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동아리에 가입한 이유는 사진에 대해서 진중하게 알고 싶기도 했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도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아리는 생각보다 친목도모가 우선시되더군요. 회원 30명 중에서 5~6명 정도만 사진에 큰 관심이 있고 다른 회원들은 사진에 대한 관심 보다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더 컸습니다.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력으로 말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문제는 먹고 놀자 동아리가 변질 돼도 너무 변질된 것이 문제였죠. 이런 환경에서 무슨 사진 공부를 하고 사진에 대해서 더 깊게 배우겠냐고 생각하고 탈퇴를 하는 것이 아닌 그런 흐름에 몸을 맡겼습니다. 사진에 대한 열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전역 후 복학을 해도 사진 동아리의 먹고 놀자 흐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기들은 복학해서 먹고사니즘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동아리 실도 거의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사진에 대한 마지막 끈을 놓아 버리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출사를 나가도 선배는 뒤풀이 물주나 되고 거북스러워하는 모습에 따라가지도 않게 되더군요그렇게 사진과의 인연을 끊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날도 무슨 회식이라고 해서 의무적으로 간 2차 호프집에서 주머니 사정 때문에 감자 튀김 안주만 시켜 놓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술자리도 눈에 안 들어와서 그냥 멍하게 있었습니다. 그러다 위 사진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내 맞은 편에 있던 거대한 흑백 풍경 사진에 넋이 나갔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보고 또 봤습니다. 내가 사진에 감동한 게 이 때가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의 작품인지도 몰랐습니다. 거대한 액자에 끼어져 있던 사진에게 다가가니 사진 작가 이름이 보였습니다.
ANSEL ADAMS, 지금이야 이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얼마나 유명한 지를 잘 알지만 당시는 로버트 카파 밖에 몰랐습니다. 취미로 배우는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작가를 알 기회는 없었고 선배들도 알려주지 않았죠이 사진을 보고 난 후 막 시작한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이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진에 대한 열정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네띠앙에 동아리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 홈페이지 한 코너에 사진작가와 사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아리 홈페이지를 통해서 많은 후배들과 선배들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사진에 관해서 관심 있어하는 후배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그리고 이 블로그가 제 사진에 대한 관심을 차곡 차곡 쌓아 놓은 창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진작가는 로버트 카파도 앙리 브레송도 아닌 이 '안셀 아담스'입니다.
즉물사진의 대가 안셀 아담스
안셀 아담스는 가장 유명한 풍경 사진작가 중 한 명입니다. 안셀 아담스는 처음부터 사진작가는 아녔습니다. 처음에는 음악을 배우는 음악학도였습니다. 음악 중에서도 피아노 연주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취미로 사진을 배우게 됩니다.초기 그의 사진은 회화주의 사진을 지향했습니다. 회화주의 사진이란 사진을 일부러 그림처럼 보이게 하는 사진의 한 사조입니다.
1910년도는 사진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고무인화 방식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무인화 방식으로 촬영한 사진 위에 붓질을 해서 사진이 흐릿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의구심이 들지만 당시 사진은 예술이 아닌 과학의 도구로 여겨졌기 때문에 천박한 매체라는 인식이 많았습니다.그래서 사진가들은 최대한 사진을 그림처럼 보이게 하려는 풍토가 있었죠. 이에 반기를 든 사진분리파들이 사진은 사진다워야 한다면서 사진에 어떠한 후보정이나 조작을 거부한 스트레이트 사진 사조를 만듭니다.
이런 스트레이트 사진 운동을 선도한 사람이 '알프레드 스티클리츠'입니다. 이런 스트레이트 사진 운동은 '폴 스트랜드'와 '에드워드 웨스턴'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는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에도 큰 영향을 주죠.'안셀 아담스'는 '폴 스트랜드'의 직선적이고 직접적인 사물에 대한 접근 방식에 감명을 받고 흐릿한 회화주의 사진이 아닌 스트레이트 사진에 입문하게 됩니다. 이후 F64라는 사진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합니다.
