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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암호 뒤에 숨어 기계가 되고 싶었던 천재의 비극을 담은 '이미테이션 게임'

by 썬도그 2015.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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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기본 골격은 스토리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시각 효과와 인기 많고 연기 잘하는 배우와 감독이 뛰어난 연출을 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스토리라는 기본 골격이 튼튼하지 못하면 조금만 삐끗 해도 영화 전체가 무너집니다. 따라서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좋아야 합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스토리가 무척 탄탄한 영화입니다. 

대중에게 전하기 쉽지 않은 소재를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뛰어난 각색이 빛을 발하는 영화입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앨런 튜링 교수의 비극을  스크린에 옮긴 <이미테이션 게임>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하고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2년 앞당긴 사람이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더구나 그 사람이 지난 50년 동안 철저하게 국가 기밀로 봉인되어서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하고 쓸쓸한 삶을 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이 사실 자체에 큰 관심을 두게 될 것입니다. 

저 또한, 영화를 보고 난 후 2차 세계대전의 수많은 비화를 알고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고 그 처음 들어본 이야기 자체가 충격적이라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학 천재이자 컴퓨터의 시조가 된 튜링 머신을 만든 앨런 튜링 교수입니다. 

앨런 튜링 교수의 비극적인 삶을 밀도 높게 그린 영화가 <이미테이션 게임>입니다. 


해독 불가능한 독일군 암호를 풀어내는 과정의 흥미로움

영화가 시작되면 1951년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의 교수 집에 강도가 들어 왔지만 아무것도 훔쳐가지 않은 이상한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강도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는 튜링 교수의 군 복무 기록이 극비에 부쳐진 것을 놀라워하며 튜링 교수를 심문실로 불러서 직접 군 복무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영화는 이렇게 1939년부터 45년까지 튜링 교수의 군 복무 시절을 자연스럽게 소개합니다. 튜링 교수가 군대에서 한 일이란 독일군조차도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푸는 일입니다. 이 에니그마 암호는 암호 생성기이자 복호기인 에니그마가 있다고 해서 바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매일 바뀌는 에니그마의 회전자와 배선 방식을 알아야만 암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암호 조합이 1해 5900경이고 전자계산기도 없던 시절에 이걸 풀려면 무려 2천만 년이나 걸립니다. 그런데 이 암호를 18시간 만에 풀어야 합니다. 거의 불가능한 미션입니다. 

영국군은 영국 내 암호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서 독일군 암호를 풀게 합니다. 이 암호 해석팀에 앨런 튜링 교수가 들어가게 됩니다. 영화는 이 암호를 해석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협화음과 함께 암호를 푸는 과정의 짜릿함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특히, 완벽에 가까운 독일군 암호를 인간의 관습이라는 비밀을 푸는 열쇠를 얻어내는 과정의 스릴은 꽤 정교한 재미를 제공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기계가 되고 싶었던 '앨런 튜링'

암호 해독팀은 팀웍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앨런 튜링 교수는 사회성이 전혀 없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지도 않고 다른 팀원과 달리 이상한 기계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농담도 할 줄 모르고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모습이 마치 0과 1만 아는 컴퓨터 같습니다. 이런 튜링의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인해 팀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상사로부터 압력까지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 다름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에니그마라는 기계를 이기는 방법은 또 다른 기계라면서 크리스토퍼라고 불리는 튜링 머신을 계속 만들어갑니다. 이런 튜링의 삶은 비인간적인 삶이자 기계적인 삶입니다. 영화는 이런 튜링 교수의 기계의 삶의 시작점을 보여주기 위해 튜링 교수의 학창 시절을 소개합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독일군 암호를 푸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기계가 되어가는 튜링 교수의 비밀스러운 삶의 암호를 푸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별난 오타쿠라고 생각했던 시선이 튜링 교수의 학대 받는 학창 시절 삶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눈시울을 젖게 만듭니다. 

