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는 저이지만 요즘 같이 볼만한 영화가 없는 것도 드무네요. 이번 주도 딱히 끌리는 영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주는 아무거나 한 편 보자고 해서 본 영화가 <가려진 시간>입니다.
#시간을 소재로 한 멜로 영화 <가려진 시간>
전 이 포스터를 보고 화장품 광고인 줄 알았습니다. 긴 머리를 찰랑이는 강동원의 크고 서정적인 눈이 마치 CF의 한 장면 같습니다. 그런데 화장품 이름이 <가려진 시간>일리가 없죠. 찾아 봤더니 영화 제목이네요. 강동원은 여자 분들에게는 강동원 자체가 하나의 장르입니다. 유난히 여성 관객들이 '강동원'을 좋아합니다. 물론, 남자가 봐도 잘 생긴 외모에 큰키와 작은 머리 오똑한 콧날 등등 흠잡을 곳이 없는 외모이지만 남자라서 그런지 딱히 끌리는 외모는 아닙니다.
따라서 남자가 이 영화를 강동원 때문에 보는 일은 없고 여자친구나 여자분들이 많이 볼만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예고편을 보면 대충 어떤 이야기인 줄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습니다.
<가려진 시간>은 시간을 소재로 한 멜로 드라마입니다. 그렇다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닌 성민(강동원 분)이 시간의 굴레에 갖혀서 혼자 정지된 시간을 살다가 그 시간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는 과정을 담은 독특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줄거리>
초등학생인 수린(신은수 역)은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의붓 아버지와 함께 섬으로 이사를 옵니다. 아버지는 터널 공사 책임자였는데 의붓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해서 데면데면하게 지냅니다. 그렇게 섬의 작은 학교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친한 친구 한 명도 없습니다. 그날도 터벅터벅 긴 그림자를 끌고 집으로 향하던 수린 앞에 축구공이 멈춥니다. 보육원에서 나온 성민(이효제 분)은 첫눈에 수린에 반해버리게 되고 두 사람은 통성명을 한 후 친하게 지내게 됩니다.
성민은 친구들과 터널 발파 공사를 보러 가는 계획을 짰는데 수린도 함께 데리고 갑니다. 터널 공사 현장 근처에 있던 아이들은 숲에서 이상한 동굴을 발견합니다. 그 동굴에는 밝은 빛을 내는 알 같은 것이 있었고 이걸 들고 나옵니다. 수린이 머리핀을 동굴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니 성민과 2명의 친구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후 경찰까지 동원되어서 수린만 겨우 찾고 3명의 남자 초등학생은 실종 상태가 됩니다. 며칠 후, 한 명의 아이가 죽은 채 발견이 됩니다. 언론과 경찰은 납치 유괴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가운데 수린은 숲에서 자신이 성민이라고 하는 청년(강동원 분)을 만나게 됩니다. 수린은 그 성민을 밀치고 도망쳤지만 성민이 떨군 수린과 성민만이 아는 암호로 쓴 일기장을 보면서 자신이 본 청년이 성민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경찰과 아버지는 숲속에서 만난 괴한을 유괴 용의자로 몰고갑니다
#추리 형식으로 지루함을 주지 않지만 어설픈 서사의 구멍이 많이 보이는 <가려진 시간>
성민이 떨구고 간 일기장에는 수린이 동굴에 다시 들어간 사이에 일어난 놀라운 일이 적혀 있습니다. 수린이 동굴에 들어간 사이 성민은 알을 깼는데 알을 깨는 순간 시간이 멈췄습니다. 시간의 틀에 갖혀 버린 아이들. 동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 갖히면 청년이 되어서 풀리고 청년이 되어서 갖히면 중노년이 되어서 풀린다는 풍문이 성민과 아이들에게 실현되었습니다.
이 시간이 멈춘 상태를 10분 이상 보여주는데 꽤 뛰어난 CG를 선보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춘 상태에서 아이들만 움직이는 모습을 만끽하는 모습이나 물건을 던져도 아이들 손을 떠나면 바로 시간이 멈추기 때문에 물건이 공중에 떠 있는 즉 중력이 사리진 듯한 표현법은 아주 꼼꼼하게 세심하며 창의적입니다. 특히,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바다에 빠지는 장면은 <가려진 시간>의 백미 중에 백미입니다. 또한, 아이들의 움직이는 곳에서만 소리가 나기 때문에 소음이 적어진 것 등 시간이 멈춘 상태를 꽤 과학적이고 흥미롭게 담았네요.