F64라는 사진 그룹명이 특이한데요. 여기서 F64란 조리개 수치를 말합니다. 보통 우리가 쓰는 카메라들은 F22 정도가 가장 조인 조리개인데 F64는 극강의 조리개 수치입니다. 조리개 숫자가 높을수록 조리개 구멍이 작고 작은 구멍을 통해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 전체에 초점이 맞는 팬포커스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풍경 사진 찍을 때는 F11이상으로 찍으라고 조언을 하죠. F64까지 지원되는 카메라는 대형 카메라가 지원되는데 이 대형 카메라를 자동차에 올려 놓고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요세미티 공원 같은 미국의 명산들을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하게 되는데 F64라는 조리개 덕분에 느린 셔터스피드로 인해 사진은 좀 더 고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폭풍이 갠 뒤의 윌리엄슨 산안셀 아담스와 에드워드 웨스턴 같은 즉물주의 사진을 찍는 작가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길 원했습니다. 어떠한 가공도 덧칠도 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 그 자체를 사진으로 흡입하고 싶었습니다. 이는 독일의 유형학적 사진과도 연결이 됩니다. 사진의 증명성을 씨줄로 그리고 사진의 조형적인 미학을 날줄로 섞어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촬영합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안셀 아담스가 1930년대부터 이런 객관적이고 사물 그 자체를 그대로 사진에 담은 즉물주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당시의 예술계 사조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1930년대 당시 조각가는 대리석이라는 조각 재료를 재료의 질감을 느끼게 만들고 건축가들은 철골 구조의 본질을 드러내는 마천루를 만듭니다. 이에 사진계는 사진 피사체의 본질을 천착하게 되고 피사체가 가장 그 본질에 가까울 때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게 됩니다.
위 사진을 보면 전경, 중경, 후경 모든 부분에 초점이 다 맞아서 사진 전체가 그림처럼 모든 곳이 선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을 보면 역설적이게도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선예도가 뛰어난 그림 같은 사진. 그래서 그의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탐복을 합니다.
<돌기둥 - 하프 돔의 얼굴 1927년>위 사진을 보면 돌 표면에 그림자가 져서 화강암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드러날 때를 기다렸다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안셀 아담스의 존 시스템
안셀 아담스 흑백 사진을 보면 놀라운 것이 그 빛의 농도가 기가 막힙니다. 밝은 곳에서부터 어두운 곳까지 계조가 아주 부드럽습니다. 또한, 아주 어두운 곳도 없고 아주 밝은 곳도 없습니다.
이렇게 수묵화 같은 빛의 명암이 칼칼하게 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안셀 아담스 본인이 뛰어난 암실 실력이 있었습니다.
암실의 대가를 넘어서 아예 암실 작업의 기본 스킬인 존 시스템을 만듭니다.
1940년 무렵 안셀 아담스와 프레드 아처(Fred Archer)가 개발한 존 시스템은 쉽게 말하면 안화의 톤을 조절하기 위해서 가장 어두운 곳을 0존으로 하고 가장 밝은 곳을 10존으로 나누어서 사진의 명암을 11 단계로조절하는 시스템입니다.
예전에도 있던 흑백 인화 시스템인데 이걸 안셀 아담스가 체계화시킵니다.
사진 인화 단계에만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광전자식 노출계를 이용해서 촬영할 피사체의 밝기를 존 시스템 단위로 알아낸 후 촬영과 현상 인화할 때 참고를 합니다. 이 존 시스템을 사용하면 사물을 좀 더 정확한 밝기와 질감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셀 아담스' 사진을 보면 노출 오버로 날아간 곳도 노출 부족으로 구분이 안 가는 피사체도 없습니다.이러니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거죠
그림은 노출 개념이 없어서 그리면 다 보이잖아요. 안셀 아담스의 수제자인 존 섹스톤은 미묘하게 반짝이고 찰랑이는 빛을 카메라에 담고 그걸 인화 단계에서 존 시스템을 이용해서 살려냅니다.
