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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퍼펙트 블루. 연예인이라는 허상과 실제의 괴리감를 빼어난 연출로 잘 담은 애니

by 썬도그 2015.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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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곤 사토시가 연출한 일본 애니 <퍼펙트 블루>를 2000년대 초에 봤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보긴 봤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아마 제가 다 보지 않았거나 다 봤어도 재미있게 보지 못했나 봅니다. 그러나 이 <퍼펙트 블루>는 애니 역사상 가장 빼어난 애니 TOP 50안에 들어가는 애니라서 다시 봤습니다. 


연예 산업의 엄혹함과 연예인이라는 허상을 제대로 담은 애니 <퍼펙트 블루>


연예 공화국이 아닐까 할 정도로 우리는 매일 아침 포털 뉴스를 통해서 연예인 소식을 듣습니다. 그 어떤 기사 보다 연예 관련 기사는 댓글과 공감 추천수도 높습니다. 연예인은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음악 등을 통해서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감동을 줍니다. 마치 이웃 같은 친근함이 있는 것이 연예인입니다. 

그러나 전 연예인을 그렇게 좋게 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미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기가 A급이 되는 연예인들은 이미지 하나 하나가 다 만들어지고 관리된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만들어지고 가공되어지는 이미지를 마치 그 연예인의 본성이자 실제로 착각을 합니다. 관리만 잘 된다면 그 허상은 평생을 가져가기에 실제와의 괴리감을 느낄 수 없고 그냥 그 이미지로 평생 살다가 기억에서 잊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예인의 관리되고 만들어진 이미지의 가면이 벗겨지고 실제의 추악한 얼굴이 나타날 때 우리는 달콤한 꿈에서 깨어납니다. 로맨틱 가이인 줄 알았던 유부남 톱스타가  낭만적, 성공적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젊은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추잡스러운 이미지를 대면한 대중은 경악해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부남 배우를 잊고 다시 가면을 쓴 다른 연예인들을 추종합니다. 
과연 그 유부남 배우만 가면을 쓰고 대중 앞에 선 것일까요? 모르긴 몰라도 톱스타들 대부분은 자신이 실제 이미지 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할 것입니다. 그게 광고 찍기도 편하고 돈 벌기도 편하기 때문입니다. 

애니 <퍼펙트 블루>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연예계의 생리와 연예인이 가지는 이미지와 실제와의 괴리감을 뛰어난 연출로 담은 아주 뛰어난 애니입니다. 왜 이런 명작을 15년 전에는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1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몸이고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나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네요. 



아이돌 걸그룹인 참의 리더인 미마는 배우가 되기 위해 참에서 탈퇴를 합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연예계 생태계는 비슷해서 아이돌이 배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예계의 계급도를 보면 아이돌 가수와 개그맨들이 가장 밑에 있고 그 위가 배우 그리고 그 위가 영화만 찍는 영화 배우가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생명 주기가 짧은 아이돌들이 나이를 먹으면 신인 배우로 드라마나 영화에 얼굴을 내밉니다. 

요즘 아이돌은 배우가 되기 위해 아이돌이 된 듯한 느낌도 많이 가지게 되네요. 음악에 대한 소질이 있어서 가수를 하는 것이 아닌 안정적인 배우라는 직장을 얻기 위해서 아이돌 인턴이 된 듯한 느낌이 많이 드네요

미마가 그렇습니다. 미마는 아이돌 걸그룹에서 홀로 탈퇴하고 신인 여자 배우가 됩니다. 대사 한 마디만 있는 엑스트라와 가까운 조연 역이지만 미마는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런 미마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바로 팬들입니다. 
팬들은 미마의 배우로 전업한 것을 못 마땅해 합니다. 자신들의 여신으로 남아주길 바랬는데 배우라는 다른 생태계로 떠나버렸습니다.


그것도 특급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닌 엑스트라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단역이라는 초라함으로 등장하니 팬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그런 불만이 가득한 팬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배신자'라는 문구가 적힌 팩스가 미마 앞으로 도착합니다. 그냥 흔한 과도한 관심이겠지 했는데 미마가 찍고 있는 드라마 '더블 바인드' 촬영 현장에 도착한 편지가 터지는 작은 소동이 일어납니다.

미마는 점점 불안에 떨기 시작합니다. 배우로 성공해야 하는 강박과 아이돌 시절의 팬으로부터의 도를 넘은 관심 때문에 점점 미마는 초라한 배우라는 새로운 얼굴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퍼펙트 블루>는 이 아이돌 가수가 배우가 되는 과정의 엄혹함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았습니다. 미마가 자신의 배역이 큰 비중이 없자 당돌하게도 자극적인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까지 감수하겠다고 말합니다. 아이돌 가수였던 미마는 자신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대가를 혹독하게 치룹니다. 또 하나의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를 거친 후 미마가 연기하는 배역의 역할이 크게 확장 됩니다. 

