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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큰 기대를 가지고 봤습니다. 그러나 좀 실망스럽더군요. 비비안 마이어라는 미스테리한 생활 사진가의 삶을 추적하는 이 다큐 자체는 흥미로웠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편집광처럼 신문 스크랩에 집착하고 가끔 기이한 행동을 했던 유모의 삶을 추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실망했던 부분은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아닌 사진이었습니다.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흑백 사진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다만, 그 매력의 대부분은 뛰어난 품질의 흑백 사진에서 오는 매력일 뿐 사진 그 자체는 그냥 평이한 기록 사진이었습니다. 

"좀 포장이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진 그 자체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네요


2015/05/02 - [세상 모든 리뷰/영화창고] - 비비안마이어를 찾아서에서 찾은 6가지의 사진에 대한 생각

라는 글을 통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았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보면서 사진의 병폐와 장점을 모두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깊이 생각나는 것은 사진은 셀렉팅의 예술이다!라는 것입니다. 무려 7만 장이상을 찍은 사진 중에 보석 같은 사진이 없는 게 더 이상합니다. 그 15만 여장 중 좋은 사진 200여 점을 전시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성곡미술관에서는 '비비안 마이어'와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전이 9월 20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1만 원입니다. 



비비안 마이어, 내니(유모)의 비밀이 공식 사진전시회 명칭입니다. 



"사진은 가장 문학적인 미술이다" -클레멘트 그린버그

사진이 문학적인 이유는 일상을 그대로 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뛰어난 묘사가 여러가지 은유를 이끌어냅니다. 롤랑 바르트의 스타디움(보편적 정서)와 푼크툼(개인적 정서)가 모두 사진이라는 기억의 마중물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같네요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비비안 마이어'는 생활 사진가였습니다. 그런데 좀 더 진득하고 기이한 생활사진가였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하기에는 기회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갑니다. 필름도 비싸고 인화 현상비도 비쌉니다. 



그런데 '비비안 마이어'는 롤라이 중형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취미로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다고 이 '비비안 마이어'가 부자도 잘 사는 집안도 아닙니다. 혼자 사는 여자였고 유일한 직업은 유모였습니다. 이집 저집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받은 돈을 사진에 투자했습니다. 

그렇게 무려 15만 장의 이상의 흑백, 컬러, 영상물을 남기고 200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년에는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녀가 찍은 사진을 보관하던 시카고의 한 창고업자가 밀린 창고비를 내지 않자 '비비안 마이어'의 물건을 경매에 붙입니다. 그 물건이 뭔지도 모른채 그냥 경매에 팔았고 사는 사람도 가방 안에 뭐가 들어 있는 지 모른채 물건을 받아 들고 집에 왔다가 깜짝 놀랍니다. 인화된 사진도 엄청 많지만 인화 안된 필름도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흑백 사진들을 인화한 후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렸더니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올라옵니다. 이후, 이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전 세계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살아 생전 자신이 찍은 사진을 현상도 하지 않고 혼자만 봤던 '비비안 마이어'는 2009년 사망 후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셀카를 많이 찍었던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에는 특이하게도 비비안 마이어가 촬영한 사진이 3분의 2정도 그리고 3분의 1이 자기 자신을 촬영한 셀카 사진이 많았습니다. 지금이야 셀카가 가장 인기 있는 사진이지만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셀카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액정 디스플레이가 없어서 촬영한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셀카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셀카 사진이 꽤 많네요. 이는 중형 카메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이안 반사식 카메라인 중형 카메라는 위와 같이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촬영을 합니다. 그래서 SLR로 촬영할 때 보다 셀카 찍기 편합니다. 뷰파인더를 보고 초점을 맞춘 후 고개만 들고 촬영하면 됩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이 중형 카메라를 적극 활용하는 사진들이 참 많습니다. 




먼저 셀카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자기애가 강한 여자 분이였을까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닐 듯 하네요. 사진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 '비비안 마이어'가 상당히 외로워 보였습니다. 여러 가명을 쓰는 등 자신을 철저히 숨겼지만 그 안에서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셀카를 적극적으로 촬영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진을 세상에 또 내놓지는 않습니다. 사진전이나 주변에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죠. 



사진들은 그냥 흔한 일상 기록물 같은 평이한 사진들

내려다 보면서 촬영하는 중형 카메라는 몰래 촬영하는 캔디드 사진 찍기 편합니다. SLR은 눈과 시선을 일직선으로 향해서 상대방이 총을 맞는 느낌의 거북스러움이 가득한데 비해 중형 카메라는 박격포를 쏘듯 내려다 보니 저 사람이 날 찍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비비안 마이어는 주인집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를 다니면서 사진 찍기에 몰두합니다. 다큐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보면 당시 비비안 마이어가 키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인터뷰를 하는데 좋은 기억도 있지만 자신을 방치했던 아픈 기억도 함께 꺼내지더군요. 비비안 마이어는 아주 좋은 유모는 아니였나 봅니다. 사진 찍기에 몰두 하다가 아이를 방치하는 행동을 가끔 했습니다. 



좋은 사진들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진은 평이한 기록 사진입니다. 어떤 공통된 주제도 없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어떤 피사체를 병적으로 기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산책을 하다가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이었죠. 따라서 사진 자체에 큰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전 세계에서 전시를 하는 이유는 이 '비비안 마이어'의 삶이 독특하고 그 독특한 삶을 잘 포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것 같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거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니의 비밀은 외로움을 달래는 막샷

사진들 한 장 한 장에는 큰 가치가 없습니다. 다만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큽니다. 시카고와 뉴욕의 50,60년대 사진들이 참 많습니다. 이 50년대는 생활사진가가 세상을 기록하던 시절이 아니였습니다. 보도 사진기자와 전문 사진가 등이 의뢰자의 의뢰를 받고 촬영을 했습니다. 

