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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세상에 대한 쓴소리

세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못난 어른들이 되지 맙시다

by 썬도그 201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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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두 친일파가 세운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분들이라서 친일파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분은 중국군과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본군 장교로 활약하던 분이고 한 분은 일제시대때 과일 도매상과 철광업을 해서 큰 돈을 번 분입니다. 이 친일파 2명이서 세운 학교는 설립자가 장군인 이유인지 교풍 자체가 육군스러웠습니다.

이 친일파 설립자는 해방 후 한국전쟁 때에는 일본군 장교에서 한국 장교로 탈바꿈합니다. 남한에는 일본군 장교 출신의 별을 단 장군들이 꽤 많았고 그 중 한명이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설립자입니다. 이후 전역 후에 학교의 교장도 잠시 하고 4.19혁명의 전신이 되었던 3.17의거 때는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영등포 경찰서 앞까지 가두 시위를 했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양가적인 모습을 가진 분입니다. 
일제 시대때는 일본 군 장교로 한국 전쟁 때는 한국군 장군으로 그리고 4.19때는 정부 비판을 하는 분으로 활약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모습입니다. 참 일관성이 없죠. 친일파였다가 한국군 장군이었다가 또 반정부 시위까지 하고요. 

이 모습을 엮을 수 있는 단어는 없습니다. 의협심이 많다고 하기엔 일본군 앞잡이를 한 것이 이해가 안가죠. 다만, 일제 시대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자신의 친일 행적을 나중에 뉘우쳤다고 하는 소리가 있긴 한데 그렇다면 친일 행적에 대한 반성을 했다고 가정하면 의혐심으로 해석이 가능한 분입긴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친일 행적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기사 내용이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의(義)에 살고 의(義)에 죽자는 교훈이 있는 학교입니다. 그러나 전 이 학교를 모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제 블로그에 썼다가 이억만리 선배까지 제 블로그에 찾아와서는 저에게 심한 언어적 폭력과 협박 어린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몇년 전에 자전거를 타고 제가 다닌 학교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카메라로 교정을 담은 것을 넘어 제 고등학교 시절 추억까지 담았습니다. 이 학교는 위에서도 말했듯 친일파가 세운 학교입니다. 친일파가 세운 학교라는 자체는 크게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 오래 된 학교 중에는 친일 경력을 가진 학교 설립자가 많으니까요. 

더더군다나 친일파가 세운 학교라고 해서 그 학교를 다니는 자체는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대학처럼 그 학교를 지원해서 가는 것이 아닌 일명 뺑뺑이라고 하는 근거리 학교 배정 원칙을 가진 고등학교 배정 시스템은 내가 원하는 학교가 아니더라도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배정 되기에 이 친일파가 세운 학교를 다니는 것과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즉, 친일파가 세운 학교라고 해도 그 학교를 다니고 졸업한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크게 존경 받는 설립자가 세운 학교를 다녔다면 더 좋겠지만 솔직히 우리가 그 학교 출신이라면 설립자까지 찾아보고 평가하나요?  그 학교 출신들이 사회에서 어떤 활약을 하는 지를 보고 판단하죠. 

저는 제 블로그에 이 학교의 설립자 이야기도 하고 현재 이야기도 적고 제 추억도 적었습니다.
매주 월요일이 되면 학교 운동장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할 때 마다 저와 친구들은 수근 거렸습니다.

"야! 학교 설립자가 친일파라는 것 선생님들이 말은 안 했지만 동네 아저씨들이 말해주던데 솔직히 좀 이상하지 않냐?"
제 말에 친구들도 동의 했습니다. 친일파 설립자와 순군선열을 동시에 떠올리기에는 납득이 안 가는 것이 많았습니다. 


더 화가 났던 것은 교가입니다. 교가가 참 이상합니다. 학교들의 교가는 보통, 주변의 높은 산을 교가의 앞에 담습니다. 관악산 정기 어쩌고 하는 것이 이쪽 동네의 흔한 교가죠. 

그런데 이 학교는 먼동이 트~니이 온누리 환화도다로 시작해서 원석두님 크신공덕 가이없네가 담겨 있습니다
무슨 종교집단체 노래 가사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솔직히 역했습니다. 최근에 알았지만 이 노래 가사는 일제 시대에 지어진 교가 가사이고 먼동이 트~~니이 온누리 환화도다는 일본의 욱일승천기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가사입니다. 

