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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준 선진국인 한국이 대형 사고가 끊임없이 나는 이유는 사람이 변하기 않았기 때문

by 썬도그 2014.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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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여러모로 참 묘한 나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수구적인 나라인 조선시대가 지난 후에 한국전쟁으로 전국토가 파괴 되었던 나라가 60년 만에 준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그것도 전쟁으로 많은 희생과 건물과 인프라가 다 파괴된 후진국이 짧은 기간에  고도의 성장을 한 나라는 이 세상에 한국 밖에 없습니다. 이를 우리와 외국인들은 한각의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외형적인 성장만 보면 참 자랑스러운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정보화를 단 60년 만에 한꺼번에 이룬 놀라운 나라이고 우리는 이런 외형적인 성장을 후손들에게 돌림노래로 불리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속 성장에는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고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6~80년대 고도 성장기의 영광을 대통령에게 돌리는 나라

아무 것도 없는 나라였습니다. 미국인들이 측은심에 보내주는 구호물자와 미국 정부가 보내주는 구호 물자에 연명하는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이승만은 경제를 일으켜보려고 노력 했지만 경제는 내팽개치고 부정 선거로 정권 연장만 노력했다가 4.19 혁명으로 퇴출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통령 자리를 박정희라는 독재자가 쿠테타로 차지하게 됩니다. 박정희는 한국, 특히 50대 이상 분들에게는 신에 가까운 사람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전 대통령입니다. 현재의 50대 이상 분들에게 박정희는 보릿고개를 날려버린 대통령, 배불리 먹게 해준 대통령으로 기억 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한국 경제는 걸음마를 넘어서 뛰기 시작했고 뛰는 것을 넘어서 날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 속도를 보입니다. 

70~8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7~13%라는 놀라운 성장율을 보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시대의 풍경은 은행 이자가 15% 였다는 것입니다. 은행에 100만원을 맡기면 년 이자가 15만원이나 나왔던 경제 호항기였죠. 덕분에 한국은 빠른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윤보선 정권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어쨌거나 박정희가 실천 한 것이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에 대한 공을 깎아 내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높은 경제 성장률을 오로지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것은 대통령이 아닌 구로공단 여공들이었습니다. 
구로구와 금천구에 걸쳐서 형성된 구로수출공단은 수 많은 공산품을 미국 등지에 판매를 해서 큰 수익을 냈습니다. 지금의 중국산 역할을 한국이 70~80년대에 했습니다. 지금도 한국 제품하면  싸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이때는 품질이 조악하지만 싼맛에 미국인들이 엄청나게 샀었습니다. 

당시는 중국이 중국이 아닌 중공이라는 공산국가이던 시절이라서 미국 시장에 저가 제품을 공급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었습니다. 


여공들은 쪽방에서 여러 명이 기거하면서 시골에 있는 동생이나 오빠들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타이밍이라는 잠 쫒는 약(지금은 붕붕쥬스를 먹죠)을 먹어가면서 철야 근무를 했습니다.  

이 여공들의 거대한 희생이 없었다면 한국은 이런 높은 경제 성장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제 성장의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돌리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래서 경제의 신 박정희가 탄생했고 지금도 50대 이상 분들은 이 고도성장기를 술안주 삼아서 그때는 말이지!라는 술타령을 합니다. 




고도성장의 부작용이 터지기 시작한 90년대

군 시절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내무반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참이 오더니 야간 근무자를 다 깨우더군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졌데!"

비몽사몽간에 들은 말에 어리둥절 했습니다. 대교가 무너졌다고? 대교면 큰 다리인데 그게 왜 무너지지? 부리나케 TV를 켜보니 뉴스특보가 나오고 있었고 뚝 떨어진 상판이 한강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이럴 수가 있나? 이거 무슨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할 정도로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는 소리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왜 이런 사고는 학생들이 많이 희생 당할까요? 

1994년 10월 21일 비가 내리던 오전은 그렇게 한 시대의 붕괴를 담고 있었습니다. 
언론들은 고도 성장을 하던 한국이 무너졌다고 대서특빌했고 해외언론들도 뒤도 안돌아보고 달리기만 하던 한국에 대한 큰 교훈을 줬다고 말을 했습니다. 

집이나 빌딩을 올릴 때, 반석을 탄탄하게 하고 천천히 천천히 올려야 하는데 우리는 안전 검사도 하지 않고 높이 높이 쌓기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현재 인도네시아나 중국이나 인도에서 볼 수 있는데 한국의 90년대가 그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보여주기 시작 했습니다.  이후, 전국의 다리란 다리는 다 점검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도 성장의 후유증은 사라지는 줄 알았지만 제 생각과 달리 더 거대한 붕괴가 일어났습니다. 