의뢰자가 있는 사진은 사진가나 사진작가가 찍고자 하는 사진이라기 보다는 출판 및 보도의 목적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의도로 가공 되어집니다. 그래서 순수하지 못한 상업적 사진과 비슷합니다. 


반면, 비비안 마이어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사진을 찍었습니다. 출판도 전시의 목적도 없는 그냥 사진 찍는 그 자체를 즐기려고 찍은 듯 합니다. 절대적 순수함과 강렬함을 품고 있다고 소개되고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대적 순수함 보다는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이 친구였고 셔터음이 친구의 목소리였습니다.
평생을 외롭게 지내고 외부와 단절한 삶을 살았던 비비안에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것은 카메라였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가 꽤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비안이 사진을 좋아하기 보다는 사진 찍는 그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의 결과물도 보지 못한 인화 안된 필름들이 꽤 많은 것을 보면 사진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네요. 아마도 돈이 없어서 현상도 안 한 필름이 많지만 돈이 있어도 현상을 안 했을 것 같네요. 정말 돈이 궁했다면 아예 사진 찍는 것도 안 할 것 같네요. 



커크 더글라스나 오드리 햅번이라는 유명인을 찍은 사진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진은 길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진들은 대부분이 막샷입니다. 여기서 막샷이란 폄하의 목적이 아닌 실제로 스냅 사진처럼 막 찍고 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일반 생활사진가보다 대담해서 좀 더 근거리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많습니다. 사진들을 보면 갑자기 다가온 카메라에 놀라는 사진도 있고 찍지 말라는 손짓을 하거나 경계의 눈빛을 담은 사진들도 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개의치 않고 그냥 다 찍었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자신의 친구의 목소리인 셔터음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15만 장의 사진 중에 느낌이 굉장히 좋은 사진도 꽤 있습니다만 느낌이 좋은 사진은 극히 일부입니다. 그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그녀는 프로가 아닌 생활 사진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 재 조명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활 사진가가 된 듯하네요




잘 포장된 생활 사진가. 이게 제 느낌입니다. 물론, 제 느낌이 정답은 아닙니다. 제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죠. 
유모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15만 장이라는 사진을 찍은 것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그 사진들이 SLR도 아닌 중형 카메라라서 촬영해서 사진 품질이 좋다는 것과 1950,60년대의 뉴욕과 시카고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 등의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비비안 마이어' 사진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사진들을 보면서 이 사진을 찍었을 비비안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어떤 생활을 했을까?라는 카메라 뒤에 서 있는 그녀의 삶에 초점이 자꾸 맞춰지네요. 평생을 카메라와 친구하면서 외롭고 고독하게 보냈을 것 같다는 생각디 많이 드네요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또 다른 거리 사진가인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전과 함께 전시중입니다. 두 거리의 사진가의 다르지만 닮은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8월 22일, 9월 5일 , 9월 13일에는 무료 강연도 합니다. 




2013년 BBC에서 제작한 '누가 내니의 사진을 가져갔는가?'도 상영합니다. 전 시간이 없어서 보지 못했지만 꽤 볼만한 다큐입니다. 


시간 내서 꼭 보세요. 전 앞 부분만 봤는데 괜찮은 다큐네요



여성 거리 사진가는 많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진가가 '다이안 아버스'겠죠. 그 옆에 '비비안 마이어'가 있네요. 
두 사진가를 동급이라고 하긴 힘듭니다. '다이안 아버스'는 확실한 주제와 소명의식이 있는 반면 '비비안 마이어'는 아마츄어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위 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사진을 소비하고 사랑했을 뿐입니다. 




1970년대가 되면 비비안 마이어는 라이카 카메라를 사서 컬러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진은 누가 촬영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촬영 되어졌네요. 이것도 셀카 같네요. 거울 앞에서  카메라를 가슴 위치에 놓고 목측샷으로 촬영한 듯 합니다. 




비비안 마이어를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만큼 오로지 자신의 사진만 가득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촬영하거나 남을 촬영한 사진들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가 사진 안에 들어가는 것을 사진가 대부분은 싫어하는데 비비안 마이어는 과감하게 자신의 그림자를 사진 안에 넣습니다. 



애니 심슨가족의 25시즌에는 예술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 짝퉁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찾아간 리사가 자신이 감동한 그림이 짝퉁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라는 사후확증편향의 말을 합니다. 이에 짝퉁 화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아름다움은 짝퉁이 없다면서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합니다. 짝퉁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그림이 너에게 감동을 주었냐?에 감동을 주었다라고 대답을 했다면 그 그림이 그 사진이 예술입니다. 

저에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감동을 주었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생각입니다. 
조형성이 좋은 사진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그 골목의 옛 모습이 아닌 외국의 1950,60년대 사진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적인 연결 고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생활 사진가의 사진일 뿐이였습니다. 
다만, 그녀의 삶이 독특하고 비밀스럽고 외로웠던 삶에 대한 아련함이 있고 흥미롭지만 그 삶이 사진을 대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그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사진을 포장하는 포장지 이상의 역할을 하네요. 그 포장지를 벗기고 사진만 본다면 전 추천하기 힘든 사진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사진을 소비할 때 사진만 보는 것이 아닌 그 사진의 배경과 찍은 사진작가의 후광까지 섭취하기 때문에 한국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썬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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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미네 2015.08.26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견 제시합니다.
    좋아하던 블로그가 아니면 그냥 지나가겠지만 이번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포스팅은 심히 실망스럽네요.
    일단 제목부터 딴지를 걸어보겠습니다.

