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페이스북에서 본 BBC 동물 다큐멘터리는 참 이상했습니다. 영상 내용은 뱀이 득시글한 곳에서 도마뱀이 살기 위해서 필사의 도주를 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서 하나의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화각으로 촬영한 것으로 봐서 최소 카메라가 5대 이상이 설치된 듯 합니다. 그럼에도 그 짧은 순간에 광각과 망원렌즈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건 다큐멘터리 영상이라기 보다는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다큐멘터리에도 연출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영상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우리가 보는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제작한 야생 동물 다큐가 아닌 NHK나 BBC같은 해외 방송사가 만든 영상물입니다. 특히 BBC는 야생 동물 다큐를 가장 잘 만드는 방송사죠. 이 야생 다큐는 수 많은 연구와 긴 촬영 시간과 수 많은 스텝들의 고생으로 만들어집니다.
야생 동물 촬영해 보세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야생 동물 다큐에도 어느 정도 거짓이 숨어 있습니다. 영상 작가인 Simon Cade가 영상을 통해 어느 부분이 거짓이 있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린을 추격하는 사자가 나오는 영상에는 기린의 발소리가 영상에 담겨 있을 겁니다.
곰이 싸우는 영상에는 거친 곰의 숨소리와 둔탁한 소리가 담겨 있겠죠. 그러나 이런 야생 다큐들은 줌렌즈나 망원렌즈로 촬영하기 때문에 소리가 담길 수 없습니다. 영상으로 피사체로 당겨서 촬영할 수 있으나 소리는 당겨서 담을 수 없습니다. 소리를 담으려면 야생 동물 몸이나 근처에 마이크를 여러 곳에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야생 동물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것은 후시 녹음을 하기 때문입니다. 촬영한 영상을 보고 효과음을 만드는 분이 직접 소리를 입히고 미리 녹음한 동물 소리 등을 입힙니다. 이런 영상물은 또 있죠. 2차 세계 대전을 담은 영상물들은 소리가 없습니다. 이런 소리가 없는 영상물은 영상만 있기에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효과음을 만드는 분들이 소리를 나중에 입힙니다.
이런 후시 녹음은 가짜 소리라서 거짓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짓이자 눈감아줄 수 있는 거짓입니다. 이보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거짓들이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제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인간과 달리 동물은 기승전결이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 인간은 어떤 사건 사고를 접하면 그걸 있는 그대로 말하기 보다는 스토리를 입혀서 말합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후 상황과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그 이후까지 기승전결에 따라서 말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건 전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때 보다 스토리를 입혀서 말할 때 더 전달하기 편하고 듣는 사람도 편합니다.
그 과정에서 msg도 치고 하면서 거짓도 살짝 살짝 들어가기도 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물의 왕국'을 보다 보면 이건 작은 단편 영화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스토리가 있습니다. 야생 동물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냥 야생 그 자체죠. 그런데 이상하게 영상을 보면 작은 콩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나레이션 하는 분이 이야기를 입히고 그 이야기에 맞게 영상이 입혀집니다.
가끔은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영상을 삽화로 쓰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이런 궁금증을 이 영상은 풀어주고 있습니다. 30분이나 1시간 짜리 야생 동물 다큐를 만들기 위해서 제작자들은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시청자들의 정서에 호소하는 호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편집 작업을 합니다.
이 편집 과정에서 이야기를 입히게 됩니다. 아무래도 무의미한 영상들만 나열하면 지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편집 과정에서 여러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입힙니다.
편집자들의 편집은 픽사 영화처럼 동물을 의인화 하게 됩니다. 엄격하게 따지면 이건 거짓이고 msg를 치는 행위입니다. 사실과 다른 지어낸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걸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전달해야 재미를 느끼고 쉽게 이야기를 받아 들입니다.
이런 예는 꽤 많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초식 동물이 육식 동물에 쫓기는 장면이죠. 어린 초식 동물이 어미 곁에서 놀다가 늑대를 보고 달립니다.
늑대는 어린 초식 동물을 지켜보고 있다가 초식 동물 무리를 쫓습니다.
아주 흔한 구도죠. 이런 장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특히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초식 동물은 착한 편, 육식 동물은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세상은 그렇게 2분법으로 볼 수 없습니다. 늑대도 초식동물도 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지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2분법을 만드는 영상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특히 디즈니랜드 애니들이 대표적이죠. 선과 악 구분이 확실한 애니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 2분법을 깬 한국 동화인 '마당을 나온 암탉'을 좋아합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자연 생태계를 왜곡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그 모습에 충격을 먹고 펑펑 울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삶인데요. 아이들에게 인위적인 삶을 보여주기 보다는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이 좋겠죠. 또한, 초식 동물은 착하고 육식 동물은 악하다라는 왜곡된 시선을 주입하는 것도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구도에서 저 어린 초식 동물이 살아 남느냐, 잡아 먹히느냐도 중요합니다. 만약 늑대가 초식 동물을 추격하다가 끊어 버리고 다른 장면으로 넘기면 시청자들은 뭥니?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잡아 먹히거나 살아 남거나를 확실히 보여줘야 시청자들은 만족해 합니다. 이것도 이야기의 기승전결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엔딩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이런 시청자들의 요구는 다큐 영상 제작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다큐 영상 제작자들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입히기 시작합니다.
이런 행동은 분명 거짓된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정말 지루합니다. 음악도 없고 그냥 라이브캠을 보는 느낌이겠죠. 그렇다고 CG를 이용해서 야생 다큐를 만들면 그것은 용납 못하는 거짓이 됩니다.
다큐멘터리 영상은 정확성과 재미라는 2가지 요소를 모두 추구합니다. 이 균형이 중요합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진실만 말하고 살면 정밀 지루합니다. 그래서 거짓이라는 msg를 넣죠. 악의 없는 거짓은 삶의 윤활유가 됩니다. 다큐도 100% 리얼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 편집을 통해서 거짓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디 다큐만 그럴까요? 요즘 다큐 사진도 100% 사진 보다는 작가의 시선에 따라서 사실을 전달하기도 하죠. 다만 그 사실을 왜곡 전달하면 욕을 먹지만 좀 더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서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것 정도는 허용하는 분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