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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영화창고

사적인 복수에 대한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는 '방황하는 칼날'

by 썬도그 2014.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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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인기 일본 소설가입니다. 그가 쓴 소설들은 일본에서 영화로 제작 되었고 이중에서 백야행과 용의자X의 헌신은 한국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한국 영화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감독과 배우 이전에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원작자 때문에 기대되는 영화입니다. 
소설 원작 영화들은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이란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기승전결을 다 알고 있고 읽지 않은 사람도 조금만 검색해도 대충 스토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소설 원작 영화 추천 이유는 소설과 비교해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150만부가 팔린 일본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죽은 딸에 대한 사적인 복수를 하는 아버지를 다룬 영화 '방황하는 칼날'

4월 10일 개봉하는 방황하는 칼날은 선 굵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물로 분류되고 있지만 저는 스릴러나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닌 드라마로 보여집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사적인 복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방직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상현(정재영 분)은 암으로 아내를 떠나 보내고 딸 수진과 단란하게 살고 있습니다. 
항상 일 때문에 야근을 하는 모습이 딸에 대한 방치 같아서 항상 죄스러워 하는 소박한 아버지입니다. 이런 아버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딸 수진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 당했다는 형사의 전화에 전화를 잘 못 걸었다며 끊어 버립니다. 그러나 딸의 주검을 직접 목도한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진 마음으로 축 쳐진 어깨를 하고 경찰서 앞에서 매일 같이 앉아 있습니다. 범인을 잡기 전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죽은 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매일 같이 경찰서 앞에 앉아 있지만 무기력한 경찰은 범인의 윤곽도 잡지 못합니다.

그러다 아버지 이상현에게 한통의 문자가 옵니다. 
그 문자는 범인이 사는 집 주소와 집에 들어가는 방법을 적은 문자 메시지입니다. 범인들은 17살의 고등학생 무리입니다. 아버지는 고민을 합니다. 그 문자를 경찰에게 알려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미성년자는 살인을 했어도 감옥에서 몇년 살다가 아무일도 아닌 듯 툭툭 털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법의 미흡함을 잘 알고 있기에 아버지는 경찰에 알리지 않고 직접 범인의 집에 찾아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집에는 자신의 딸이 성폭행 당하는 동영상을 담은 CD가 있었고 이 영상을 보던 딸의 살인 현장에 있었던 소년 공범을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로 우발적으로 몽둥이로 쳐서 죽입니다. 

피해자 아버지가 살인을 하고 아버지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됩니다. 아버지 상현은 주범인 다른 소년을 찾기 위해서 추적을 합니다. 


경찰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피해자 아버지이자 살인범이 된 이상현과 딸을 살해한 주범인 고등학생을 동시에 추적을 합니다. 영화는 사적인 복수를 시작한 아버지 상현과 상현의 사적인 복수를 막아야 하면서 동시에 살해범인 고등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부조리함을 담고 있는 사회 고발성 영화입니다. 



법의 부조리를 고발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

스토리는 직선적입니다. 
한 아버지가 사적인 복수를 하는 내용이 주된 줄거리입니다. 따라서 어떤 반전이나 스토리상의 트릭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장면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잔뜩 묻어 나오는 영화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을 또래의 학생들에게 집단 폭행 후 살해 당했지만 그 학생들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성인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고 제대로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세상으로 다시 나오는 현실에 대한 울분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 상현은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법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사적인 복수극을 시작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이 소년법 때문에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영화 대사에도 나오지만 청소년이 성인을 죽이면 큰 일이 아니지만 성인이 청소년을 죽이면 큰 일이 된다는 말은 현실을 반영한 대사입니다. 

이런 모습은 장 형사(이성민 분)를 통해서도 보여집니다. 영화 초반에 장 형사는 게임기 하나 때문에 친구를 때려서 숨지게 한 학생을 심문하면서 폭언을 했다는 이유로 감찰관에게 감사를 받게 됩니다. 장 형사는 그 살인을 한 고등학생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친구들과 농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법이 세상의 상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지만 밖으로는 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참 박 형사(서준영 분)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따져 물을 때 형사는 형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직업 정신을 강조하죠. 장 형사는 피해자의 아버지이자 살인범인 이상현을 쫒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 잃은 아버지의 심정도 이해합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이 법과 현실의 괴리감을 관객을 향해서 고발서를 쓰는 영화입니다.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법을 이용해서 살인 조차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소년범들을 그냥 둬야 하느냐고 따져 묻습니다. 