    내니의 비밀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막샷이라고 하셨는데
    이 포스팅제목으로 보면, 비비안 마이어는 특별한 구석이 없는 평범한 내니일 뿐이고, 그녀가 찍은 사진은 그야말로 <막샷>들이며
    따발총처럼 연사한듯 쏘아된 막샷중에 확률적으로 우연히 적중한 극히 일부의 사진이 과대포장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으신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자. 제소개부터 하자면 저는 본업은 의업이고 주말에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하며, 주로 가족의 일상과 여행사진을 취미로 찍는 아미추어 생활사진가입니다. 비비안 마이어처럼 여성이구요.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독학하기 시작한 지는 몇년되었고 이 블로그도 종종 들어와 보았습니다. 일단 저는 우리가족의 생활사를 기록하기 위한 목적으로 찍기때문에 기록매체으로서의 사진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지만, 블로그, SNS에도 안걸고 단지 컴하드에만 날짜별로 저장하는 기록사진일지라도 미학적으로도 좋은 구성의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기전 프레임안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지 늘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사진공부도 하고 있는거구요.

    일단 비비안 마이어는 일반적인 내니는 절대 아닙니다. 저도 예전엔 입주도우미, 지금은 출퇴근 도우미를 쓰며 가사와 육아에 도움을 받고 살고 있고 제 친구들 지인들(모두 여의사들입니다)도 입주 도우미를 쓰고 있지만, 도우미 아줌마가 사진찍기를 즐기고 신문기사 스크랩을 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사진과 신문의 공통적인 특징은 정보전달과 기록입니다. 비비언 마이어가 유모로 들어가는 집마다 가지고 다녔다는 엄청난 짐의 대부분이 옷가지나 잡화가 아닌 신문스크랩과 상자에 든 사진과 필름들이였죠. 이유를 묻는 고용인들에게 이 짐은 내 인생이라고 말을 했다죠. 이것만 봐도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이 남달랐던 여성이었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또 비비안 마이어는 1959년에 카메라를 들고 8개월간 세계를 여행하며, 이집트, 인도, 유럽, 베트남, 타이, 심지어 예멘에서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처럼 글로벌화가 진행된 시대에도, 관광지로 유명하지도 않은 예멘같은 국가를 다녀오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전체 미국인중 0.1%? 내니중에는 0.001는 될까요? 자 그래도 비비안 마이어가 평범한 내니로 생각되는지 궁금합니다.
    또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유투브 동영상들을 보시면 존 말로프가 보관하는 비비안 마이어의 유품중에 타 사진작가들의 사진책과 사진집들이 나옵니다. 캡쳐화면에 보인 것만 17권이었습니다. 화면에 안잡힌것까지 합치면더 많겠죠. 지금이야 개나 소나 사진책을 내고 서점에 사진책코너가 따로 있지만, 그 시대에 몇십권의 사진책은 사진에 대한 특별한 열정이 없다면 모으기도 쉽지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또 사진책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비비안이 사진에 대해 독학으로 공부해서 이론적 배경으로도 무장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유품중의 사진책들을 본 후 비비안의 사진중 이론적으로 완벽한 구도를 보여주는 일부 사진들에 대한 의문이 풀렸습니다. 발음은 덜 굴러가지만 고급어휘와 문장력으로 유명한 반기문 총장님의 영어가 독학으로 습득된 것임은 알고 계시겠지요? 안철수씨의 컴실력, 박경철씨의 해박한 경제지식도 독학으로 이룬 것임은 잘 알 고 계실 것이구요. 요지는 비비안 마이어는 일반적인 내니가 아니며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우진 않았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독학으로 사진공부를 했던 여성이라는 얘기입니다.

    둘째,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막샷이라는 내용에 대해,
    여기에도 반박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집카메라를 학교소풍에 들고 가던 시절, 즉 80년대 중후반에 후라이드치킨 한마리가 4000원 이쪽저쪽, 24-7장 들은 필름 한통이 3000원정도였습니다. 지금은 후라이드 치킨한마리가 15000-20000원 정도 하니 학생들이 소풍에 카메라를 가지고 가던, 즉 카메라가 대중화 된 시절에도 필름 한장의 가격이 어느정도인지는 계산해 보시면 아시겠구요.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에 입문했던 20대 초중반은 그때부터도 무려35년전인 1950년대 초반이니 그 당시 필름 한장이 요즘 돈 가치로 얼마나 될지 짐작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이야 메모리 카드의 발달로 수백장을 찍고 지우고 해도 돈이 안드니 막샷이 난무하지만, 님이 유모로 많지 않은 돈을 벌고 있고 그 돈의 대부분을 필름을 사는데 쓰고 있다면, 한장을 찍는데 요즘돈으로 몇천원씩의 필름 값이 든다면 의미없는 장면이나 피사체에 막샷을 쏘아댈 수 있을까요?
    사진은 셀렉팅의 예술이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들도 사진가가 한 촬영장소에서 일주일에서 보름씩 숙식하며 찍은 수백에서 수천장중에서 3-5장을 골라 잡지에 실고, 잡지의 광고사진,패션사진도, 모델이 풀메이크업과 헤어, 패션까지 세팅하고, 조명도 완벽하게 세팅한 상태에서, 모델에게 여러 포즈를 요구하며, 가로로도 세로로도, 위에서도 아래서도 대각선으로도 수십 수백장을 찍어서 그중에 한두장 골라냅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같은 장면을 두장 찍은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사진들이 퀄리티가 높습니다. 이는 비비안이 셔터를 누르기전 프레임의 구성에 고민을 하며 고도의 집중력과 직관을 발휘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15만장중에 골라낸 사진들이라고 하셨는데 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110여편의 사진은 존 말로프가 소장하는 10만장이 넘는 네거티브중 발견초기에 인화해서 공개한 일부이구요. 아직 인화조차 되지 않은 네거티브가 훨씬 많습니다. 존 말로프 말로는 앞으로 몇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작업이라고 하지요. 또 공개되었지만 이번 전시회에 전시되지 않은 사진중에도 전시회에 전시된 사진들보다 좋은 작품들도 많습니다. 물론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중에 특별하지 않은 사진들도 많습니다. 그건 유명사진가들의 사진도 마찬가지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찍은 사진들도 특별한 사진보다 평범한 사진이 몇십배는 많을 것입니다. 언급해주셨듯 사진은 셀렉팅의 예술이니까요.