가사에 대한 비판은 제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현재도 이런 친일의 흔적이 가득 남은 가사를 쓴다는 것은 이 학교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설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80년대에 학교를 다닌 저와 제 친구들은 항상 큰 의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설립자가 친일파라는 소리가 파다하고 동네 어른들이나 형들이 친일파가 세운 학교라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이런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도 물어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교 선생님이 설립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는 것도 아니였습니다.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기에 숨길 수는 있습니다만 교가를 매주 월요일마다 부를 때면 이런 의문은 계속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전 나중에는 입만 벙긋 거렸지 교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짜증나고 빡쳐서 교가를 따라 부르기 힘들었습니다. 원석두님 찬송가 같은 것을 왜 불러야 하는지 이해가 가면 부르겠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단 한 명의 교사도 저에게 이런 교가 가사에 대한 이야기나 설립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선생이라는 분들도 먹고사니즘 때문에 학교에 비판적인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교사라면 학생을 가르치는 어른이라면 이런 의문을 풀어줬어야 합니다. 덕분에 저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은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자랑꺼리도 없고 친일파 학교라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과 두발 자율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스포츠 머리를 고집하는 군대 같은 교풍이 짜증 났습니다. 낡아빠진 교실도 짜증났죠. 학교가 얼마나 낡았는지 80년대 드라마 제 3공화국의 세트로 활용했을 정도입니다. 

당시, 선생님들이 참 밉습니다. 단 한명도 학생들의 이런 생각을 알지도 못했고 알아도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2014년 이 학교를 다니는 재학생들에게 물려졌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저 학교 다니는 재학생들 이런 이야기를 잘 모를 것입니다. 그나마 인터넷을 통해서 알려고 노력만 하면 잘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 힘들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설립자의 친일 행적은 설립자의 과거이자 치욕이지 학교를 다니는 재학생이나 졸업자의 몫은 아닙니다.
다만, 저 일본 군가 같은 교가의 가사는 바꾸던지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불리우고 있는 것과 저런 교가를 학교에 세웠다는 자체가 이 학교가 가지는 한계이자 과거와 단절하지 못한 이 학교의 문제이자 현재의 문제입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이런 정당한 비판을 졸업생들이 더 옹호 하는 것이 아닌 방어기재를 발동해서 막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졸업생들은 설립자와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학교 비판을 했다고 저에게 몰려와서 질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집단이 건강한 비판의식이 없으면 어떻게 변질되고 썩어 가는 지를 제대로 보여주더군요. 전 그래서 이 학교의 준거집단에서 탈출을 하고 어디 가서도 이 학교 출신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해피아에서 찾고 있습니다. 해양 마피아들의 핵심은 기밀주의와 끼리끼리 주의입니다. 
솔직히 한국에 해피아만 있습니까? 원전 마피아에 서울대 마피아, 아니 모든 집단과 그룹들이 마피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한 내부비판을 해도 집단 다구리를 까는 곳이 한국적인 풍경입니다. 논리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비판마저 비난하지 말라고 윽박 지르는 곳이 한국입니다.

하물며 명명백백한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해도 하지 말라고 하는 이 학교 동문들의 모습 속에서 세월호 사건이 왜 생기는지에 구조적 문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닥치고 공부나 하라던 교사들, 당신들은 어른이 아닙니다.

86년 매일 같이 최루탄이 터지는 나날이었습니다. 서울 도심에 있는 학교가 아닌 서울 변두리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얼마나 시위가 많은지 툭하면 최루탄 냄새가 교실 안까지 들어와서 선생님들은 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닫으라고 했습니다.

저녁 뉴스에서는 매일 같이 시위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폭도들이라고 말하는 땡전 뉴스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저는 왜 대학생 형 누나들은 김일성물이 들어서 정부에 대항할까? 정말 빨갱이들 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미웠습니다. 부모님들이 대학 등록금 대주었더니 대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시위만 하고 있습니다. 
다리에 불 붙어서 어쩔 줄 모르는 전경의 모습을 보면 악마들 같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선생님들은 이런 뉴스에 담기는 시선 그대로를 읇조리면서 니들은 닥치고 공부나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HR시간에 한 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는 뉴스에 나온 모습이 진짜라고 믿냐?"
"그럼 뉴스가 진짜지 가짜냐?"
"아니 내 말은 뉴스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
"뭔 소리를 하는 거니?"

지루한 HR시간, 관리 감독하는 교사도 방관하는 HR시간에 그 친구는 중학교 시절을 통틀어서 가장 쇼킹한 이야기를 30분 동안 해주었습니다. 

친구는 자기 누나가 대학생인데 어제 있었던 대학생 시위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친구 누나는 빨갱이가 아닌 정권 비판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전두환 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태우에게 물려 줄려고 대통령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를 통과 시키려고 하는데 그걸 막기 위해서 시위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직선제와 간선제의 차이와 왜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뉴스에서는 그런 이야기 전혀 나오지 않았거든요. 무조건 대학생 = 빨갱이라고만 했습니다. 

이런 세상을 그 어떤 선생님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교사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위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외면한 교육이 교육입니까? 아이들도 세상을 다 봅니다. 다 보고 느끼고 판단합니다. 눈과 코와 귀가 있는데 이해는 안 가도 보고 판단을 합니다. 

