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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옛날 영화를 보다

삼풍백화점의 비극과 여행의 희극을 잘 섞은 영화 '가을로'

by 썬도그 201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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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닌 여행의 계절입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 된 이유는 가을에 책을 가장 안 읽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여행입니다. 특히 한국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는 곱디 고운 단풍을 만날 수 있어서 산으로 고궁으로 단풍 구경을 가고 전국 지자체들은 일제히 축제를 합니다. 

가을은 조증으로 시작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을 관련 노래가 꽤 많습니다. 이런 가을에 여행 관련 영화 한편을 다시 봤습니다


2006년 개봉해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꽤 좋은 느낌으로 남았던 영화 가을로를 다시 다운로드해서 봤습니다.
최근에 백두대간을 여행하면서 가을빛이 기억나는 영화 가을로가 생각나서 다시 꺼내 봤습니다. 역시 좋은 영화는 10년 단위로 다시 봐야 하나 봅니다.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제 경험이 쌓이니 허투로 지나친 장면도 꽤 의미있게 다가오네요

이 좋은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서 전체적인 줄거리부터 소개합니다. 
영화 가을로는 2006년 개봉한 영화로 번지 점프를 하다와 혈의 누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번지 점프를 하다의 그 감수성을 이어 받은 감성 멜로물입니다

최현우(유지태 분)와 서민주(김지수 분)은 결혼을 약손한 사이입니다. 현우는 검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검사이고 민주는 여행 다큐를 찍는 방송국에서 근무합니다. 둘은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알콩달콩함을 보여줍니다. 이 연인은 닮은 듯 하지만 취향은 좀 다릅니다. 민주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현우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민주가 좋아해서 여행을 따라 다니기는 하지만 빗소리 때문에 사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감수성 충만한 민주와 달리 비가 내리는 산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민주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둘은 결혼 준비를 하죠. 
그러나 결혼이 가까워졌지만 현우는 일이 너무 많아서 바쁩니다. 그래서 서초동 검찰청으로 찾아온 민주에게 근처 백화점 커피숍에 가 있으면 퇴근 후에 바로 가겠다고 하죠. 

그렇게 민주는 현우에게 줄 선물을 커피숍에서 포장을 하는데 큰 소리가 위에서 납니다. 백화점에 있던 사람들은 웅성거리죠
현우는 백화점 앞 신호등을 건너면서 민주를 만나러 가는데 눈 앞에서 거대한 백화점이 무너지고 민주는 그 백화점 지하에 있다가 죽게 됩니다. 

영화 가을로는 단순한 감성 멜로라기 보다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라는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민주를 허망하게 떠나 보낸 후 현우는 삶이 파괴 됩니다. 강직한 검사 현우는 부동산 비리를 캐내다가 윗선의 지시로 사건을 덮으라는 지시와 함께 몇 주 쉬라고 지시를 받습니다. 

그때 민주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민주의 유품을 전해주고 갑니다. 민주의 유품은 가죽 커버로 된 다이어리입니다. 그 다이어리를 열어 본 현우, 현우는 민주가 자신에게 주려고 한 신혼여행 계획이 담긴 여행기를 받아 들고 혼자만의 신혼 여행을 떠납니다. 



윤세진(엄지원 분)은 여행을 좋아하는 아가씨입니다. 그러나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밤에도 불을 켜고 자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서 면접을 보다가도 폐쇄공포증이 도져서 면접을 포기할 정도로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기가 힘듭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면 세진은 여행을 떠납니다. 


현우는 연인이었던 민주의 신혼 여행 계획을 담은 다이어리를 들고 민주가 계획한 신혼 여행지를 다닙니다. 담양 소쇄원, 전남 목포 우이도의 사구, 동해안 7번 국도, 월정사 전나무 숲길, 영월군 선돌, 울진 불영사, 포=항 내연산 보경사, 울주군 반구대 등을 다닙니다. 그런데 묘령의 아가씨인 세진과 현우는 여행 동선이 겹칩니다.


같은 방향이라서 현우는 세진을 차로 태워다 주면서 잠시 동안 같이 여행을 하는데 이상하게 여행의 동선이 겹치다 보니  현우는 세진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그러나 세진이 먼저 현우의 정체를 알아보고 피하게 됩니다

영화 가을로는 단순하게 여행의 즐거움과 전국의 멋진 풍광을 담은 영화만은 아닙니다. 연인의 죽음과 여행 그리고 세진과 민주와의 관계를 매개체로 영화 끝까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리고 세진으로 부터 민주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힐링의 시대입니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혐오하지만 여행이야 말로 힐링의 가장 좋은 도구가 아닐까 합니다. 
일상에서 받은 고통을 일탈의 재미를 제공하는 여행을 통해서 치유 하고 활력을 얻기도 하죠. 현우는 민주를 허망하게 떠나 보낸 후 그 민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민주와의 신혼여행을 다니면서 점점 치유가 됩니다. 

이는 세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진도 큰 고통을 받은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여행을 다닙니다. 그 여행의 길에서 현우를 만나게 되죠.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여행이라는 즐거움만 담기 보다는 이별 여행이라는 우울함과 기쁨을 한 화면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연인이 소개한 여행지를 다니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가는 현우, 그렇게 현우는 민주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 여행길에서 세진을 알게 됩니다. 영화 가을로는 단순히 관광 영화가 아닙니다. 만약 관광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그냥 여행 다큐가 되었겠지만 삼풍백화점이라는 시대의 아픔이라는 비극을 섞음으로써 다양한 느낌을 줍니다. 



영화 가을로의 또 하나의 주인공은 영화음악입니다. 클래식 음악이 영화 내내 깔리는데 이 음악이 단풍 잎 가득한 가을산과 닮았습니다. 여기에 죽은 연인이 여행했던 겨울과 같은 장소를 가을에 여행하는 현우를 절묘하게 보여주는 모습 등은 상당히 수려합니다. 

또한, 여행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배제하고 장소의 아름다움만 보여주고 설명하지 않는 모습도 이 영화가 투박하게 흐르지 않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진 역을 한 엄지원 필모그래피 중에 가장 우뚝 서야 할 영화가 가을로가 아닐까 합니다. 엄지원의 연기와 어여쁜 외모가 가을 빛을 받아서 더 상큼하네요. 물론 유지태와 김지수의 연인의 모습도 무척 좋았고요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와 같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참 잘 찍네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민주는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에 서 있습니다. 새로 포장 된 길 위에 서서 이 포장 되기 전의 길에는 수 많은 추억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민주, 그 추억을 안고 새로운 길을 달리겠다면서 좋은 길이 되었으면 하는 마지막 바람을 합니다. 

이는 민주가 바라는 현우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아니지만 좋은 영화가 꼭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을로는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며 웰 메이드 감성 멜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한 풍경들이 너무 아름답네요. 다음 주에 평창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갈 예정입니다. 

영화에 나온 전나무 숲길을 꼭 걸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단풍 가득한 날 담양 여행을 가봐야겠습니다. 소쇄원 풍경에 꽂혀 버리게 되네요. 가을입니다. 어디든 꼭 떠나보세요. 그 여행길에 책을 읽으면 더 좋겠죠.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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