    또 하나 비비안의 사진이 특별한 아이덴티티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비안의 사진은 피사체도. 사진구도나 연출도 아주 다양합니다. 인물사진은 포트레이트도 있고 캔디드도 있으며 오드리헵번이나 살바도르 달리처럼 유명인사나 잘꾸민 상류층 여성들의 사진도 있는가 하면, 홈리스 노숙자나 공사현장의 인부들, 빈민층들의 사진도 많습니다. 아이들의 사진도 있고, 노인들의 사진도, 연인들의 사진도, 가족사진도 있습니다. 역광사진들도 아주 잘 찍었고 사진속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이 살아있고 개개인의 특성을 아주 잘 살렸습니다. 그외에 손만 찍은 사진도 있고 다리나 발만 찍은 사진도, 엉덩이만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쓰러진 자전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힌 인형처럼 사물도 많이 찍고, 여행사진도 있으며, 도시도 시내전경을 내려다 보는 사진도 있고, 전경과, 중경에 멋진 철골다리를 프레임으로 배치해서 원경으로 마천루를 찍은 훌륭한 구도의 사진도 있습니다. 스핑크스 사진 보셨나요? 말의 엉덩이를 전경으로 넣고 저멀리에 스핑크스를 배치해서 살아있는 생명체와 죽은(?) 생명체를 대비시킨 사진은 비비안 마이어의 위트가 느낄 수 잇는 사진입니다(보통사람이라면 100이면 100, 한걸음 옆으로 비켜 말 엉덩이를 빼고 찍었겠죠),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을 든 손과 그 옆의 첨탑을 대비시켜 올려다보며 찍은 사진은 제가 본 자유의 여신상 사진중 가장 참신한 사진입니다. 줌도 안되는 카메라로 그런 구도의 사진을 찍으려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전망대까지 올라갔었겠죠.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서 말이죠. 비비안 마이어는 기본적인 사진 이론 뿐 아니라 뛰어난 관찰력, 호기심, 탐구정신, 실험정신, 순발력과 직관, 유머, 가장 중요한 사진에 대한 열정까지, 사진가가 가져야 할 모든 덕목을 다 갖춘 사진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다양한 사진 전반에 흐르는 공통적인 매력은 강렬한 순수함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피사체, 인위적으로 설정되지 않는 장면들,그리고 상업적 목적, 과시적 목적이 아닌, 오로지 자기만족만을 위해 찍은 사진들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순수함이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사진을 수단으로 찍는 사람들의 사진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순수합입니다 비교하자면, 최고의 미인이라고 할수 없지만 수백명의 미인중 화장도 성형도 하지 않은 단 한명의 미인을 마주하는 느낌. 그게 비비안 마이어 사진들의 정체성이고 이제 필카의 시대는 저물고 있으니 앞으로는 나올수가 없는 전후무후한 사진들이 되지 않을까 하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사진들은 쓰레기통에 담긴 인형의 클로즈업사진들이었습니다. 줌도 안되는 카메라로 그장면을 화면 가득 담으려면 분명 쓰레기통위에서 허리를 굽혀서 찍었겠죠. 인형은 아이가 크면 버려집니다. 유모도 마찬가지죠. 20-30대에 걸쳐 한 가정에서 16년동안 세 아이를 키워준 후 비비안 마이어는 끊임없이 이집저집 옮겨다니는 신세가 되는데 버림받은 인형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것 같은 그 사진들이 저에겐 굉장히 서글프게 느껴졋네요. 또 하나. 공개된 셀피사진중 가장 나중작인 1986년 셀카사진, 늙어버린 본인의 얼굴을 카메라로, 목의 주름은 스카프로 가리고 예전 셀카들과 달리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고 초라한 벽거울에 대고 찍은 사진도, 늙고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된 비비안 자신의 담은 것 같아 처량하고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말년엔 임대아파트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면서, 혼자 공원에 나와 하루종일 우두커니 앉아있곤 했다죠. 돈이 없어 좋아하는 사진을 찍지도 못했던 노년의 비비안 마이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고흐처럼 사후에 빛을 발하게 된 불운한 천재 예술가로 마케팅되는 작금의 현실은 반대합니다만 그녀의 사진과 사진에 담긴 열정과 순수함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음은 저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녀를 위한 장문의 변을 쓰고 있네요..
    상업성을 위해 과대포장된 유모의 사진이라는 편견을 깨시고, 1050년에에 혼자 카메라를 들고 전세계를 여행하던 여성, 수십권의 사진서적으로 사진을 독학하고 사진에 대한 열정을 평생 간직했던 여성으로 생각하고 사진들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책, 나는 카메라다라는 기가 막힌 제목의 책처럼, 그녀가 카메라와 일체가 되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진에 담고자 했었는지가 다시 보일 것입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5.08.26 15: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포스팅에 대한 실망은 이해합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니까요. 다만 댓글에 대한 제 재반론을 담아보겠습니다.

      첫째 출퇴근 도우미 분들이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을 못봤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분들 한달에 얼마나 벌까요? 많이 벌지 못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분들인데 카메라 살 돈이 없습니다. 물론 똑딱이 카메라나 돈을 모아서 살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삶 자체가 여유가 있을 수 없는 삶입니다.