여기에 원치 않지만 더 큰 인기를 얻기 위해서 누드 사진까지 찍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할수록 미마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됩니다. 남들 앞에서는 아이돌 가수처럼 생글거리는 표정만 짓지만 집에 오면 자기 모멸감에 흐느낍니다. 

<퍼펙트 블루>는 이후  미마 주변의 인물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극의 긴장감이 크게 증가합니다. 그리고 그 범인의 실체를 알았을 때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뛰어난 교차 편집으로 허상과 현실을 섞어버리다 

<퍼펙트 블루>는 허상과 실제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먼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한 실제와 허상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막 인터넷이 보급되던 90년대 말 미마의 한 팬이 만든 듯한 미마의 홈페이지에 미마의 일거수 일투족이 매일 기록됩니다. 미마가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마의 스케쥴과 생각까지 그대로 적어서 마치 미마가 운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마는 그런 모습을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가짜 미마가 쓴 인터넷 일기장을 들여다 봅니다. 허상인 인터넷 홈페이지를 실제인 미마가 남이 쓴 미마의 생각을 미마가 들여다 봅니다. 영화는 인터넷을 마치 거울처럼 이용하네요

또 하나의 실제와 허상은 미마가 출연하는 '더블 바인드'입니다
<퍼펙트 블루>는 영화 초반에는 아이돌 가수의 배우 되기 과정을 특별한 기법없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드라마'더블 바인드'에서 연기하는 미마와 실제 미마를 교차 편집하면서 관객을 속입니다. 

미마의 속마음을 담은 장면이라고 인식하게 해놓고 갑자기 컷! 다음 테이크라는 말이 들립니다. 그때 아! 이게 드라마 내용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퍼펙트 블루>는 또 하나의 허상인 드라마 '더블 바인드'의 장면을 교묘하게 넣어서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마구 섞어 버립니다. 그래서 전 한 번에 다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돌려 봐야 했습니다. 

인셉션도 한 번에 이해했는데 이 <퍼펙트 블루>는 중 후반에 가면 미마의 현실과 미마가 찍는 드라마가 섞이면서 어떤 게 드라마인지 현실인지 헛깔리게 합니다. 이렇게 현실과 허상 또는 환상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 이유는 애니에서 보기 힘든 뛰어난 편집력 때문입니다. 보는 내내 이게 애니라고 하기엔 너무 세밀하고 정밀한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으로 애니에 대한 편견의 벽을 깨버리네요. 



환상계와 실제계를 사는 우리들을 비춘 거대한 거울 같은 영화


우리는 환상계와 실제계를 동시에 살아갑니다. 우리가 꾸는 꿈과 상상과 우리가 읽는 소설과 드라마 영화는 다 환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행동을 담은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대리만족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2시간 짜리 꿈이라고 하죠. 

이런 환상계를 우리는 환상이라고 느끼면 실제계는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환상을 실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계를 파괴 시킵니다. 환상은 환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 환상도 실제라고 생각할 때 자기 파괴가 시작됩니다. 



<퍼펙트 블루>는 드라마, 인터넷, 연예인이라는 환상을 실제처럼 보여주면서 환상과 실제의 경계를 무너트려서 뭐가 실제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애니입니다. 

'환상이 실체화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더블 바인드'의 대사처럼 우리는 실제계에 두 다리를 딛고 환상이라는 달콤함을 섭취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의 범인은 그 환상계가 실제계를 먹어 버린 괴물로 그려지는데 그 괴물이 우리들의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12개의 인격으로 살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 12개의 인격 중에 실체와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인격이 지배하게 된다면 그 때의 나는 추한 모습을 하고 있을 듯 하네요. 이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는 도구로 거울을 이용하는데 이 거울을 이용한 환상과 현실의 선긋기도 매끈합니다. 

정말 대단한 애니입니다. 스토리는 별거 아니지만 뛰어난 교차 편집으로 환상과 현실에 대한 심오한 생각을 박진감 있는 연출로 잘 담아 냈습니다. <퍼펙트 블루>는 표현 수위가 좀 높아서 청소년 관람불가입니다. 그래서 애니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곤 사토시'은 이 영화 다음으로 '파프리카'를 연출하는데 '파프리카'는 아예 꿈에 대한 이야기를 장대하게 펼칩니다. 파푸리카도 다시 보고 싶네요. 그 전에 또 하나의 수작 '천년여우'부터 다시 챙겨봐야겠습니다.


별점 : ★
40자평 : 환상과 현실이 뒤 섞인 세상을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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