 인간이라는 유대 관계가 이루어낸  튜링 기계의 거대한 기적

존 클락(키이라 나이틀리 분)은 이런 튜링 교수를 다시 인간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암호 해독은 혼자 하는 것보다 팀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 효율성도 좋다면서 쾌활한 성격으로 튜링이라는 기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튜링 교수에게 세상은 측정할 수 없는 따스함도 있다고 알려줍니다. 특히, 튜링 기계를 멈추려는 상관의 알력을 암호 해독팀원들이 합심해서 막아낸 사건은. 해독되지 않는 암호문 같았던 튜링의 삶에 동료애라는 비밀키로 암호문을 평문으로 바꿔가는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튜링 교수의 농담은 흐뭇함을 웃음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동료애와 튜링 기계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합니다.여기까지는 다들 예상 가능한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암호 해독 이후의 해방감이 아닌 비밀의 문을 열었는데 그 비밀의 문 뒤에 환희가 아닌 또 다른 슬픔을 보여줍니다. 이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자 수긍할 수밖에 현실로 대의를 위해서 큰 희생을 치르는 과정의 비인간적인 그러나 그 결정이 더 많은 인간을 살릴 수 있는 아이로니컬한 비극을 보여줍니다. 



나는 기계인가요? 사람인가요?

대화하는 상대가 프로그램인지 사람인지 구분하는 테스트를 튜링 테스트라고 합니다. 영화 <엑스마키나>나 <블레이드 러너>에서 사람과 닮은 로봇을 구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서 상대가 사람인지 프로그램된 인공지능체인지를 구별하는 테스트를 합니다. 

심문실에 있던 튜링 교수는 형사에게 튜링 테스트를 하자고 제안하며 형사의 질문에 거짓 없이 대답합니다. 그리고 형사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기계인가요? 인간인가요? 이 질문을 하는 튜링 교수의 한이 서린 표정은 인간에 대한 미움이 짙게 배어 나옵니다. 기계적인 사고방식으로 수천만 명의 인간을 구원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생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신의 입장까지 서게 된 튜링 교수의 세상에 대한 원망이 제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불가능한 기계가 만든 암호를 풀었지만 정작 인간 세계의 암호를 풀지 못하고 국가 기밀이라는 족쇄로 지난 50년간 몸과 함께 이야기도 묻혔던 '앨런 튜링'교수를 훌륭하게 재조명한 꽤 좋은 영화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곧 개봉할 인간적인 로봇을 그리는 <채피>와 <터미네이터2> 등의 인간과 닮은 기계를 주인공으로 담은 영화의 원형재가 아닐까할 정도로 곳곳에서 로봇(기계)와 인간 사이의 고뇌가 많이 느껴지네요. 

전체적으로 소재가 대중적이지 못해서 대중적인 재미가 아주 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액션이 없기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좀 더 촘촘하고 유려한 스토리가 포진해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강화 시켰습니다. 그러나 암호학에 관심이 많고 2차 세계대전 비화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는 이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또,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주 큰 재미를 느끼게 했습니다. 앨런 튜링 교수 역을 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말 더듬는 연기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정교한 암호문 같은 은 유려한 스토리텔링 기법이 무엇보다 뛰어났던 <이미테이션 게임>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곧 개봉할 인간적인 로봇을 그리는 채피와 터미네이터2 등의 인간과 닮은 기계를 주인공으로 담은 영화의 원형재가 아닐까할 정도로 곳곳에서 로봇(기계)와 인간 사이의 고뇌가 많이 느껴지네요. 

 

다름을 꾸준히 유지하면 내 순서가 온다

영화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나서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낸다"라는 대사를 반복합니다. 이 대사도 좋은 대사지만 더 좋은 대사가 스크린 밖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각색상을 받은 그레미엄 무어는 감동의 수상 소감을 했습니다. 16살 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면서 시상식 관객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자신은 남들과 달라서 너무나 힘들게 살았다면서 청소년들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

stay wierd, stay different(그 다름을 유지하면 독특함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내 순서가 올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작가답게 놀랍고 감동스러운 소감을 남겼는데 평생 잊히지 않을 아카데미 수상 소감입니다. 이 수상 소감은 앨런 튜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평생 남들과 다른 소수자의 삶을 살면서 핍박을 받았던 '앨런 튜링'은 그 다름을 유지해서 독일군이 철옹성 같은 암호를 깨고 컴퓨터의 기초가 된 튜링 머신을 만듭니다. 비범함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미테이션 삶이 아닌 치열했던 진짜의 삶을 살았던 튜링 교수를 스크린에서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별점 : ★

40자 평 : 기계가 되어 인간을 구원한 튜링 교수의 암호문 같은 비밀의 삶을 정교하게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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