1987년에 만들어진 삼풍백화점이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경 붕괴 했습니다.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 실종 6명의 이 삼풍백화점 붕괴는 세상을 경악하게 했고 1년 만에 또 다시 대형 붕괴 사고가 일어나자 국민들은 분노와 반성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수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할 정도로 90년대를 관통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삼풍백화점 사고의 원인은 아주 뚜렷합니다. 

부실 시공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지붕 마감 하중을 적정 하중 이상으로 초과해서 올렸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옥상에 올린 에어콘 냉각탑 4개를 추가해서 거대한 하중을 이기지 못한 건물이 그대로 지하층까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런 부실 시공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돈입니다. 

돈 아끼려고 건축소장이라는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안전 보다는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건물을 증축하고 개조한 욕심이 이런 거대한 붕괴를 일으켰습니다

이후,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 등 일련의 대형사고가 계속 일어났습니다. 이 두 사건 말고도 서해훼리호 사고까지 나서 대형사고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 김영삼 정권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재난관리체계를 법제화 했고 전국의 건물 안전 점검을 강화 했습니다. 외형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커졌지만 한국인들의 정신의 고도성장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춘기 청소년들이 영혼은 더디게 자라는데 몸만 훌쩍 쩍 자라서 생기는 몸과 정신의 괴리감에서 생긴 사춘기 같은 모습을 우리는 90년대에 한국이라는 청년에게서 봤습니다. 



큰 일이 터져야 심각성을 아는 나라 한국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끝낸 한국은 거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90년대 대형 사고는 개발도상국의 후유증이고 그 큰 교훈을 발판 삼아서 한국은 선진국 문턱까지 치닫고 있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자신감은 또 다시 대형 참사에 무너졌습니다.

대구 가스폭발 사고에 이어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혹스러웠습니다. 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시고도 성장의 후유증이 아닌 책임을 져야 할 선장이 승객을 버리고 도망가서 피해가 커진 사고입니다. 지하철 기관사가 문을 개폐하는 마스터키를 들고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화재 때문에 승객들을 대피하라고 방송을 하고 각 객실마다 대피하라고 소리를질러도 모자를 판에 기관사는 자기 목숨만 건지겠다고 도망을 쳤습니다. 

90년대 대형 사고와 21세기 사고의 큰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90년대 대형 사고는 2가지가 복합이 되었습니다. 원리 원칙대로 하지 않고 편법이 난무한 대충리즘과 한국 사회의 시스템, 안전 보다는 돈이 우선 시 된 한국인들의 정신적 후진성이 일으킨 것이라면 21세기 대형 사고인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고 자기 임무를 다하지 않고 도망쳐서 생긴 휴먼 에러가 아주 큽니다. 

이런 대형 사고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은 외형적인 성장은 했을지는 몰라도 한국인 개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후퇴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야 건물 안전 점검을 하는 나라
성수대교 무너져야 다리 안전 점검 하는 나라
지하철 대형 화재 사고가 나야 지하철 화재 대책 세우는 나라
샌드위치 판넬 건물 붕괴 사고가 나야 샌드위치 판넬 건물 점검하는 나라
전국민의 개인정보가 털려야 해킹에 신경 쓰는 척 하는 나라.

무엇이든 뭔가 크게 터지고 사람이 죽고 큰 피해를 받아야 심각성을 느끼는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인입니다. 이런 우리의 습속을 좀 심하게 비판하자면 깊은 사고력 혹은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면 된다는 1차원적인 생각을 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외형만 커졌지 정식적인 성숙은 이루지 못한 한국. 대형사고는 계속 될 것이다

설마 했습니다. 대형 여객선이 전복 되었다고 해도 비행기도 아니고 배이기에 침몰 한다고 해도 서서히 침몰 할 것이면 그 전에 다 탈출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300명 가까운 실종자와 희생자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이런 깊은 절망은 많은 국민들을 반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선장입니다. 이 늙은 선장의 판단 착오와 책임 회피와 비이성적인 행동 혹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할 정도로 이해 안 가는 행동을 보면서 전 이 선장 한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세월호 사고를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이게 개인의 인격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의 문제라고 느껴집니다. 

먼저 이 세월호는 건조한지 18년이 넘은 노후 선박입니다. 일본에서는 선박을 20년 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한국은 30년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원래부터 한국은 30년이었다면 그나마 이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도 일본처럼 선박이 건조된지 20년이 되면 무조건 폐선 시키는 법이 있었는데 이걸 이명박 정권때 30년으로 연장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이것 외에도 많은 부분을 규제 완화를 했고 이는 박근혜 정부가 바통터치를 받아서 규제를 완화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니즘이 안전보다 우선시 되는 나라

한국에서 돈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 이명박 정권은 선박법을 고쳐서 30년으로 선박 폐기 년도를 늘려 놓았을까요? 간단합니다. 그래야 돈을 더 벌 수 있으니까요. 규제를 풀면 풀수록 돈은 더 많이 벌겠지만 버는 돈 만큼 안전도는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선박에 대한 규제를 풀어줬기 때문에 세월호는 한국 바다에 뜰 수 있었습니다. 