      반면 마이어는 다릅니다. 마이어가 사진 그것도 사진작가도 비싸다고 하는 롤렉스 카메라와 수많은 필름과 필름 카메라와 전시회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집 한채 가격인 라이카 카메라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취미를 넘어서 직업이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마이어는 사진으로 돈을 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고급스런 취미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바로 마이어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마이어가 활동하던 미국이 50~80년대는 미국의 경제 호황기였습니다. 따라서 내니라고 해도 돈을 꽤 벌었죠.게다가 같은 집에서 사니 집세도 안 냈죠. 반면 그 출퇴근 도우미 분들은 집세내고 공과금내고 아이들 키우려면 돈이 남지 못합니다.

      내니와 한국의 도우미 아줌마를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입니다.
      그래서 마이어는 내니를 하지 못한 말년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나마 예전에 내니가 키웠던 아이가 커서 마이어에게 집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사진집이나 사진 이론책이 많다고 사진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도 사진작가게요.



      반대로 사진집 하나 없이도 사진자각 된 분들도 많고요. 라이언 맥긴리 같이 유명세가 무기인 사진작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경하는 흑백 사진작가 대부분은 사진을 현장에서 배웠지 책으로 배우지 않았습니다. 전 마이어의 사진에게서 어떤 자신만의 시선을 보지 못했습니다. 본 것이 있다면 필요 이상으로 셀카를 엄청나게 찍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해외 여행을 한 것은 마이어 자신이 번 돈으로 간 것이 아닌 유산을 물려 받고 그 유산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사진에 대한 열정은 사진작가를 뛰어 넘습니다. 이는 인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의 기록물 숫자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열정에 대해서는 비난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다만, 열정이 있다고 사진의 품질이 좋다고 하기 어려워 보이네요


      마이어와 생활 사진가 사진과 큰 차이점은 없습니다. 자신만의 시선, 다른 작가와의 차별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막샷이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막샷이 좀 폄하의 단어인 점은 좀 심했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단어가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

      마이어가 다른 생활 사진가보다 좋았던 점은 아무나 다가가서 초상권이고 뭐거 안중에도 없고 불쾌해 하던 말던 막 찍었다는 것이 다릅니다. 지금 그랬다가는 멱살 잡힙니다. 저도 길거리에서 멋진 인물 보고 촬영하려고 해도 카메라를 내리는 게 바로 그 초상권 때문입니다. 당시는 초상권 개념도 없기에 부도덕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 시대만의 특권이 아닐까 하네요. 대신 필름 카메라라서 유지비가 많이 들었지만요

      분명, 전 포장이 꽤 많이 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진작가로 칭송하기에는 부족함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힐난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인정 욕구가 강해서 세상에 선보인 사진가도 아닌데요. 다만, 저걸 포장하는 사람들의 포장술이 꽤 정교하다는 느낌도 많이 드네요

      그냥 열정적인 생활 사진가 정도로만 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선은 제 주관이기에 정답이 아닙니다. 다만 제 주관일 뿐이죠. 실망 하셨다는 말은 제 주관이 리미네님 주관과 달라서 쓰신 것 같은데 감상이 나와 다르다고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누구는 재미없다고 하고 누군 재미있다고 할 수 있죠. 감상에 정답이 없잖아요. 다만, 왜곡된 사실을 바탕으로 자기 주장을 하면 그건 문제가 큽니다. 제 글에 사실 왜곡이 있다면 언제든지 지적해 주세요. 다만, 주관이나 평이 다르다고 실망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2. 리미네 2015.08.26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재미있게 되었네요. 재재반론을 다시 펼쳐보겠습니다.
    같은 여성에, 사진을 좋아하고, 취미로 사진을 찍고 누구에게 보여줄 목적이 아닌 일상의 기록사진을 찍는 다는 걸 즐긴다는 교집합으로 인해 비비안 마이어의 입장에 제가 이입을 하는 모양입니다. 아참 저도 주말외출시엔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닙니다.

    아래는 나는 카메라다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중략-
    마이어가 열심히 모았던 것은 사진만이 아니다. 마이어는 세실 비튼부터 토마스 스트루스에 이르기까지 사진가에 관한 논문을 포함해 수천 권의 책들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사진엽서, 유명인사의 사인이 든 사진, 야구 카드, 모조 보석, 정치 홍보용 배지, 우표, 라이터, 구둣주걱, 병따개 등도 수집했다 … 갱단 기사부터 케네디에 관련된 기사, 상담을 해 주는 디어 애비 칼럼, 현대 사진전 리뷰 같은 기사들을 발췌해 모았다. 그 분량이 파일 수백 권에 달했다. (22쪽/마빈 하이퍼만)

