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울고 있습니다. 터키를 떠나 그리스로 향하던 시리아 난민들이 탄 소형 보트 2대가 전복되면서 어린이 5명과 여성 1명 등 총 12명이 숨졌습니다. 이 사건만 보면 세계적인 이슈가 될 사건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난민들의 죽음을 숱하게 봐왔고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닙니다.
최근에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냉동 탑차에 수십 명의 난민이 탔다가 모두 질식사한 그 사건이 더 끔직한 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유럽인들의 각성을 요구하는 사건이었지만 유럽의 지엽적인 사건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울렸습니다. 해변가에 엎드려 있는 3살짜리 시리아 난민 꼬마의 모습에 전 세계가 울고 있습니다. 사전 자체로 보면 흔한 난민선의 사고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꼬마 아이를 봤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3살짜리 꼬마가 해변에 곤히 자고 있는 듯한 사진에 세상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혹한 사진이라서 다른 사진을 올립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세상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의 분노는 영국 총리를 움직이고 캐나다 정부를 움직였습니다. 3살 쿠르디의 죽음을 목도한 영국 정부는 수천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다른 유럽 국가도 난민에 대한 태도를 바꿀 듯 합니다.
아시겠지만 시리아는 아랍의 봄의 여파로 내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시리아는 혁명군과 정부군이 치열하게 일전 일퇴를 하면서 전쟁이 수년 째 계속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IS라는 테러리스트 집단체가 잔혹하게 시리아 난민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이런 집단 학살과 전쟁을 피해 시리아 난민들은 국경을 넘고 있지만 국제 사회의 따스한 손길이 다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세상을 변화 시키는 마중물
수년 동안 시리아 내전과 시리아 난민을 적극 수용하지 않던 국제 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사람들의 공분 때문입니다. 정부란 존재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강대국 정부들이 국제 사회의 여론에 십자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만든 것은 한 사진가의 용기 덕분입니다. 어쩌면 저 사진을 안 찍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진 올려봐야 남의 불행을 찍어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느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1994년 에디오피아에서 독수리가 난민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참혹한 사진을 찍은 남아공 사진기자인 '캐빈 카터'는 그 사진을 촬영한 후에 퓰리처상도 받았지만 독수리 쫒아 버리지 않고 사진을 먼저 찍었냐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터키 사진기자인 닐류페르 데미르는 "이 비극이 세상에 들리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라는 말로 자신의 사진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감하게 사진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 시키고 있습니다.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진은 방아쇠 역할 또는 99도 물에 1도를 더 올려서 끊게 하는 마중물 같은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고 나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면 저 난민 아이의 사진을 봤어도 별 느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인간에 대한 동정심을 가득 가지고 있었고 그 동정심이 가득한 호수에 둑을 허문 것이 바로 데미르 사진기자의 사진입니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이 사진의 힘이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상을 보고 살까요? 또 얼마나 많은 진실을 알고 살까요? 평생 모든 세상을 다 보고 살 수 없습니다. 그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인식의 세계로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를 알게 되면 또 하나는 잊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세상들이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세상, 그래서 많은 도움의 손길이 닿거나 또는 후손들이 잊지 않았으면 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 세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입니다.
안세홍 사진작가는 수십년 째 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카메라로 담고 있습니다. 몇년 전에 조선 출신의 군 위안부 할머니를 중국 등지를 다니면서 사진으로 담아서 소개를 했습니다. 그렇게 겹겹 사진 프로젝트는 출발했습니다. 여전히 일본은 군 위안부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 정부뿐이 아닙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아시아 여러 국가에 있습니다.
안세홍 사진작가는 조선을 넘어서 중국, 필리핀, 동티모르,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군 위안부 할머니를 취재하고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일본 제국에 의해 영혼이 파괴된 할머니들은 피해국 정부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 버림 받은 세상을 카메라를 이용해서 세상에 퍼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 감히 안세홍 사진작가가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사진작가도 하지 않는 일을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사진작가가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고 확장하는 그 추진력도 놀랍습니다. 지난 8월 서촌의 '갤러리 류가헌'에서 전시회를 마치고 현재 일본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피해국이 아닌 가해국인 일본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사진전은 피해국보다 가해국 국민들이 더 많이 봐야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첫 일본 전시회때는 일본 우익 세력의 방해가 컸습니다. 보통 그런 방해를 받으면 위축되게 되지만 안세홍 작가는 다시 일본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다 일본 우익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선인들을 보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집단이나 선한 사람들은 꼭 있습니다.
터키 사진기자 '닐류페르 데미르'와 한국의 사진작가 '안세홍'. 이 두 사람에 대한 사진 기사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읇조립니다. 사진은 세상을 변화 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전 그 사진의 힘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