이런 먹고사니즘으로 또 설명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세월호는 짙은 안개 때문에 예정 시간보다 2시간 늦게 출항을 했습니다. 다른 배들은 출항을 포기했지만 세월호는 무리하게 출항을 합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2시간 늦게 출발한 것을 매꾸기 위해서 무리하게 전속력으로 항해를 합니다. 


책임 없는 권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나라 한국

선장의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모습은 전세계에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선장의 이런 모습은 선장으로만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진도체육관에서 팔걸이 의자에서 라면을 먹었던 서남수 교육부장관
기념 사진을 찍었던 안전행정부 고위 공무원
구조 작업에 방해를 줄 것을 알면서 무리하게 현장에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등등 한국의 정부 나리들은 뭐가 문제인지 어떤 것이 지도층이 해야 할 행동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여기에 실종자 숫자와 탑승색과 구조자 숫자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컨트럴 타워가 없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는 재난대책 시스템 부재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편법과 상식이 된 물질만능주의의 나라 한국의 자화상을 보여준 세월호 사고

안개가 심해서 출항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 할 수 있는 선장이 있는 한국
안개가 심해서 안전이 위험할 수 있다며 출항을 하지 말아 줄것을 요구하는 학교가 있는 한국 
배가 기울었으니 무조건 탈출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관제센터가 있는 한국
선장이 미적 거리고 있을 때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탈출 명령을 내리는 항해사나 선원이 있는 한국
위험한 줄 알면서도 주변에서 탈출해서 바다로 떨어진 승객만 구조하지 않고 로프를 메고 선박 안으로 들어가서 구조활동을 
하는 해경이 있는 한국
일분일초가 급하다면서 주변의 미군의 도움과 일본의 도움을 받고 민간과 국민적인 아이디어를 모집해서 거센 물살임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구조 활동을 펼치고 밤새 조명탄을 쏘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는 정부가 있는 한국

그런 한국은 없었습니다. 

선박이 기울어진 상태에서도 오로지 선내 안내 방송만 따르던 착하고 착한 학생들과 선생님들
못난 선장 대신에 다친 학생들을 챙기고 갚판으로 올려 보내면서 "승무원은 가장 나중에 탈출하는 거야"라고 말했던 여승무원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한명의 아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고 선실로 내려갔던 승무원만이 있는 한국입니다


왜 그럴까요? 21세기에도 왜 한국은 이런 후진국형 인재가 계속 일어날까요?
이유는 아주 쉽고 명확하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외형만 변했지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숙한 국민성은 열심히 일하면 생기는 돈이 아닙니다. 도덕성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부터 2014년 세월호 사고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한국인의 도덕성과 시민 의식은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국민 개개인이 성숙해야 그 나라가 성숙한 것인데 우리 국민 개개인이 성숙한 국민들이 아닙니다. 이러니 수학여행이 문제가 아님에도 수학여행 금지 시켜 달라고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오늘 페이스북 이웃분이 저상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가 휄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를 타려고 하자 "지금 이거 타게요?"라고 짜증나는 목소리로 물어 봤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선진국은 외형만 선진국이라고 선진국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도덕성과 시민의식이 성숙해 있어야 선진국이라고 합니다. 

조승희 교내 총기 난사 사건 때 보여준 미국인들의 놀라운 포용력과 치유과정과 관용, 노르웨이 한 섬에서 일어난 우익 청년의 총기 난사 사고 후에 보여준 노르웨이 국민들의 놀라운 국민적인 포용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절대 이 나라는 못합니다. 

이번 사고는 우리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사고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고의 원인을 우리 안에서 찾지 않고 단지 선장에서만 찾는다면 또 다른 대형 사고는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돈 때문에 안전을 쉽게 버리는 행동이 만연한 나라가 된 듯한 한국, 앞으로 가는 듯 하지만 한국호는 점점 침몰하는 느낌이 듭니다. 깊은 절망감이 드는 이유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박 사고가 나면 선박 사고를 막을 수 있지만 다른 형태로 대형사고가 나면 또 우리는 그 대형사고에 큰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미리미리라는 말 대신에 빨리빨리가 미덕인 나라의 한계입니다.   아버지 세대가 하던 대충과 빨리빨리 편법과 불법 삶의 방식이 아들 세대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나라가 무슨 발전이 있고 반성이 있겠습니까?

덧붙임 : 방금 나승일 교육부 차관이 1학기 수학여행을 당분간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네요. 이런 나라입니다. 이런 수준이 한국의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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