왜 흑백 사진인가?
이런 뛰어난 계조의 그림 같은 사진이 안셀 아담스 사진의 특징이지만 의문이 듭니다. 왜 컬러 사진으로 촬영하지 않고 흑백으로 찍었을까?라는 의문이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1930년대 당시는 컬러 필름이 있지만 지금처럼 뛰어난 컬러 필름도 아니었고 요즘 필름이라도 해도 장기간 보관하다 보면 색이 바래 질 수 있습니다. 반면 젤라틴 실버 프린트(흑백 필름)는 뛰어난 세부 묘사력과 선명한 대비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다 산화바륨 층이 만든 뛰어난 묘사력입니다.
그렇다고 컬러 사진을 안 찍은 것도 아닙니다. 위 사진은 안셀 아담스가 촬영한 컬러 사진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시 컬러 사진들은 채도가 너무 높아서 천박해 보였습니다.
5억 6천만원짜리 풍경 사진과 우주선에 실린 안셀 아담스 사진
Moonrise, Hernandez, New Mexico (1948)
안셀 아담스 사진 중에 가장 비싸게 팔린 사진은 뉴 멕시코에서 촬영한 달이 뜨는 풍경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2007년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 중 7위를 차지한 작품으로 판매 가격이 5억 6천만원이었습니다. 지금은 더 비싼 사진들이 더 많이 나와서 순위에서 밀려 났지만 여전히 비싼 사진 중에 하나입니다.
The Tetons and the Snake River (1942)
이 사진도 꽤 의미가 있습니다. 위 사진은 태양계를 벗어나서 아직도 우주 여행 중인 보이저 2호에 실린 지구를 알리는 사진 중 하나로 선택되었습니다. 보이저2호에 실린 사진들이 뛰어난 예술 사진만 실린 것은 아니지만 지구의 풍경을 소개하는 사진으로 이 사진을 선택되었다는 것은 아담스 사진이 얼마나 뛰어난 묘사력과 증명성을 보여주는 지를 방증하고 있습니다.
환경 운동가 안셀 아담스
<STATUE AND OIL DERRICKS SIGNAL HILL>
안셀 아담스는 피아노를 잘 치는 조용한 노인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대단한 활동가였습니다.
1934년 미국의 환경운동단체인 시에라 클럽의 의장으로 선출되어서 많은 화재를 만들고 논란도 일으킵니다. 논란이라고 해봐야 그가 사랑하는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죠. 오랜 시간 환경 운동을 하다가 많은 비난도 받았고 사진에 대한 열정이 떨어졌을 때 1937년 요세미티 작업실에 화재가 나서 많은 필름이 타 버립니다. 이후 다시 카메라를 잡고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2015년 7월 경매에 나온 안셀 아담스 대형 카메라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안셀 아담스가 사용한 대형 카메라가 이번 달 7월에 경매로 나옵니다. 대략 가격은 3억 원이 시작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딸에게 준 선물 -안셀 아담스 사진전 (8월 20일 ~ 10월 19일)
풍경 사진의 대가인 안셀 아담스 사진전이 8월 20일부터 10월 19일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합니다.
안셀 아담스가 딸에게 직접 인화해서 선물한 오리지널 작품 72점이 전시 됩니다. 사진 크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아주 큰 프린팅의 사진이 걸렸으면 합니다. 안셀 아담스 사진은 크게 봐야 제 맛이거든요입장료는 15,000원으로 여느 사진전 보다 살짝 더 비쌉니다. 그러나 지금 티켓몬스터 같은 곳에서 30% 할인한 가격에 선판매를 하고 있네요. 지금 미리 구매하면 1만원에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전은 딱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지만 이 사진전은 안셀 아담스이기 때문에 보고 싶네요. 내 대학시절의 그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