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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향기를 가득 느낄 수 있었던 팬이 마련한 들국화 30주년 전시회

by 썬도그 2015.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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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역 테크노마트에 들릴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얼굴들이 보이네요. 들국화라는 80년대 명그룹의 전시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들국화 30주년이라고 들국화 팬들이 마련한 작지만 큰 전시회였습니다. 약속 시간도 남고 해서 들어가 봤습니다



들국화를 잘 모르는 20,30대 분들을 위해 초반에 설명문을 붙이겠습니다.(다 잘 알고 계시려나?)
제가 들국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1987년 전후로 기억됩니다. 라디오를 참 많이 듣게 되는 나이인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라디오에서 가끔 나오던 들국화 노래들이 있었습니다. 



1986년 들국화 1집이 나오고 바로 히트 친 것은 아닙니다. 제 기억으로는 들국화가 공중파에서 거의 보이지 않아서 노래들이 늦게 전파 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얼굴도 모른 채 라디오에서 자주 듣던 노래들이었습니다.

이중에서 행진은 지겹도록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특히 대학교에 입학한 후 동네 친구들과 만날 때면 으레 노래방을 갔는데 노래방 갈 때 마다 행진을 꼭 불렀습니다. 70년대는 고래사냥이 있었다면 80년대는 행진이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항상 울분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방에서 목청이 나가도록 고래를 찾고 행진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들국화 노래들 중에는 아주 간지러운 노래도 꽤 많았습니다. 최성원의 미성이 돋보이는 '매일 그대와'는 라떼 같은 노래였죠.


들국화는 이상하게 비틀즈가 생각납니다. 최성원은 폴 메카트니 같고 독특한 음색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인권은 '존 레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두 보컬의 음색이 너무 달라서 너무 조화로웠던 그룹이 들국화였습니다. 

그룹 '부활'도 비슷했죠. 이승철의 미성과 김태원의 허스키 목소리가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부활이 좀 더 하드락 쪽이라면 들국화는 소프트 락 쪽에 가까웠습니다. 신중현이 터를 닦아 놓은 한국 락의 계보를 들국화가 잇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80년대는 한국 가요나 영화가 모두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당시 라디오를 켜면 대부분의 팝 음악을 틀어주고 가요만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은 라디오를 켜면 팝송 전문 라디오는 거의 없고 주로 가요만 틀죠. 이렇게 괄목 성장을 하기까지에는 80년대가 큰 기폭제 역할을 합니다. 팝송과 허리우드 영화를 섭취하고 자란 10,20대들이 80년대 봇물 터지듯 자신의 역량을 과시합니다. 그래서 80년대 가수들 중에 지금도 사랑 받는 가수들이 꽤 많습니다. 반면 70년대 가요는 통키타 음악이 최근에 쎼시봉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80년대 노래들의 리메이크 열풍에는 따라가지 못합니다. 



흥미롭게도 들국화 1집이 나온 3개월 만에 2집이 나옵니다. 이렇게 연달아 터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들국화가 소극장 공연을 통해서 많은 곳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요?

이 80년대 중 후반에는 들국화 말고 많은 헤비메탈, 하드락 그룹도 많았고 들국화와 비슷한 색을 가진 '다섯손가락'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는 밴드 음악이 정말 인기 많았습니다. 

들국화 노래 중에 동요 같이 맑은 노래가 참 많았습니다. '또 다시 크리스마스'나 '내가 찾는 아이'는 지금 들어도 정말 맑고 고운 노래들입니다. 


그러다 마약 사건이 터지면서 들국화는 큰 위기를 맞습니다. 이후 전인권과 최성원은 따로 솔로 음반을 낸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직도 생각나네요. 89년도인가? 90년도인가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을 즐겨 부르던 기억이요. 지금도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노래죠


노래 듣다가 전율 일어 본 적 있나요? 전 있어요. 이 노래를 처음 듣던 새벽에 소름이 쫘악~~ 노래 음색하며 곡 해석력이 원곡 이상을 뽑아 냅니다. 전인권 형님 최고의 노래에요. 


전시회장에는 들국화 콘서트 포스터들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팬들의 열정이 대단하네요. 신해철 형님도 언제 팬들이 추모전 한 번 하겠죠? 정말 그 추모전에는 눈물을 많이 흘리 것 같네요. 가장 좋아했던 뮤지션이자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는데요.

끼리 끼리 논다고 하죠. 저 출연진 보세요. 저 계보들이 한국 발라드 쪽에 큰 영향을 줬어요. 그런데 사진은 참 촌스럽네요. 그럼에도 이렇게 당시를 꾸밈 없이 증명하네요



ㅋㅋㅋ 입장료 2,000원 당시 2,000원이면 아주 쌌네요. 당시 영화 청소년 요금이 2,500원 정도 했거든요. 
행텐이 후원해서 싼 것도 있었네요. 저 뒤로 보이는 곳이 여의도 광장입니다. 자전거 엄청나게 탔었죠. 광장 끝에는 지금도 있는 LG의 쌍둥이 빌딩이네요. 저거 짓고 90년도에 MBC청룡 인수하고 쌍둥이를 마스코트로 정했잖아요.  야구 생각하니 짜증만 나네요.  





80년대 가수들 입니다. 누구누구 일까요? 맨 아래쪽에 딴데 보고 있는 사람이 푸른하늘의 유영석이고 2번째 줄에는 박학기씨가 있네요. 박학기 노래 정말 좋은 노래 많았죠. 

사진에 나온 뮤지션 이름 열거해 볼께요. 알아서 짝을 지어 보세요
김현식, 한영애, 최성원, 신촌블루스, 엄인호, 정서용, 푸른하늘, 이정선, 봄여름가을겨울, 최구희, 허성욱,주찬권, 박학기,빨간크레용, 김두수, 한승호,박문수,이원재,골고다,박주연입니다. 





전인권 형님이 이렇게 핸섬했나요? 이 사진은 명작이네요. 담배 뿌러트린 모습이며 전문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 같네요. 















팬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들도 참 많네요. 주찬권 형님이 돌아가신지도 여기서 알았네요. 들국화 노래를 좋아 했지만 찾아 다니면서 볼 정도는 아니였습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80년대 하면 들국화를 3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노래도 좋고 영향력도 컸었습니다. 







지금도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들국화, 이런 열정적인 팬들이 있기에 들국화는 여전히 싱싱한 모습을 하고 들판에 서 있을 듯 하네요






들국화, 들꽃처럼 투박하면서도 화려한 노래들이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불리우고 있네요. 전시회는 아쉽게도 9월 11일에 끝났습니다. 한 4일 정도 하고 끝이 났는데요.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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