이런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그 어떤 어른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동네 어른도 아버지 어머니도 그리고 학교 선생님도 중학생인 저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건 어른으로써 직무유기입니다. 왜 세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나요? 적어도 양쪽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닥치고 공부만 하고 그런 것 몰라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무슨 아메바입니까?
아이들이 그냥 까라면 까지는 복종의 존재입니까? 사회에 복종하라는 것이 교육이라고 하지만 이런 교육에서 무슨 좋은 시민이 나오고 좋은 사회인이 나오겠습니까? 그냥 수동적인 인간들,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보다는 세상에 복종하는 방법이나 눈치나 살살보는 기회주의적인 인간으로 만들 뿐이죠



철부지 같은 어른들이 대물림 되고 있다는 것이 더 개탄스럽다


저는 80년대를 산 10대들이 세상의 기성세대가 되면 대입 스트레스가 사라질지 알았습니다. 미국처럼 유럽 아이들처럼 아이는 아이답게 웃고 뛰고 떠드는 세상이 될 줄 알았습니다. 대학을 늘리기 보다는 고졸이라도 사람 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80년대에는 수 많은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로 자살을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89년 개봉한 이미연 주연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신촌의 한 2류 극장에서 봤습니다. 
이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로 보기 드문 청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이 성적이 떨어지자 자살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자살을 하는 장면에서 극장 안에 있던 10대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날날이 같은 아이들이 웃고 떠들던 극장은 숙연해졌고 울음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래서 전 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세상을 개조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제 생각은 너무 착하고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이 어른들이 커서 만들어 놓은 세상은 더 지옥이었습니다. 고졸도 잘 살게 하는 세상이 아닌 모두 대학생으로 만들어서 대학 입학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대신 취직 스트레스를 만드는 스트레스 쉬프트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대입 스트레스가 없냐? 오히려 더 증가 했습니다. 보습 학원을 보내고 학원 과외를 넘어 개인 과외까지 적극적으로 하면서 사교육 광풍을 몰고 왔습니다. 지금의 10대 부모들은 70년대에 10대였던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년 후에는 80년대에 10대 였던 분들이 10대의 자녀를 키울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80년대와 지금과 달라진 게 있나요? 아니 오히려 더 정글이 되었습니다. 
지금 10대들이 느끼는 울분 당신들이 80년대에 느꼈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못난 모습을 자녀들에게 대물림 해주나요?
네! 말들은 잘 합니다. 이건 잘못 되었고 이게 옳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 말은 잘들합니다. 그런데 그게 내 문제 아니 내 아이 문제가 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그거죠

그럼에도 넌! 지금 공부를 해야해. 그런 생각은 대학 입학하고 나서 해라고 말하죠
세상의 잘잘못에 대한 판단은 아주 잘 하지만 그게 정작 내 일이 되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내새끼리즘 때문인가요?

오늘 페북 이웃분이 올린 글입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이 절 슬프게 하네요

"그 얘기 하면 잡혀가요!"

왜! 아이들에게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강요할까요? 왜 어른들은 동년배의 아이들 수백 명이 죽었는데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할까요?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닌 조심해서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그걸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냥 하지 말라고 느끼는 것이죠. 

이런 세상 누가 만들었나요? 바로 현재를 사는 못난 우리 어른들입니다. 정부요? 그 정부 누가 만들고 지원하고 지지했습니까? 바로 우리 어른들입니다. 내가 지지한 대통령이던 아니던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든 것을 만든 것이 우리 어른입니다. 

전! 이 아이들이 커서 자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어른들은 참 나쁜 어른들이 많았다고 말할까봐 두렵습니다.
제가 80년대 어른들을 비판 하듯 이 아이들이 30,40대가 되어서 현재의 30대 이상 기성세대들을 비판할까봐 두렵습니다. 아니 그건 견딜 수 있습니다. 제가 참기 힘든 것은 지금의 10대가 저처럼 3,40대가 되어서 저와 똑 같은 글을 쓸까 봐 걱정됩니다.

지금의 10대가 기성세대가 된 2030년 어느 무렵에 아이들에게 다시 비판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생은 유전되고 삶도 유전되는 것 같은 세상이네요. 우리는 왜 이리 바뀌지 않는 것일까요? 그건 바로 우리의 삶의 방식이 80년대나 2014년이나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물질만능주의와 몸을 숭배하는 몸을 종교시하고 배려심이 사라진 더 천박한 세상이 되어서 바뀐 것이 아닌 더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고등학생 44%가 10억이 생기면 감옥에서 1년 정도 보내는 것은 괜찮다라고 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이 고등학생들의 생각은 스스로 피어난 생각일까요?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입니다. 우리 어른들의 세상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밝고 맑은 세상이 될까요? 아닙니다. 생명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생명 경시, 인권 경시의 풍토는 더 가속도를 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를 사는 우리 어른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반성만이 침몰한 대한민국호를 다시 인양하고 수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맑고 밝아질 수 있습니다. 못난 어른들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못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한 첫번 째 행동은 이번 세월호 사고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아이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반성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책임을 지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비추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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