    요즘은 디지탈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더욱 널리 보급이 되고 가격도 많이 저렴해졌죠. 도우미 아주머니들의 경제력을 과소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요즘도 입주아주머니들은 숙식을 거의 입주가정에서 해결합니다. 즉 생활비가 따로 들지 않죠. 휴대하기 편할정도로 기동성도 있고 기기적 성능도 괜찮으면서 결과물도 나쁘지 않은 nx1 정도의 카메라는 150-200정도되는 입주 아주머니들의 한달치 수입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신문은 입주가정 의 신문을 무료로 읽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스크랩도 할 수 있구요. 요즘 도우미는 생계가 어려워서 사진활동을 못하고 신문을 못본다. 1950년대 미국 내니는 수입이 많아서 고가의 카메라도 사고 그 비싼 필름으로 막샷도 찍어대고 신문기사 스크랩도 몇박스씩 했다. 좀 특이한 논리네요. 제가 보기엔 사진에 대한 관심과 열정.지적 호기심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보입니다만...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항공편이 발달하지 않은 1950년대에 8개월동안 아시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하려면 숙박비와 교통비만도 요즘돈으로 최소한 3000-4000만원은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람은 돈이 생기면 가장 필요한 소비 또는 우선 순위 관심사에 소비를 합니다. 의식주가 해결된 사람에게는 그게 자동차일수도, 명품이거나 해외여행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은 의식주 해결이 최우선순위죠. 집도 없은 처지에, 물려받은 유산으로 세계여행을,그것도 인기 관광지나 휴양지가 아닌, 당시로는 오지나 다름없었던 예멘, 베트남 등으로 여행을 했다는 사실은 비비안 마이어에게는 본인의 호기심과 탐구심 충족이 의식주해결이나 미래에 대한 대비보다 우선순위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자료에 의하면, 비비안 마이어의 수집품에는 사진가에 대한 논문도 있네요. 말씀처럼 사진책 몇십권정도는 누구나 소장할 수 있습니다. 저도 꽤 있습니다. 사진집들은 소위 <뽀대>가 나서 지적 허세를 부리기도, 서재 장식용으로도 좋죠.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본인의 수집품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 온전히 본인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을 충족시킬 목적으로만 수집해서 공부하고 소장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고흐의 그림들이 기교가 뛰나서 유명한 건 아니죠. 동시대 사람들에게 고흐의 그림이 단 한점 밖에 안팔린 이유가 그 시대 사람들은 그림보는 안목이 없어서도 아니구요. 예술품이 빛나는 데에는 그 예술작품을 창조한 사람의 혼과 열정도 한 몫합니다.
    물론,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도 여느 사진가들의 평작들처럼 기교적으로는 특별하지 않은 사진도 많습니다. 반면 감탄이 나올만큼 좋은 구성의 사진도 상당하구요. 순수한 기록사진은 잘찍기가 참 어렵습니다. 피사체를 가공할 수가 없으니까요.특히나 정지되어 있는 사물이나 풍경이 아닌, 움직이는 인물 사진은 요즘처럼 오토포커스 성능이 뛰어난 카메라로도 잘 찍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생활사진을 찍지만 공부하면 할 수록, 찍으면 찍을 수록 사진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을 보면 그녀가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거리와 지나가는 행인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다가 관심을 끄는 피사체가 눈에 들어오면 가까이 다가가서 본인의 관심과 이목을 끈 부분에 최대한 집중한다음 직관적으로 최대한 좋은 구성으로 프레임에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님이 포스팅한 위의 몇몇 사진중에서도, 마이어가 본인의 그림자를 천사가 그려진 액자에 일부러 겹치게 해서 찍은 셀카라든지 얼핏보면 생각없이 찍은 가판대 신문사진같지만, 시카고 트리뷴이라는 글자가 함성을 지르고 있는 정치인의 눈에 안대처럼 교묘하게 겹쳐있는 익살스런 부분들은 캐치하지 못하셨나 봅니다.
    님은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진과 사진가에 대해 아는척과 논평을 겯들여 지적 허세도 충족하고 팔로워들의 추앙 댓글도 받고 파워블로거로 광고도 걸어 경제적인 보상도 누리시지만, 평생 님같은 보상은 바라지도 받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신이 젊은 날 찍은 사진들을 노년에 돌아보고 감상하는 호사조차 누려보지 못한, 일생동안 본인의 모든 수입과 여가시간을 사진에 바친 한 여성의 결과물들을, 스냅샷도 아닌 그저그런 막샷들이라고 폄하한다면, 이 블로그를 누가, 별볼일 없는 막포스팅들에 광고나 잔뜩 걸은 상업적 블로그로 폄하한다고 해도 쿨하게 받아드리실 수도 있으신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조가 격했다면 죄송하고, 저도 사진전은 기회있을때마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랬으면 이런 엄청난 시간을 소모하는 논쟁댓글을 달지도 않았겠죠다 갑니다만 어떤 사진가의 사진보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이 여운이 많이 남았습니다. 20대때 고흐의 서간문책을 읽고 네델란드 고흐 박물관에서 다녀왔을때 남았던 여운처럼요.
    사진들이 꼭 기교적으로 훌륭해서라기 보다 어쩌면 그녀의 평생 단한번도 보상받지 못한 순수한 열정과 굴곡진 인생사에 가슴이 아파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참고로 전 게리 위노그랜드의 사진들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예쁜 여자들과 그녀들을 흘끔거리는 남자들의 시선을 카메라로 삐둘빼뚤하게 주구장창 찍어대면 그걸로 유명세도 얻고 사진가의 시그니쳐가 되고 사진전의 테마가 되기도 하는군요. 변화하는 시대의 여성상을 담았다는 것은 후대의 후한 평가이지 게리 위노그랜드가 그렇게 의도했는지는 의문이네요. 님과 저의 시각차이에는 성별의 차이도 한 몫할 수도 있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5.08.26 2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먼저 저에게 격게 말한 부분부터 대답드리겠습니다.

      //님은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진과 사진가에 대해 아는척과 논평을 겯들여 지적 허세도 충족하고 팔로워들의 추앙 댓글도 받고 파워블로거로 광고도 걸어 경제적인 보상도 누리시지만, 평생 님같은 보상은 바라지도 받아보지도 못하고 심지어 자신이 젊은 날 찍은 사진들을 노년에 돌아보고 감상하는 호사조차 누려보지 못한, 일생동안 본인의 모든 수입과 여가시간을 사진에 바친 한 여성의 결과물들을, 스냅샷도 아닌 그저그런 막샷들이라고 폄하한다면, 이 블로그를 누가, 별볼일 없는 막포스팅들에 광고나 잔뜩 걸은 상업적 블로그로 폄하한다고 해도 쿨하게 받아드리실 수도 있으신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당당하게 밝히지만 전 막포스팅을 하는 블로거입니다. 또한, 상업적 블로그라고 하셔도 합당한 지적입니다.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다만 사진에 대한 관심이 남들보다 좀 더 많아서 다른 분들이 과분하게 칭찬해 주십니다. 하지만 전 스스로 파워블로거라고 떠들고 다니지도 않고 그런 용어 쓰지도 않습니다.

