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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영화 여행자, 입양하는 과정의 슬픔을 맑은 시선으로 담은 수작

by 썬도그 2014.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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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쁜 꼬마 아이가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서 골목길을 달립니다. 아이는 아빠의 등에 살며시 기댑니다. 
행복, 아이의 얼굴에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어른 거립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아빠는 유난히 더욱 다정다감합니다. 
시장에서 고기도 사 주고 예쁜 옷과 구두도 삽니다. 아이는 그런 아빠의 따뜻한 모습에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 줍니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이의 이름은 진희입니다. 진희는 아빠와 함께 긴 여행 끝에 서울 근교에 도착 합니다. 꼬까옷을 입은 진희는 너무나 설레입니다. 아빠 말에 따르면 친구들과 함께 있다 보면 아빠가 데리고 올 것이라고 했기에 새로운 친구들 만나는 설레임도 약간 있습니다. 

그렇게 진희는 아빠와 함께 서울 인근의 한 보육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빠가 언젠가는 데리고 올테니까요. 케잌을 사주고 떠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희, 그때만 해도 진희는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보육원에서는 진희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에 마음 아파 하지만 한 두번 겪은 것이 아닌 듯 관심은 가지지만 방치를 해서 스스로 이겨 나가도록 합니다. 진희는 말도 하지 않고 밥그릇을 엎어 버리거나 가시덤블 속에 숨어서 나오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눈물만 흘리는 진희, 자신을 아버지가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 원장 선생님에게 아버지에게 전화걸 게 해달라고 보채지만 원장 선생님은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합니다. 


울다 지친 진희(김새론 분)는 채념 하듯 보육원 생활에 스펀지처럼 서서히 물들어갑니다. 보육원에는 진희 같은 부모가 버린 아이들도 있지만 고아도 있습니다. 모두 가슴한 켠이 뻥 뚫린 아이들이지만 아이들끼리 있다보니 그 상처가 도드라지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장애가 있는 예신(고아성 분)이라는 나이 많은 언니와 숙희(박도연 분)라는 바로 위 언니가 어린 진희를 잘 감싸주고 진희도 서서히 또래 아이들과 함께 섞여서 놉니다. 이 보육원 아이들의 미래는 보육원에서 평생 사는 것이 아닌 좋은 양부모를 만나서 이 곳을 벗어나는 데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된 1975년에는 해외 입양을 참 많이 했습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백인 부모들이 직접 찾아와서 아이들을 보고 입양을 결정하면 아이는 보육원생들이 불러주는 '석별의 정'과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노래로 떠나가는 보육원생을 떠나 보냅니다


그러나 진희는 그런 현실을 거부합니다. 자신은 절대로 여기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지쳐가는 진희에게 아픈 새가 찾아 옵니다.  숙희 언니와 진희는 그 아픈 새를 정성껏 간호를 합니다. 그러나 새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앞 마당에 새를 묻어준 진희는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거짓말하는 어른들을 경계하는 어린 새 같은 진희

진희의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 피를 주사기로 빼야 했던 간호사 언니에게 진희는 주사 놀때 말을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간호사 언니는 알았다고 하면서 말도 하지 않고 혈관을 찾아서 피를 뽑습니다. 이에 진희는 왜 거짓말을 했냐고 따져 묻습니다. 

일부러 알려주지 않으므로써 진희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하얀 거짓말인지 모르는 진희는 어른이 다 밉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지 못하는 모습 또한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육원은 진희 같은 아이들이 매일 같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그러 다보니 진희를 사무적으로 대합니다. 그렇다고 보육원 어른들이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가 있는 예신이 다른 집에 식모로 입양 되는 것을 지켜보던 보육원 아주머니는 예신이 떠나는 날 빨래를 방망이로 때리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존재들이 가득한 보육원은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상처라는 공통 분모로 아주 끈끈한 정을 쌓아 갑니다. 