그러나 이 영화는 서사가 가장 큰 약점입니다. 이 <가려진 시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첫사랑이라는 순수한 사랑을 그런대로 잘 담습니다. 그러나 이 순수한 사랑을 그리기 위해서 서사의 빈틈이 꽤 많이 보입니다. 먼저 이 말도 안되는 수린과 성민의 상황과 이야기를 모든 어른들이 귀담아 듣기를 거부합니다.
어른을 마치 적으로 규정하고 두 아이인 수린과 성민이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과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후반에 성민의 행동들이 꼭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나? 라는 생각이 자주 들다 보니 점점 이야기의 힘이 빠집니다. 초반과 중반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환상과 같은 상황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가 성민이 청년으로 돌아온 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유기적이지 못합니다. 잉투기를 만들었던 신인급 감독 '엄태화'는 하나의 이미지에서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미지를 확장하다 보니 픽셀깨짐 현상이 보이는 느낌입니다. 여기에 환상적인 색채를 담으려고 했는지 전체적인 화면 색이 인스타그램 사진 톤 같은 느낌인데 이것도 좀 과한 느낌입니다.
소재 자체는 꽤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흔한 타임립스 멜로물과 다르게 시간이라는 장애물을 통해서 사랑의 깊이를 잘 담을 수 있었을텐데 이 깊이가 깊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사랑을 두 강동원, 신은수의 뛰어난 연기로 이끌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전 꽤 괜찮게 봤습니다. 그 이유는 두 주연 배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강동원을 보려고 이 영화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강동원의 영화라기 보다는 신은수의 영화라고 느껴지네요. 먼저 강동원은 영화가 시작된 후 50분이 지나서 첫 등장을 하고 본격 등장은 1시간이 지나야 본격 등장합니다.
참치캔 회사 이름과 똑같다고 참치라는 별명이 있는 강동원을 빗대면 참치 반캔이라고 할까요? 2시간 중에 1시간 정도만 나옵니다. 이에 실망하실 분들이 있을텐데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 어떤 영화보다 강동원은 이 영화에서 러블리함을 가득 보여줍니다. 특히, 익스트림 클로즈업 장면이 꽤 있어서 베일 듯한 오똑한 콧날과 맑고 큰 눈망울을 한껏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런 장면이 별 느낌이 없네요. 대신 제 눈을 가득 채운 것은 아역 배우인 신은수양의 연기입니다. 이 배우 처음 봤습니다. 처음 봤지만 연기도 꽤 잘하고 맑은 눈망울과 연기가 영화를 꽉 채웁니다. 특히, 강동원과의 러브 라인을 연결해야 하는데도 매끄럽게 잘 소화합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사랑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는 아닙니다. 사랑과 우정이 뒤섞인 초등학교 시절의 그 설레이는 감정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서사는 구멍이 많지만 그 사춘기 시절의 소년과 소녀 사이에서 가지는 애틋함이 영화 전체에 잘 담깁니다.
16년이 지난 후에 성민과 수린이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 한 줄기가 흐르네요. 슬픈 장면은 아니였지만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가지는 힘이 제 눈물샘을 제대로 자극하네요.
#사춘기 설레임을 환타지로 잘 빚어낸 영화 <가려진 시간>
꽉 차지 못한 서사, 부자연스러운 화면 톤, 폭발력 없는 감정선 등 아쉬운 점이 꽤 많습니다. 그럼에도 전 이 영화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는 성긴 면이 많지만 10대 초반 사춘기 소년 소녀의 설레임이 가득한 우정과 사랑의 향을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특히, 너만 날 알아봐 주면 된다는 지고지순함과 순수한 모습이 영화 전체에 은하수처럼 자박자박 담겨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또한, 시간이 멈춘 세상의 뛰어난 CG로 흥미를 유발하는 점도 큰 점수를 받을 요소입니다.
엄태화 감독은 거대한 파도 앞에서 성인 남자와 소녀가 손을 잡고 있는 이미지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 후반이자 이 영화를 한 장면으로 압축한 장면으로 근래에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PC 배경 화면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자 사진과 같은 장면입니다.
순수함이 가득한 영화 <가려진 시간> 많은 실수와 같은 아쉬움이 많지만 그 아쉬움마저도 순수함의 파도가 덮는 괜찮은 영화입니다. 감수성이 많은 분들과 강동원 팬들 에게 추천합니다.
별점 : ★★★
40자평 : 보름달 같은 순수한 사춘기 소년 소녀의 맑음 기운이 가득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