한국 사회를 고발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

성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계속 개봉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고발성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모습을 보면 한국 사회가 점점 막장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런 영화가 나오기 이전에 언론사들이 세상을 정화하는 정화제 역할 또는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권 감시 보다는 정권을 호위하는 호위 무사가 되고 사회 문제도 깊이 있는 기사 보다는 살인, 성폭행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만 나열하는 엘로 저널리즘이 되었습니다.

권력을 고발하기 보다는 쉴드질을 열심히 하는 막장 언론사들이 늘어가다 보니 이제는 영화가 이런 소재를 이용해서 많이 만들어지네요. 그러나 언론만 탓할 수도 없습니다. 언론을 움직이고 정권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시민들입니다. 이번, 황제 노역 사건을 통해서 검찰과 법원은 크게 놀랐습니다. 여론이 들끓으니 알아서 꼬리를 내리는 촌극을 펼쳤습니다. 

여론이 중요합니다. 좀 더 풀어 쓰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상식과 심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일들을 보면 정말 한국인들의 평균적인 상식이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죠. 밀양 여중생 사건 기억하시나요?
그 사건의 피해 여학생은 사건 이후 2차 피해를 받았습니다. 가해자인 학생들은 몇명만 감옥에 갔고 그것도 금방 나왔다고 하죠. 오히려 그 피해 여학생을 욕하는 글을 싸이월드에 올린 여학생이 경찰 시험에 합격해서  경상도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고 있고 최근에는 승진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광주의 향판(한 지방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판사)은 하루 일당 5억원이라는 천인공노할 판결을 내렸습니다. 
신안 노예섬은 어떻고요.  한국 사회는 강력한 카르텔이 나라를 좀 먹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들에게서도 자주 많이 일어납니다. 

영화에서 열 받았던 장면 중 하나는  세탁소 주인 아저씨가 여중생이 살해 당했다는 소리에 살인한 놈들은 쳐죽여야 한다고 해놓고 정작 자기 자식이 공범이 되자 단순 가담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내일이 아니면 바른 소리를 하다가 내일이 되면 절대로 내 자식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감싸고 듭니다. 

영화 '시'는 이런 한국의 매정하고 내새끼리즘을 잘 고발한 영화입니다. 속죄하지 않고 삿대질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이고 이런 적반하장의 막장 드라마가 너무나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함께 법의 부조리를 준엄한 어조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아쉬운 점도 꽤 있습니다
먼저 영화는 상당히 신파적인 연출입니다. 폭행 장면을 담는 모습이나 인물들을 과도한 클로즈업으로 자주 묘사하는 모습은 사건을 관조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닌 클로즈업이라는 쉬운 도구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게 크게 모가 나지는 않지만 부담스러운 접근법이고 세련되지 못한 연출입니다. 

80년대 영화들이 그런 과도한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 했는데 최근에는 이런 사건을 관조적으로 담으면서 판단은 관객에게 넘기는 것에 비해서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클로즈업을 상당히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장면은 큰 물음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당신 같으면 내 딸을 죽인 놈을 살려 두겠습니까? 아님 죽이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묵직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

기승전이 다 예상됩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아버지는 자신의 사적인 복수를 하는 단순한 스토리는 이야기에 대한 깊은 재미를 느끼게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잔혹한 장면이 지난 후에는 상당히 느슨하게 흘러갑니다. 

이 영화의 단점은 중반의 지루함입니다. 그러나 그 지루함을 정재영과 이성민이 매꾸어갑니다. 특히 정재영이 눈 밭에서 딸의 환영과의 만남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이렇게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절규는 새끼 잃은 애비의 처절한 비명이었습니다. 

법치 국가에서는 사적인 복수를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게 이 국가라는 시스템을 돌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적인 복수심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 많은 영화들이 사적인 복수를 하고 그 사적인 복수를 보면서 관객들은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분명, 사적인 복수는 하면 안 됩니다. 단, 이런 법의 헛점을 이용하는 짐승 같은 인간들과 함께 숨을 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상당히 묵직한 영화입니다. 영화적인 재미는 아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영화의 재미 이상으로 큽니다. 가해자가 웃고 사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 '방황하는 칼날'이었습니다.  

방황하는 칼날 홈페이지 http://if-you2014.interes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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