그러나 진희는 이 보육원에 섞이지 못하다가 따르던 숙희 언니가 약속과 다르게 자기 혼자 입양을 가는 모습에 또 다시 상처를 받습니다. 보육원은 그런 상처 투성이 같은 공간입니다. 이는 보육원 어른들이 주는 상처도 아이들끼리 주는 상처가 아닙니다.


정을 줬다가 떠나가는 친구와 언니들을 보면서 간신히 마음을 다스렸던 진희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어린 새처럼 자신을 스스로 땅에 묻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의식을 통해서 진희는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서글픈 아이가 됩니다. 

영화 '여행자'는 입양 과정의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보통의 입양아에 대한 영화나 다큐는 입양 후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의 고통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른 입양 관련 소재의 영화와 다르게 입양아들의 둥지 같은 보육원 시절의 찬란한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공간 자체는 따스합니다. 상처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버림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그 과정의 고달픔은 이 영화는 아주 잘 담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따스한 아빠 품을 그리워하는 진희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전 그 어떤 소재보다 입양에 대한 소재만 들어도 바로 눈물을 흘립니다. 그 만큼 가장 상처 받은 존재들이 입양아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 '우니 르콩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장면은 의사가 진희에게 왜 여기(보육원)에 온 것 같아?라고 물으니 진희는 울면서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말 합니다. 

새 엄마가 데리고 온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봐주고 있는데 자신의 옷에 있던 옷핀이 아기를 찔러서 아기가 피가 났고 새엄마, 아빠, 할머니가 자신을 혼냈다면서 아기에게 피를 나게 해서 여기에 온 것이라고 울먹이면서 말을 합니다.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김새론, 박도연, 고아성의 뛰어난 연기가 놀라웠던 영화 '여행자'

영화 아저씨로 인기 아역스타가 된 김새론양, 지금은 중학생이 된 김새론이 영화에 데뷰한 영화가 2009년 개봉작인 여행자입니다. 아저씨가 2010년 작품이니 아저씨 촬영 전의 김새론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이 영화는 김새론 양의 뛰어난 연기와 맑은 눈과 슬픔이 많은 관객을 흔들어 놓습니다. 정말 예쁘고 깜찍한 연기를 훌륭하게 잘 소화 합니다. 어디서 이런 진주를 발굴했을까요? 여기에 숙희 역을 한 박도연 양도 괴물의 고아성도 아주 훌륭한 연기를 합니다. 

이 3명의 배우의 앙상블이 보육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김새론이 출연하는 도희야가 곧 개봉 예정인데 꼭 봐야겠습니다. 





입양은 사회가 가하는 폭력


미물이라도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종족 보존의 명령어가 들어가 있기에 본능적으로 새끼를 보호하는 보호 본능이 기본적으로 탑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장 근원적인 본능 중 하나인 모성애 또는 부성애라는 강력한 결계를 끊고 자신과의 인연을 끊어 버리는 모진 부모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모들을 손가락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의 자식을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죠. 또한, 어떻게든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보듬어줘야 하는데 그걸 보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양이 발생하는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를 보육원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 중에는 미혼모라는 사회적인 냉대를 받는 존재들과 너무 가난해서 아이를 버릴 수 밖에 없는 빈민층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 되었다는 한국에서 여전히 입양아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한국 사회가 미성숙 단계에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미혼모도 가난한 가정에서도 자신의 자식을 키워낼 수 있게 정부와 사회가 보듬어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에 접어들지는 못하고 있네요. 또한, 여전히 입양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감도 있습니다. 

영화 '여행자'는 그런 사회적인 문제까지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한 아이가 멀쩡히 살아있는 부모로부터 버러지는 그 날카로운 고통을 하얀 슬픔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5월 11일은 입양의 날입니다.  해외입양 강국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있는 한국. 이런 불명예를 벗으려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함께 키워주는 너그러움과 포근함을 가졌으면 합니다. 

영화 여행자는 이야기 자체는 다큐식이라서 큰 스토리는 없지만 버림 받았다는 그 슬픔이 얼마나 깊고 아린지를 잘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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