      저 스스로는 그냥 사진 좀 좋아하는 블로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본격적인 대답을 하겠습니다.
      먼저 마이어의 사진 중에 좋은 사진이 단 1장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찍은 만큼 많이 있겠죠. 아마츄어 야구 또는 사회인 야구 선수라도 프로야구 선수가 던지는 공을 쳐서 안타를 내지 못할까요? 1천개 던지면 그중 1,2개는 쳐서 안타를 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수를 프로야구에서 선수라고 하지 않습니다. 너무 낮은 확률이니까요

      좋은 비교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확률 차이입니다. 꾸준히 자신의 사진 퀄리티와 시선을 유지하거나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사진을 통해 환기 시키냐 등등에서 바라보면 마이어는 어떤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습니다.

      개개의 사진으로는 좋은 사진은 있습니다만 뭔가 엮어주는 주제가 명징하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다만 제가 공감하는 부분은 그 열정입니다. 열정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이셨고 프로사진가보다 열정면에서는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부분에 대한 이견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세상을 보는 시선은 열정이 있다고 모두가 프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준혁 선수가 그러더군요. 야구는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요. 그런면에서 마이어는 좋아는 하지만 사진을 잘 한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저와 의견이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마이어를 폄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녀 자체는 열정적인 사진가라고 생각하지만 숨겨 놓은 여성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칭송은 과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말씀 잘하셨습니다. 같이 하는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전 저도 봤고 그에 관한 글을 쓰려고 준비 중입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전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도 별로더군요. 이 작가는 길거리 여성 사진을 찍긴 하는데 딱히 대단한 것을 느끼지는 못하겠더군요.

      이는 제 취향의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일상 사진도 좋아해서 로베르 드와노나 마크 리브 사진같이 일상의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들을 좋아하지만 그냥 길거리에서 삐딱하게 찍는 게리 위노그랜드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이어 사진전보다 더 실망한게 위노그랜드 사진입니다.

      제가 남자라서 마이어를 깍아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깍아 내리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냥 열정적인 여성 취미 사진가에 대한 소개만 해도 좋은데 너무 부풀리는 경향이 있는 부분에 대한 반감은 좀 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 대한 보상에 대한 생각은 사진 외적인 이유 즉 그녀의 사진을 포장하는 포장지 역할인 것 같아서 사진을 볼 때 철저하게 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진을 인식할 때 그 포장지도 무시 못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천재의 3대 조건 중에 죽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잖아요.
      만약 지금 마이어가 살아 있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말년에 행복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나 그녀의 성격상 사진전은 꿈도 못 꾸었을 듯 하네요.

      한편으로는 반성도 됩니다. 마이어처럼 저도 참 많이 찍고 다니는데 진중하게 사진을 찍기 보다는 기록용으로 블로그 포스팅용으로 촬영하는 사진이 대부분이니까요.

      저도 항상 카메라 들고 다닙니다. 좋은 사진 많이 찍으시고 좋은 사진전 많이 다녀보세요. 저도 좋은 사진전 많이 보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다만, 이 나라의 사진바닥이 너무 협소하니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글을 많이 쓰면 사람들이 좋게 봐주시네요. 미천한 사진그릇으로 글 나부랭이 써서 좋아해 주시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쓰는 게 아닌 그냥 내 사진 생각을 주러리 거리는 일기장 공간으로 계속 채워 나갈 생각입니다. 그게 더 멀리 가고 오래가는 블로그가 될 것 같아서요

      긴 장문의 글 잘 읽었고 좋은 글 생각하게하는 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그 막샷이라는 단어 때문에 화가 좀 나신듯 한데 폄하의 단어일 수 있지만 얻어 걸린다는 식의 사진들의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선택한 단어입니다. 대체할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요.

      아! 더 추가하자면 제가 뭐라고 제가 이렇게 저렇게 생각한다고 그거에 크게 영향 받지 마세요. 제가 뭐 대단한 사진평론가도 아니고 블로거 나부랭이이고 별 영향력도 없는데 제가 이렇게 봤다고 거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사진평론가가 주례사 같은 전시 서문이나 평을 잘 읽지도 않지만 참고만 할 뿐 그 평에 크게 신경 쓰지 않거든요

