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외벽들은 통유리로 교체해서 자연 채광과 외경을 차용하는 차경의 힘을 빌렸습니다.
어니언은 카운터 및 음료 제조하는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문을 열고 나가면 커피 마시는 응접실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와서 보니 공장 건물이라기 보다는 가정집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네요. 70년대 지어진 부자집 이미지입니다.
허름한 외벽마다 거대한 유리창을 넣어서 외부에서 또는 내부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유리창이 하나의 눈요기 역할을 하네요. 대신 냉난방비 많이 나오겠네요.
실제로 이 공간은 난방이 잘 안된다고 써 있네요. 낡아서 다르고 차별성이 있고 기특하고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낡아서 안 좋은 점도 꽤 있죠. 기존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다 보니 몇 곳은 금이 가 있네요.
건너방 같은 공간에 들어서니 길다란 테이블이 보입니다. 여기도 큰 유리창이 많이 보이네요. 천장은 불투명 에폭시 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외부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많네요. 문이 였던 곳 같네요. 자연채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깥 풍경은 딱히 볼만한 풍경은 아닙니다.
명당자리는 가장 안쪽 1층 같네요. 여기는 사람이 꽉 찼네요.
여기도 명당자리네요. 푹신한 쿠션이 있네요.
작은 공간들이 있고 큰 공간이 있는데 작은 공간에는 푹신한 쿠션이 있습니다. 천장에는 냉난방기가 있네요.
큰 테이블은 상당히 두꺼운 불투명 플라스틱이 덮고 있습니다. 상당히 깔끔하고 은은해서 좋네요.
안 좋은 점은 스톨과 같은 불편한 의자와 다리를 집어 넣을 수 없는 테이블입니다. 밑이 뚫려 있지 않아서 다리를 넣을 수 없습니다. 장시간 앉아 있지 못하네요. 평일임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고 제가 있는 동안에도 자리가 없어서 나가는 분들이 있는데 주말에는 더 사람이 많을 듯 하네요.
의자는 불편하지만 테이블 중앙에 매립형 전원 콘센트가 있어서 노트북질을 할 수 있습니다. 대림창고가 노트북 비 친화적이라면 어니언은 노트북 친화 공간이 좀 있습니다.
잠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와봤습니다. 뒷마당 같은 공간이 있네요. 쥐 조심하라는 푯말도 보입니다. 쥐도 있나 봅니다.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여깁니다. 뒷마당 같은 공간에도 긴 테이블이 있고 철제 벤치가 있습니다. 봄이나 해가 진 오후에 여기서 책 읽으면서 커피 한 잔 하기 딱 좋네요. 그러나 겨울이라서 여기서 커피 마시는 사람은 없네요. 꽃나무도 있는데 많지는 않습니다.
긴 테이블 끝에도 거대한 유리창이 있습니다. 창 안의 실내와 실외를 서로 쳐다 볼 수 있네요.
계단으로 올라와서 보니 공간이 생각보다 크고 흥미롭고 아름답습니다. 어니언은 천상 봄이나 여름에 와야겠네요.
옥상 공간도 있습니다. 옥상에는 다양한 테이블이 있습니다.
공간이 생각보다 꽤 크네요. 겨울이라서 손님은 없네요.
옥상에 빵 공장이 있네요. 여기서 빵을 제조하고 이걸 1층에서 판매하나 봅니다. 전체적으로 참 독특한 공간이네요. 이 어니언이라는 독특한 카페를 디자인한 곳은 '다지안 스튜디오 패브리커'입니다.
대림창고 보러 갔다가 어니언에 눌러 앉았네요. 어니언을 나와서 이면도로를 걸으니 인테리어가 멋진 카페들이 꽤 많이 보였습니다. 성수동에 왜 갑자기 카페들이 이렇게 많아졌을까요? 그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