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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이다. 영화 보면서 졸다가 영화 끝나고 밤잠을 설치게 만든 영화

by 썬도그 201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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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볼 영화도 없고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는 대중성 높는 영화제에 대한 충성도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받은 영화치고 대중성도 높으면서 감동도 깊은 영화의 평균적인 재미의 성공률이 높아서 영화 이다를 봤습니다.영화 이다는 폴란드 영화인데 놀랍게도 이 영화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습니다.


흑백 영화이면서 조형성이 뛰어나다는 극찬이 가득한 이다. 그러나~~~~~

사진전을 볼 때 도슨트라는 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보는 것보다 아무런 설명 없이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내 감성으로 사진을 다고 보고 난 후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되면 도슨트가 설명하는 사진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도슨트가 설명하는 사진 해설 중에 내가 몰랐던 사실을 들으면서 내 감성을 수정하기도 합니다만 아무런 설명 없이 봤던 사진의 감성이 전 더 좋습니다. 그 감성에 도슨트의 설명 혹은 검색을 통해서 제 감성을 보충하거나 확장합니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영화 이다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상태에서 보기 때문에 이미 제 마음에는 아카데미 시상식 버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뭘 해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영화인데 뭔가 있겠지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꽤 질좋은 반골 기질을 가진 저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이 대수인가? 하는 생각을 챙키고 영화를 관람 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수많은 영화 평을 봤지만 대부분은 이 이야기를 합니다. 흑백영화 4:3비율 정갈하고 단아하다.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뛰어난 영상미. 흑백 영상미학과 조형성에 극찬을 하기에 장면 하나 하나를 챙겨서 봤습니다.



실제로 영화 장면 장면은 황금 비율은 기본 9대 1 비율이라는 장대한 풍경을 담을 때의 구도를 수시로 쓰고 계조가 풍부한 흑백영상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주인공이 수녀의 모습과 1960년대 공산권 국가인 폴란드를 보여주려는지 빈티지한 느낌이 나는 흑백을 적극 활용합니다. 흑백 영상은 말 그대로 뛰어났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제 안의 반골기질과 흑백 사진을 좋아하는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흑백을 제거해서 보자.
그렇게 생각을 하니 스토리만 보이더군요. 그런데 그 스토리가 참 단순하고 지루합니다. 그래서 졸았습니다. 


흑백 사진은 칼라 사진보다 인물 사진에 더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흑백은 색 정보가 없기 때문에 얼굴에 여드름이 있거나 주근깨가 가득해도 두루뭉술하게 쉽게 허용하고 인물이 표정에 집중을 하죠. 그래서 인물 초상 사진은 컬러보다는 흑백사진이 더 명징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두 주인공의 얼굴이 화면 가득 펼쳐집니다. 그러나 평론가들이 극찬한 흑백 영상에 대한 칭찬은 크게 공감하지는 못합니다. 이미 수많은 영화들이 과거 역사를 흑백으로 담는 시도를 했죠.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죠. 영화 이다는 그런 부류의 영화일 수 있습니다.  흑백 영화에 대한 칭송을 마음 속에서 제거하니 영화 자체가 크게 졸리네요



폴란드의 비극을 담대하게 담은 '이다'

영화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1960년 소련의 위성국가인 공산국가인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 이다는 영화기 시작하자 고아들을 보듬어주는 수녀원에서 자란 소녀 안나가 예수님 조각을 만드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3명의  수녀 예비생 중 한 명인 안나는 선배 수녀에게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넌 고아지만 혈육인 이모가 있다는 말을 듣죠. 그리고 그 이모에게 수차례 연락을 했지만 이 수녀원으로 오지 않는다면서 니가 직접 찾아가보라고 합니다. 수녀 서원식을 며칠 앞둔 안나는 수녀가 되기 전에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를 찾아갑니다.

이모 완다는 담배를 물고 항상 술을 찾는 전형적인 정신이 붕괴된 일반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 안나는 종교인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두 혈육은 인사를 나눴지만 십수 년간 떨어져 살아서 남 보다는 가까운 사이일 뿐입니다. 이모 완다는 수녀가 되려는 조카 안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니 이름은 안나가 아닌 이다라고 말합니다.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안나는 큰 느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나에게 이모는 넌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민족도 아닌 유대인. 2차 대전에 홀로코스트를 당한 민족. 며칠 전만해도 평범한 폴란드 사람인 줄 알았던 안나는 이다라는 이름을 안고 유대인인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수녀답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안나에서 이다가 된 이다는 이모 완다와 함께 부모님을 찾으러 떠납니다. 영화 '이다'는 이다와 완다라는 이모가 이다의 부모가 묻힌 곳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지루한 이야기 때문에 중간에 졸다