  3. 리미네 2015.08.27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겨찾기에 등록해두고 틈틈히 좋은 사진을 보고 배우고 가던 블로그에 단 첫 댓글이
    딴지글이 된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저역시 님과의 논쟁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취미로 가끔 유화를 그리던 대학생시절엔 사진은 예술장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님과 제가 이견을 보이는 부분은 이제 타율로 좁혀졌네요.
    8월초 새로 산 신형 카메라를 목에 걸고 가족들과 일주일간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요세미티공원에서만 100장가까이 찍고 풍경사진 가족사진, 스냅사진 등등 500장이상을 찍어왔는데 그냥 저냥 나쁘지 않은 사진이 기껏10여장.
    완전히 제마음에 드는 사진은 단 한장도 없었습니다.
    네. 사진은 셀렉팅의 예술입니다. 절대적으로 동감합니다. 몇년동안, 시간날때마다 사진책을 읽고 유명한 사진가들의 사진들을 보고 전시회도 가고 일요일이면 평균 50-100장씩의 스냅사진을 찍고 나름 기기적 성능이 우수한 신형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녔는데도 내가 무엇을 보았고 느꼈고 그장면의 어떤 면에 끌리고 집중했는지를 확실히 드러내주는 사진을 찍기는 여전히 어렵다는걸 절실히 실감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이 저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찍는 순간, 무엇을 보았고 느꼈고 왜 그사진을 찍었는지 즉 그녀의 point of view가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점입니다. 엄마의 시각에서 눈에 들어오는,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밝고 구김살없는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 여성으로써 공감할 수 있는 관심사인 여성들의 우아하고 클래식한 옷차림과 악세사리, 쇼윈도에 전시된 구두들, 행복하게 웃고 있는 노숙자, 울상을 짓고 있는 어릿광대, 허리를 굽혀 프레임 가득 채워 찍은 쓰레기통속 버려진 인형, 쪼그려서 찍었음이 분명한 low angle의 쓰러진 자전거, 망원렌즈도 없이 군중을 헤치고 앞줄로 힘들게 나아가 찍었음이 분명한 오드리헵번, 닉슨 대통령, 저만치서 한컷 찍고 쫓아가서 코앞에서 정면으로 찍은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 꼭 잡고 있는 연인들의 클로즈업 손사진, 액자속 마릴린 몬로의 실루엣과 일부러 오버랩시킨 자신의 셀피사진 등, 다양한 스냅샷, 풍경사진, 인물사진 속에서 깨알같은 그녀의 point of view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재미가 저는 느껴집니다. 구도나 구성에도 꽤 신경을 썼구요. 1:1 프레임이니 가로로 찍을 것인지 세로로 찍을 것인지의 고민은 없었을 수도 있겠네요. 재미있는 점은 동시대 사진가인 게리 위노그랜드가 주구장창 찍은 핀업걸스타일의 여성을 담은 사진은 한장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수하고 다양한 피사체를 담은 비비안 마이어가 무엇은 카메라에 담지 않았는지 그녀의 뚜렷한 주관과 미학관이 드러나기도 부분이기도 합니다.
    재능과 열정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 역시 동감합니다. 재능없는 자의 열정은 재앙이다- 모 개그맨 출신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남편이 한 말입니다. 운동신경은 눈꼽만큼이라도 없는 제가 열정만 가지고 야구방망이를 수백번 휘두른들 홈런은 고사하고 안타 하나도 나올리 만무하지요.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제 기준으론 타율도 결코 낮지 않다고 보는데,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는 기준과 취향은 심히 주관적이니 이부분의 견해차는 더이상 좁혀지기 힘들 것 같군요.
    님과의 논쟁을 하며 비비안 마미어의 자료들을 더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알아낸 사실들,
    네. 님말대로 비비안 마이어는 불운의 천재 사진가로 상업적으로 포장된 부분이 있습니다. 아래는 시카고 트리뷴에 겐스버그 형제가 올린 부고인데 그대로 복사해왔습니다. 그녀는 말년에 독거 노인으로 외롭게 살지 않았습니다. 비비안 마이어가 30살부터 40대 중반까지 16년간 유모로 돌봤던 겐스버그 형제들이 1999년 초라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그녀를 좀더 나은 환경의 아파트로 옮기고 죽을때까지 10년간 임대료도 내주었습니다. 직업상, 부모의 요양병원비도 적게 분담하려는 형제간의 분쟁도 종종 목격하는 저에게는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부고를 보면 겐스버그 형제들이 임종도 지킨 것이 분명합니다. 본인들에게 second mother이였다고 적은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겐스버그 형제들은 그녀가 사진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자기가 길러낸 아이들에게 보여주었고 인정을 받았고 그들은 그녀가 extraordinary한 photographer였다고 부고에 적었습니다. 네. 천재나 위대한 사진가라는 표현은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비안 마이어에게는 extraordinary photographer라는 표현이 아주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무튼, 이 논쟁을 통해, 사진과 예술을 보는 관점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생각하고, 그리고 겐스버그 형제들이 낸 부고원문을 읽고 그녀가 말년에 고독사하지는 않았다는 사실, 그녀의 사진가로서의 재능과 열정을 사전에 인정해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님의 블로거도 앞으로도 쭉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여전히 제 즐겨찾기엔 걸려있을 것이고
    종종 들어올 것이고, 우연히라도 오프라인에서 만날 일이 있으면 여러가지로 배우게 될 수도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Vivian Maier, proud native of France and Chicago resident for the last 50 years died peacefully on Monday.

    Second mother to John, Lane and Matthew.

    A free and kindred spirit who magically touched the lives of all who knew her.

    Always ready to give her advice, opinion or a helping hand.

    Movie critic and photographer extraordinaire.

    A truly special person who will be sorely missed but whose long and wonderful life we all celebrate and will always
    remember.

    • Favicon of https://photohistory.tistory.com BlogIcon 썬도그 2015.08.27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년 부분에서는 제가 말하는 부분은 몇달 전에 개봉한비비안마이어의 다큐에서 나온 인터뷰 내용입니다. 동네 할아버지인가가 인터뷰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쓰레기통 뒤졌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또한, 비비안 마이어가 키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인터뷰를 하는데 몇몇 인터뷰에서는 비비안 마이어가 괴팍한 사람이었고 학대한적이 있다는 등 다소 놀라운 인터뷰를 했습니다 약간의 히스테리컬도 보이고요

      비바안 마이어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비비안 마이어 본인에도 병 수준은 아니지만 불안 요소가 꽤 많아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그녀가 남긴 사진은 후손들이 예술적 가치는 전 동의하지 않지만 사료적 가치는 부명 큽니다. 따지고보면 한국의 초기 사진작가들도 기록적 가치가 꽤 높아서 지금 우리가 그분들을 존경하니까요. 시카고 시에서는 비비안 마이어에게 큰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4. 백현수 2015.08.28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론과 재반론...
    이 모든 과정이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양한 관점이 있고, 견해가 있을 수 있는 거죠.
    예술을 감상함에 정답이 강요된다면 그것도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요.
    서로의 감상과 관점을 존중하면서 나의 생각들을 나누는 것, 성숙한 문화시민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다들 너무 멋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