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을 보고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르다고 합니다. 앞에서는 친한 척 하지만 정작 다가가면 뒤로 물러서는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의아하게 보죠. 이는 일본인 특유의 혼네라는 특징입니다. 앞에서는 생글거리지만 속으로는 짜증을 내는 모습. 직설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돌려 말하는 일본인 특유의 본심을 앞에서 말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한국도 이런 비슷한 모습이 있습니다. '있어빌리티'라고 하는 과시적인 성향입니다. 가진 것 쥐뿔도 없고 아는 것 별로 없어도 남들 앞에서 있는 척, 잘난 척, 아는 척을 아주 잘합니다. 왜 이러는 것일까요?
전 한국인들은 그 어떤 민족보다 인정 욕구가 강한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사는 듯한 모습을 보면 저런 삶이 자신을 위한 삶인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월세 살면서 값 비싼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죠. 인정 욕구가 강하면 실제 내 모습과 괴리가 발생합니다. 실제 내 모습과 허영심으로 부푼 내 모습 사이에 내숭이 피어납니다. 남들 앞에서는 요조숙녀처럼 행동하다가 혼자 있거나 친구나 있을 때는 평상시 하던 행동들을 합니다.
그런 괴리감 속에서 수군거림이 피어납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구보다 뒷담화 참 좋아하죠. "걔 그런 얘인 줄 몰랐어"라고 시작하는 뒷담화. 내숭은 한국적인 풍경입니다. 앞에서는 사회가 원하고 부모가 원하고 친구가 원하는 반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공적인 공간을 떠나서 실제 내 모습과 가까운 모습을 잘 아는 사람들인 친구들 앞에서는 허리띠 풀고 하고 싶고 먹고 싶은 행동을 마음껏 합니다. 이런 인정 욕구에서 피어난 내숭을 그림으로 그리는 화가가 바로 '김현정 화가'입니다.
전 이 그림 보고 빵 터졌습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봤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유쾌하면서도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러워서 바로 각인이 되었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크게 되겠구나 했네요
역시 제 예상은 맞았고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광고판에도 등장하는 등 광고에 나올 정도의 인기를 끌더군요. 예술 작품이 광고에 나올 정도면 인기를 인정 받았다는 소리이기도 하죠. 물론, 비판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천박하게 광고를 한다느니 상업 예술이냐느니하는 비아냥과 비판이 동시에 나오고 실제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전 한국의 '앤디 워홀'까지는 아니지만 키치적인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이 색다르고 재미있는 시선을 가진 화가를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작가가 '김현정 화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 많은 방송을 통해서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고 지금은 팬이 되었습니다.
"한복입고 명품백 든 한국화가 김현정"..포브스도 주목 기사보기
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포스브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김현정 화가가 올랐습니다. 선구적인 여성 분야에서 선정되었다고 하네요. 이유는 기존 관습에 도전 한 것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맞습니다. 저와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에 재미있어 한 것은 2개의 이미지 대비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복에 대한 관습적 이미지는 조신함입니다. 또한,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이자 격식을 차린 옷으로 생각합니다. 일상복이라기 보다는 명절에 입는 연미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특별한 날에만 입는 한복을 일상복 아니 츄리닝처럼 입습니다. 한복 입고 맥도날드 햄버거 배달을 하고 당구를 치고 근린공원에서 운동을 합니다. 한복을 입고 짜장면을 시켜서 맛있게 먹습니다. 조심함과 편안함의 충돌! 김현정 화가의 내숭 시리즈는 그 2개의 이미지의 충돌 속에서 웃음이 피어납니다.
2016년 인사동 갤러리IS 전층을 빌려서 펼쳐진 김현정 개인전 <내숭놀이공원>은 대박이 납니다. 전시회 기간 총 6만 7천여명이 왔다 갔습니다.
저도 찾아가 봤는데 입구부터 재미있더군요. 4개 층을 돌고 도장을 찍어 오면 작은 사은품을 줍니다. 마치, 제품 설명회 부스를 연상케 합니다. 예술도 뭐 크게 보면 상품이죠.
그런데 그림 속 모델과 화가 김현정이 너무 닮았습니다. 실제로 김현정 화가는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림 속 한복들이 투명합니다. 이는 수묵담채기법으로 배경을 그리고 그 위에 한지 콜라주로 덧 입힙니다.
그래서 투명한 느낌의 한복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많은 분들이 김현정 화가의 그림을 보고 신선미 화가의 '개미요정'시리즈와 비슷함을 넘어서 표절이라는 소리가 많습니다. 표현 방식이 비슷하다고 표절이라면 세상의 많은 예술가들은 표절 시비가 붙을 것입니다. 물론, 비슷해서 오는 비난의 목소리를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술이라는 것이 표현법 만으로만 정의할 수 없습니다.
김현정 화가가 영감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내숭 시리즈'와 '개미요정 시리즈'가 추구하는 주제나 소재가 다르기에 비슷하다고 느껴지지 않더군요. 김현정 화가의 그림은 그림 자체가 주는 흥미도 있지만 내숭 시리즈가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이 너무 생기 있어서 좋았습니다. 화난 얼굴로 비판하는 것이 아닌 웃음 머금은 미소로 비판하는 밝은 비판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김현정 화가는 대단한 예술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전층을 빌려서 개인전을 할 정도의 당참과 뛰어난 기획력과 실천력을 무척 높게 평가합니다.
김현정 화가의 작품 전시회는 끝이 났지만 내숭 시리즈를 담은 도록은 그 전시회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숭 시리즈 도록 안에는 김현정 화가의 SNS 계정이 들어가 있네요. 젊은 화가분이라서 그런지 SNS도 활발히 하시네요. 하단에 각 계정 링크를 담겠습니다.
도록은 꽤 두껍습니다. 작품 1개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는 지 모르겠지만 작품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세밀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데 꽤 많은 작품을 만들었네요. 콜라주라서 한복을 오려 붙이는 방식이라서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열정이 높아서인지 작품 수에 놀랐습니다.
김현정 화가의 '내숭 시리즈'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입니다. 가볍고 재미있습니다. 마치 팝아트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볍습니다. 그럼에도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합니다.
전시회장에서 본 작품도 있고 못 본 작품들도 있네요. 내숭 시리즈에 이어서 새로운 시선, 관습을 깨고 현 세태를 따끔하게 꼬집는 다음 시리즈가 나왔으면 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있어빌리티라는 인정 욕망을 조롱한 <내숭 시리즈>는 정말 명쾌 상쾌한 작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