솔직히 영화 1시간이 지날 무렵 솟아지는 졸음에 잠시 졸았습니다. 그 조는 모습에 깜짝 놀라서 깼습니다. 단 10초지만 제가 영화를 보면서 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미 없는 영화도 비판을 심하게 할 목적으로 절대로 졸지 않습니다. 차라리 참혹스러운 영화라면 졸지 않죠. 어이 없어서 허무해서 짜증나서 졸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 '이다'는 잠시 졸았습니다. 정말 졸리운 영화입니다. 흑백 영화의 조형성? 뛰어난 영상미? 이다 만큼 뛰어난 흑백 영화는 꽤 있습니다. 이 흑백 영상 이다라는 영화는 전체적인 스토리가 큰 사건이 없어서 지루합니다. 안다라는 서원을 기다리는 수녀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완다라는 판사인 이모와 함께 이다의 부모가 묻힌 곳이자 자신의 아들이 묻힌 곳을 찾아간다는 단순한 내용입니다. 

어떻게 보면 로드무비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완다와 이다 그리고 집시의 피가 흐르는 섹서폰 연주를 하는 청년만 등장하기에 등장인물도 많지 않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복잡하지 않고 등장인물도 많지 않아서 여러모로 참 지루하고 졸리운 영화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졸았고요. 그러나 영화가 끝을 향하면서 완다와 이다 사이에 묘한 갈등이 시작되기 시작합니다.


성녀 같은 이다(안나)와 항상 담배를 물고 술을 먹고 운전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상의 때를 다 묻히고 사는 이모 완다의 삶의 태도 때문에 두 사람은 갈등을 일으킵니다. 완다가 이다의 성경책을 만지려고 하자 이다는 신경질적으로 성경책을 빼았습니다.

완다는 이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해보지도 않고 헌신을 약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이건 감독이 종교에 하는 질문 같습니다. 세상에는 엄연히 고통이 산재하고 있고 수 많은 종류의 고통이 있는데 그 고통을 아우르는 사람인 수녀나 성직자들은 이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혼후 이혼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해봐야 합니다.  물론 모든 고통을 다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만 어느 정도는 노력해야 하지 않냐는 주장 같네요.

이다는 수녀가 되려고 하지만 지금까지 통제된 삶, 통제된 고통만 알고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폴란드 사람들에게 숲에서 죽임을 당한 사실에도 눈 한번 꿈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난 왜 숲에서 살아난거죠?라고 표정 변화 없이 물어봅니다. 


이다, 완다를 이해하다

그렇게 이다와 완다는 짧은 여행이자 완다의 아들과 이다의 부모를 유대인의 묘에 묻고 헤어집니다. 
이 짧은 여행 이후 두 사람의 삶은 크게 변화게 됩니다. 완다가 그 동안 왜 이다와의 만남을 거부했는지와 이다가 완다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완다의 삶을 삽니다. 
이다가 완다가 되는 과정에서 영화는 크게 튑니다. 그리고 그렇게 짧은 이 영화는 약간은 충격적인 반전으로 끝을 맺습니다. 



밤새 생각하게 한 이다의 마지막 행동

영화의 조형성은 한국 영화 지슬이 더 좋습니다. 지슬의 카메라 워크가 더 역동적이면서도 화려하고 더 좋습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가 뛰어난 조형성을 가진 영화라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네요. 물론, 전체적으로 시골 풍경이 많이 나오고 4:3비율이 독창적이긴 하지만 그게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로모 카메라로 찍었다고 사진 형식이 독특하다고 그 사진이 뛰어난 사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뭘 어떻게 어떤 시선으로 찍었느냐가 더 중요하죠. 그런 내용과 시선으로 따지면 이 영화는 영화 지슬처럼 폴란드의 아픈 현대사를 잔잔하게 보듬어줍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한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 인종학살이 일어나던 시절 폴란드인이 자발적으로 또는 강압으로 유대인을 색출해서 살해를 했던 그 참혹한 역사를 수녀를 통해서 아픔을 종교적으로 승화 시키는 모습은 꽤 좋습니다.

또한, 이다와 완다라는 종교인의 입장과 세상의 때가 가득 묻은 사람의 입장을 둘 다 잘 보여줍니다. 완다 같이 피로 복수를 하는 사람과 이다 같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보듬어주는 종교인의 시선도 참 보기 좋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영화 자체는 참 지루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 하나가 절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네요. 
어떻게 보면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긴 한데 왜 이다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밤잠을 설치게 하네요. 이는 종교에 대한 감독의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종교인이라면 한 번 봐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볼만은 한 데 지루한 영화라서 추천은 하기 힘드네요. 


별점 : ★

40자평 : 안나가 완다를 만나 이다가 되어 종교에 대한 질문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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